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드래곤 스케일!
#9. 드래곤 스케일!
너무도 갑작스러운 만남에 정신을 못 차릴 때, 상대편에서 먼저 말문을 건네 왔다.
“만나 봬서 영광입니다. 정마루라고 합니다. 엘리멘탈 소드의 명성은 이곳 한국에서도 유명합니다. 들어오신 걸 알면 난리가 날 것 같네요.”
이에 다급히 정신줄을 다잡으며 인사말을 나눴다.
“…클레어 밀러예요. 저야말로 만나 뵙게 돼 영광이네요.”
건어택을 시작으로 트랩퍼까지, 마루의 명성은 이래저래 세계 각국을 흔들고 있었다.
특히, 밑바닥에서 15년을 구르며 쌓은 경력 때문인지, 민간 차원에서의 인지도가 유독 남다른 경향이 있었고, 그런 이유로 영국에서도 마루의 인기는 상당한 편이었다.
그런 사실을 예쁘게 포장까지 해서 이야기하니, 마루가 민망하게 뒷머리를 긁었다. 그러며 괜히 더 간지러워지기 전에 본론으로 들어가자며 이야기를 꺼냈다.
“절 찾아오셨다고 알고 있습니다. 그 이유도 전달받았고요.”
클레어의 표정이 살짝 굳어졌다. 먼저 자리를 마련한 부분에서 일말의 기대감이 있긴 했지만, 그래도 만에 하나라는 게 있는 만큼, 마냥 긍정적인 상황으로 보는 건 좋지 않았다.
내심 두근거리는 심경으로 마루를 바라봤다.
“영국 왕실의 의뢰. 받아들일까 합니다.”
확답은 아니었지만 얼굴이 밝아지기에는 충분한 내용이었다.
“조건이 있으시겠죠?”
받아들인다가 아닌, 받아들일까 한다라며, 살짝 여지를 남겨 놓은 부분에서, 뒤 내용을 읽어 낼 수 있었다.
물론, 따로 영국 왕실에서 보낸 조건 목록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굳이 이처럼 자리를 마련하고 운을 띄운 점에서, 개별적인 요청 사항이 있음을 짐작하는 건 어렵지 않았다.
이에 마루가 답했다.
“드래곤 스케일… 대여 가능할까요?”
클레어의 눈가에 옅은 흔들림이 일었다. 예상치도 못한 내용이 튀어나온 까닭이었는데, 그녀와 비슷하게 이반나 역시 놀란 듯, 눈을 동그랗게 뜨며 마루를 바라봤다.
그처럼 경악하는 이유가 있었다.
현존하는 최강의 갑주를 꼽으라고 할 때, 항시 언급되는 장비가 있었으니, 그게 바로 영국 왕실의 대표 걸작인 드래곤 스케일이었다.
그 제작 과정에서 들어가는 재료와 노동력이 어마어마한 터라, 지금껏 겨우 한 자릿수만 제작되었고, 그마저도 왕가를 위해 사용되는 정도일 뿐이었다.
드래곤이라는 명칭에서 알 수 있듯이, 그 재료 핵심에 용족의 사체가 사용되는데, 당연하게도 현존 최강 용족이라는 드래이크의 사체로 제작되었다.
뿐만 아니라 이를 강화하기 위한 왕실의 모든 노하우가 사용되었고, 각종 압축 및 경량화 작업 등, 말도 안 되는 어마어마한 시간과 노하우 그리고 노동력이 투입된, 말 그대로 ‘작품’이라 할 만한 물건이었다.
영국을 대표하는 왕실 수호검 클레어 정도는 돼야 착용 가능한 물건이었다.
‘으음….’
생각지도 못한 내용일 뿐만 아니라, 그 사안이 너무 큰 까닭인지, 클레어는 쉬이 답하지 못한 채, 그렇게 신음성만 삼키며 침묵해야 했다.
* * *
드래이크의 사체를 다룬다는 것.
그 하나만으로도 세계 톱클래스의 장인이라 불리기에 충분했다.
드래곤 스케일!
앞서 언급했듯이 이는 그 톱클래스 장인 중에서도 최고들만이 모여, 온갖 노하우를 전부 때려 박아서 만든 장비였다.
영국 왕실의 주요 인사들만 사용할 수 있다지만, 사실 이를 제대로 활용할 수 있는 건 랭커들밖에 없었다.
그나마도 쉽지 않았다.
사념폐해!
장비에 깃들어 있는 드레이크의 기운 때문이었다.
실제 착용자들의 이야기를 빌리자면?
―마치 ‘피어’를 계속해서 받는 기분이다.
이를 방비하고자 최고의 장인들이 각종 정신 방벽의 보조 장치를 달아 놨지만, 그로 인해서 장비의 능력치가 반감되는 문제는 어쩔 수 없었다.
왕실의 인사들은 이런 보조 장비를 주렁주렁 달고서 착용하는데, 이를 보면서 ‘돼지 목의 진주’라며 놀리는 이들도 적잖아 있었다.
랭커들도 이를 제대로 활용하고자 한다면, 따로 정신계 스킬 각성자의 지원을 받아야 할 만큼, 실로 어마어마한 장비가 바로 드래곤 스케일이었다.
향간에선 그 때문에 계륵이란 표현도 나올 정도였다.
현재 영국 측에서 이런 보조 장비나 지원 없이 장비를 제대로 활용하는 존재는 오직 한 명뿐이었다.
클레어!
한때는 존슨과도 비교됐을 정도의 강자였기에, 오히려 당연하단 분위기였지만, 사실 그녀도 이를 제대로 활용할 수 있는 건 아니었다.
일종의 시간제라고 해야 할까?
‘나도 단기 결전용으로 사용하는 게 전부지.’
클레어는 그리 생각하며 마루의 제안을 떠올렸다.
‘드래곤 스케일을 대여하고 싶다라.’
따로 장비를 판매하는 일은 없었다.
당장에 수호검이라 불리는 그녀만 하더라도 대여 형식으로 사용하고 있지 않던가. 영국 왕실이 드래곤 스케일을 판매하는 일은 결코 없을 터였다.
그 부분을 알기에 마루 역시 판매가 아닌 대여를 언급한 것이리라.
의아한 일이었다.
‘왜?’
업계 내에서 트랩퍼로서의 명성이 하늘을 찌르고 있다지만,그 본인이 하늘에 닿은 건 아니었다.
B급 A형!
마루의 현 위치였다.
한데 랭커급의 장비, 그중에서도 최고이며 최악인 장비를 굳이 원한다?
의아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면서 또 한편으로는 견적을 내야만 했다.
‘레메게톤… 키홀… 바이퍼!’
그 골칫거리들을 생각해 봤을 때, 트랩퍼의 재주로 성벽을 보강하는 건 필수였기 때문이다.
‘왕실을 설득할 수 있으려나….’
트랩퍼의 명성이 대단한 건 사실이지만, 아직은 업계 내에서만 떠도는 면이 컸다.
그 때문에 내심 아쉽기도 했다.
‘기왕이면 대외적인 이름값이 필요한데.’
왕실을 설득하기 위한 명분을 상기해 봤을 때, 때론 업계가 아닌 민간의 명성을 더 중요시하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하… 골치 아프네.”
술이 당기는 순간이었다.
우우우웅….
그 같은 심경을 아는 것일까?
―한잔?
이반나의 문자에 외투를 챙겼다.
* * *
B급 A형 정마루!
그에 대해, 업계 내에서는 이미 건어택보단 트랩퍼라는 이명이 더 우위를 차지하고 있었지만, 대외적으로는 건어택이란 이미지가 좀 더 강하게 남아 있는 게 사실이었다.
이는 마루가 지난 트랩퍼 사건을 드러내려 하지 않은 부분이 클 것이다.
게다가 당시 사건에는 이면의 문제아들이 껴 있던 터라, 공론화하기 어려운 사건이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워낙 임팩트가 컸던 터라, 업계 내에서는 크게 화제가 됐고, 그 일부가 밖으로 새 버리면서 트랩퍼라는 이명이 외부적으로도 떠돌게 된 것이다.
하지만 아직 외부에선 건어택이 우위인 상황이었다.
그런 만큼 민간에선 트랩퍼라는 이명에 대한 의문이 뒤따르는 건 어쩔 수 없는 부분이었다.
―혜성 결계술식 관리자로 올라간 게 대단하긴 한데, 그걸로 랭커까지 언급하는 건 좀.
―국뽕 한 사발 들이켜서 그런 거 아니야.
―적당히 그러려니 하면서 주모나 불러.
―잘못 부르면 욕쟁이 할망 오니까 조심해!
―할망이 안주는 푸짐하지.
―욕은 더 푸짐하고.
―아니, 것보다 업계에선 트랩퍼가 건어택보다 유명하다는데, 제대로 알려진 게 없잖아. 이걸 그냥 믿어도 되나?
―대형 길드 혜성에서 아무나 술식 관리자로 뽑겠냐.
―트랩 좀 만지는 건 알겠는데, 그래도 랭커급은 좀….
―관리자가 하나만 있는 것도 아니잖아.
―듣기론 최고 관리자도 한 수 접어 준다던데.
―직접 본 게 없잖아. 말만 들어서 어케 아누?
의심까지 이어지는 와중에도, 마냥 분위기가 나쁜 건 아니었다.
―그래도 업계에서 띄워 주는 거 보면, 뭔가 있긴 있다는 거 아니겠냐? 랭커급은 좀 과한 것 같고, 적어도 A급 정도는 충분히 씹어 먹는 거 아닐까?
―그 정도만 돼도 대단하긴 하네.
―각성 1년 만에 B급 자격증도 임팩트가 큰데.
―잔재주로 A급 찍어 버리는 헌터가 있다?
일단 밑바닥부터 치고 올라왔다는 마루의 경력 때문인지, 그에 대한 기본적인 인식이 좋은 면이 있었다.
거기에는 ‘존슨의 형제’라는 이미지도 큰 작용을 했으리라.
―대체 얼마나 대단해서 따로 ‘트랩퍼’라고 불리는지, 솔직히 좀 보고 싶긴 하다.
―어떻게 따로 영상 좀 못 구하나?
―모르긴 몰라도 건어택만큼 지릴 것 같긴 한데.
―방송국 놈들 뭐 하냐? 여기 대박 물건이다.
―고것이 알고 싶다!
의문이나 의심의 크기만큼 호기심 역시 커져만 가는 가운데, 이를 해소할 만한 사건이 하나 터지고야 말았다.
* * *
지난 발록 사건을 비롯하여, 최근 트랩퍼 사건까지, 마루는 일종의 민간 안전의 대책으로, 거짓 알람을 울린 적이 있었다.
애애애애애애애앵…….
그 때문일까?
‘이건, 또 뭐야?’
갑작스러운 경보에 마루는 순간적으로 지난 두 사건을 떠올리고야 말았다.
누군가 장난을 치는 건가 싶었던 것이다.
하나 최근 들어서 그의 정보력은 어지간한 대길드 못지않은 수준이었고, 그런 이유로 지금 이게 거짓이 아니라는 결론에 이르는 건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마루와 이선의 시선이 마주쳤다.
“애들 먼저!”
대피소로 옮기는 게 중요했다.
이선도 이제는 세 아이가 보통 애들이 아니라는 것 정도는 짐작하고 있지만, 그렇다고 해도 아이는 아이였다.
특히, 이젠 정말로 친조카처럼 아끼고 살피는 아이들이 아니던가.
그 같은 이유로 남다른 재주가 있건 없건, 이런 장소에서는 멀어지게 하는 건 당연한 조치인 것이다. 마루가 외쳤다.
“C―8 대피소로 가.”
“…매번 듣지만, 발음 참….”
“그냥 알파벳이야. 오해하지 마.”
마루는 그리 말하며 이선의 등을 떠밀었다. 이 근방에서 가장 가까운 대피소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마루가 따로 작업을 해 놓은 공간이기도 했다.
만에 하나의 사태에도 남다른 방어력을 보여 줄 수 있을 터였다.
현재 아이들이 밖에서 노는 중이었는데, 랭커 두 사람의 감각권 안에 있는 만큼, 때때로 이렇게 따로 움직이는 경우도 있었다.
물론, 마루 입장에서도 용군주 라미를 믿기 때문에, 얼마든지 더 멀리 내보낼 수 있긴 했다.
“부탁할게.”
이선이 채비를 하며 물었다.
“너는?”
“막아야지. 우리 동네잖아.”
그는 헌터였다.
* * *
갑작스러운 돌발 게이트 알람에 주민들의 불만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작년부터 몇 번째야?”
“집값이 싼 동네라서 그러나.”
“어휴… 이사를 가야 하는 건가?”
“불안해서 살겠나.”
발록과 트랩퍼 사건 그리고 이번 알람까지, 짧은 시일에 벌써 3번째 돌발 게이트가 터진 것이다.
물론, 진짜는 이번 한 번뿐이지만, 민간 차원에서는 그렇게 생각할 수가 없었다.
어쨌든 그렇게 주민들이 대피소로 향하는 가운데, 마루는 게이트를 막기 위한 준비가 한창이었다.
이선 없이 굳이 그 혼자 막은 이유라면, 아무래도 이선이 대외적으로 등판할 때가 아닌 부분이 컸다.
게다가 굳이 랭커가 둘이나 움직일 필요도 없지 않겠는가.
정말 말도 안 되는 등급이 뜨지 않는 이상, 마루 혼자서도 충분히 막는 게 가능했다.
돌발 게이트라는 게 어지간하면 D급이고 높아 봐야 C급이지 않던가.
과거에는 D급에도 허덕였지만, 지금은 C~D급 정도는 전혀 문제 될 게 없는 위치였다.
아이언슈트로서는 당연히 걱정 없었고, 당장 건어택으로서의 면모만 보여도 충분히 압도할 수 있는 것이다.
게다가 트랩퍼까지 앞세운다면?
“상위 등급도 문제없지.”
그런 의미에서 봤을 때, 이곳은 업계에서 ‘레어’라고 알려진 그의 동네로서, 트랩퍼의 영역이었다.
랭커의 재주가 아니더라도 압살하기 충분했다.
시간 타이머를 재며 게이트 포지션을 잡던 중, 드디어 문제의 게이트를 발견할 수 있었다.
‘허….’
마루는 입을 쩍 벌려 버렸다.
‘…이게 말이 돼?’
말이 씨가 된다고 했던가?
“상위 등급이라고?”
마루는 눈살을 찌푸리며 게이트를 바라봤다.
B급 돌발 게이트!
정말로 말도 안 되는 일이 발생해 버린 것이다.
세계적으로 가장 위협적이었던 돌발 게이트의 등급은 기껏해야 C급이었다.
오늘 그 기록이 깨져 버렸다.
‘어라?’
한데, 문제는 그것만이 아니었다.
뭔가를 발견한 듯, 마루의 눈가에 옅은 경련이 이는 게 보였다.
“설마, 다중 추돌성 게이트?
기록은 곱절로 깨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