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트리니티.
#11. 트리니티.
압도적이라고 해야 할까?
“으음… 트랩퍼….”
“…이래서 레어인가.”
“말이 안 나오는군.”
지켜보던 여러 단체의 요원들은 침음을 흘리며 전장의 상황을 바라봤다.
무려 B급의 다중 추돌성 게이트였다.
동급의 B급 헌터라 할지라도 명확한 활약을 하기란 쉽지 않았다. ‘다중 추돌’이라는 요소가 추가된 순간, 저곳은 A급 헌터의 활약지로 돌변하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그런 상식을 박살 내 버리기라도 하듯, 마루는 너무도 태연히 전장을 활개 쳤고, 조연이 아닌 주연으로서의 활약을 맘껏 보여 줬다.
소문 그 이상이라는 듯, 말도 안 되는 저격 실력에 감탄을 연발하고, 이어지는 트랩퍼의 솜씨에 기겁하며 신음했다.
퍼엉… 쾅… 꽈르르릉….
다양한 폭발성과 함께 곳곳에서 폭음이 터져 나오더니, 몬스터들을 이리저리 휘두르기 시작했다.
심상찮은 화력이 예상치 못한 방향과 타이밍에 튀어나오는 탓에, 놈들도 제대로 방비하지 못한 채 당할 수밖에 없었다.
그 때문에 움직임이 제한되며, 동선이 단순화되는 흐름으로 이어졌고, 이는 곧 알맞은 표적지가 되어 저격수의 손맛을 자극하기에 충분했다.
관전자들은 새삼 깨달았다.
“저 스킬 샷은 정말… 미쳤군.”
B급 승급 시험에서도 나온 적 있지만, 마루의 저격 솜씨는 가히 일품이라 할 수 있었다.
당연하게도 이런 장면은 LBC의 카메라에도 잡혔고, 덕분에 커뮤니티도 난리가 난 상황이었다.
―원샷 원킬 실화냐?
―달칸의 갑주도 뚫는 파워는 뭔데?
―그라이드로 표적 놀이함?
―아니, 것보다 저 폭발 뭐냐고? 게다가 화력을 저렇게 쏟아붓는데 건물은 왜 저렇게 멀쩡한데?
―트랩퍼의 레어라는 게 저거구나.
몇몇은 색다른 관점에서 견적을 내고 있었다.
―워… 저기 땅값 오지게 오를 듯.
―그러고 보니 그러네.
―던전지대에 비할 건 아니지만, 그래도 게이트 터져도 집 잃을 걱정은 없으니까.
―저 정도로 단단하면 오히려 던전지대보다 더 좋은 거 아님? 저만한 강도면 굳이 대피소 갈 필요 없이, 대문만 잘 걸어 잠그면 되는 거 아닌가?
―그러게.
―저기 어디냐? 빨리 땅 좀 사 놓자.
―TV 보면서 구경할 때가 아니다.
―움직여!
―돈이 없다.
―아…….
때아닌 부동산 투기가 발생하려 하는데, 사실 이 부분은 조금 늦은 감이 있었다.
이미 관련 토지 및 건물 상당수가 판매된 것이다.
그리고 놀랍게도 이는 최초 트랩퍼 사건 이전부터 이뤄진 작업이라는 점이었다.
사건 발생 전부터 이미 움직인 존재가 있었다.
‘내 집, 내 땅, 내 돈! 부서지면 안 되지.’
마루는 안광을 번뜩이며 동네를 쭈욱 돌아봤다. 그가 바로 이 주변을 싸악 사들인 큰손의 정체였던 것이다.
직접 움직일 필요도 없었다.
대외적으로 자비드라고 불리는 PP의 초기 인공 지능 알파―9을 통해서 사들였고, 덕분에 마루가 뒤에 있다는 걸 아는 이들이 전혀 없었다.
단지, 정황을 살피며 유추하며 의심만 할 뿐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확신하지 못하는 건, 대외적으로 알려진 마루의 주머니 사정으로 봤을 때, 어찌어찌 건물 한 채 정도는 구입 가능할지 모르겠지만, 동네 전역에 영향을 미칠 수준은 아니라는 거였다.
건물 한 채라는 기준도 주변 땅값이 싸기에 가능한 일이니만큼, 낮은 확률로 의심만 할 뿐, 확신까지는 먼 거리가 있었다.
하지만 실버 박사의 유산을 물려받은 마루에게 있어서, 이 정도 동네를 손에 쥐는 건, 너무도 손쉬운 일이었다.
‘웃돈 좀 얹어 주면 간단하지.’
어쨌든 그런 이유로 좀 더 과감하게 트랩을 깔고 발동시킬 수 있던 것이지만, 그래도 긴 세월 쌓아 둔 습관이란 게 있어서, 돈 깨지는 소리에 울상이 되는 건 어쩔 수가 없었다.
그 같은 울분은?
타앙! 타아아앙!
몬스터들에게 쏟아부으며 풀어냈다.
* * *
무려 B급의 다중 추돌성 게이트였다.
사안이 워낙 굵직한 탓일까?
당연하게도 관련 소식은 빠르게 한국이란 땅덩이를 넘어, 전 세계로 전파되기 시작했다.
그 결과 LBC 방송국에선 환호성이 터지는 중이었다.
어쨌든 이런 흐름으로 인해, 각국 주요 인사들은 갑작스러운 TV 시청으로 기존 일과를 전부 밀어 둬야만 했다.
거기에는 영국 왕실 역시도 포함되어 있었다.
왕실의 주요 인사들이 한자리에 모여 방송에 집중 중이었는데, 그렇게 얼마나 지켜봤을까.
한 여인이 입을 열었다.
“건어택… 이젠 트랩퍼라고 불린댔지. 전에도 느꼈던 거지만, 정말 대단하군.”
이에 모든 인사들이 귀를 기울이며 경청하는데, 이는 그녀야말로 현 영국을 대표하는 상징적 존재이기 때문이었다.
트리니티 여왕!
원래는 계승 서열권이 너무도 낮아 까마득했던 여인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 영국 왕실의 주인이 된 존재였다.
그 과정에는 여러 요소가 작용했었다.
먼저, 갑작스러운 세상의 격변으로 인해 기존 계승자들이 사망을 하게 된 점이라거나, 난세를 감당치 못하며 계승권을 포기한 경우 등, 이래저래 밀리고 밀려서 계승권이 바닥까지 내려왔다는 점이 첫째였다.
하지만 그 이상으로 중요한 건, 두 번째 이유였다.
영국 시민들이 그녀를 원한 것이다.
1세대 각성자!
격변 초기부터 활약하며 그 명성을 떨쳐 왔는데, 한때는 클레어와 어깨를 나란히 하던 영국의 대표 헌터이기도 했었다.
격변의 시대를 이겨 낸 전적으로 인해, 그녀는 놀라울 만큼 강렬한 왕권을 지닌 채 즉위할 수 있었고, 덕분에 현 영국 왕실은 놀라울 만큼의 힘과 권한을 지니게 된 상태였다.
집행검!
클레어와 대비되는 이명도 지니고 있었는데, 수호가 아닌 나아가 무찌르고 징벌을 내리는 검이기에, 그런 식으로 불리게 된 것이다.
만약, 여전히 헌터로 활동하고 있었다면, 그녀 역시 랭커가 되어 여전히 클레어와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지 않았을까?
어쨌든 그런 특별한 존재가 화면을 보며 이야기했다.
“이 정도면 명분은 충분한 것 같군.”
그게 뜻하는 바를 알기 때문일까?
“안 됩니다.”
“왕실의 보물을 내어준다니요.”
“그 무슨 말씀을… 여왕 폐하!”
함께하던 여러 특수부의 수장들이 목소리를 높여 반대 의견을 내어놓는데, 그들이 이런 반응을 보이는 건 어찌 보면 당연했다.
왕실의 보물, 드래곤 스케일!
화면 속 활약의 주인공인 마루가 내건 거래 조건을 돌려서 언급하며, 그 거래를 받자는 의견을 낸 것이다. 당연히 주변 목소리가 높아질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이내 그 소란은 빠르게 잦아들었다.
트리니티 여왕이 서늘한 눈빛으로 좌중을 훑는 순간, 일제히 침음을 삼키며 목소리도 함께 목구멍으로 넘겨야 했기 때문이다.
앞서 언급했듯, 현 영국 왕실은 놀라운 권한을 지니고 있었고, 이 모든 건 트리니티 여왕의 힘에 의해서 나오는 거였다.
분명 그녀는 랭커가 아니지만, 드래곤 스케일의 힘을 빌린다면 그와 같은 파괴력을 내비치는 게 가능했다.
그렇다고 해서 단순히 괴력만 믿고 날뛰는 것도 아니었다. 일단 민중의 지지가 함께하고 있었고, 그녀 스스로도 놀랄 만큼 뛰어난 정치력을 지닌 터라, 한편에서는 ‘철의 여왕’이라 부르며 그녀를 드높이는 이들이 있을 정도였다.
어느 하나 빠지는 게 없으니, 그래서 ‘트리니티(Trinity)’라 불리는 것이지 않던가.
그녀가 한층 낮아진 음성으로 이야기했다.
“만약, 레메게톤과 저 이면의 무뢰배들을 쫓아낼 수 있다면, 나 역시 왕실의 보물을 놓고 거래를 하진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상황이 좋지 못했다.
“그대들에게 더 나은 생각이 있다면, 언제든 발언을 철회할 수 있다. 그래, 괜찮은 의견들 있나?”
침음만 쏟아지는 가운데, 누군가 용기를 내어 말문을 열었다.
“차라리… WHA에 도움을 요청하는 것이 옳지 않겠습니까?”
현 협회장의 스킬이 결계와 관련되어 있지 않던가. 이를 잘 활용한다면 성벽을 강화하는 건 일도 아닐 터였고, 그 때문에 슬쩍 제안을 한 것이다.
이에 트리니티 여왕이 실소를 흘렸다.
“웃자고 한 소리겠지? 진심으로 내는 의견이라면, 내가 꽤 빡칠 것 같거든.”
거친 현장에서 청춘을 바친 탓인지, 그녀는 때때로 말이 험악해지는 경향이 있었는데, 이럴 땐 얌전히 숨을 죽이는 게 상책이었다.
의견을 냈던 이도 다급히 합죽이가 돼선, 어깨를 움츠리고 있었다. 트리니티 여왕이 이를 보며 싸늘하게 물었다.
“레메게톤에게 뒷돈을 찔러준 게 누군지 모르지는 않을 텐데?”
그들 정도쯤 되면 모를 수가 없었다.
크라운!
WHA의 4대 협회장의 지원이 있었기에 레메게톤이 성립될 수 있던 것이다. 유럽의 새로운 길드 연합체인 위저드를 견제한다면서 이면을 움직인 결과가 작금의 상황이었다.
세균을 퍼트린 놈들에게 손을 벌린다?
“다른 대안이 없다면 모를까. 저기 저렇게 훌륭한 대안이 있지 않나. 굳이 크라운 그 바이러스 같은 놈과 손잡을 필요는 없지.”
트리니티 여왕의 시선이 화면으로 향하고, 마침 그 새로운 대안이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드디어 주인공 등장이군.”
쌍권총을 손에 쥔 채, 무대에 오르는 마루가 보였다.
“건가드, 건어택인가.”
그녀 역시 현장을 살아왔던 만큼, 이어질 다이내믹 액션이 기대되는 듯, 서늘하게 가라앉았던 눈빛에 열기를 불어 넣으며, 화면 너머로 빠져들기 시작했다.
* * *
적당히 시간을 재며 타이밍을 보던 마루는 돌연 저격 포인트에서 벗어나 전장 깊숙이 뛰어들었다.
이 갑작스러운 판단에 모두가 의아해할 수밖에 없었다.
―흐름 좋았는데 갑자기 왜 저래?
―그냥 뒤에서 손가락질만 하면 됐는데.
―뭔 생각이지?
―건어택 모드인가?
―그건 좀 기대되긴 한다.
―역시 마루는 어택이지.
트랩퍼의 화약 놀음이 폭죽놀이처럼 보는 맛이 있기는 했지만, 피 튀기는 전장 특유의 숨 막히는 짜릿함이 부족한 건 사실이었다.
그런 만큼 마루의 전방 투입은 여러모로 색다른 시각적 즐거움을 기대하게 만들 수밖에 없었다.
아니나 다를까.
타앙… 탕… 타타탕… 타앙….
화려하고도 아슬아슬한 건가드 어택이 시작됐다.
마치 외줄 타기라도 하듯, 마루는 몬스터들 사이를 절묘하게 파고들며 쌍권총을 요란히 휘둘러 댔다.
시작은 일단 별 의미 없는 총질이 여럿 이어졌다.
―키야~! 역시 건가드의 정석!
―저걸로 인식을 시키는 거지.
―요게 바로 총맛이다!
―경계심이 생겨난 순간부턴, 총구 놀음의 먹잇감이 되는 거야.
마루가 지닌 쌍권총 BG―eye는 좀 전까지 저격총으로 쓰이던 녀석이니만큼, 그 위력도 확실했다.
그 때문에 몬스터들은 화들짝 놀라며 그 살벌한 위력 앞에 몸을 움츠릴 수밖에 없었는데, 그때부턴 마루의 몸놀림보다 몬스터들의 몸놀림이 더 화려해질 수밖에 없었다.
총구가 움직이는 방향을 피해 이리저리 움직여야 하니, 마루는 손목만 까딱이면 공격과 방어가 해결되지만, 몬스터들은 온몸을 내던져야 이를 피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물론, 몇몇 과감히 몸을 던져서 승부를 보려 한 놈들도 있었다. 자신을 희생해서라도 동족들에게 길을 열어 주려는 의도 역시 품었는데, 안타깝게도 개죽음일 뿐이었다.
―키야… 그렇지 저기선 어택이 아닌 가드지!
―날래게 몸 빼는 거 보소.
―건가드가 원래 몸 지키는 총기술이니까.
―달칸 놈들 벙찐 거 봐.
마루의 이명이 건어택이라 불린다지만, 그가 사용하는 건 분명 호신용 총기 무술이었다.
―저런 식으로 타이밍 뺏고, 다시 진입!
―가드 & 어택!
―마루는 쌍권총이지!
―캬… 이쑤시개 하나만 물면 딱인데.
―바바리도.
건어택 활약 속에서도 소소하게 트랩퍼의 재주를 보여 주기도 하는데, 회피를 하며 한 바퀴 바닥을 구른다 싶을 때면, 어김없이 트랩이 설치되어 있었다.
―언제 깔았누?
―함정 카드 발동!
―와… 올가미 절묘한 거 보게. 발목 잡혀서 타이밍 뺏기면, 그대로 헤드샷이네.
―시체 터지는 것 봐! 수류탄은 언제 박아 놨는데?
―기본 트랩으로도 가지고 노는구나.
새삼스레 마루의 또 다른 이명인 트랩퍼가 각인되는 순간이었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슬슬 불안감이 커질 수밖에 없었는데, 이는 마루가 이리저리 몸을 굴리는 동작 속에서, 위기감이 더해지는 걸 느낀 까닭이었다.
―아니. 그냥 뒤에서 저격이나 할 것이지. 갑자기 왜 뛰어든 거야?
―당장이라도 뒈질 것 같네.
―살 떨려서 미치겠다.
―으아아아! 마루야 죽지 마.
―랭커급 인재다. 살려야 된다. 지원 병력 언제 도착하냐?
누군가의 외침처럼, 시기적절한 사이렌이 울려 퍼졌다.
애애애애애애앵….
드디어 지원 병력이 도착한 것이다.
화면 너머,
마루의 입가로 흐릿한 미소가 스쳐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