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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이동요새!

#18. 이동요새!

안개가 흩어지고 시야가 활짝 열려 버리며, 수많은 몬스터들의 표적이 되어 버린 상황, 그야말로 위기 그 자체였다.

바로 그 시점에 마루가 움직였다.

스스스스스스….

땅바닥에 뭔가를 강하게 찍어 누르는가 싶더니, 거기서부터 안개가 퍼져 나오며 다시금 시야를 어지럽히는 것이 아닌가.

그와 동시에 마루가 일행에게 뭔가를 던졌다.

‘마석?’

클레어는 이를 받아 들고는 눈을 동그랗게 뜨는데, 놀라운 건 바로 그 이후에 발생했다.

‘시야가….’

밝혀졌다. 새로운 안개로 인해 다시금 어둠이 찾아들었건만, 마석을 손에 쥔 순간 사위가 밝아진 것이다.

이 갑작스러운 현상에 달려들던 몬스터들이 일제히 당혹감을 드러내는 모습이 보였다.

그리고 마루는 이를 놓치지 않았다.

갑작스레 시야가 가려졌으니 충분히 그럴 만한 반응이라 여기며 넘어가도 될 것이나, 묘하게 그의 신경을 건드리는 장면이었다.

‘시각보단 후각이나 청각에 민감한 놈들인데….’

물론, 이 부분을 길게 생각할 여유는 없었다.

한차례 놈들의 혼란을 끄집어낸 상황에서, 활짝 열린 시야를 활용하며 자리를 피하는 게 우선이었다.

‘정신을 차리기 전에.’

그의 눈빛을 읽은 클레어가 급히 일행에게 신호를 보내며 신속 기동을 이어 나갔다.

그러며 마루의 곁으로 거리를 좁히면서 물어 왔다.

“어떻게 하신 겁니까?”

속삭이듯 묻는 건, 지금 이 결계가 기존의 안개와 달리 감각적인 교란은 없기 때문이었다. 그저 시야만 차단하고 있었고, 그 때문에 음성을 낮춘 거였다.

마루 역시 속삭이며 답했다.

“지금까지의 역순으로 움직인 겁니다.”

안개의 결계에 개입하며 시각적인 부분을 오픈하며 그 흐름 일부를 따낼 수 있었기에, 반대로 운영하는 것으로 다시금 안개를 퍼트리는 게 가능했다.

그러면서 또 이야기한다.

“결계를 푼 건 저들의 실착입니다.”

이에 의아해서 바라보니, 마루가 입꼬리를 귀밑에 붙이면서 말했다.

“지금부턴 제 이명을 자랑 좀 해 보겠습니다.”

묘한 기대감을 일으키는 모습이었는데, 아니나 다를까.

[이동요새]

마루가 뭔가를 입 안에 머금는다 싶은 순간, 발밑으로 은은한 광채가 피어나며 퍼져 가는 게 보였다.

투신 제트에게 힌트를 얻어 ‘스킬 창조’에 대한 가능성을 발견했고, 이를 통해서 개발해 낸 그의 ‘오리지널’ 스킬이었다.

게임에선 최근에 겨우 탄생시킨 것이지만, 3차 전직 혜택에 의해, 별다른 숙련도 작업 없이 현실에서도 바로 도입이 가능했다.

이게 뭐냐는 듯 바라보는 일행들을 향해 마루가 답했다.

“지금부터 여기는 저의 ‘레어’입니다.”

일종의 영역 선포라고 해야 할까?

안개 너머, 적도들의 당혹감이 전해지는 것 같았다.

* * *

결계 스킬 보유자는 실로 값비싼 재능의 소유자들이었다.

이들을 통해 각 길드의 방벽을 단단히 할 수 있기 때문인데, 더 나아가선 전장의 흐름도 일부 비트는 게 가능한 존재들이었다.

그 때문에 크라운이 WHA의 4대 협회장으로 나섰을 때, 그의 지지도가 남달랐던 것이기도 했다.

그로 인해 WHA의 방호벽이 한층 단단해진 것이지 않던가.

어쨌든 그런 고급 인력으로 분류되는 결계 스킬 보유자, 리트로는 당혹스러운 얼굴로 전방을 바라봤다.

‘으음… 트랩퍼….’

자신의 결계 내부를 헤집고 다니는 걸 넘어, 설마하니 그의 결계를 흉내까지 낼 줄이야.

급히 결계를 재설치하려 했지만, 그 순간 늦어 버렸음을 깨달았다.

“어떻게 된 겁니까?”

그를 호위하던 레메게톤의 요원이 물어 왔다. 이에 리트로가 그늘진 얼굴로 입을 열었다.

“당한 것 같습니다.”

“그게 무슨….”

“트랩퍼의 재주가 보통을 넘는군요.”

이는 이해하기 어려운 소리였다. 요원이 명확한 답을 요구하는 얼굴로 바라보는 가운데, 리트로가 입술을 잘근 씹으며 답을 내어 줬다.

“레어를 벗어나면 별 볼 일 없다는 게, 아무래도 착각이었나 봅니다.”

설마하니 그의 결계 흐름을 읽어 내고, 이를 역순으로 쫓아서 자신만의 영역을 선포해 버릴 줄이야.

‘마석 결계술인가?’

존슨의 재주는 따로 하나의 스킬로 인정될 만큼 특별하다는 걸 알았다. 이를 인정하기 싫어 쉬쉬하고 있을 뿐, 결계술사들 사이에선 치를 떠는 재주이기도 했다.

설마 그 특별한 재주를 이토록 완벽하게 재현하는 이가 있을 줄이야.

일단의 설명을 들은 요원이 당혹감 어린 음성으로 물었다.

“으음… 방법이 없겠습니까?”

리트로가 한껏 포스를 일으키며 말했다.

“일단 시야는 밝혀 볼 테니, 빠르게 승부를 봐야 합니다. 본사 분들도 뒷짐만 지고 있을 때가 아니라고 전해 주세요.”

그 말과 함께 리트로의 전신에서 몽글몽글 안개가 구름처럼 피어나기 시작했다.

* * *

결계 위에 결계를 덧씌우는 건 결코 쉬운 작업이 아니다. 그 대상이 스킬로써 형성된 아주 특수한 케이스라면, 더더욱 어려울 수밖에 없었다.

한데, 이게 웬일?

‘알아서 결계를 오픈하다니.’

마루는 그 순간 무대의 주도권이 손끝에 닿음을 느꼈다.

‘쉽게 생각했겠지.’

몬스터를 한데 몰아 놓고 다시 결계를 펼치거나, 그게 아니더라도 오픈한 상태로 판을 끝낼 수 있다고 여겼으리라.

그가 트랩퍼로서 유명세를 타고 있다지만, 이곳은 그의 영역이 아니며 더 나아가서 그의 국가도 아닌, 머나먼 타국이었다.

레어에서 너무 멀어진 것이다.

현 상황에선 그저 건어택으로 활약하는 게 전부라 여겼으리라.

하지만 그게 큰 착각이라는 걸 알려 주는 건 그리 어렵지 않았다.

그가 최근에 PP에서 키우고 있는 부캐인 신관의 경우, 일종의 서포터의 스페셜리스트라 할 수 있었는데, 버프와 힐만이 신관을 대표하는 재주가 아니었다.

영역 선포!

또는 결계술이라 할 수 있는 재주 역시 무시할 수 없는 것이다.

[세인트 필드]

트랩퍼의 이명을 공식적인 유명세로 끌어올린 스킬, 그것의 발전형이라 할 수 있는 스킬이 바로 이동요새였다.

고정형이던 걸 이동형으로 바꾼 정도일 뿐이지만, 거기에 들어간 노력이 상당했으며, 차후로도 발전의 가능성이 있다는 점에서 기대감이 큰 스킬이었다.

게다가 그가 직접 연구해서 개발한 오리지널이라는 게 가장 마음에 드는 부분이기도 했다.

첫 스킬 개벽권과는 또 다른 의미에서 특별한 스킬이었다.

성직계 스킬을 가져다가 재탄생한 스킬인 만큼, 당연하게도 여기서 사용되는 핵심 재료가 따로 있었다.

메달!

일행과 함께 이동하는 내내 그냥 뛰기만 한 건 아니었다. 열심히 PP의 메달을 뿌리면서 달려온 것인데, 그 결과라고 해야 할까?

크르륵… 크륵?

크으으으….

몬스터들의 기세가 일부 꺾이는 게 보였다. 이동요새가 품고 있는 성력이 놈들의 어깨를 움츠리게 만든 것인데, 이를 보던 마루는 묘한 기시감을 느꼈다.

그게 뭘까?

놈들이 후각이나 청각이 아닌 시각에 의존하던 기이한 반응들까지 연달아 떠올랐다.

자꾸 그 부분이 걸렸던 탓인지, 그의 사고 한편이 관련한 부분을 파헤치며 바쁘게 돌아가기 시작했다.

느낌적인 느낌이라고 해야 할지, 무시하면 안 된다는 예감이 강하게 든 까닭이었다.

그즈음부터 일행의 지원보단 놈들의 관찰에 좀 더 많은 시간을 할애하기 시작하는데, 그러다가 문득 기시감의 정체를 떠올려 버렸다.

‘발록?’

그리고 PP의 수인종까지, 변이 스킬 유저 및 능력자들이 머릿속을 스쳐 가는 것이 아닌가.

어째서?

그 이유는 놈들이 드문드문 보여 주는 몸짓이나 습관 등에서 나타났다.

몬스터의 외형을 하고 있지만, 분명 저들의 반응 양식 사이사이에서 ‘인간’의 습성이 새어 나오고 있던 것이다.

시야가 가려졌음에도 자꾸만 눈을 쫓아 움직이는 건 기본이며, 저도 모르게 손을 닦고 털어 내는 등, 별것 아니지만 소소한 부분에서 진한 ‘동족의 향수’를 느껴 버렸다.

“이런, 미친!”

갑작스러운 마루의 외침에 일행들이 깜짝 놀라서 돌아봤다. 목소리를 죽여야 하는 이 상황에서, 너무 커다란 외침이었던 탓이다.

아니나 다를까 몬스터들이 귀를 쫑긋 세우며 일제히 고개를 돌리는 게 보였다.

자칫, 사냥이 아닌 전투가 될 수도 있는 상황, 클레어가 급히 일행을 이끌며 골목길로 숨어든 뒤, 마루에게 목소리를 낮춰 물었다.

“무슨 일입니까?”

마루는 자신이 알아낸 걸 말할까 말까 한차례 고민하다가, 이내 조심스레 입을 열어 전했다.

“으음… 그럴 수가….”

“맙소사!”

“이 미친놈들….”

클레어를 비롯한 대원들이 신음성과 함께 안면을 구기는 게 보였다. 그러더니 밝혀진 시야 너머로 몬스터들을 살피기 시작했다.

바삐 자리를 피해야 하는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잠시 휴식도 취할 겸, 호흡을 고르며 놈들을 관찰하는 시간을 보냈다.

클레어를 비롯하여 대원들까지, 왕실의 한 기둥을 맡을 정도의 실력자들인 만큼, 그들의 눈썰미는 보통이 아니었고, 이내 마루와 같은 걸 발견할 수 있었다.

“으으으음….”

“정말, 뮤턴트라니….”

신음성이 한층 깊어지는 가운데, 클레어는 의외의 모습을 발견했다.

‘어느새?’

마루의 무장이 변화한 것이 아닌가.

그의 권총도 색감을 비롯하여 외형에 일부 변화가 있었고, 어느 틈엔가 복장도 갈아입은 상황이었으며, 착용 중인 무구의 숫자도 늘어나 있었다.

자그마한 단검의 숫자는 물론이고, 정글도와 같은 물건까지, 이전에도 던전용 완전 무장이었지만, 지금은 거기서 한 차례 더 발전한 느낌이었다.

‘대체, 가방에 뭐가 들어 있는 거야?’

저토록 다양한 무장이 가능하다는 점에 의아한 것도 잠시, 마루에게 묻지 않을 수 없었다.

“무슨 생각이십니까?”

“안식을 줘야죠.”

이 자리를 빠져나가는 데 집중해야 하는 상황이건만, 이 무슨 무모한 결심이란 말인가.

게다가 저 뮤턴트들의 상태에 대해 무어라 이야기할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인체 실험을 기본으로 하는 것이다 보니, 그들의 분노가 일부 당연하기는 하나, 이를 드러내며 앞세우기까진, 저들 사정을 모르기에 속단할 수 없는 것이다.

다급히 그를 말리고자 했지만, 이내 마루의 눈빛에서 강한 의지를 읽으며 숨을 삼켜 버렸다.

숨 막히는 정적 속에서 마루가 입을 열었다.

“저건 정상이 아닙니다.”

“…뮤턴트에 대해서 아시는 바가 있습니까?”

마루는 말을 아꼈다.

사실, 그 역시 뮤턴트 연구에 관해서 그리 대단한 걸 아는 건 아니다. 하지만 다른 방면에서 전해지는 건 있었다.

사자유희!

무려 저승왕의 신물을 통해, 저들의 고통스러운 신음성이 조금씩 선명해지는 걸 느꼈다.

이동요새의 효과일까?

그 안에 담긴 성력이 저들의 정신을 일부 깨워 버린 듯, 제발 죽여 달라 호소하며 울부짖고 있었다.

죽음을 입에 담기에 사자유희가 반응한다.

크워어어어어….

아우우우우….

그걸 무시하고 지나간다?

때문에 말을 아끼며 눈빛과 태도로써 보여 줬다.

저벅저벅….

그간 대원들의 가운데에 서 있던 그가, 대뜸 일행의 전방으로 나서더니, 더 나아가선 골목길 바깥으로 걸어가는 것이 아닌가.

대원들은 이를 막아야만 하건만, 어째선지 알 수 없는 묘한 압박감에 주춤주춤 물러나며 길을 열어 줘야만 했다.

클레어가 다급히 그를 쫓으며 붙잡았다.

“위험합니다.”

이에 마루가 웃으며 말했다.

“사람들이 착각하는 게 있더군요.”

“…예?”

“건어택과 트랩퍼를 따로 놓고 보는데, 둘을 별개가 아닙니다.”

그러면서 재차 언급했다.

“말씀드렸듯이, 이곳은 저의 ‘레어’입니다.”

마루는 총을 들어 방아쇠를 당겼다.

투우우웅….

묵직한 총성과 함께 레이드 클래스급 몬스터의 머리가 터져 나가는 게 보였다.

연달아 방아쇠를 당기고,

투웅… 퉁… 투우웅….

퍽! 퍼억! 퍼버버벅!

몬스터들의 머리가 폭죽처럼 폭발하기 시작했다.

* * *

바이퍼의 미간이 구겨졌다.

갑작스레 계획에 없던 안개 형성과 함께, 기이한 흐름이 발생하는가 싶더니, 생각지도 못한 리트로의 요청 메시지까지 이어지며, 상황이 어지럽게 돌아갔던 것이다.

게다가 그 이상으로 심기를 불편하게 만드는 울림도 있었다.

‘뮤턴트들이….’

빠른 속도로 소멸되는 걸 느꼈다.

지식만이 아니라 일종의 ‘계약’까지 강제하면서, 뮤턴트의 숨결이 전해지고 있었건만, 그 같은 박동들이 급속도로 줄어들고 있던 것이다.

더 이상 뒷짐만 지고 있을 수는 없음을 깨달았다.

그가 안개 속으로 향했다.

레메게톤의 정예들 역시 그 뒤를 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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