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 뮤턴트.
#17. 뮤턴트.
공항 방면에서 게이트 알람이 울렸다.
던전지대며 안전지대인 장소에서 이변이 발생했다. 당연히 난리가 나야 할 대사건이건만, 상황이 요상하게 돌아가며 시선을 분산시켰다.
애애애애애앵….
애애애앵….
애애앵….
곳곳에서 울려 퍼지는 게이트 경보가 상황실을 어지럽힌 것이다.
“뭐가 어떻게 된 건데?”
“갑자기 웬 난리야?”
“무전 때려봐. 빨리 상황 파악 들어가라고.”
다급히 연락을 취하는 가운데, 몇몇 통신이 닿은 곳에서 알람 장치 이상이라는 보고가 이어졌다.
물론, 이는 정말로 ‘몇몇’으로써, 제외한 나머지에선 몬스터가 출몰했다는 보고가 연달아 들어왔다.
그 때문일까?
“공항 방면은 먹통입니다!”
“넘어가! 거긴 던전 지대잖아. 안전지대에서 게이트 발생이 말이 된다고 생각해?”
정신없이 돌아가는 탓인지 일부 상황들을 커트하며 진행시키는데, 하필 그 안에 런던 공항의 기현상도 끼어있었다.
사실 당연한 수순이긴 했다.
중요도에 따라서 순위를 나누는데, 기본적인 상식선을 따라서 안전지대는 순번이 밀리는 건 어쩔 수가 없었다.
“무전기 잡고 주둥이 놀릴 때 아니다. 당장 긴급 소집령 때려! 이럴 때 움직이라고 길드 혜택 빵빵하게 주는 거 아니야. 당장 소환해!.”
길드까지 연락이 닿고 움직이는 가운데, 왕실 역시 이 기현상에 맞춰 병력을 조정하며, 그 무거운 걸음을 내딛기 시작했다.
그렇게 영국 전역에 난리가 났다.
* * *
대체 어디에다 저토록 많고 다양한 몬스터들을 숨겨놓고 있던 것일까?
클레어는 생각 이상으로 상황이 좋지 않다는 생각과 함께, 조심스레 상태를 점검했다.
‘후우… 얼마나 버틸 수 있으려나.’
키홀의 수장, 바이퍼와의 격돌 여파가 아직 진하게 남아있었다. 회복용 특수 장비를 착용 중이다 보니, 그럭저럭 전투를 끌어나갈 순 있겠지만, 안타깝게도 베스트 컨디션은 아니었다.
당장 엔트라넷만 살펴도 확인 가능했다.
[컨디션 : 6]
아슬아슬하게 일상 최저치였다.
그뿐만 아니라 장비 역시 베스트가 아니었다.
드래곤 스케일!
몸 상태도 정상이 아니고, 외국 출장을 나섰던 상황이다 보니, 왕실 깊숙한 보관함에 놓고 온 것이다.
그런 와중에 레이드 클래스급 몬스터들이 우글거리며 대기 중이었다.
하나같이 블러드울프 못지않게 골 아픈 녀석들로서, 그녀의 몸 상태가 정상이라 할지라도 저만한 숫자를 감당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존슨, 그 괴물이라면 모를까.’
맨몸으로 균열을 막는 사나이가 아주 잠깐 떠올랐다. 그와 동시에 입가를 흐르는 쓰디쓴 미소 한 모금, 그것은 언뜻 실연한 여인의 그것과 꼭 닮아있었다.
‘이럴 때가 아니지.’
고개를 휘휘 저으며 잡념을 털어낸 뒤, 마루를 향해 물었다.
“결계의 유지력은 얼마나 됩니까?”
이에 가만히 흐름을 읽고 있던 마루가 주변을 쭈욱 훑으며 말했다.
“마석만 충분하면 문제없습니다.”
그 말처럼 일행들의 시야가 밝혀진 장소 곳곳에는 마석이 박혀있었는데, 저기서 뿜어진 기운들이 안개의 기존 흐름을 왜곡하며 일행들을 피해가게 만든 것이다.
작게 고개를 끄덕인 클레어가 물었다.
“혹시 이동도 가능할까요?”
땅바닥에 박혀있는 마석으로 봐선, 고정형이라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지만, 상황이 워낙 골치 아프다 보니, 일말의 기대감을 품은 채 묻을 수밖에 없었다.
이에 마루가 고개를 저었다.
그저 한숨 돌리는 게 전부라는 생각에 클레어의 안색이 살짝 어두워지는데, 마루가 뜻밖의 이야기를 입에 담았다.
“대신에 결계를 넓히는 건 가능하죠.”
그만큼 일행들의 활동 범위도 넓어진다는 의미였다. 당장은 마루가 지정한 영역만 벗어나도 시야가 어두워지지 않던가.
그 부분을 해결할 수 있단 것이다.
이에 클레어를 비롯한 대원들의 눈이 동그래지는가 싶더니, 얼굴 가득 기대감이 차오르는 게 보였다.
“하지만 시간이 좀 필요합니다.”
그리 말하며 안개 너머를 바라보는 마루의 모습에, 밝아지는가 싶던 일행들의 표정이 재차 굳어졌다. 이에 마루가 분위기를 풀어줄 만한 이야기를 했다.
“제대로 확장만 할 수 있다면, 이 안개 전역에 걸쳐서 시야를 밝힐 수 있을 겁니다.”
감각교란을 전부 해결하긴 어렵지만, 적어도 시야 문제만큼은 확실해 해결할 수 있었다.
그것만 해도 많은 상황이 달라질 터, 일행들은 고개를 끄덕이며 잠시 흔들렸던 마음을 다잡았다.
“부탁드립니다.”
클레어가 그리 말하며 다시금 일행 배치를 했다. 어느새 몬스터들이 다가오고 있었다.
* * *
키홀은 저 멀리 안개에 휩싸여있는 공항 주변을 바라보며 조용히 미소를 띄웠다.
‘대체 어디서 저 많은 몬스터가 나왔을지, 아주 당황스러울 거야. 큭큭큭큭!’
그 부분에 대해 클레어는 내부의 비리를 생각하고 있지만, 아주 약간 다른 부분이 있었다.
저들을 일부 꾀어놓긴 했지만, 왕실 깊숙한 곳까지는 파고들기가 어려웠다. 그만큼 트리니티 여왕 체제의 영국은 내부 결속이 남달랐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저 많은 몬스터는 어디서 나온 것일까?
이 부분에서 바이퍼는 자신의 새로운 능력을 떠올려야만 했다.
‘신기한 일이란 말이지.’
마치, 또 다른 각성을 한 느낌이라고 해야 할까?
레메게톤을 손에 쥐기 위해서 금단의 연구에 발을 들였고, 그 결과 랭커의 영역에 올라설 수 있었다.
그 이후 기이한 지식이 머릿속에 떠오르는 걸 느꼈다.
이를 통해서 준비한 놈들이었다.
‘키메라를 생각하겠지.’
바이퍼는 고개를 저었다. 현장을 어지럽히고 있는 몬스터들의 정체는 전혀 다른 종류였다.
뮤턴트!
아마 상상도 못 할 터였다.
‘저놈들이 몬스터가 아닌 인간일 줄은 생각도 못 할걸.’
이면의 불법적인 루트가 아닌, 멀쩡한 교통수단을 이용해서 영국으로 넘어온 것이다.
물론, 저들은 실패작들이었다.
‘기껏해야 1회 용품… 쯧!’
발록이 떠올랐다.
이면의 랭커 중 한 명으로서, 뮤턴트 연구의 성공작으로 불리는 사내였다.
실상은 그 역시 실패작이지만 스스로 벽을 넘으며 불안요소를 해결한 것이지만, 어쨌든 알려지기로는 그랬다.
‘그 많은 재료를 사용해서 겨우 1회용이라니.’
몬스터화가 이뤄지고 나면, 다시는 인간으로 돌아오지 못하며, 일종의 광폭화 모드가 발동하면서 생명의 힘이 다할 때까지 날뛰다가 죽는 것이다.
‘아쉽긴 하지만… 그래도 덕분에 무대를 아주 제대로 키웠으니.’
그런대로 만족할 수 있었다.
게다가 저처럼 알아서 뒷정리가 될 것이기에, 따로 발각될까 걱정하며 시체 수거에 신경 쓸 필요도 없었다.
밝히지만 않는다면, 저들은 결코 뮤턴트는 생각도 못 한 채, 키메라만 떠올리며 내부 단속이네 뭐네 하면서, 의미 없는 헛발질만 할 터였다.
“큭큭큭큭….”
이런 걸 생각하고 있노라니, 참으려 해도 자꾸만 웃음이 나올 수밖에 없었다.
‘미지의 지식이 좀 더 떠오른다면, 뮤턴트도 완성할 수 있겠지.’
언젠가는 발록과 같은 성공작도 나올 터였다.
* * *
타앙… 탕… 타아아앙….
클레어는 새삼 경이롭단 얼굴로 마루를 바라봤다.
‘저 와중에 저격이라니.’
결계에 집중하느라 정신없을 줄 알았더니, 이게 웬일?
한 손은 땅을 짚고 뭔가를 더듬듯 이리저리 움직이고 있노라면, 나머지 한 손은 열심히 방아쇠를 당기며 그녀를 비롯한 대원들의 보조를 하고 있었다.
결계에만 집중하는 게 낫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마루가 먼저 이야기를 했다.
“집중한다고 해서 많은 차이가 나진 않습니다.”
차라리 일행을 도우며 안정감을 높이는 게 낫다는 것이다
그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결계를 넘는 몬스터에 집중할 뿐이었다.
게다가 마루의 지원사격에 도움을 얻고 있기에, 그를 말리기도 어려웠다.
시기적절한 지원사격이 아니었다면, 대원중 상당수가 부상을 입었거나 싸늘한 시체가 되었을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마루의 결계가 주변 흐름을 왜곡시키고 있다고는 하나, 벽을 세운 건 아니다 보니 결국 접근하는 놈들이 있었고, 이를 배제하는 게 그녀와 대원들의 역할이었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마루의 결계 덕분에 시야가 밝아져서 미리 대처할 수 있단 점과, 흐름 왜곡으로 혈향이 흩어지며 놈들을 분산시킬 수 있다는 점이었다.
물론, 그럼에도 상당수의 몬스터가 몰려들고 있기는 했다.
타앙… 탕….
그 때문에 마루의 보조가 큰 도움이 됐다.
비록 그 시야는 가늠쇠를 넘나들고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결계에 소홀한 건 아니었다.
더블 캐스팅마냥 나눠진 사고로 감각도 나눠 가진 것이다.
[감각분할]
스킬로 인해 균일하게 감각을 분배할 수도 있었다.
그 와중에 양팔을 나눠서 사용하는 것도 그런 분할작업의 일부였다.
하나는 대지의 흐름을 다른 하나는 전장의 흐름을 쫓는 것이다.
블러드울프를 시작으로, 트루트리에 스톤 트루퍼까지, 새로운 몬스터들이 연달아 투입되는 가운데, 일행들의 어깨가 추욱 처지는 게 보였다.
언제까지 이곳에서 버티고만 있을 수는 없는 법, 일행들의 발이 무거워지기 전, 땅을 더듬던 마루의 손이 올라갔다.
이를 본 클레어가 눈을 빛내는 가운데, 토템마냥 한 자리에 고정되어 있던 마루가 이리저리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러며 땅바닥에 마석을 쉼 없이 박아넣는 게 보였다.
‘저 많은 마석이 어디서?’
새삼 마루의 등장에 대한 미스터리가 커지는 가운데, 기다리던 신호가 왔다.
화아아악….
지면을 타고 은은한 파장이 퍼져가는 게 느껴졌다. 등짐에 시선을 주던 클레어가 눈을 번쩍 뜨며 외쳤다.
“신속 기동!”
본격적인 이동이 시작됐다.
여전히 감각 교란은 남아있었지만, 마루가 장담했던 것처럼 시야는 환히 열려있었고, 이는 안개 속에서 더없이 유리한 작용을 했다.
길을 헤매는 몬스터들과 달리, 그들은 정확히 가야 할 방향을 잡고 움직이기 때문이다.
때로는 접근을 피해 움직일 수도 있으니, 불필요한 마찰을 줄이는 건 일도 아니었다.
실제로도 이동을 시작한 이후, 더 이상의 전투는 없었다.
그 때문에 속도가 늦춰진 건 어쩔 수 없는 부분이지만, 그래도 숨 돌릴 틈이 생기면서 안정감은 확실히 살아났다.
‘이대로 왕실까지만 가면….’
클레어가 그런 생각을 할 때였다.
화아아아아악….
돌연 안개가 걷히는 것이 아닌가.
모두가 깜짝 놀라서 마루는 바라봤다. 혹시 그가 한 건가 싶어서 돌아본 것인데, 이에 마루가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
“아무래도 들킨 모양입니다.”
상대편에서 아예 결계를 풀어버린 것이다.
크르륵….
크륵?
동시에 일행들의 안색도 굳어졌다. 그들만이 아니라 몬스터에게도 활짝 열린 시야로 인해, 일행들의 은밀한 이동이 발각되어 버린 것이다.
그 위치도 최악이었다.
‘하필이면….’
마루가 주변을 돌아봤다.
절묘하다고 해야 할까?
블러드울프, 트루트리, 스톤 트루퍼, 바이어트 등등, 그들 일행의 위치는 그 많은 몬스터들의 경계점이었다.
크아아아아악!
워우우우우우~!
먹잇감을 발견한 마물들이 군침을 흘리며 달려오기 시작했다.
* * *
트리니티 여왕은 지도를 보며 생각했다.
‘동시다발적 게이트라고?’
최근 들어 세계적으로 이런저런 사건이 많은 만큼, 기현상의 일부분으로 이해하고 넘어갈 수도 있을 것이다.
지금과 같이 복잡한 상황이라면 생각은 뒤로 미룬 채, 급한 불을 끄러 가는 게 먼저일 터였다.
하지만 그녀는 생각을 앞세웠다.
‘기현상?’
이에 고개를 저었다.
‘레메게톤!’
그녀의 감이 말하고 있었다.
‘놈들이 수작질을 부린 것 같은데….’
만약, 그렇다면 뭘 노리고 움직이는 걸까?
상황실의 모든 보고서를 가져오라 지시했고, 이를 빠르게 훑어 나가는 가운데, 뜬금없는 내용 하나가 눈에 담겼다.
“공항에서 알람이라고?”
그 방면의 통신이 끊겼다는 내용도 함께였다.
순간, 등허리가 짜릿해졌다.
‘이거구나!’
오늘 귀빈이 도착하지 않던가.
왕실에는 축복이지만 그들의 대적자에겐 절망을 안겨줄 수도 있는 존재가 입국하는 날이었다.
“트랩퍼.”
그 이명을 입에 담으며 급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드래곤 스케일을 준비해라!”
잠시 후, 왕가의 보물이 찬란한 모습을 드러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