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 데자르 ― 바이퍼.
#12. 데자르 ― 바이퍼.
트랩퍼의 역량을 한껏 발휘하며, 편하게 손가락만 까딱이면 되건만, 굳이 튀어나온 이유?
‘돈 아깝게, 왜?’
폭발물이 터질 때마다 돈도 깨지는 것이다.
물론, 주머니 사정이 더는 빈곤치 않지만, 그래도 불필요한 낭비는 하고 싶지 않았다.
‘곧 도착하겠네.’
시간을 보며 지원 병력이 도착하기까지, 대략적인 견적을 낸 뒤에야 튀어 나간 것이다.
게다가 트랩퍼로서의 활약만 너무 두드러지는 걸 막기 위해, 건어택으로 적당한 활약상을 보여 줄 필요가 있었다.
저격 포인트에서 전장을 넓게 살피고 있던 터라, 일찌감치 방송국에서 나온 걸 알았고, 그 때문에 나름의 상황 계산을 한 거였다.
뿐만 아니라 보여 줄 필요도 있었다.
건어택으로 활약하면서, 그는 결국 ‘B급 A형’이라는 걸 대외적으로 각인시킨 것이다.
―제한적이긴 해도 랭커급 전력이란 건 확실한 듯.
―최소 A급 최상, 못해도 S급 턱걸이.
―하지만 본체는 B급!
―B급 몸뚱이에 S급 두뇌를 가진 건가?
―이 무슨 끔찍한 혼종이냐!
―끔찍까진 오버고.
―존슨의 마석 결계술이 그렇게 어렵다던데, 그걸 제대로 이해한 거면, 석박사 저리 가라임.
실제로 각종 커뮤니티 반응도 그의 의도대로 따라오는 중이었다.
아슬아슬하게 외줄 타기 같은 스릴러 액션에 많은 이들이 가슴 졸이며 관전한 것 역시 의도대로였다.
애애애애애앵….
딱 시기적절하게 지원 병력이 도착한 것까지, 완벽하게 설계 그대로의 흐름이었고, 마루는 적당히 타이밍을 보다가 지친 모습을 연기하며 전장에서 발을 빼냈다.
지원 병력들이 그의 퇴로를 열어 준 덕분에, 별다른 액션을 더 취할 것 없이, 빠르고 안전하게 후방으로 이동할 수 있었다.
어느새 땀으로 흥건해진 그의 모습을 통해, 사람들은 그의 이미지를 더욱 긍정적으로 포장할 터, 존슨의 형제라는 포지션까지 더해지면, 그 상승 작용은 이루 말할 수 없을 터였다.
‘유명세가 귀찮긴 해도… 나쁜 건 아니지.’
마루는 앞으로 있을 여러 의뢰나 거래 등을 상기하며, 자신의 위치를 최대한 이용해야 함을 느꼈다.
특히, 머지않아 팀을 이끌어 가야 하는 위치에 서야 하는 만큼, 이 같은 포장 작업은 많은 혜택이 되어 줄 터였다.
한차례 숨을 돌리고 있을 때, 그의 퇴로를 열어 준 이들 중 한 명이 다가와 손을 내밀었다.
“돌발 게이트 관리부 특수 3팀의 장그루 팀장입니다.”
“B급 A형 헌터 정마루라고 합니다.”
마루 역시 이를 맞잡으며 가볍게 인사말을 나눴다. 다중 추돌성 돌발 게이트라는 골치 아픈 전장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정도 예우를 취할 시간은 있었다.
그들 관리부 역시 이동 중 현장 상황을 실시간으로 보고받고 또 시청하지 않았던가.
이 커다란 판이 깨지지 않고 유지된 건, 전부 마루의 활약 때문임을 알기에, 짧게나마 시간을 내며 대우를 해 주는 거였다.
게다가 마루 덕분에 규모에 비해 상황 자체도 나쁘지 않았고, 병력 배치를 위한 공백 시간도 있었다.
“고경석 팀장님께 이야기는 많이 들었습니다.”
장그루의 이야기에 마루가 눈을 빛내며 말했다.
“요즘 연락이 뜸하셨나 싶더니, 팀장을 달고 바쁘셨던 거군요.”
“얼마 안 됐습니다. 다 마루 헌터님 덕분이라며, 나중에 따로 감사 인사를 드린다고 하셨습니다.”
“아닙니다. 그냥 해야 할 일을 한 것뿐인데요. 헌터가 돌발 게이트에 출동하는 건 당연한 건데, 그걸 가지고 감사라니요.”
마루가 겸양을 떨자 장그루가 적잖이 감동한 얼굴로 바라봤다.
“그 기본도 지키지 못하는 이들이 태반인데, 정말이지 고경석 팀장님께 말씀 들은 그대로군요. 훌륭하십니다!”
적잖은 전장을 구른 베테랑으로 보이건만, 아직도 순수가 살아 있는 눈빛이라니. 마루는 괜히 뜨끔해져서 시선을 피했다.
급히 대화를 마무리하고 싶어졌다.
“아무래도 게이트가 요동치는 게, 슬슬 새로운 놈들이 나오려나 봅니다.”
화제를 돌리면서 발을 뺄 준비를 했다. 이는 제대로 먹혀서 장그루는 아쉽다는 얼굴로 발길을 돌려야만 했다.
“차후 시간이 나시면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누고 싶군요.”
그러면서 따로 명함도 내미는데, 이를 챙기는 걸로 대화는 마무리가 됐다.
이후 관리부 특수 3팀이 본격적으로 움직이며 전장을 지휘하기 시작하는데, 워낙 규모가 큰 건수인 까닭인지, 오래지 않아 일반 헌터들도 속속들이 합류하며, 전체적인 전력의 상승이 이뤄지기 시작했다.
대다수의 길드 특수팀이 그러하듯, 관리부의 특수팀 역시 상당한 베테랑급 실력자들로 이뤄져 있는 터라, 안정감 있게 외부 전력과의 조율을 하며 전장을 끌어 나갔다.
마루는 한편에 빠져 휴식을 취했다.
땀범벅이 된 상태였지만, 사실 그는 별달리 지친 건 아니었다.
피지컬 임팩트!
그 특별한 스킬의 효과라고 해야 할까?
신체를 세부적인 부분까지 컨트롤할 수 있는 재주 덕분에, 억지로 땀샘을 자극하며 폭포수 같은 땀방울을 떨치고 있는 것일 뿐이었다.
엔트라넷을 열면 이를 확인할 수 있었다.
[컨디션 : 7]
제법 전투가 있었지만, 그에게는 그저 가벼운 몸풀기 수준이다 보니, 일상 평균 수치를 유지 중이었다.
상태창을 보며 한차례 고개를 끄덕인 그가, 휴식을 취하면서 전체적인 전장 분위기를 살폈다.
‘나쁘진 않네.’
이 역시 그의 효과라고 해야 할까?
안정적으로 무대를 끌어온 점도 컸지만, 그 이상으로 그가 깔아 놓은 밑밥이 큰 역할을 했다.
트랩퍼!
돌발 게이트 현장에서 간혹 헌터들이 몸을 사리는 경우가 있다.
이는 몸을 보호하기 위한 까닭도 있지만, 그 못지않게 주변 피해를 최소화하려다 보니 나타나는 부작용이라 할 수 있었다.
민간의 피해를 헌터에게 물리는 경우가 종종 발생하기 때문인데, 여러 헌터들이 게이트 현장에서 멀어진 것도 그런 이유가 컸다.
하지만 이곳은 달랐다.
저 사나운 몬스터들의 괴력을 견뎌 낼 뿐만 아니라, 다양한 폭발 속에서도 굳건히 제 모습을 유지하고 있는 담벼락을 보라.
이미 각종 방송을 통해 현장 상황을 살폈던 터라, 헌터들은 과감히 자신들의 모든 재주를 쏟아 내고 뽐내며, 몬스터들을 휘몰아칠 수 있었다.
슬쩍 여유를 부리며 커뮤니티 반응도 살펴 줬다.
―오늘따라 상당히 화려한 것 같다?
―게이트 등급이 높아서 그런가?
―아주 날아다니는데.
―저렇게 요란하게 난리를 치는데, 어째 담벼락 하나가 안 무너지냐.
―그냥 저길 대피소로 해도 되겠다.
―트랩퍼 지렸다!
―저 정도면 국가 보물 수준 아닌가?
―랭커보다 더 귀할 듯.
―총질만 잘하는 줄 알았더니, 삽질은 예술이었누.
여러 커뮤니티의 반응을 살피는 한편, 이 갑작스러운 현상에 대한 의문도 놓치지 않았다.
왜 하필?
‘여기서 B급 게이트가 터진 거지?’
그것도 무려 다중 추돌성이었다.
따로 놓고 봐도 세계적인 사건이건만, 그 둘이 한데 뭉쳐서 나타났다.
우연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는 15년의 업계 생활을 통해, 정말 우연이라 할지라도 일단 의심의 끈을 엮어 놓고 봐야 함을 알았다.
이를 습관화한 덕분에 밑바닥의 진창에서 살아남은 것이지 않던가.
왜? 어째서?
하지만 생각의 시간은 그리 길지 못했다.
적당히 땀을 식혔다고 여겨질 즈음, 다시금 전장을 향해 움직여야 했기 때문이다.
카메라가 돌고 있는 상황이니만큼, 너무 장시간 발을 빼는 것도 좋지 않았다. 특히나 대외적으로 알려진 그의 스킬 특성을 생각한다면, 휴식 시간은 짧을수록 좋았다.
최초의 포지션을 유지하듯, 따로 저격 포인트를 잡은 뒤, 가볍게 손가락만 까딱여 줬고, 그것만으로도 훌륭히 제 역할을 해낼 수 있었다.
간혹 화려한 연사가 쏟아질 때면 커뮤니티의 반응이 폭발했고, 그렇게 이날 하루 역사적인 게이트 사건은 마루의 이름을 크게 알리면서, 그 현란한 무대의 막을 내렸다.
* * *
갑작스러운 B급의 다중 추돌성 돌발 게이트의 등장이었다.
세계가 놀란 가운데, 다시금 한국이란 나라의 관심도가 폭발적으로 솟구쳤다.
―던전 승급부터 시작해서, B급 게이트까지.
―한국이란 나라에 뭐가 있는 거냐?
―대격변이라도 열리는 거 아니야?
―그건 이미 브라질에서 터졌잖아.
―대환란?
―…그거 함부로 말하는 거 아니다.
초기 대격변의 시기를 그리 표현하는 터라, 언급을 자제하는 단어이기도 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슬슬 관련 내용이 자주 비치는 건, 그만큼 한국에서 발생하는 현상들이 미스터리 했을 뿐만 아니라, 매우 위협적으로 여겨졌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이런 미지의 불안감을 한껏 키우고 확장시키며, 거기서 파생되는 마이너스적인 분위기나 기운 등을 끌어내는 이들이 있었다.
“딱 좋은 흐름이야. 저런 부정적 감정이야말로 딱 좋은 양식이지.”
북마계의 주인이라 불리는 하르칸은 그리 중얼거리며, 아주 잠시 엿봤던 저쪽 세상의 풍경을 상기했다.
모든 게 그가 구상한 대로 흘러가고 있었다.
금단의 술법!
저 너머의 세상에 강림의 술식을 발휘한 건 최근이었다. 하지만 관련한 밑밥 작업은 이미 전부터 꾸준히 해 왔고, 그로 인해서 만들어 놓은 소통 창구도 제법 있었다.
종교!
사이비라 불리는 이들을 통해 물밑 작업을 해 놓은 것인데, 그로 인해 강림식의 발동과 동시에 바로 새 설계도를 펼쳐 보일 수 있었다.
이번 사건도 그렇게 깔아 놓은 작업의 결과물 중 하나였다.
B급의 다중 추돌성 게이트!
갑작스레 터져 버린 기현상에 몇몇 의문을 품는 이들이 있었는데, 그런 이들의 의혹이 틀린 게 아니었다.
우연이 아닌 것이다.
다분히 의도적으로 발생한 게이트였다.
“트랩퍼라….”
그의 목적은 바로 한국에서 명성을 떨치고 있는 존재를 확인하기 위함으로, 그 솜씨를 명확히 살피기 위해 크게 사건을 일으킨 것이었다.
이유도 명확했다.
“레메게톤의 계획에 방해가 되겠지?”
그가 한편을 돌아보며 그리 말했고, 이에 대전의 어둠 속에서 한 사내가 걸어 나오며 고개를 끄덕였다.
“영국이란 땅덩이를 먹는 데 큰 걸림돌이 될 건 확실해 보입니다.”
한데, 사내의 모양새가 기이했다.
체형부터 시작해서 마족들 특유의 다채로운 피부 색상이나 그들을 대표하는 뿔까지, 그 어느 것 하나 두드러지지 않았던 것이다.
오히려 저 너머의 세상, 인간들의 외형을 고스란히 닮아 있었는데, 어둠에서 완전히 벗어나며 드러난 얼굴이 또 놀라웠다.
만약, 유럽 이면의 실력자들이 그 얼굴을 봤더라면 하나의 이름만을 입에 담았으리라.
바이퍼!
키홀 클랜의 수장이자, 레메게톤의 대표로 알려진 존재이며, 새로운 랭커로서 명성을 떨치고 있는 강자, 그 초인의 모습이 그대로 박혀 있던 것이다.
“데자르. 네 생각을 말해 봐라.”
바이퍼를 꼭 닮은 사내, 데자르는 잠시 생각하는가 싶더니 입을 열었다.
“전에도 말씀드렸듯이 영국이란 나라는 여러 의미에서 잡고 가야 합니다. 기본적으로 역사와 전통이 남다른 나라인 것도 있지만, 저 너머 세계를 대표하는 국가인 미국과 깊은 인연을 맺은 탓에, 일단 영국을 손에 쥘 수만 있다면, 손쉽게 미국이란 나라의 빗장도 열 수 있을 겁니다.”
게다가 대환란의 시기를 거치면서 뜻밖의 왕권 강화가 이뤄진 나라인 만큼, 일단 한입 꿀꺽하고 나면 그때부턴 통치하기가 편한 체계가 세워진 상황이었다.
하르칸이 턱을 쓸며 말했다.
“그럼, 역시나 저 트랩퍼란 놈을 처리해야겠군.”
“영국에서 놈에게 의뢰를 한다고 하니, 걸림돌이 될 게 분명합니다.”
단지, 상대가 쉽지 않았다.
“제로 원이란 놈과 인연이 있는 걸로 아는데.”
무려 사일론과 동수를 이루면서, 기존 북마계의 주인을 끌어내리는 데 지대한 역할을 한 강자였다.
경계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었다.
“이미 놈이 수하처럼 부리는 가디언즈라는 놈들과 마찰이 빚어지고 있습니다. 이제 와서 눈치 볼 이유가 있겠습니까?”
“흠… 하긴, 그것도 그렇군.”
작게 고개를 끄덕인 하르칸이 데자르를 향해 물었다.
“바이퍼라는 놈과의 동화율은 얼마나 됐지?”
“수준에 비해 정신력이 많이 약화된 상태라서, 완전히 집어삼키기까지 얼마 걸리지 않을 겁니다.”
이에 데자르의 외형을 쭈욱 살피던 하르칸이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어느 모로 봐도 인간형을 하고 있는 모습에서, 동화율의 수치가 높다는 걸 알 수 있었다.
그들은 정신이 육체를 지배하는 일족이다 보니, 동화율에 따라서 신체적인 변형도 이뤄지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묻지, 후회는?”
“없습니다. 일족의 미래를 위한 길이지 않습니까.”
“동화율이 선을 넘으면, 너 역시 저쪽 세상으로 완전히 떨어지게 될 터, 남은 육신을 어찌 처리할지 생각해 뒀나?”
그 물음에 데자르가 대전을 쭈욱 돌아봤다.
마치, 가고일처럼 다양한 형태의 석상들이 벽면을 빼곡하게 채우고 있는 게 보였다.
“저 역시 일족의 수호를 위해 사용해 주십시오.”
고개를 끄덕인 하르칸이 말했다.
“영국, 반드시 먹는 거다.”
“맡겨 주십시오!”
데자르는 그리 외치며 가슴을 두드린 뒤, 다시금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 * *
세계가 시끄러웠다.
이미 충분한 화제 몰이를 했기 때문일까?
마루는 마치 도피하듯 PP로 뛰어들며 다시금 열정의 레벨 작업에 돌입했다.
그 결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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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차 전직의 문이 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