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입문?
#5. 입문?
마계는 원래 한 명의 마왕만이 존재했다.
하나, 어느 시점을 경계로 대공들에게도 왕의 칭호가 부여되는가 싶더니, 자연스레 그들을 ‘사천왕’이라 부르는 흐름이 생겨났다.
당연하게도 마왕은 ‘대마왕’으로 격상되는 가운데, 이 같은 상부의 변화는 마계 전역에 걸친 지각 변동으로 이어졌다.
하위 체계 내의 격상을 꾀하는 움직임들이 늘어난 것이다.
간만에 마계 전역에 열기가 들끓어 오르며 곳곳에서 치열한 혈전이 난무하기 시작했다.
새로 대공 좌에 오르고 왕의 칭호까지 부여받은 존재, 북의 하르칸은 이런 상황을 보며 눈살을 찌푸렸다.
“쯧! 한동안 피곤하게 됐군.”
마족들이 피의 순환 속에서 혈기가 끓으니, 자연 밑에서부터 치고 올라오는 이들이 늘어나고, 그를 향한 도전의 목소리도 높아질 수밖에 없었다.
당장 성문을 두드리는 이들이 적지 않았는데, 아무래도 그의 역사가 이런 상황을 부추긴 면도 컸다.
강자존의 마계에서 그는 일종의 뒷공작을 통해, 요행을 부려 권좌에 오른 존재였다. 아무래도 찔러볼 만한 용기가 생길 수밖에 없었다.
이 자리에 오르기까지 제대로 보여 준 게 별로 없기 때문이다.
게다가 애초에 권좌에 오른 뒤에는 다양한 도전자가 생기는 건 당연한 수순이었다.
일종의 신고식이라 해도 될 것이다.
물론, 어느 정도는 예상했던 바였고, 그 때문에 성벽에 성문을 두드렸던 놈들의 사지를 골고루 분해해서 걸어 놓으며, 건방진 도전자들의 비참한 말로를 제대로 알려주기도 했다.
쿠웅… 쿵… 쿠우우웅….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성문을 두드리는 거친 손길은 이어지고 있었다.
새삼 이곳 세상의 정체성을 깨닫게 만드는 대목이 아닐 수 없었다.
마계!
치열한 약육강식의 강자존이 일상인 세상 속, 맨정신으로 버텨 낼 만한 세계는 아니었다. 모두가 미쳐 돌아가는 차원이었다.
하루빨리 강해질 필요성이 있었고, 그 때문에 하르칸은 금단의 주술에 손을 댔다.
강림의 술식!
물론, 나름의 명분도 있었다.
―저 단단한 가드를 뚫으려면 저희도 모험을 해야 합니다.
혹시라도 들킨다면 이처럼 변명하면 될 일이었다. 게다가 이를 위해서 타이밍을 잘 잡기도 했다.
북의 권좌를 차지하기 위한 계획이 막바지에 이르렀을 때, 그즈음부터 슬그머니 수를 쓴 것이다.
왕이라고 불리게 된다면, 만에 하나 발각되더라도 사태를 수습할 만한, 최소한의 발언권 정도는 생기기 때문이었다.
금단의 주술이라 불리는 건 여러 이유가 있었지만, 역시나 대표적이라 할 만한 건, 정신이 직접적으로 연결되는 것이다 보니, 자칫 방심하다간 이쪽의 정보가 건너갈 수도 있단 점이리라.
하지만 크게 걱정하진 않았다.
정신계에 관해선 남다른 방벽을 지니고 있는 게 바로 ‘환마족’이 아니던가.
도플갱어 역시 환마족의 일원이니만큼, 어지간히 방심하지 않고서야 ‘강림 역행 현상’이 발생할 리가 없었다.
위험성 높은 주술이지만 그만큼 보상 역시 확실했다.
―주인님 제 몸과 마음을 전부 바치겠나이다.
―부디 저를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노예로 부려 주십시오.
이런 종류의 외침이 저 너머의 세계로부터 들려오며, 나날이 그의 영혼을 풍족하게 만드는 걸 느꼈다.
나날이 농도를 더해 가는 진득한 마기가 그의 내부를 가득 채우고 있었다.
전신 가득 괴력이 휘돌았다.
다른 대공들과 비교해서 부족한 면이 있었건만, 조금씩 그 간격이 메워지고 있는 걸 느꼈다.
이것만으로도 충분히 만족스러웠다.
하지만 그 이상으로 특별한 기능이 숨겨져 있었다.
앞서 언급되었듯이 그는 ‘도플갱어’였고, 무려 그 일족의 ‘수장’이었다.
가장 뛰어난 흉내꾼이란 뜻이다.
그들은 특히 인간을 좋아하는데, 이는 인간의 형태를 따라 하기가 쉽고, 그 재능을 훔치기도 쉽기 때문이었다.
그 같은 의미에서 봤을 때, 이번 금단의 주술은 그에게는 그야말로 낙원이나 다를 게 없었다.
‘이런 걸 뷔페라 하던가?’
몇몇 ‘교주’들의 머릿속을 읽으며 훔친 지식을 떠올렸다.
말 그대로 도플갱어 일족에게 최고라 할 수 있는 만찬이 저 너머의 세상 가득 펼쳐져 있었다.
더욱 재밌는 건, 그렇게 펼쳐진 음식들이 알아서 입 안으로 들어오고 있단 점이었다.
―이 한 몸 바치겠나이다.
―저를 종으로 부려 주십시오.
―영혼의 주인님이시여….
괴력? 마기? 다 좋지만, 역시나 도플갱어 일족을 가장 흥분시키는 건 ‘재능’이라 할 것이다.
그래서 아쉽기도 했다.
‘쯧! 세계를 지키는 방벽이 너무 단단해.’
굳이 표현하자면?
차려진 밥상은 고봉으로 그득한데, 수저는 겨우 티스푼이었다.
알아서 입 안으로 날아드는 뷔페식이지만, 반의반 입도 안 되는 터라 감질나서 미칠 지경이었다. 마치 디저트만 먹는 기분이었다.
하루빨리 차원을 넘어, 디저트 수준이 아니라 메인 디시를 한가득 입 안에 넣고 우걱우걱 씹어 보고 싶었다.
특히, 곧 다가올 ‘역천의 시간’을 생각해 봤을 때, 위장을 든든히 채우는 건 필히 행해져야 할 조치가 아니겠는가.
‘마왕님을 위해서라도.’
금기에 손댄 변명거리는 참으로 무궁무진했다.
“흐흐흐흐….”
* * *
신규 콘텐츠 마계!
마루도 원래라면 한참 그 신세계를 즐기고 있어야 했다.
하지만 이게 웬일?
“굴러! 더 빡세게 구르는 거다.”
뜻밖의 만남으로 인해 즐기기는커녕, 고통과 고행을 넘어 고문의 시간을 보내야만 했다.
하지만 효과 하나는 확실하다고 해야 할까?
[정신력의 한계를 두드립니다.]
[정신력 +5]
[체력의 밑바닥을 경험합니다.]
[체력 + 5]
이런 식으로 뜻밖의 추가 스탯이 연달아 떨어지기 시작한 것이다.
따로 레벨 작업을 한 게 아니고, 신규 콘텐츠 혜택을 받은 것 역시 아니건만, 놀랍게도 투신에게 굴려지는 것만으로도 각종 스탯의 상승효과가 발생하고 있었다.
[근성실이 옵니다.]
[힘 +5]
이렇게 다방면에 걸쳐 성장이 거듭되는데, 그런 식으로 쌓인 스탯의 총합이 어느새 100을 넘기고 있었다.
무려 20레벨에 달하는 추가 스탯이 들어온 것이다.
레벨 여부와 무관하게, 이미 그의 육신은 완성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의 상태가 아니던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식의 성장이 더 발생할 만큼, 피지컬 임팩트라는 스킬의 관문은 높고도 높았다.
‘신규 콘텐츠 혜택으로 이만한 성장이 가능할까?’
그 부분의 의문에 대해서는 단호히 고개를 저을 수 있었다. 제트의 공부는 정말 말도 안 되는 거였다.
특히 더 놀라운 건, 아직 ‘피지컬 임팩트’ 스킬은 만들어지지도 않았다는 점이었다.
때문에 더더욱 기대가 될 수밖에 없었다.
만약 스킬이 탄생한다면?
‘얼마만큼의 스탯이 더 쌓일까?’
숙련 과정에서도 분명 추가 스탯이 발생할 터, 전율이 등허리를 타고 오르며 정수리로 승천했다.
그리고 새삼 두려움이 샘솟았다.
‘이런 스킬을 익히고 있었다니.’
제트의 강함에 대해 납득이 가는 순간이었다.
“네 몸을 완벽히 관조하고 느끼며 컨트롤할 수 있어야 한다. 그게 피지컬 임팩트의 기본이다.”
매일같이 이어지는 고행과 고문.
그에게 있어서 유일한 탈출구는 부캐를 키우는 시간 정도였다.
아무 생각 없이 쉴 수도 있겠지만, 이 역시 쉽지는 않았다. 현실에는 용군주가 대기 중이지 않던가.
그녀의 정체를 알기에, 함께하는 것만으로도 묘한 압박감을 느끼는 것이다.
결국, 다시 PP로 대피하는데, 그 방향이 바로 부캐였다.
이처럼 고된 나날이 얼마나 이어졌을까?
[스킬 ‘피지컬 임팩트(입문)’가 특수 등록됩니다.]
기다리고 기다리던 알람이 떴다.
재차 100스탯의 뻥튀기가 더해질 무렵의 일이었다.
“운이 좋군. 원래라면 3~4년은 굴러야 입문할 수 있는 공부지만, 이 특이한 세상 덕분에 한 달로 압축할 수 있었던 거다.”
제트는 그리 말하며 너부러진 마루를 내려다봤다.
스킬 등록 알람은 마루 혼자 들었지만, 그의 육신에 발생하는 변화는 지켜보고 있었기에, 이를 통해서 짐작한 것이다.
“내 제자 중에서 제일 빨리 익힌 녀석도 2년은 걸렸으니, 너는 행운아라고 생각해라.”
매일같이 죽다 살아나는 고문 수준의 고행을 했다.
이는 PP가 ‘게임’이기에 가능한 단련으로, 덕분에 일반적인 제자들과 달리, 매 순간 한계까지 밀어붙이는 정도가 아니라, 그 너머까지 과감히 찔러볼 수 있었다.
‘현실이었으면 이미 몇 번은 죽어도 이상하지 않았지.’
제트는 이미 제 몸을 대상으로 스킬을 등록하며 실험을 한 바 있기에, 마루를 가르치는 효율도 한층 높아져 있었다.
그뿐만이 아니라 [용안]을 비롯하여 극상의 스탯과 각종 가호, 그리고 초감각 등이 함께하고 있는 몸뚱이다 보니, 한계돌파 수준의 스킬 등록이 가능했던 것이다.
‘성녀의 가호도 있는 것 같고, 게다가 저 검….’
제트는 한편에 세워 둔 검 칼죽이를 바라봤다.
‘타락해서 마검이 됐지만, 그래도 기반은 성검이었던 용사의 검.’
세계 수호의 신물의 경우, 대개 주인에게 성장 버프를 거는 특수 기능이 있었고, 이런 부분이 마루의 감각을 한층 날카롭게 벼려 줬을 터였다.
“흥! 재능은 제자 놈들 중 최악이지만, 잔재주는 최고구나.”
짐작건대 여러 버프 및 주변 환경 등을 칭하는 것이리라.
묘한 타박이 이어지는 가운데, 마루는 자신의 새 스킬을 뚫어져라 바라봤다.
[피지컬 임팩트(입문)]
묘하게 거슬리는 한 단어가 있었다.
‘겨우… 입문이라고?’
육신의 한계를 넘고 또 넘으며, 거듭 한계 돌파를 한 것 같건만, 그게 겨우 입문이라는 것이다.
도장으로 치면 이제 겨우 흰 띠를 주며 품세 하나 가르쳐 준 정도였다.
멍하니 이를 보고 있는 와중에, 제트의 이야기가 들려왔다.
“실버 박사와의 약속은 지켰다.”
그가 너부러진 마루를 내려다보며 말했다.
“계약으로 맺어졌어도 제자는 제자! 어디 가서 맞고 다니면 혼쭐을 내 줄 테다. 만약 객사라도 당하면 지옥까지 쫓아가서 다시 단련을 시켜 줄 거니까. 혹시라도 뒈지고 싶으면 수명 다할 때까지 기다리다가 얌전히 관짝에 들어가라.”
그 내용만으로도 내상을 입어 로그아웃할 것 같은 소리였다. 이미 바닥을 친 체력과 정신력이 깎여 나가는 걸 느꼈다.
제트와의 시간은 거기까지였다.
“인연이 되면 또 보자.”
그리 외친 뒤 제트는 사라졌고, 너부러져 있던 마루는 겨우겨우 몸을 일으키며 그가 사라진 자리를 향해 고개를 숙여 보였다.
상황이야 어찌 됐건 그는 분명 ‘스승’이라 할 만한 존재가 아니던가. 하산의 예는 취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대로 기절하듯 너부러졌다.
* * *
실버 박사의 유산!
그 하나만으로도 마루는 아주 특별한 존재라 여겼다.
때문에 존슨은 결혼식을 비롯하여 가디언즈의 활동까지, 이래저래 바쁜 와중에도 마루를 위한 시간은 항상 빼놓고는 했다.
이를 통해서 마루와 이런저런 정보 공유 및 자잘한 대화가 이뤄지고는 하는데, 사실 거기에 쓰이는 건 극히 일부의 시간일 뿐이었다.
그렇다면 대부분의 시간은 뭘 하면서 보낼까?
콰콰콰콰콰콰!
바로 격렬한 대련이었다.
거대한 폭발성과 함께 마수지대 지형 일부가 변화를 일으키는 게 보였다. 존슨의 일격이 만들어 낸 현상이었다.
이런 괴력을 받아 낸 마루는?
“으퉤퉤퉷!”
저 한편에서 땅거죽을 헤집고 일어난 마루가 성난 음성으로 외쳤다.
“정말로 죽일 생각이야?”
흙먼지를 잔뜩 뒤집어쓴 그의 모습에 존슨이 웃으며 말했다.
“살았잖아.”
“죽을 뻔했잖아!”
버럭 성을 내는 마루를 향해 어깨를 으쓱여 준 존슨이 물었다.
“것보다 요즘 뭐 따로 배우는 거 있냐?”
슬그머니 화제 전환을 꾀한 것인데, 순수한 호기심 역시 포함된 전환 거리였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조금 전 공격은 마루가 정말 죽음의 위기를 느꼈을 만큼, 상당한 진심으로 내지른 일격이기 때문이었다.
‘어떻게든 될 것 같더라니.’
정말로 잘 가드를 한 것이 아닌가.
그냥 막아 낸 정도가 아니라, 정말 잘 막아 낸 것이다. 흙먼지에 뒤덮였지만, 부상 정도는 그리 심각하지 않은 게 증거였다.
뭐라고 해야 할까?
‘몸도 더 단단해진 것 같고.’
감각도 한층 예민해진 느낌이었다.
‘전체적으로 신체 능력이 크게 향상된 것 같단 말이지.’
존슨의 이 같은 물음에 마루는 슬쩍 엔트라넷 창을 살폈다.
[피지컬 임팩트(입문)]
그리고 그곳에 있는 스킬 하나를 눈에 담았다.
별다른 숙련 작업이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바로 현실로 넘어와 버린, 아주 신기하고도 강렬한 스킬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