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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그인 더 헌터-262화 (262/325)

#13. 계시.

#13. 계시.

B급 다중 추돌성 게이트였다.

세계를 흔든 사건이었고, 그런 이유로 또다시 많은 헌터들과 전문가들이 한국으로 향할 수밖에 없었다.

이미 포화상태나 다름없는 상황에서 재차 밀도가 올라가니, 점차적으로 치안이 흔들리는 현상이 발생하기 시작했다.

그전까지는 그래도 나름의 예의를 차리고, 또 들어와 있는 헌터들끼리 서로 눈치를 보다 보니, 적당히 자제하는 모양새가 갖춰졌지만, 일정 규모를 넘어버리면서 그게 쉽지 않아졌다.

사소한 눈빛 교환만으로도 마찰이 발생하는 일이 잦았고, 더 나아가서 직접적인 무력교환을 비롯한 사건이 곳곳에서 터져 나오며, 전에 없이 불안한 상황이 연일 계속되고 있었다.

덕분에 한국 헌터 협회를 비롯한 여러 길드들은 유달리 바쁜 나날을 보내야만 했는데, 그나마 다행이라면 저들 외부인사들로 인해, 던전이나 마굴 그리고 게이트에 대한 대응은 제법 잘 이뤄지고 있단 점이었다.

혈기가 넘치는 이들에게 적당히 자리를 마련해주면, 알아서 몬스터들을 때려잡아 주기 때문이었다.

원래라면 이런 식으로 외부인사가 영역표시 하는 걸 허락하지 않겠지만, 상황이 워낙 골치 아프게 흘러가는 터라, 이렇게 외부의 힘을 빌리고 또 돌리면서, 급한 불을 끄며 상황을 진압할 수밖에 없었다.

“푸후우우우….”

이선희는 지친 얼굴로 길게 숨을 늘어트리며 소파에 몸을 던졌다. 그 옆으로 김연희 역시 비슷한 몰골로 드러눕고 있었다.

그러며 투덜거리기 시작한다.

“아니. 어떻게 하루도 조용할 날이 없냐. 알 만큼 아는 놈들이 눈빛만 마주쳐서 뒤엉켜선… 어휴… 눈 맞는 것만큼 무서운 게 없다더니. 미친놈들… 에휴…….”

외부에서 들어온 문제아들을 정리하고 오는 길이다 보니, 피로감이 만만치가 않았다.

한국 헌터 협회만으로는 치안을 유지하기가 어려운 터라, 각 길드에 지원을 요청한 것인데, 토종 7대 길드의 연합체인 칠성제가 그 선봉에 서 있었다.

이 기회에 자리매김을 확실히 하겠다는 것인데, 정식으로 발족식을 하진 않았지만, 이미 알 만한 이들은 다 알게 된 상황이다 보니, 이참에 미래설계를 확실히 하겠다는 계획으로 움직인 것이다.

일찌감치 밑밥을 깔아둔다면, 차후에 칠성제가 전면에 나섰을 때, 그들 이미지에 긍정적인 효과로 작용하지 않겠는가.

덕분에 길드 요원들은 하루하루가 고역이었다.

특히, 이선희 같은 랭커까지 움직여야 하는 사건도 종종 발생하는 터라, 요원만이 아니라 길드 전체적인 피로감이 배가 될 수밖에 없었다.

그 와중에서 특히 더 힘겨운 이들이 있었다.

혜성 길드!

이유는 간단했다.

-트랩퍼와 만나게 해 달라.

-우리의 의뢰를 받아라!

-순순히 결계술을 내놓는다면 유혈사태는 없을 것이야.

대충 이런 이유라고 할 수 있었다.

세계를 흔들어 놓은 사건으로, 수많은 네임드들을 한국으로 불러들이고선, 그 본인은 갑자기 잠적을 해버린 존재.

마루!

그와의 만남이 저들의 목적이었다.

물론, 순수하게 행패를 부리는 이들도 있었지만, 상당수는 마루와의 만남을 요구하며 은밀히 무력시위를 하는 중이었다.

직접적으로 나설 수는 없으니, 이면의 문제아들을 움직여서 잦은 사건을 일으키며, 하루하루 혜성의 피를 말리고 있는 거였다.

한참 늘어져 있던 이선희가 문득 물었다.

“마루한테서 연락은 없고?”

“어. 여전히 휴가를 즐기고 계시네. 하….”

김연희의 표정이 와락 구겨졌다. 이 골치 아픈 상황이 마루로 인한 것임을 알기 때문이었다.

물론, 이전에도 트랩퍼의 명성을 쫓아 마루를 찾는 이들은 많았지만, 그래도 당시에는 엔트라 게시판을 통해서만 정보가 공유됐고, 영상의 경우엔 비싼 값을 치러야 확인할 수 있었기에, 그 숫자가 제한적일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대외적인 정규 방송을 통해, 제대로 전 세계에 퍼져버렸으니, 규모 자체가 다른 건 어찌 보면 당연한 수순이었다.

“하… 빨리 그 인간이 떠나야 한숨 돌릴 텐데.”

“얼마 안 남았으니까. 조금만 더 버티자.”

이선희의 달래는 말에 김연희는 한숨과 눈을 감아버렸고, 이내 그대로 곯아떨어졌다. 그 옆으로 이선희 역시 비슷한 모습으로 눈을 감더니, 이내 수마의 세계로 빠져들었다.

* * *

피지컬 임팩트로 인한 단련으로 한 달가량의 시간을 허비했다.

그 때문일까?

마루는 최전선을 달리던 게 거짓말처럼, 어느새 마계 개척에서 뒤처져버린 상황이었다.

어느샌가 십이지섬은 세 번째 섬까지 개방되었고, 유저들은 빠르게 네 번째를 향해 달려가는 중이었다.

뒤처진 만큼 맹렬히 질주했다.

무려 200스탯의 뻥튀기가 이뤄진 덕분일까?

원래라면 솔로 플레이가 불가할 정도로 막강한 전력들이 살아 숨 쉬는 마계이건만, 너무도 수월하게 난관이라 할 만한 것들을 돌파하며 지나쳤다.

첫 번째, 두 번째, 어느새 세 번째 섬까지 넘어와 버린 것이다.

당연하게도 뒤로 넘어갈수록 마물의 수준도 높아졌고, 그만큼 들어오는 경험치 역시 늘어나는데, 최소 200레벨대 유저들의 8인 파티 플레이를 기준으로 설정된 필드를 홀로 지배하고 있기 때문일까?

이 시기에 얻기 어려운 대량의 경험치를 홀로 독식하며, 하루하루 놀라운 속도로 성장이 이뤄지기 시작했다.

게다가 홀로 투쟁을 이어온 덕분일까?

[칭호 ‘고독한 모험가’를 획득합니다.]

[솔로 플레이 한정 공격력 상승!]

생각지도 못한 행운도 뒤따랐다.

[솔로 플레이 한정 경험치 증가!]

경험치 상승효과는 십이지섬 내에서만 사용할 수 있는 ‘특전’이었지만, 그래도 덕분에 한층 빠른 성장이 가능했고, 덕분에 폭풍 성장을 이룰 수 있었다.

[레벨 : 200]

[축하합니다. 3차 전직의 가능성이 열립니다. 가까운 신전을 찾아 도약을 준비하십시오.]

마루는 주먹을 불끈 쥐었다.

‘좋았어!’

단기간에 최고의 성과였다.

‘영국에 넘어가기 전에 200레벨이라니.’

운 좋으면 195레벨 정도가 한계라 여겼건만, 난도 상승 및 특전 효과 등으로 뜻밖의 대박이 터져버린 것이다.

문득, 클레어와의 만남이 떠올랐다.

B급의 다중 추돌성 게이트로 한바탕 난리가 나고, 그로 인해 트랩퍼의 이명이 대외적으로도 널리 퍼진 덕분일까?

-제안을 받아들이기로 했습니다.

클레어는 그리 말하며 왕실의 뜻을 전했다.

‘드래곤 스케일!’

현존하는 최강의 무구 중 하나가 손에 들어오는 것이다. 비록 대여 형식으로 완전히 그의 것이 되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이게 어디인가.

‘기왕 줄 거면 선불로 주지… 쳇!’

안타깝게도 트랩 작업을 끝내야지 받을 수 있었다. 그래도 나쁘지 않은 결과라고 봐야 할 터였다.

뜻밖의 폭렙 덕분에 출국 전까진 좀 더 여유가 있었다.

‘3차 전직 퀘스트까지만 전부 받아놓고 영국으로 출발하면 되겠네.’

그렇게 생각하며 오랜만에 십이지섬을 벗어나, 가장 가까운 신전을 찾아 움직였다.

신전에서 3차 전직의 시작을 알린 뒤, 대륙 각 지역을 돌며 전직 관련 퀘스트를 싹 받아야 하는 만큼, 바쁘게 움직일 필요가 있었다.

하지만 이게 웬일?

[축하합니다. 3차 전직이 완료됩니다.]

“…어?”

마루는 순간 자신이 잘못 들었나 싶었다.

[신의 전언 ‘계시’를 받으시겠습니까?]

생각지도 못한 알람이 귓전을 두드렸다.

* * *

초롱이를 비롯한 아이들은 이선의 인솔하에 가까운 놀이터로 향했다.

“삼총사다!”

“와아~!”

세 아이는 모두 출중한 외모로 인해, 동네 아이들 사이에서 제법 유명세를 탔고, 그 때문에 등장과 함께 아이들이 환호하며 몰려들었다.

그렇게 아이들은 함께 신나게 어우러지며 각종 놀이기구를 즐기기 시작했다.

이선은 초롱이들이 어우러져 놀이터를 뛰노는 모습에, 잠시간 흐뭇한 얼굴로 이를 바라보다가 슬쩍 주변을 돌아봤다.

부모들이 곳곳의 벤치에 앉아 이런저런 수다를 떠는 게 보였다.

“자꾸 알람이 울려서 불안했는데, 정말 다행이지 뭐야.”

“그러니까요. 하루빨리 이사를 가야 되나 싶었는데, 여기만큼 안전한 데가 없더라구요.”

“그게 다 트랩퍼라는 분 덕분이지.”

“듣자 하니. 주변 땅값이 배는 올랐다면서요?”

“보여준 게 있으니까.”

“대피소보다 더 안전하다는데, 정말일까요?”

“그 트랩퍼라는 분이 결계 같은 걸 잔뜩 쳐놔서, 몬스터가 아무리 날뛰어도 담벼락 하나 안 부서진다잖아.”

“앞으론 게이트가 열려도, 집 안에만 꼬옥 숨어있으면 된다더라고요.”

초인으로서 남다른 오감을 지녔다 보니, 알아서 귓속에 날아드는 이야기들이 있었는데, 이를 가만히 듣고 있노라니 저도 모르게 실소가 나와 버렸다.

수다를 떠는 부모님들의 얼굴이 유독 밝아 보이는 게, 전부 이유가 있던 것이다.

근래 게이트 알람이 세 번이나 터진 동네였건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난 사건의 영향으로 전에 없는 안정감을 느끼고 있는 것이다.

특히, 몬스터가 출몰해도 집안 살림이 풍비박산 날 일이 없다는 게, 저들을 만족스럽게 했을 터였다.

“땅값 오르기 전에 좀 사놨으면 좋았을 텐데.”

“상황이 이렇게 될 줄 누가 알았겠어요.”

“듣기로는 이미 누가 잔뜩 쓸어갔다는 말이 있더라고.”

몇몇 이야기들이 더 이어졌지만, 그즈음부터는 이선의 귀에 담기지 못했다.

기이한 감각 하나가 그의 모든 신경을 잡아끈 탓이었다.

‘이건, 대체?’

스스스스스스….

명확히 정의할 수 없는 묘한 흐름 하나가 포착된 것이다. 하지만 어디서부터 불어온 바람인지 알 수가 없었다.

그 때문에 온 신경과 감각이 그 하나를 쫓아 움직이게 된 것이다.

용군주 라미가 이를 보며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제법이군. 확실히 초월에 가깝다는 건가.’

이 은밀한 흐름을 감지했다는 점에서, 일반적인 랭커 수준은 넘어섰음을 알 수 있었다.

그녀는 이 때아닌 바람이 어디서부터 비롯되었는지 알고 있었는데, 이를 쫓아 시선을 돌린 그녀가 저 언덕 위쪽의 한 건물을 바라봤다.

그녀의 새로운 레어, 마루의 거처가 자리하고 있었다.

* * *

어떻게?

‘3차 전직 퀘스트가 해결됐다고?’

이해하기 어려운 상황에, 마루는 그저 멍청하니 알림창만 바라볼 뿐이었다.

그렇게 멍하니 있는 와중에도 알림은 계속 이어졌다.

[신의 전언 ‘계시’를 받으시겠습니까?]

[신의 전언 ‘계시’를 받으시겠습니까?]

[신의 전언 ‘계시’를 받으시겠습니까?]

덕분에 가까스로 정신줄을 부여잡을 수 있었다.

“계시를 받겠다.”

그와 동시에 세상이 빙글 돌아갔다.

* * *

처음에는 실버 박사의 세상, 알파 세계로 소환된 건 줄 알았다.

하지만 이내 주변 분위기나 대기의 흐름 등, 감각에 닿는 모든 것들이 알파의 세상과는 다름을 알게 됐다.

‘여긴… 어디?’

특히, 대자연의 풍경처럼 보였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그저 거대한 정원일 뿐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게다가 폐부에 닿는 느낌도 너무 달랐다.

박사의 알파 세계는 맑고 상쾌한 공기가 인상적이라면, 이곳 세상은 ‘거룩한’ 느낌을 준다는 점이 달랐다.

비슷한 게 신선한 공기가 가득하건만, 여긴 그 농도가 너무 깊고 진해서, 마치 신전에라도 들어온 게 아닐까 싶은 생각마저 들었다.

정말로 신전 같은 장소의 정원이 아닐까?

‘계시 알람을 받고서 넘어온 곳이니….’

그렇게 생각하며 열심히 주변을 살필 때였다.

묘한 향 하나가 그의 코끝을 자극했다.

‘…이건?’

마치 그를 부르는 것 같단 생각이 들어, 향기를 쫓아 이동을 시작했다.

그렇게 얼마나 걸었을까?

저 멀리 정자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사람?’

거기에서 누군가가 차를 우려내는 게 보였다.

그즈음 마루는 묘한 예감을 받았다.

‘설마…?’

조심스런 걸음으로 정자로 향했고, 이내 그곳의 주인과 마주할 수 있었다.

그리고 눈을 동그랗게 떠버렸다.

‘아이언슈트?’

너무나도 익숙한 가면이 그곳에 있었다. 이에 의아해하고 있을 때, 가면 너머로부터 음성이 들려왔다.

“드디어 만나는군.”

이에 마루가 마른침을 꼴깍 삼켰다.

눈앞의 존재에 대해 예상되는 바가 있던 터라, 그답지 않게 긴장감이 몰아치며 어깨가 무거워지는 걸 느꼈다.

스윽….

문득, 가면을 벗는 게 보였다.

“반갑네.”

그러더니 손을 내밀며 말한다.

“내가 초롱이 애비일세.”

후광이 타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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