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로그인 더 헌터-263화 (263/325)

#14. 출국.

#14. 출국.

아이언슈트 가면 너머, 신의 얼굴을 확인하고 싶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는 불가능했다.

화르르륵….

태양을 마주한 듯 뜨겁게 타오는 후광으로 인해, 시야 담기는 게 없었다.

제대로 눈을 뜰 수도 없었다.

후욱….

다시금 아이언슈트 가면을 쓰고 난 뒤에야 후광이 잠잠해졌고, 그제야 마루는 편히 전면을 살필 수 있었다.

그와 동시에 가면을 쓴 이유도 알게 됐다.

온전히 마주할 수 없는 존재이기에, 저처럼 가면을 통해 존재의 격을 일부 감춰두고 있는 거였다.

가면에 대한 의문을 느끼는 순간 이를 오픈한 걸로 봐선, 생각을 읽을 수 있는 게 아닐까 싶기도 했다.

아니나 다를까.

“그 생각이 맞네. 자네의 생각을 읽을 수 있지. 그렇다고 너무 불쾌하게 생각하진 말게나. 이는 자연히 들려오는 것이니.”

그러면서 또 이야기했다.

“자네가 초월의 격을 얻는다면, 생각을 감출 수 있을 걸세.”

마침 마루가 궁금해하던 것이었는데, 아무래도 이를 딱 읽고선 답해준 것 같았다.

“그래도 이렇게 대화라도 나눌 수 있어서 다행이군. 요즘은 랭커라고 부르던가? 종의 한계에 닿지 않았더라면, 이마저도 불가능했을 게야.”

그 말에 새삼 깨달았다.

눈앞의 존재는 인간의 기준을 아득하니 벗어나 있는 존재인 것이다.

‘신…!’

마루는 아득해지는 심경에 연신 마른침만 삼키는데, 그 머릿속에서 휘몰아치는 수많은 생각들을 읽은 듯, 신격의 존재가 말했다.

“일단, 한 잔 마시고 진정 좀 하게.”

그러면서 달여놨던 차를 건네왔고, 이를 받아든 마루는 당혹감 속에 저도 모르게 원샷을 해버렸다.

다행히 적당한 온도로 조절이 된 터라, 입천장이 발라당 까지는 일은 없었다.

화아아악….

그 대신 뱃속 깊숙한 곳에서부터 열기가 오르는 건 느꼈다. 동시에 정신이 번쩍 들면서 두서없이 널뛰던 심장이 제 박자를 찾아가기 시작했다.

이에 마루가 깜짝 놀란 얼굴로 찻잔을 내려다봤다. 자신이 먹은 게 평범한 차가 아님을 깨달은 것이다.

신격이 웃으며 말했다.

“넥타르라고 불리는 거지.”

“…….”

마루가 입을 쩍 벌렸다. 그의 머릿속에 떠오르는 생각을 읽은 신격이 말했다.

“맞네. 신들의 음료라는 그 넥타르라네.”

자연히 떠오르는 단어가 있었다.

‘부… 불로불사?’

“하핫! 자네가 생각하는 것처럼 영원한 젊음과 생명까진 보장할 수 없다네. 그냥 적당히 피부 미용에 좋고, 피로 회복에 만능이라는 정도일 뿐이야.”

마루의 시선이 저도 모르게 남은 찻물로 향했다.

“전부 자네 거니까. 그렇게 욕심부릴 거 없어. 초롱이를 살펴주는 보답일세.”

그 말에 괜히 뜨끔해졌다.

실질적으로 그보다는 이선이 많은 지분을 갖고 있기 때문이었다. 당연하게도 이를 읽은 신격이 웃으며 이야기했다.

“자네의 형제에게도 따로 보답을 할 생각이니까. 부담 가질 거 없이 편하게 들게나.”

그 방법에 대해 호기심을 품는 순간 답이 이어졌다.

“PP라는 세상이 있잖아.”

‘아…!’

거기라면 나름의 방법이 있을 거라 여겼고, 고개를 끄덕이며 납득할 수 있었다.

“일단은 좀 앉게나.”

정자 위에서 간단한 다과도 준비되어 있었는데, 마루는 왠지 모르게 저것도 보통 물건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나 다를까.

“암브로시아로 만든 거라네.”

또다시 정신이 아득해지려 들었다.

허나, 좀 전에 마셨던 넥타르의 효과인지, 앞서와 달리 빠르게 정신의 끈이 당겨졌다.

“어렵게 만난 만큼, 긴 시간 이야기를 나누고 싶지만, 아쉽게도 허락된 시간이 짧아서, 간단한 다과 정도밖에 못 하겠군.”

그러며 어서 들라며 암브로시아를 내어줬다. 그렇게 다과를 즐기면서 본격적인 ‘계시’가 이뤄졌다.

* * *

200레벨을 찍었고, 3차 전직을 했으며, 신을 만나 계시까지 받았다. 목표치를 이룬 걸 너머 초과한 상황이었다.

그날을 기점으로 마루는 PP의 접속을 자제했다.

“하아… 좀 쉬자!”

이런 때일수록 타이트하게 스스로를 조이며 채찍질하는 것도 나쁘진 않지만, 때론 적절한 휴식으로 풀어주는 것도 중요했는데, 지금이 딱 그럴 타이밍임을 느낀 것이다.

그렇게 아무것도 안 하며, 간만에 쭈욱 늘어져서 쉬고 있을 때였다.

돌연, 용군주가 찾아와 이야기했다.

-이상한 고양이가 한 마리 있다.

그러면서 마루에게 살펴보라 하는 것이 아닌가.

용군주에게 들은 이야기가 있기 때문일까?

마루는 초롱이의 일과를 유심히 관찰했고, 그 덕분에 아이들과 어울리는 기이한 검은 고양이를 발견할 수 있었다.

‘메로…라고?’

아이들이 붙인 이름이라는데, 마루는 한눈에 보통 고양이가 아니라는 걸 알아봤다.

‘길고양이?’

고개가 절로 저어졌다.

여의주가 반응하고 현무와 주작의 기운이 일제히 호응한다. 그러면서 상대에 대한 정보를 전해주고 있었다.

‘백호… 아니, 흑호인가?’

어쨌든 마지막 남은 신물의 조각이 찾아온 것이다.

헌데, 상황이 참 골치 아팠다.

“메로야~! 여기, 우쭈쭈쭈….”

열심히 손짓을 하며 다가가 보는데, 기이하게도 그가 접근하기만 하면 휙 하니 멀어지는 것이 아닌가.

당혹스러웠다.

신물의 지킴이를 만나기만 하면 상황 종료라고 여겼건만, 생각지도 못한 난관이 그를 기다리고 있을 줄이야.

루미가 하는 걸 보며, 그 역시 각종 고급 사료를 가져다가 유혹을 해 봤지만, 고양이도 비웃을 줄 안다는 뼈아픈 비밀만 알게 되며 비참한 넉다운을 해버렸다.

결국 그는 SOS를 쳐야만 했다.

-그래서 도와달라고?

핸드폰 너머 익숙한 음성이 들려왔다. 이에 마루가 굽신거리며 말했다.

“현무암 어르신은 방법을 알 것 같은데. 어떻게 안 되겠습니까?”

통화 상대는 바로 현무암이었다. 지난 트랩퍼 사건 이후 다시금 유희를 떠난 터라, 직접 만나서 대화를 나누기는 어려웠다.

한국이 아닌 해외로 이리저리 떠돌고 있기 때문이었다.

-맨입으로?

역시나 예상했던 그 대답이 들려왔다.

“이… 이번에도 고급진 말 한 마리면 될까요?”

자린고비 습성이 몸에 배었지만, 그래도 짧게나마 돈 쓰는 훈련을 한 덕분인지, 고급 스포츠카 정도는 어찌어찌 긁을 수 있는 용기가 생겼다.

하지만 이게 웬일?

-마구간 채우는 건 됐고, 다른 것도 좀 길들여 보자.

뜬금없는 이야기가 튀어나왔다.

-너른 들판을 달리는 것도 재밌지만, 저기 저 대양를 가르는 것도 참 재밌어 보이더만.

“…예?”

-가볍게 요트 한 대만 쏴봐.

“……예?”

-마구간에 있는 놈들보다 고급진 걸로, 알지?

“…….”

말문이 턱 하니 막혀버렸다.

* * *

B급의 다중 추돌성 게이트 사건 이후, 전 세계적인 유명인사가 되어버린 까닭일까?

마루의 일상에 위장은 기본이 되어버렸다.

물론, 이전에도 건어택이라는 유명세가 있기는 했지만, 트랩퍼가 보여준 임팩트가 너무 강렬했다.

게다가 건어택으로 쌓아놓은 이름값 역시 한몫하니, 그 시너지 효과로 인해 단숨에 세계적인 유명세가 폭발해버린 것이다.

그런 이유로 위장은 필수였다.

은신계열 스킬을 발동하면 당당히 대로를 활보한다 할지라도, 그 존재감이 한껏 죽어버리겠지만, 지금은 그럴 수가 없었다.

클레어!

홀로 행동하는 게 아니기 때문이었다.

그 때문에 스킬을 통한 은신이 아닌, 가장 보편적인 위장을 통한 이동을 거듭해야만 했다.

그렇게 얼굴을 감싸고 향한 곳은 비행장이며, 목적은 영국으로의 여행이었다.

저 멀리 유럽으로 향하는 거였다.

위이이이이잉….

출발 당시에 얼굴을 이리저리 만진 걸 빼면, 별다른 불편함 없이 비행기에 오를 수 있었다.

물론, 스킬을 통한 은신이 아니다 보니, 등 뒤를 쫓는 시선이 제법 되기는 했다.

하지만 클레어의 존재 때문일까?

차마 나서지 못한 채 멀찍이서 입맛만 다실뿐이었다.

한때, 존슨과 어깨를 나란히 하던 존재이자, 영국을 넘어 유럽을 대표하는 랭커의 무게감이란, 그만큼 특별하며 압도적인 것이었다.

당연하게도 그의 출국에 맞춰, 바쁘게 한국을 뜨는 이들이 있었는데, 이들의 목적지도 영국이었다.

클레어의 존재, 그리고 영국의 상황, 레메게톤의 사정 등, 모든 정보가 맞물리며 그들을 움직인 것이다.

이런 사정을 아는지 모르는지, 마루는 편안한 비행 속에서 지난 현무암과의 통화를 되새기고 있었다.

-자네가 완전하지 못하기 때문이야.

그 이유를 묻자,

-푸른 신수의 의지가 흐트러진 걸 알잖나?

오히려 그에게 답을 구한다.

당혹감에 머리를 굴리길 한참, 오래지 않아 그 해답에 도달할 수 있었다.

그건 아주 본질적인 문제였다.

[오염된 여의주]

마루에게 기적을 내려준 신물에 답이 있었다.

‘오염된….’

새삼 신물이 정상이 아님을 상기했다.

긴 세월 다양한 몬스터들의 뱃속과 핏물을 거친 결과, 마치 저주라도 받듯 부정한 기운이 축적되며, 그 찬란한 광채를 잃어버린 상태였다.

푸른 신수, 청룡의 여의주로서 언제고 꿈에서 봤던 본연의 색상도 푸른빛이건만, 오염된 여의주는 핏물에 찌든 붉은빛이었다.

결론이 나왔다.

‘여의주를 어떻게 정화시킨다….’

쉬이 답이 나오지 않았고, 덕분에 골머리가 아플 지경이었다.

초롱이의 부친, 이름 없는 신과의 만남에서 이걸 묻지 않았다는 게 너무도 아쉬웠다.

‘하긴, 그때는 생각지도 못한 부분이니.’

편안한 최고급 좌석 때문일까?

골 때리는 피로감에 눈을 감고서 얼마 지나지 않아, 시원한 코골이와 함께 깊은 수면으로 빠져들었다.

그리고,

알파 세계가 문을 열었다.

* * *

몇 번 왔던 경험 덕분일까?

‘알파….’

마루는 꿈결을 타고 넘어온 세상을 돌아보며, 실버 박사의 세계로 넘어왔음을 알았다.

지난 기억을 쫓아 익숙한 길을 걷고, 오래지 않아 이곳의 주인과 마주할 수 있었다.

“드디어 왔군.”

실버 박사가 그를 향해 손을 흔드는 게 보였다.

“적어도 올해는 보낼 줄 알았는데, 벌써 200레벨에 3차 전직이라니. 허… 정말 대단하단 말밖에 안 나오는군.”

“운이 좋았습니다.”

순수한 실력이라 여기진 않았다.

칭호 특전으로 경험치 버프가 더해지고, 추가로 이해할 수 없는 전직까지, 정말로 운이 좋았다고 여겼다.

그러다가 문득 떠오른 의문이 있어 물었다.

“3차 전직에 대해 묻고 싶은 게 있습니다.”

“퀘스트 없이 클리어된 이유?”

다행이라 해야 할지, 실버 박사는 저간의 사정을 알고 있었고, 의문을 길게 늘여놓을 필요도 없었다.

“이유야 간단하지.”

그뿐만이 아니라 해답까지 바로 이어졌다.

“자네가 전직 조건을 전부 클리어했기 때문이지.”

이 무슨 뜬금없는 이야기란 말인가. 이해하기 어려운 소리에 마루의 얼굴 가득 물음표가 떠오르는 가운데, 실버 박사의 이야기가 이어졌다.

“3차 전직의 핵심은 업적과 공헌도 그리고 경험치지. 뭐, 사냥이나 채집 퀘스트가 꽤 있긴 하지만, 그런 자잘한 부분은 적당히 스킵할 수 있는 요소야.”

그러면서 말한다.

“업적과 공헌도는 자네가 나와의 약속을 지켜주면서, 자동으로 클리어됐지.”

아이언슈트의 리튜브!

그 같은 매체를 통해서 마루는 세계 전역에 실버 박사의 유지를 전했고, 이는 PP와도 무관한 게 아니었고, 자연히 관련한 업적 및 공헌도가 등록된 것이다.

“경험치는… 원래라면 200레벨 3차 전직을 찍어야 이룰 수 있는 경지를 이미 이루지 않았나.”

랭커라고 불리는 영역, 그 경지에 이르는 것으로 경험치도 충족시킨 것이다.

“오히려 초과했다고 봐야겠지. 업적이나 공헌도 그리고 경험치까지. 전부 기준점을 한참 웃도는 수준이야.”

지금 이 순간에도 아이언슈트의 리튜브는 무수히 많은 조회 수를 찍어 올리는 중이었고, 이를 통해서 무수히 많은 사람들이 연공법을 익히고 있었다.

게다가 랭커의 초입을 지나, 초월의 격을 쫓아 발돋움하는 상황이었다.

여러모로 3차 전직의 한계점을 넘은 것이다.

그러며 실버 박사가 이야기했다.

“이 정도면 오히려 추가 보상이 있어야 할 정도지.”

마루가 저도 모르게 군침을 삼키며 눈을 반짝였고, 이 모습에 실버 박사가 웃음을 터트렸다.

“자넨 참 일관돼서 좋아. 하하하하!”

민망함에 뒷머리를 긁을 때였다.

“아주 특별한 보상을 주지.”

다시금 군침이 돌았다.

번뜩이는 마루의 눈빛에 재차 웃어 보인 박사가 말했다.

“이곳 세상, 자네에게 주겠네.”

갑자기 스케일이 너무 커져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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