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로그인 더 헌터-257화 (257/325)

#8. 메로~!

#8. 메로~!

골치 아픈 상황이라고 해야 할까?

영국은 근래 들어 커다란 근심거리에 휩싸인 채, 하루하루 앓는 소리로 보내는 중이었다.

유럽 이면의 무법 집단이 그들 나라에 뿌리를 내리려 한 탓인데, 일반적인 이면 집단이면 그러려니 하며 넘어갈 수 있지만, 저들은 무려 대규모의 연합체였다.

레메게톤!

이를 용납할 수는 없었고, 영국 측은 꾸준히 레메게톤과의 만남 및 대화 요청을 하는데, 어디 범죄자들이 말을 들어 먹겠는가.

특히나 연합체를 구성하면서 국가에 버금가는 전력이 모여 버린 집단이 아니던가.

결국에는 왕실 수호검이라 불리는 엘―소드를 움직였고, 레메게톤의 수장으로 추대된 바이퍼와 담판을 짓도록 상황을 이끌었다.

그 결과?

‘무승부라니.’

엘―소드라 불리는 랭커, 클레어는 쓰게 웃으며 자신의 팔을 내려다봤다.

가을이 깊었다고는 하나 21C 특유의 이상 기온에 의해 태양이 중천에 뜬 시간에는 아직 더위가 진득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긴팔을 두껍게 입고 있었다.

이는 사실 부상을 감추기 위한 조치로, 특수 제작된 외투로 일종의 깁스 역할도 하는 부분이다 보니, 무더운 날씨 정도는 흘려보내야 했다.

‘바이퍼….’

키홀의 수장이며 이제는 레메게톤의 대표자가 될 신규 랭커의 모습을 떠올리고, 그와 치렀던 격전을 되새겼다.

‘…괴물이 돼 버렸어.’

소름 끼칠 정도로 섬뜩한 기운을 흩뿌리던 바이퍼의 모습을 떠올리니, 저도 모르게 등허리가 오싹해지는 걸 느껴야만 했다.

일찌감치 처리를 해야 했다며, 뒤늦은 후회가 밀려왔다.

여러 이유가 있었다.

과거에는 제퍼드라는 괴물이 있기에 선뜻 건드리기가 어려웠던 것이 첫째고, 키홀이란 단체의 규모가 유럽에서 손에 꼽힌다는 게 둘째며, 결정적으로 그 무렵엔 영국과는 거리를 뒀다는 점이었다.

‘제퍼드가 사라졌을 때, 움직였어야 했나.’

하나 키메라의 사망설이 제대로 돌기 시작한 건, 제법 시간이 흐른 뒤였고, 그즈음에는 레메게톤이라는 단체가 제법 모양새를 갖춘 터라, 지대한 역할을 한 키홀과 바이퍼를 건드리기가 어려워져 버린 뒤였다.

게다가 그녀는 지키는 검일 뿐, 나아가 무찌르는 검이 아니었다.

그녀 본인이 피와 살육을 그리 달가워하지 않기에, 수호의 이명을 달게 받은 것이지 않던가.

레메게톤이 아니라 키홀 본체가 오는 정도였으면 그저 조용히 있었으리라. 하지만 저 이면의 연합체인 레메게톤의 랜드마크가 건설되는 건, 그녀로서도 용납할 수 없는 부분이었다.

수호검을 들어 움직였고, 부딪쳐 휘둘렀다.

그 결과가 그녀를 이토록 먼 나라 한국까지 넘어오게 만든 것이다.

‘피할 수 없다면, 방비를 단단히 해야겠지.’

바이퍼와의 격돌을 통해 레메게톤의 영국 진출은 막을 수 없음을 알았다. 그 때문에 성벽을 보강하는 작업이 필요하단 결론이 나온 것이다.

그 강화 작업에 합당한 인재가 여기 한국에 있었다.

겨우 B급 A형 헌터가 S급의 랭커와도 견줄 수 있단 소리가 나오는 존재.

트랩퍼!

그 만남이 쉽지 않을 것이라는 이유로, 왕실에선 그녀에게 요청한 것이고, 이처럼 직접 움직이게 된 것이다.

사실, 왕실의 요청이 없더라도 직접 올 생각이었기에, 흔쾌히 건너올 수 있기도 했다.

아무래도 여러 요소가 작용했겠지만, 오랜 친우가 이곳에 머물고 있단 이유도 컸다.

‘마중 나온다고 했는데.’

한차례 둘러보니, 저 멀리 반가운 얼굴이 보였다. 이에 클레어가 웃으며 다가갔다. 친우가 다급히 달려오며 말했다.

“미안 좀 늦어 버렸네. 어째 차 댈 데가 없냐. 요즘 들어서 한국에 넘어오는 애들이 워낙 많아서, 공항이 아주 바글바글하다.”

그 말에 클레어가 고개를 저었다.

“늦긴, 딱 시간에 맞춰서 왔어. 그나저나 연애를 해서 그런가? 피부가 번들거리는 게 아주 청춘이네.”

“그 인간 때문에 속만 썩이는데 뭘.”

클레어가 친우를 향해 물었다.

“결혼식 준비는 잘돼 가?”

“그냥 대충 적당히 하는 거지.”

“남편 될 사람이 더 열심히라며.”

“그러니까 난 대충 해도 돼.”

고개를 절레절레 저은 클레어가 손을 내밀었다.

“오랜만이야. 이반나.”

이반나가 웃으며 이를 맞잡았다. 그러며 말했다.

“널 기다리는 사람이 있어.”

클레어의 눈이 동그래졌다.

* * *

피지컬 임팩트!

그 스킬은 일종의 상시 발동의 패시브 계열이라 할 수 있어서, 마루는 언제나 한층 강화된 육신으로 생활을 하게 됐다.

물론, 이를 유지하기 위해선 꾸준한 단련은 필수였는데, 이제 겨우 입문 단계라는 부분에서 도전 정신이 솟구치며, 스스로도 고행을 거듭하게 만들었다.

육체 강화와 신체의 컨트롤 그리고 감각 및 시야각의 확대 등, 이래저래 놀라운 부분이 많은 스킬이었는데, 그중에서도 최대의 장점이라 할 만한 건 사실 따로 있었다.

컨디션!

어느 날인가 문득 깨달았다.

[컨디션 : 7]

스킬의 등록이 끝난 이후부터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컨디션이 하락 지점으로 떨어진 적이 없단 점이었다.

심지어 일상 최하점인 6점대로 떨어졌던 기억도 가물가물했다.

좀 무리하게 일과를 진행하고 난 뒤에도 겨우 7점대였고, 평균적으로 8점대를 유지하고 있었다는 걸 깨달은 것이다.

“허….”

이 말인즉, 언제든 최상의 컨디션으로 결전을 대비할 수 있단 의미가 아니겠는가.

현장을 살아가는 헌터들에게 있어선, 그야말로 최고의 가치를 지닌 스킬이라 봐도 과언이 아니었다.

만에 하나의 가정일 뿐이지만, 최상의 컨디션이라는 9점대가 일상이 되는 날이 올지도 몰랐다.

그와 동시에 혹시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어쩌면 10점대도….’

환상으로 여겨지는 점수대였지만, 왠지 피지컬 임팩트의 격이 오르면 가능할지도 모른다는 예감이 왔다.

그렇게 상승의 컨디션으로 밀렸던 업무들을 빠르게 처리하는데, 오늘 그의 처리 대상은 트랩퍼로서의 일거리들이었다.

“어떤 걸 잡아야 잘했다고 소문이 나려나.”

한국만이 아니라 세계 여러 나라에서 네임드급 길드가 의뢰를 넣은 것인데, 이를 찬찬히 살펴보며 괜찮은 일거리를 고르는 중이었다.

많이 할 생각은 없었기에, 짧고 굵게 한 방이 있는 걸로 고르고자 했다.

그 와중에 문제 될 의뢰는 걸러 내는 것도 잊지 않았다.

“이면에서 날아온 건 제외하고.”

남다른 스탯의 영향이라고 해야 할까?

‘기억력이 부쩍 좋아졌단 말이지.’

15년 경력을 쌓으며 스쳐 지나왔던 업계의 여러 정보들이, 방금 막 들은 따끈따끈한 정보처럼 실시간으로 바로바로 재생되니, 문젯거리들을 골라내는 건 어렵지 않았다.

직접 몸으로 부딪쳐 가며 쌓은 정보다 보니, 이면만이 아니라 외부의 여러 단체들 속에서도 문제가 될 만한 것들을 바로바로 골라낼 수 있었다.

그러다가 발견해 낸 뜻밖의 의뢰 목록을 확인했다.

“흠….”

눈이 번뜩였다.

의뢰서 한편에 선명히 박혀 있는 인장.

영국 왕실!

짧고도 굵은 한 방에 너무도 어울리는 의뢰 목록이 거기 있었다.

그 한편으로 방문객의 이름도 적혀 있었다.

‘엘―소드?’

마루의 눈이 반짝였다.

* * *

언제부터였을까?

초롱이를 비롯한 꼬맹이들은 웬 귀염둥이가 주변을 빙빙 도는 걸 알게 됐다.

“우왓! 또 왔다.”

초롱이의 외침과 손짓에 루미와 라미가 이를 쫓아 시선을 돌렸고, 저 한편의 담장 위에서 꼬리를 살랑이는 귀염둥이를 볼 수 있었다.

“냥이야~!”

한껏 목소리를 높이며 초롱이와 루미가 달려가는 가운데, 라미는 묘한 눈빛으로 귀염둥이를 살폈다.

앞선 외침에서 알 수 있듯, 귀염둥이의 정체는 고양이었다.

그것도 아주 시꺼먼 칠흑빛의 고양이로, 일반적인 길고양이라 하기에는 놀랍도록 관리가 잘돼 있던 탓에, 털에서 윤기가 좌르르 흐를 정도였다.

그 때문에 더욱더 매력이 넘쳐 났는데, 라미는 이에 속지 않았다.

‘정체가 뭐지?’

작은 꼬마 아이의 모습을 하고 있다지만, 라미의 본신은 용군주라 불리는 마룡 드라이크의 핏줄이었다.

완성된 강자이며 초월적 존재가 아니던가.

그 때문에 더욱 경계심이 커지는 것이기도 했는데, 그런 그녀의 감각으로도 검은 고양이가 지닌 특별함을 제대로 읽어 내기가 어려웠던 것이다.

놀라울 만큼 그 기운이 잘 갈무리되어 있어, 자칫 그녀도 놓치고 지나갔을 만큼, 검은 고양이는 존재감을 지우는 데 능숙했다.

사실, 그녀가 검은 고양이에 대해 의심하게 된 것도 우연이라 할 수 있었는데, 처음에는 그녀도 별다른 경계심 없이 고양이의 귀여움에 빠졌었다.

하지만 어느 순간 그녀의 감각을 속이며 사라지는 모습에서 깜짝 놀라 의심하게 됐고, 저 깊숙이 갈무리된 특별함을 엿보게 된 것이다.

등허리가 쭈뼛 서게 만들던 순간이었다.

그런 위험한 존재가 미래의 낭군 곁을 맴돌고 있었건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를 경계하지 않는 건, 검은 고양이가 놀라울 만큼 초롱이에게 호의적이었던 까닭이었다.

도도하니 담장 위에 서 있던 검은 고양이건만, 초롱이가 다가오자 훌쩍 뛰어내리더니, 마치 강아지라도 되는 것처럼 이리저리 몸을 비비며 애교를 떠는 것이 아닌가.

“에헤헤헤~!”

이에 초롱이가 활짝 웃으며 기뻐하는 게 보였다. 저 귀여운 모습을 보면서 어찌 고양이를 쫓아낼 수 있겠는가.

라미는 애써 평정을 가장하며 초롱이의 곁에 바짝 붙은 채, 만약을 대비할 뿐이었다.

아무것도 모르는 루미는?

“여기, 멸치 먹을래?”

몰래 챙겨 왔던 먹이를 내밀었다.

이선에게 따로 부탁해서 구한 것으로, 유독 초롱이만 좋아하는 고양이를 유혹하기 위해 준비한 특별식이었다.

냐아아앙~!

과연 효과가 있던 것인지, 루미에게도 애교를 부리는데, 요 며칠 꾸준히 연어를 비롯하여, 다양한 간식을 가져다 바친 효과였다.

저 멀리, 이선이 흐뭇하게 지켜보고 있는 게 보였다.

이전까진 초롱이에게만 애교를 부리고, 루미 라미는 본체만체했던 걸 생각하면, 그야말로 장족의 발전이라 할 수 있었다.

사실, 라미가 검은 고양이를 의심하게 된 계기도 이거였다. 하도 괘씸해서 추격을 하려다가 꼬리를 놓쳐 버렸고, 거기서 평범한 고양이가 아니라는 걸 알게 됐다.

조금은 황당한 흐름이지만, 어쨌든 덕분에 고양이를 경계할 수 있게 된 것이기도 했다.

“검은 고양이 메로~ 메로~ 메로~!”

초롱이가 신나서 고양이와 함께 노래를 부르고 있는 그 귀여운 모습에, 슬쩍 경계심이 풀어지려 했지만, 애써 마음을 다잡으려 메로라 이름 붙인 검은 고양이를 노려봤다.

마침 메로도 그녀를 향해 고개를 돌렸고, 자연스레 둘의 시선이 마주쳤다.

메롱….

착각이었을까?

메로가 메롱 하듯 혓바닥을 날름거리는 게, 꼭 놀리는 것 같단 생각이 들어 버렸고, 괜히 발끈하는 심경이 올라오며 그녀의 얼굴을 붉게 물들였다.

초롱이의 품에 안긴 채, 그녀를 향해 연신 날름거리는 혓바닥이 묘하게 얄미웠다.

* * *

이반나와 클레어!

그 둘은 업계 내에서는 상당히 유명한 여인들이었다.

일단, 둘 다 랭커라는 점에서 기본적인 유명세야 당연히 따라붙는 거였는데, 거기에 더해 둘 다 여인이며 미인이었다.

비슷한 조건이 없는 건 아니지만, 이들의 경우에는 서로 전성기를 화려하게 보냈다는 이력이 있었다.

그 부분이 미모마저 더욱 화려하게 부각시키는 감이 있었다.

이반나의 경우에는 세계 방방곡곡을 돌아다니며 정의를 집행했고, 클레어의 경우에는 영국의 수호검이 되기 이전부터 수호의 검을 들며, 자국의 시민들을 지켜온 정의 집행의 검이었다.

랭커들 중 상당수가 던전과 마굴 그리고 성장에만 집중했다면, 그들은 몬스터와의 다툼 못지않게 범죄와의 다툼도 이어 왔던 것이다.

그 대표적인 경우를 들라면, 이반나는 그 과정에서 키홀과 큰 마찰을 빚고 제퍼드와도 수차례 부딪친 이력이 있지 않던가.

클레어 역시 비슷하게 영국을 어지럽히던 여러 이면 단체와의 마찰이 있었다.

이런 비슷한 두 성향의 여인이 마침 같은 유럽권에서 활동 중이었고, 그러다 보니 자연스레 만남이 이뤄지고 손발을 맞추는 경우가 늘어 갔던 것이다.

조합도 나쁘지 않았다.

이능계의 클레어와 강화계의 이반나였다.

물의 검을 휘두른다고는 하나, 기본적으로 자연계의 조작 능력자다 보니, 거리 공격도 가능한 클레어였고, 덕분에 이반나라는 든든한 탱커를 앞세우며, 저돌적인 딜링을 할 수도 있었다.

게다가 상성이 좋다고 해야 할까?

함께할 때가 많은 건 아니었지만, 일단 손발을 맞추면 놀라운 상승 작용을 보이며, 각자 지니고 있는 능력치를 최고로 끌어내는 효과를 보이고는 했다.

각자 러시아와 영국을 대표하는 랭커가 된 뒤, 국가적 사정으로 만남의 횟수가 줄었지만, 여전히 서로를 위하는 마음이 큰 건 변함없었다.

그리고 이런 사실은 업계 관계자만이 아니라, 민간에서도 모르는 이가 드물었다.

그 때문일까?

“너를 만나고 싶어 한 사람이야.”

이반나를 통해 클레어를 소개받았다.

‘맙소사!’

클레어는 자신의 눈앞에 선 사내를 바라보며 눈을 동그랗게 떴다.

‘트랩퍼!’

영국 수호검이라 불린 그녀가 이곳 한국을 찾은 목적, 그 대상이 도착 첫날부터 대뜸 눈앞에 나타나 버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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