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 한정?
#19. 한정?
타앙! 탕… 타아아앙….
연달아 터져 나오는 총성에 맞춰, 몬스터들의 고개가 꺾이며 무너져 내리는 게 보였다.
‘이게… 가능한 일이야?’
클레어를 비롯한 대원들은 믿기지 않는, 불가해한 현상을 마주한 것처럼, 입만 뻥끗거리며 연신 턱을 들었다 놔야만 했다.
그도 그럴게 저 총성의 주인공이 누구던가.
B급 A형 헌터 정마루!
분명히 낮은 등급은 아니지만, 상대하고 있는 몬스터의 수준에 비한다면 한참 부족한 수준이었다.
레이드 클래스!
이는 아무리 낮은 등급이라 할지라도 B급의 헌터들이 우르르 몰려서, 말 그대로 ‘레이드’를 해야 하는 몬스터들인 것이다.
한데, 그런 몬스터를 B급 헌터가 ‘홀로’ 잡고 있었다.
결계가 펼쳐지면서 그 안에 담긴 묘한 기운이 몬스터들의 기력을 일부 꺾어 놓은 걸 봤지만, 그렇다 해도 레이드 클래스급의 위엄이 깎일 정도는 아니었다.
상대가 상대인 만큼, 한 방에 잡지 못하는 놈들도 여럿 나왔으나, 그래 봤자 세 발 이상의 총탄을 허비하는 경우가 드물었다.
많아야지 다섯 발?
남다른 방어력을 자랑하는 트루트리 정도가 그 정도였고, 블러드울프 같은 경우에는 한 방이었다.
분명, 까다로운 건 트루트리보다 윗줄이었지만, 이는 트롤을 상회하는 재생력으로 인한 것으로, 머리를 한 방에 터트려 버리면 이마저도 무용지물이었다.
순수한 방어력은 현재 등장한 놈들 중 그리 높은 편이 아니다 보니, 블러드울프 같은 경우엔 원샷에 원킬이었다.
바로 그 부분이 또 놀라웠다.
‘백발백중이라니.’
‘원샷원킬도 놀라운데….’
‘미쳤다!’
이미 마루의 사격 실력은 알고 있었지만, 지금 보여 주는 건 그들이 알고 있던 부분마저도 아득히 상회하고 있었다.
앞서 오발이라 여겨졌던 사격들을 다시 생각하게 만들었다.
저 말도 안 되는 솜씨를 지닌 이가 그처럼 다양한 오발 사격을 했을 리가 없었다.
하나같이 숨겨진 의미가 있었을 거란 생각에, 몇몇은 앞서 전투를 복기하는 이들도 있을 정도였다.
타탕… 타타타탕….
요란한 총성이 몬스터들을 불러들였다.
안개가 차단하는 건 시야 정도였지, 나머지 감각은 멀쩡히 살아 있었다.
대원들이 급히 보조하고자 따라붙고, 클레어 또한 크게 기세를 일으키며 놈들의 관심을 분산시켰다.
그러며 마루를 뒤로 불러들이고자 하는데, 마루의 행동이 한발 빨랐다.
클레어가 움직인다 싶은 타이밍에, 재차 전방으로 몸을 던지며 더욱 깊숙이, 몬스터들의 사이로 뛰어드는 것이 아닌가. 이제는 사격 거리가 아닌 근접 박투의 간격이었다.
모두가 기겁하는 와중에 마루의 총성이 가락을 타며 울려 퍼졌다.
타탕! 타타타탕! 타아아앙….
그리고 이를 음악 삼아 너울너울 춤사위를 벌이는데, 아슬아슬한 위기의 상황인 게 분명함에도 불구하고, 대원들은 일제히 감탄을 터트려야만 했다.
“아….”
“멋지다!”
“…저게, 건어택!”
총이라는 무구를 마냥 사냥의 도구로만 활용하는 게 아니라, 일종의 이동기로도 사용하는데, 회피를 위해 몸을 던지면서 방아쇠를 당기는 게 가장 대표적이었다.
타앙!
그 순간 강렬한 화력에 의해 궤적이 뒤틀리고, 그렇게 어긋난 동선 너머로 몬스터의 사나운 발톱이 스쳐 가는 게 보였다.
총기 반동까지 절묘하게 활용하는 저 모습은 그야말로 감탄이 절로 나오는 수준이었다.
그야말로 총신일체(銃身一體)라고 해야 할까?
클레어마저도 잠시간 넋을 놔야만 했을 정도로 환상적인 몸놀림이었다. 한 끗 차이로 놈들의 공격을 피하며 깊이 더 깊이 파고들어, 코앞에서 터트리는 폭력적인 총격!
투우우웅….
그 과감한 저돌성 앞에선, 결국 트루트리마저 한 방에 무너져 내려야만 했다.
클레어는 그 모습을 보며 앞서 마루가 했던 이야기를 떠올렸다.
[이곳은 저의 ‘레어’입니다.]
짐작하건대 거기에 답이 있다 여겼다.
‘트랩퍼의 결계가 버프 작용을 하는 거겠지?’
몬스터에게 영향을 미치는 것만이 아니라, 시전자인 마루 본인에게도 영향을 미치는 듯싶었다.
마루의 이야기가 재차 떠올랐다.
[건어택과 트랩퍼를 따로 놓고 보는데, 둘을 별개가 아닙니다.]
물론, 저 기이한 총화기의 위력도 무시할 수는 없겠지만, 그 위에 결계의 지원이 더해졌기에 저런 파괴적인 위력이 나오는 것이리라.
‘건어택과 트랩퍼라….’
오직 그 본인의 거처에서만 말도 안 되는 능력을 보여 준다 여겼다. 그 때문에 ‘레어 한정 랭커’라는 요상한 이명도 돌지 않았던가.
그런 이유로 집 밖을 벗어나면 대단할 게 없다는 평가도 뒤따랐다.
하지만 지금 이 상황을 보라.
‘외부에서도 레어 설치가 가능하다고?’
그 순간 요상한 이명의 한 자락이 삭제됐다.
‘…한정 랭커가 아니라… 그냥 랭커잖아!’
전율이 등허리를 치고 올라갔다. 뒷목이 쭈뼛 서는 걸 느꼈다.
물론, 여전히 힘이나 속도 등 여러 부분에서 부족함이 보였지만, 이 모든 단점을 추월하는 장점이 있었다.
콰아아앙!
총성이 아닌 포성이라 여겨지는 저 말도 안 되는 파괴력을 보라.
퍼억! 퍽! 퍼어억….
폭죽처럼 터져 나가는 몬스터들의 모습이란, 침음을 불러오기에 충분했다.
뿐만 아니라 부족한 피지컬을 대처하듯, 말도 안 되는 연산 능력을 통해 주변 상황을 완벽히 통제하는 뇌지컬은 또 어떠한가.
몬스터들의 포위망이 굳혀진다 싶은 순간, 당황한 것인지 마루의 총구가 허공으로 떴다.
타아아앙….
간만에 사격 미스가 나는가 싶어 눈을 동그랗게 뜬 순간, 빗나간 총탄이 후방의 몬스터를 두드리더니, 놈의 보폭을 강제로 조절시키고, 그게 주변 동선을 흩트리는 결과로 이어졌다.
그로 인해 발생한 한 호흡 여유, 마루는 그 틈을 타 몸을 데구르르 구르며 포위망의 균열 사이로 빠져나갔다.
위기를 벗어나면 기회라고 했던가?
투웅… 퉁… 투우우웅….
묵직한 총성 속에서 몬스터들이 재차 무너져 내리는 게 보였다.
이쯤 되니 대원들도 섣불리 끼어들지 못한 채, 멀찍이서 간격을 유지한 채 구경만 해야 했다.
섣불리 끼어들었다가 마루에게 방해가 될까 우려한 것이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놀고 있는 건 아니었다.
거리를 둔 채 좀 더 멀찍이서 다가오는 몬스터들을 유인하며, 조금이라도 더 마루의 부담감을 줄이고자 노력하는 중이었다.
이는 클레어도 별반 다를 게 없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총성이 지닌 특유의 어그로 효과 때문일까?
탕… 타앙….
크워어어어어….
우워어어어….
마루에게 향하는 걸 막기가 어려웠다.
‘총성?’
그러다 문득 생각했다.
‘뭔가 더 있어!’
단순히 요란한 소리에 끌려간다고 보기엔, 놈들의 반응이 너무 격렬했다. 바로 코앞을 막아선 그녀보다 마루를 더 갈망하는 모습을 보이는 게. 특히 더 의심스러웠다.
마치 불을 찾아 날아드는 부나방처럼, 마루라는 명확한 목적지를 쫓아 움직이는 걸 느낀 것이다.
그리고 이는 그녀의 추측의 맞았다.
사자유희!
그 특별한 저승왕의 신물이 ‘죽음’을 바라는 ‘숨 쉬는 망자’들을 불러들이고 있었다.
살아 있지만 죽은 것이나 마찬가지인 저들에게 안식을 주고자, 저승의 향을 한껏 피워 내는 중이었고, 이를 쫓아 울부짖으며 달려오는 것이다.
소리가 아닌 향이었다.
그리고 마루는 이 모든 상황을 전해 받고 있기에, 최선을 다해서 한 방에 고통 없는 죽음을 주고자 노력 중이었다.
투웅… 퉁… 투우우웅….
사자유희를 통해 추가 강화된 쌍권총 GB―eye가 [이동요새]의 힘을 받아, 빛과 어둠이 소용돌이치는 혼돈의 탄환을 쏘아 보냈다.
타아아앙….
핏물이 눈물처럼 흘러내렸다.
* * *
A급 결계술사 리트로는 새삼 놀라야만 했다.
‘이 정도면 존슨보다 윗줄인 거 아니야?’
스킬을 발동해서 마루의 안개에 접촉하고 나자, 새삼 저 안개에 담긴 거력을 실감할 수 있었다.
이론보다는 감각으로 접근하는 게 스킬을 통한 결계술사들이었다. 그 때문에 더더욱 전율할 수밖에 없는 것이기도 했다.
전용 아티팩트까지 사용하고 있음에도 결국 안개를 흩어 버릴 수는 없었다.
그 대신 저 안개가 평범한 안개로 보이도록 만드는 것까지는 성공할 수 있었는데, 애초에 그의 결계를 기반으로 모방한 것이기에 가능한 부분이었다.
하지만 안개 너머 새롭게 깔려 있는 트랩퍼의 오리지널까진 영향을 미칠 수가 없었다.
―그 정도면 충분해.
다행히도 바이퍼의 무전이 날아들며 그의 어깨를 가볍게 만들어 줬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손을 뗀 건 아니었다.
‘스킬도 아닌 네츄럴 따위한테 밀린다고?’
마석 결계술까진 아니더라도, 비슷한 종류의 공부를 연구하는 이들이 있었는데, 결계술사들은 이를 네츄럴이라 부르고는 했다.
스킬로 발동하는 게 아니기에, 격의 차이를 두고자 의도적으로 붙인 명칭이었다.
자존심이 상해서라도 이렇게 물러날 수는 없었고, 그렇게 레메게톤 정예들의 시야를 밝혀 준 뒤로도 그의 해체 작업은 멈추지 않았다.
‘누가 이기나 해 보자!’
그렇게 한참 부딪치던 중, 문득 묘한 느낌을 받았다.
‘이거… 정말 네츄럴 맞아?’
황당하게도 저 안개 너머에서 ‘스킬’의 잔향을 느껴 버린 것인데, 그 때문인지 멀티 스킬이란 단어가 스쳐 갔지만, 이내 고개를 저으며 부정해 버렸다.
‘말도 안 돼!’
리트로는 그렇게 한참을 안개에 빠져 허우적댔다.
* * *
시야가 막혀 버린 탓일까?
바이퍼는 안개 속에서 잠시 발길이 붙잡혔지만, 자존심을 앞세운 리트로의 노력으로 다시금 걸음을 내디딜 수 있었다.
그러며 남몰래 무언가를 입에 넣고 삼키는데, 일종의 각성제였다.
금기에 손을 대며 초인적인 힘을 얻었지만, 이를 온전히 끌어내기 위해서는 약간의 조건이 필요한데, 좀 전에 삼킨 것이 바로 그 조건이었다.
‘마정석을 정제해서 만들어 내는 특수 도핑제….’
물론, 평소에도 초인급의 힘을 낼 수는 있지만, 아슬아슬하게 턱걸이 수준의 능력일 뿐, 클레어와 동수를 이뤘던 괴력까진 아니었다.
나머지는 잠재력으로서 심장에 잠들어 있는데, 이 ‘정제석’을 삼키고 나면 박동이 빨라지면서 괴력이 깨어나는 것이다.
과연, 오래지 않아 몸이 달아오르는 게 느껴졌다.
“푸후우우우우….”
숨결을 타고 흐르는 괴력의 잔재가 그를 흥분시켰다. 뿐만 아니라 새로운 지식도 머릿속에 떠오르며, 오금을 흔들어 놨다.
일단 상황이 상황인 만큼, 지식을 밀어 두고 고양감을 앞세웠다.
‘클레어!’
빨리 그녀와 부딪치고 싶었다. 박살 내고 짓이기고 싶어졌다. 처참히 울부짖게 만들고 싶은 욕망이 샘솟았다.
“총장님?”
잠재력이 깨어나는 감각에 잠시 멈춰 있던 탓일까?
레메게톤의 정예들이 다가오는데, 이에 바이퍼가 한 차례 손을 들어 그들을 진정시킨 뒤, 다시금 걸음을 내디뎠다.
그러며 한껏 기세를 발산시켰다.
화아아악….
넓고 진하게 퍼져 나가는 존재감이 안개를 타고 저 깊은 중심부까지 흘러 들어갔다.
소름이 끼칠 정도로 섬뜩한 기세였지만, 그 때문에 오히려 레메게톤의 정예들은 어깨에 힘이 잔뜩 들어가는 걸 느꼈다.
적이 아닌 아군의 것, 그것도 리더가 주는 공포심이란, 때론 더없이 든든한 자부심이 될 때가 있는 것이다.
* * *
클레어는 안개를 타고 넘어오는 불쾌한 감각을 느꼈다.
‘이건….’
최근에 부딪친 바 있는 기운이었다.
‘…바이퍼!’
레메게톤의 수장이 등판했음을 알았다.
작정하고 그 존재감을 흩뿌리고 있는 것인지, 대원들 역시 이를 느끼며 얼굴을 굳혔다.
랭커가 쏘아 내는 초인의 기세라는 것도 있지만, 그 이상으로 특별한 무언가가 본능적인 불쾌감을 자극하는 부분도 컸다.
때론 극심한 불쾌감은 두려움으로 번질 수도 있기에, 대원들은 안색을 탈색시키며 부르르 몸을 떨었다.
당연하게도 마루 역시 이를 느끼고 있었다.
그 때문일까?
화르르륵….
분노가 차올랐다.
기운 속에 담긴 불쾌감 때문이 아니었다.
‘이 새끼구나!’
그의 눈 앞에 펼쳐진 지옥도의 주최자가 바로 이 기운의 주인이었던 것이다.
단번에 알아봤다.
모를 수가 없었다.
워어어어….
크흐으으….
몬스터, 뮤턴트들의 울부짖음 속에서 강한 분노가 샘솟고 있던 것이다. 동시에 진한 공포심도 함께하는 걸 느꼈다.
이 기운의 주인을 원망하면서도 두려워하는 것이다.
사자유희는 이런 감정들을 고스란히 전달해 줬고, 그에 전염되듯 가슴 깊은 곳에서부터 뜨거운 열기가 솟구치는 걸 느껴야만 했다.
저승왕의 신물이기 때문일까?
우웅… 우우웅….
사자유희가 원혼들의 통곡을 들으며 함께 울부짖었고, 그와 동시에 무구들의 강화 효과가 한층 강해지는 게 느껴졌다.
차라락, 착!
쌍권총을 멋들어지게 돌린 그가 작게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오냐! 작살을 내 주마.”
그림자 속 사자유희가 넘실거리며 춤을 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