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로그인 더 헌터-265화 (265/325)

#16. 키메라.

#16. 키메라.

알람을 울려 놓은 만큼, 일단 버티다 보면 오래지 않아 왕실의 병력이 도착할 거라 여겼다.

하지만 이게 웬일?

“통신 교란?”

딱 알람이 울리고 난 이후부터 통신기가 먹통이 되어 버린 것이다. 클레어는 잔뜩 굳은 얼굴로 주변을 돌아봤다.

분명 알람을 울렸건만, 느낌이 좋지 않았다.

어느새 짙게 깔린 안개가 주변을 어지럽히는 게 보였다. 한 치 앞도 가늠하지 못할 만큼, 작정하고 안개를 깔아 놓고 있었는데, 그저 시야만 방해하는 정도에서 끝나지 않았다.

‘방향 감각이….’

동서남북, 명확한 위치 판단이 먹히지 않았다. 이런 상황에서 나침반이 되어 줘야 할 통신기가 먹통이 된 게 더욱 골치 아팠다.

‘작정을 했군.’

이 정도 준비성이라면, 짐작건대 알람을 통한 지원 병력도 크게 기대하기 어렵다는 결론이었다.

분명, 나름의 수작을 부려서 지휘 체계를 어지럽혔으리라.

‘엘피나….’

트리니티 여왕이 어떻게든 상황을 잘 판단해 줄 거라 믿을 수밖에 없었다.

사실, 이게 정상적인 게이트 알람이었다면, 저 뒤편의 공항으로 향해서, 내부의 병력과 함께 바리케이드를 쌓는 게 맞지만, 지금은 상황이 전혀 달랐다.

이면의 주민인 레메게톤이 움직인 걸로 예측되는 만큼, 민간인들을 인질로 삼을 수도 있기에, 오히려 공항과 대피소에서 멀어지는 게 옳았다.

안개 때문에 잠시 당황했지만, 이런 상황에 맞는 신호 전달 체계도 준비되어 있었다.

우우우웅….

모스 신호처럼 파동을 통해 명령 전달을 한 것인데, 합류하지 못한 이들의 경우, 각자 개별적으로 움직이도록 지시를 내린 것이다.

[공항. 대기.]

섣부른 전진보단 후퇴 지시를 내린 것이다.

이후 조심스럽게 이동을 시작했다.

혹시나 흐트러진 감각으로 인해 신호가 제대로 닿지 못할까 싶어, 파장을 최대한 넓고 진하게 퍼트리며 이동을 하는데, 몇 걸을 옮기기도 전에 멈춰 서야만 했다.

커헝… 컹….

으르르르….

기이한 울음소리가 안개 너머로 날아든 까닭이었다. 그리고 점차적으로 다가드는 거대한 그림자도 있었다.

‘환각? 환청?’

그 같은 생각이 들 수밖에 없는 게, 게이트 알람은 거짓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렇기에 당혹감이 컸다.

‘몬스터라고?’

안개를 뚫고 나타난 건 놀랍게도 블러드울프라고 불리는 몬스터로서, 늑대인간과 뱀파이어의 혼혈이라고도 알려진 끔찍한 혼종이었다.

안개가 감각 교란을 하고 있지만, 이처럼 코앞에 있는 놈까지 몰라볼 수준은 아니었다.

클레어의 감각이 결론을 내렸다.

‘진짜다!’

환각 따위가 아니었다.

워우우우우우~!

문득, 하울링이 터져 나왔다.

남다른 후각 및 청각 신호를 지녔지만, 놈 역시 감각에 교란이 있던 것인지, 일행을 발견하고 나서야 흉성을 터트리며, 그 특유의 피어를 뿜어내기 시작했다.

클레어의 시선이 급히 마루에게로 향했다.

블러드울프는 무려 레이드 클래스 상위종으로서, B급 헌터가 감당할 만한 존재가 아닌 것이다.

이런 근거리에서 발산하는 피어의 경우, 자칫 정신계에 이상을 일으킬 수도 있기에, 급히 마루의 상태를 확인하고자 한 것이다.

‘멀쩡하다고?’

하지만 이게 웬일?

너무나도 태연한 모습으로 총구를 세우며 조준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그리고 이어지는 사격!

타타타타타탕….

쌍권총이 불을 뿜고 블러드울프의 전신에 무시무시한 탄환이 골고루 박히는 게 보였다.

크아아아아아!

고통스러운 비명과 함께 블러드울프가 마루를 노려볼 때, 클레어가 스킬을 발동시켰다.

[물의 유희]

손짓을 타고 형성된 물빛 검신이 허공중에서 춤을 추기 시작했다.

그 현란한 춤사위 끝에 블러드울프가 분쇄되며 무너져 내렸다.

무려 레이드 클래스 상위종이건만, 그녀는 이를 단숨에 처리해 버린 것이다.

영국을 넘어 유럽을 대표할 만한 강자답다고 해야 할까?

하나 마루는 그 모습에 마냥 감탄할 수만은 없었다. 그녀의 상태가 정상이 아니라는 걸 알기 때문이었다.

‘무리하네.’

짐작하건대 이 상황을 주시하고 있을 불청객들을 염두에 둔 것이리라.

거기에 더해 생각지 못한 상황에 당황한 호위대의 멘탈을 바로잡기 위한 결단이기도 했다.

과연, 효과가 있는 것인지 잠시 흐트러졌던 요원들의 자세가 바로잡히는 게 보였다.

‘그나마 다행인 건, 강화계가 아니라 이능계라는 건가.’

신체적인 제약에서 일부 벗어나 있기 때문이었다.

마루 역시 현 상황에 맞는 최대한의 보조를 하고자 열심히 움직였다.

건어택과 트랩퍼!

아이언슈트로 나서는 게 아니라서 아쉽다는 생각은 없었다. 그 두 가지만으로도 충분한 지원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혜성을 손본 게 도움이 됐네.’

길드 방벽을 강화하며 ‘결계 스킬’에 대해 적잖은 공부를 한 덕분인지, 안개가 결계 능력자의 재주임을 한눈에 알 수 있었다.

관련한 흐름을 상세히 살피면서, 그 위로 이런저런 실험을 하면서, 마석 결계술을 덧씌우는 연습도 제법 할 수 있었던 만큼, 지금 이 안개 사이로 그의 재주를 덧칠하는 것 역시 불가능하진 않다 여겼다.

특히, 건물 외벽의 한정된 공간이 아닌, 이처럼 너른 영역에 걸쳐서 퍼진 결계 스킬의 경우, 그 영향력이 더 얕은 터라, 손을 쓰기가 더 쉬울 터였다.

그렇다고 해서 안개에만 집중하진 않았다.

스킬 [사시]의 발전형이 멀티캐스팅이듯, 이를 통해서 여러 사고가 가능해진 만큼, 건어택으로서는 쌍권총을 휘둘렀고, 트랩퍼로서는 안개를 파헤치며 분석 중이었다.

타타탕… 타탕… 타앙….

클레어는 작게 감탄을 거듭했다.

‘이런 솜씨라니!’

분위기 쇄신을 위해서 살짝 무리하는 경향이 있었건만, 마루의 시기적절한 지원 사격 덕분에 어깨가 가벼워진 것이다.

하나둘 몬스터의 접근이 늘어가는 가운데, 대원들이 방향을 나눠 바리케이드를 세우고, 그 너머에서 마루가 지원 사격을 하고 있었다.

‘이 무슨 말도 안 되는 정확도냐?’

‘괴물인가?’

‘이게 겨우 각성 1년 차라고?’

대원들의 눈도 동그래졌다.

각 몬스터는 각자 나름의 약점이라 할 만한 부위들이 있는데, 블러드울프의 경우에는 인중 부분이 유독 약한데, 놀랍도록 정확한 속사로 그곳을 타격하고 있었다.

물론, 단번에 이를 노린다면 블러드울프 역시 피해 버릴 확률이 높지만, 연사로 다른 방향에 신경을 돌린 뒤, 속사로 타이밍을 뺏듯 인중을 때려 버리는 것이다.

이리저리 몸부림을 치는 와중에, 저리 정확히 인중을 저격할 수 있다니, 하나부터 열까지 전부 감탄을 연발하게 만드는 장면의 연속이었다.

“허….”

“…꿀꺽!”

함께 손발을 맞추고 있던 터라 더더욱 느껴지는 바가 컸던 듯, 몇몇 입 밖으로 감정을 흘려 버리는 이들도 있을 정도였다.

특히 더 놀라운 건 마루의 쌍권총이 각기 다른 방향을 향해 있단 점이었다.

‘아니, 대체 무슨 스킬을 지닌 거야?’

‘총기류 중에서도 최상위급이겠지?’

‘허… 이건 뭐, 클래스가 다르네.’

클레어와 대원들까지, 양측을 전부 커버하며 보조하고 있던 것이다.

덕분에 일행들은 활짝 열린 빈틈을 향해 결정타를 먹이며 승부를 낼 수 있었다.

크륵….

피거품을 물며 무너지는 블러드울프들이 보였다. 하지만 여전히 끝난 건 아니었다.

워우우우우우….

워우우우….

곳곳에서 하울링의 연쇄가 일어나며, 놈들의 존재감이 강하게 퍼져 나왔다.

안개로 인해 감각 교란이 발생하고 있지만, 진하게 퍼져 나가는 혈향까지 감출 순 없었던 듯, 동족의 죽음을 인지한 블러드울프들이 일제히 흉성을 터트리고 있었다.

안개의 장막을 관통하며 파고드는 피어가 실로 섬뜩했다.

‘어마어마한 규모….’

이를 통해 간접적으로나마 놈들의 숫자를 헤아릴 수 있었는데, 놀랍게도 두 자릿수가 넘어가는 듯싶었다.

레이드 클래스급 몬스터가 튀어나오는 게이트?

말도 안 되는 이야기였다.

최근에 한국에서 발생한 B급 게이트만 해도 전 세계를 뒤흔드는 대사건이지 않던가.

결국 답은 하나였다.

“연구소겠죠?”

한 대원이 그리 물으며 클레어를 바라봤고, 이에 클레어가 고개를 끄덕이는 게 보였다.

다른 대원이 의문을 내비쳤다.

“하지만 그런 놈들은 온순한 편이지 않습니까?”

그 말처럼 연구소에서 사육되는 몬스터의 경우, 흉성의 상당 부분이 거세되기 마련이었다.

이는 의도한 게 아닌, 환경적인 요소에서 오는 변화였다.

마기를 품고 살아가는 놈들이다 보니, 마굴이나 던전이 아닌 장소에 오래 머물 경우, 자연스럽게 기운이 빠지고 기세가 꺾여 버리는 것이다.

간혹 덩치까지 쪼그라드는 경우도 있었는데, 하위종의 경우에는 마기 고갈로 인해, 시름시름 앓다가 병사하는 놈들도 상당했다.

그렇다면 지금 나타나는 놈들은 어찌 설명해야 하는 걸까?

클레어에게서 답이 나왔다.

“키메라!”

대원들의 표정이 굳어졌다.

보통 키메라를 연상할 경우 기괴한 형상을 우선해서 떠올리고는 하지만, 꼭 그런 것만은 아니었다.

연구소에서 가장 먼저 실험하는 건, 몬스터의 흉성을 남겨 놓는 방법이기 때문이었다.

그 와중에 각종 지저분한 미친 행위가 실시되는데, 지금 이 안개를 헤매는 블러드울프는 그렇게 광기를 강제당한 놈들일 터였다.

당연히 몬스터의 등급에 따라서, 난도 역시 높아지기 마련이었다.

‘이런 놈들이 런던 한복판에 있다고?’

클레어의 미간에 깊은 주름이 새겨졌다.

한차례 내부 물갈이의 필요성을 느끼는 것도 잠시, 짙은 혈향을 쫓아 모여든 블러드울프들이 주변을 에워싸는 게 느껴졌다.

비록 남다른 실력의 클레어가 있다고는 하나, 저처럼 다수의 블러드울프가 밀려들 경우, 그녀 역시도 일행의 안전을 장담하기 어려웠다.

대원들의 희생이 예상되는 가운데, 문득 마루가 입을 열었다.

“모두 모이십시오!”

뜬금없는 외침이었다.

하지만 그의 단호한 눈빛을 보며 클레어는 바로 지시를 내렸고, 대원들은 우르르 마루의 곁으로 몰려들었다.

그와 동시에 안개가 흩어지는 게 보였다. 좀 더 정확히는 안개는 고스란히 남아 있지만, 그들 시야가 밝혀진다고 봐야 할 것이다.

“헉! 이게, 무슨…?”

“어떻게 된 겁니까?”

“마… 마법인가?”

모두가 깜짝 놀라는 가운데, 클레어가 신음처럼 한마디를 입에 담았다.

“으음… 트랩퍼…….”

그와 동시에 마루의 이명을 상기한 일행들이 눈을 동그랗게 뜨며 마루를 바라봤다.

‘스킬로 형성된 결계인데, 간섭을 한다고?’

‘이게 말이 되는 이야기야?’

‘허… 맙소사!’

새삼 클레어가 직접 움직인 이유를 실감했다.

그 정도로 특별한 귀빈이었다.

선글라스 너머 대원들의 눈빛이 돌변했다.

조금 전까지는 그저 ‘임무’로서 호위를 하고 있었다면, 지금부터는 국가를 위해, 진실한 감정에서 대상을 경호하기로 한 것이다.

얼마든지 목숨을 던질 준비가 됐다.

그렇게 마음을 각오를 다지며 안개 너머로 시선을 보내던 중, 일행들은 일제히 입술을 질끈 깨물어야만 했다.

도로 곳곳으로 합류하지 못한 대원들의 시체가 늘어서 있던 것이다.

감각 교란의 안개 속에서도 방향은 잘 잡은 듯, 공항으로 이어지는 핏물이 그들의 눈시울을 붉게 만들었다.

으드득….

대원들의 분노에 마루가 급히 외쳤다.

“기세를 거둬요! 시야가 흔들립니다.”

혜성에서 스킬 분석을 통해 제법 연습을 했다고는 하나, 그래도 일반적인 결계술보다 어려운 건 사실이었다.

게다가 기본적으로 마석 결계술은 주변 대기의 흐름을 읽고, 그에 맞춰 배치가 이뤄지는 것이었다.

굳이 비유하자면, 일종의 풍수지리의 한 맥락처럼 고유의 흐름을 따라가되, 그 일부를 끌어당겨서 이용하는 종류라고 할 수 있었다.

그 때문에 쉬이 배울 수 없는 것이기도 했다.

초감각 수준으로 주변 흐름을 실시간으로 읽을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특히, 지금과 같은 특수 상황에선 더욱 난도가 올라가는데, 일행들이 분노와 함께 내비치는 포스의 소용돌이로 인해, 겨우 잡아 놓은 흐름이 비틀릴 수도 있었다.

그 외침 덕분에 정신을 차린 듯, 대원들이 호흡을 가다듬으며 기세를 갈무리했다.

그들은 후방의 처참한 광경에서 고개를 돌린 뒤, 애써 전방으로 시선을 던져 보냈다.

그리고 발견할 수 있었다.

“헉! 트루트리?”

“스톤 트루퍼?”

“바이어트까지?”

환히 밝혀진 시야 너머로 보이는 건?

키메라!

줄지어 늘어선 몬스터의 물결이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