#4. 계약.
#4. 계약.
“허… 이게 이렇게 된다고?”
마루는 멍청하니 자신의 인벤토리를 바라봤다.
[오염된 여의주]
그게 있는 게 이상할 일은 아니라 여길지 모르지만, 지금 상황에서 있는 건 충분히 이상한 일이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지금 그는 부캐, 즉 신규 캐릭터를 생성해서 접속한 상황이기 때문이다.
혹시나 하는 기대감은 품고 있었기에, 생성과 함께 인벤토리를 확인한 것이건만, 정말로 담겨 있는 모습에는 전율할 수밖에 없었다.
“허….”
물론, 그렇다고 해서 마냥 환상적인 건 아니었다.
[장toLovely~ing]
[레벨 : 1]
[힘 : 10] [지능 : 10]
[체력 : 10] [정신력 : 10]
[민첩 : 10]
[스탯 : 0]
이는 신규 캐릭터 ‘장투러블링’의 상태창이었다.
현실 속 육체와 스탯 공유가 이뤄지며, 시작부터 스탯 뻥튀기가 됐던 장관장과는 달리, 부캐의 스탯은 모든 유저의 기본 스탯과 동일한 모양새를 갖추고 있었다.
짐작하건대 본캐 장관장과 달리, 부캐는 현실과의 연동에 어느 정도 제한이 있는 것으로 여겨졌다.
어차피 스탯은 중요한 게 아니었다.
‘레벨 작업이 좀 귀찮긴 하겠지만, 어차피 1~2차 전직까지는 쭉쭉 올리니까.’
중요한 건 바로 ‘감각’이었다.
부캐 역시 여의주를 공유하고 있는 만큼 스킬을 제대로 읽어 낼 수 있을 거란 기대감이 컸다.
하지만 일말의 불안감 역시 감출 수는 없었다.
‘스탯처럼 감각 변화도 없으면 어쩌지?’
내심 걱정이 일었던지, 빠르게 레벨을 올리면서 스킬을 배울 수 있는 수준까지 이르렀다.
그 결과,
“휴우….”
마루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면서 가슴을 쓸어내릴 수 있었다.
다행히도 문제없이 스킬의 흐름을 읽어 낸 것이다.
‘음… 그나저나 레벨을 너무 막 올려 버렸네.’
장관장을 키울 때와 달리, 별다른 칭호 작업이나 보조 스탯 작업을 하지 않은 채, 레벨에만 집중하며 달려 버렸다.
아주 잠시 아깝다는 생각을 했지만, 이내 어깨를 으쓱이며 아쉬움을 털어 버렸다.
“뭐 대단한 걸 키운다고.”
애초에 타 직업군의 특수 스킬들을 배우기 위한 용도였다. 세세한 스탯 작업까지 하다가는 한세월이 걸릴 터, 이처럼 적당히 레벨 작업에만 집중하는 게 낫다는 결론이었다.
사실, 스킬 숫자가 많으면 좋긴 하나, 그 못지않게 하나를 제대로 이해하는 것 역시 중요한 만큼, 다양성의 메리트가 그리 큰 건 아니었다.
그뿐만이 아니라 3차 전직을 코앞에 둔 지금 현시점에선, 이미 충분히 많은 스킬을 익히고 있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처럼 스킬에 집중하는 이유는 하나였다.
실버 박사!
약속을 지키기 위함이었다.
‘돈 받은 값은 해야지.’
박사의 유산을 날로 먹을 생각은 없었다.
그리 생각하며 부캐의 육성 루트를 정하는데, 아무래도 레벨 작업에 탁월한 직업군으로 잡을 필요가 있었다.
그러다가 깨달았다.
“허….”
본캐의 직업군이 ‘몽크’라는 사실이었다.
‘…뭘 고르건 그것보단 낫겠네.’
괜스레 입맛이 썼다.
* * *
가디언즈 효과라고 해야 할까?
각국 정보 단체는 하나둘 자국 내의 종교들을 관찰하고 살피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여러 기이한 상황들을 포착할 수 있었다.
“믿음의 힘으로 기적이 발현될 것입니다.”
“각성하십시오!”
“이는 신께서 함께하심이십니다.”
“축복의 힘입니다!”
몇몇 사이비 종교 내에서 각성 사기가 발생한 것인데, 이를 정말로 사기라고 부르기가 참 애매했다.
그도 그럴게,
“허… 정말로 각성을 했잖아?”
“우연인가?”
그건 아니야.
비밀리에 촬영된 영상 너머, 신도들을 각성시키는 말도 안 되는 장면들이 포착되는데, 그런 광경이 연달아 발생하는 모습에서, 우연으로 치부할 수 없음을 깨달았다.
“사기인가?”
“확인할 필요가 있겠네.”
요원들을 움직여서 이들을 납치하는데, 나름의 명분도 있었다.
“신고하지 않은 불법 각성자가 있다고 들었습니다.”
헌터가 되는 건 선택이지만 각성 신고는 필수였다.
그런 이유로 각성자는 능력 발현 이후 일주일 안에 정식 등록을 해야만 했다.
이 같은 부분을 콕 집어서 대상을 관찰하다가, 등록 제한일을 넘기면 바로 움직여서 수갑을 들이민 것이다.
찔리는 게 있음인지, 상대편도 얌전히 수갑을 착용하며 따라오는데, 황당한 건 그렇게 검사를 시행한 결과였다.
“각성자가 아니라고?”
“신체 능력 그래프는 분명 변동이 있는데?”
“뭔가가 변화가 있었다는 뜻이잖아?”
“측정기가 반응을 안 하는 건 뭔데?”
골머리를 썩이는 가운데, 그 해답지는 전혀 다른 방향에서 나왔다.
“몬스터 전용 측정기에 반응을 한다고?”
“이게, 뭐야?”
“골 때리네.”
“설마….”
자연스레 떠오르는 게 있었다.
“키메라 연구?”
“이 미친놈들이.”
“설마, 민간에 실험을 한 거야?”
당연한 수순이라고 해야 할까?
국가적인 권한을 발동시켰다.
“영장 발부해!”
그렇게 압수 수색이 이뤄지는 가운데, 당혹스러운 결과가 이어졌다.
아무것도 없었다.
“골 때리네….”
교주의 발언도 골치였다.
“그냥 열심히 기도만 드린 것뿐입니다. 신의 축복이 신도님들을 눈뜨게 한 걸, 어찌 인간의 잣대로 정의하며 평가하려 하십니까. 믿으십시오. 믿음이 여러분을 깨닫게 할 것입니다.”
그러면서 알 수 없는 언어로 기도를 하는 모습에 요원들은 입만 뻐끔거릴 수밖에 없었다.
실제로 별다른 증거가 나오지 않은 이유도 컸다.
이에 대해 사일론은 이야기했다.
“당연히 아무것도 안 나오지.”
“왜?”
존슨의 물음에 사일론이 입에 지퍼를 채웠고, 할 수 없다는 듯 존슨이 지갑을 열었다.
“현질 좀 작작해.”
“흥! 게임은 머니 파워야.”
십이지섬 같은 외곽이 아닌, 마계의 중심부에 떨어져서 외로이 마계의 지도를 그려 나가고 있는 현실이지만, 마냥 외롭기만 한 건 아니었다.
요정 소환이 가능해졌고, 이를 통한 아이템 구입도 가능해졌다. 요정 상점 특성상 웃돈을 줘 가며 이용할 수밖에 없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상점 이용이 주는 혜택은 상당했다.
각종 물약은 물론이고 장비까지 구입 가능하니, 그야말로 신세계가 따로 없었다.
그렇게 사일론의 통장에 충전이 이뤄지고, 바로 상황 정리가 이어졌다.
“주종 계약을 맺은 거야.”
그 말에 존슨이 의문을 내비치는 가운데, 사일론의 이야기가 이어졌다.
“기도만 했다면서. 그게 일종의 주문 같은 거야. 내 몸과 마음 그리고 영혼까지 바친다. 뭐 대충 그런 거. 기도문 내용 녹음한 거 있으면 들려줘 봐.”
“일부밖에 없는데.”
“그거라도 일단 틀어 봐.”
이내 스피커에서 기도문이 흘러나오고, 사일론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하지만 존슨은 그가 웃는 게 아니라 분노하고 있단 느낌을 받았다.
두 눈 가득 서리가 내린 까닭이었다.
그리고 이는 정확한 예측이었다.
‘도플갱어!’
그들 일족의 언어가 튀어나온 탓에, 사일론은 옛 악연을 상기하며 가슴 한편에 잠재워 놨던 분노를 일깨우는 중이었다.
괜스레 등골이 오싹해지는 모습인지라, 궁금한 게 많았음에도 불구하고, 존슨은 얌전히 침만 삼켜야 했다.
* * *
일종의 관광지가 되어 버렸다고 해야 할까?
혜성 길드 주변은 방한하는 헌터들이 한 번씩은 꼭 들러서 둘러보는, 그런 명소가 되어 버린 상태였다.
트랩퍼!
그가 새롭게 함정 및 결계식을 설치한 까닭이었는데, 헌터들은 전문가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굳이 들러서 살피고자 했다.
혹시라도 배울 게 있나 싶어서였다.
상위권 헌터가 아니고서야, 기본적으로 트랩에 관한 재주를 한둘쯤은 지니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여러 헌터들이 혜성을 찾았다.
물론, 혜성에서 이를 가만히 내버려 둘 리는 없기에, 먼발치서 살펴보는 정도가 전부이긴 했다.
길드의 결계라는 건 굳이 표현하자면, 최후의 보루와 같은 것이지 않던가.
그런 걸 섣불리 개방하는 건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찾아드는 이들이 워낙 많다 보니, 외부 경계선 정도는 개방했는데, 그나마도 네임드급의 몇몇 헌터들 정도였다.
그리고 이런 네임드급에는 데일도 포함되어 있었다.
방한 소식 자체를 알리지 않았던 만큼, 그 방문을 아는 건 극히 소수였다.
대다수의 네임드급 헌터가 그러하듯, 데일도 가짜 신분이 있었고, 이를 통해서 혜성의 외곽을 쭈욱 돌았다.
그러며 감탄을 거듭했다.
‘집 주변도 그렇더니, 이건 거의 마법이라고 해도 되겠네.’
존슨의 마석 결계술의 흔적도 비쳤는데, 그 역시 한 팔 거들었던 공부이니만큼,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건 어쩔 수가 없었다.
아는 만큼 보인다고 했던가.
마석 결계술은 존슨의 것과는 또 다른 형태로 진화 발전을 거듭한 듯 보였는데, 그의 뛰어난 머리와 남다른 관찰 및 통찰력으로도 명확한 흐름을 읽기 어렵다는 부분에서, 새삼 마루의 이명을 실감해야만 했다.
‘트랩퍼….’
그는 마루의 집 주변과 혜성의 본사를 중심으로 빙빙 돌았다. 이처럼 반복되는 일상에 레오가 슬쩍 물었다.
“언제까지 계실 생각이세요?”
스승이 함께하는 건 좋았지만, 데일의 위치를 상기한다면, 그가 자리를 오래 비우는 게 마냥 좋아할 수만은 없는 일이었다.
존슨과는 다른 의미로 세계적인 영향력을 지닌 탓에, 언제나 그를 주시하는 눈길은 상당했다.
특히, 개중에는 그의 멱살을 잡기 위한 이들도 한둘이 아니었는데, WHA의 덩치를 부풀리며 이런저런 원한을 많이 쌓은 까닭이었다.
비슷하게 존슨 역시 멱살을 노리는 이들이 상당했지만, 그의 행적은 잡기 어렵다는 점과 실력이 만만찮다는 점 등으로 인해 복수를 실행하기 어려웠다.
그와 달리 데일의 경우에는 그의 거처에 다양한 함정 및 결계를 설치해 놨고, 그 주변으로 나름의 세력이라 할 만한 이들도 함께하고 있었던 터라, 쉬이 잡을 수 없는 거였다.
하나의 마을 전체가 데일을 위해 돌아간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었고, 그 때문에 접근부터가 난관이었다.
그런 이유로 거처를 벗어난다는 건, 안전지대를 떠난다는 의미와도 같았기에, 레오의 마음이 마냥 좋기만은 어려운 거였다.
“걱정 마라. 여기는 존슨도 있어서 멋대로 날뛸 수 없으니까.”
실제로 지난 대격변 이후 존슨의 위상은 한층 더 높아졌고, 그 때문에 여러 이면이 문제아들이 복수심을 속으로 삼키는 중이기도 했다.
격이 다름을 인정한 것이다.
그 같은 이유로 존슨 한 명이 그의 안전 가옥 역할을 해 주는 터라, 맘껏 활보할 수 있는 여유도 생겼다.
물론, 최소한의 안전장치로서 그의 호위대가 곳곳에 배치되어 있긴 하지만, 역시나 존슨 한 명에 비할 바는 아니었다.
게다가 그 본인도 미국의 두 번째 히어로라는 포지션을 잡고 있지 않던가.
레오 역시 이를 잘 알고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걱정하는 건, 현재 한국의 상황이 그만큼 복잡하기 때문이었다.
특히, 두 자릿수를 훌쩍 넘기는 랭커들이 이 작은 땅덩이에 가득 들어차 있는 상태다 보니, 데일의 실력을 믿음에도 걱정이 드는 건 어쩔 수가 없었다.
제자의 그늘진 모습에 결국 데일이 손을 들었다.
따악!
“끄악!”
시원하니 떨어진 꿀밤에 레오의 눈가가 촉촉해졌다.
“뒷방 늙은이도 아니고, 아직 팔팔한 청춘이니까 걱정 마라. 나보다 너는 어떠냐? 어떻게 아가씨하고 진전은 좀 있고?”
“…….”
레오는 슬쩍 시선을 피했다. 이에 데일이 고개를 저어 버렸다.
“쯧! 가끔 존슨 녀석하고 어울리나 싶더니, 그 녀석한테 쓸데없는 걸 배워 버렸어.”
“끄응….”
제자의 앓는 소리에 데일이 실소를 흘렸다. 이후 가볍게 제자를 좀 더 골려 주고 난 뒤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에 레오가 물었다.
“벌써 가시게요?”
“사내놈하고 커피 한 잔 마셨으면 됐지. 너도 연애 사업 바빠 보이던데, 그만 가 봐야지.”
마지막까지 골리는 걸 잊지 않는 스승의 모습에 레오가 와락 표정을 구기며 자리를 정리했다.
카페를 나오며 레오가 물었다.
“어디로 가세요?”
그에 대한 답변이 뜻밖이었다.
“PC방.”
“…에?”
“PP 하러 가야지.”
신규 콘텐츠는 놓칠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