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로그인 더 헌터-269화 (269/325)

#20. 색소 침착.

#20. 색소 침착.

동시다발적으로 발생한 게이트 경보였다.

충분히 기현상이라 할 만한 사건이었고, 그 때문에 관련 소식은 빠르게 전파되며, 점차적으로 세계 이목을 한 나라로 집중시키고 있었다.

영국!

이토록 많은 게이트가 동시에 울리는 건 무슨 의미일까?

―고장 난 거 아니야?

―저 많은 경보기가?

―그래서 진실은 뭔데?

―몇몇 알람은 고장이 맞는 것 같다더라.

영국 현지에서 날아오는 소식도 제법 있었고, 개중에는 퀄리티 높은 정보들도 상당 부분 흘러나오는데, 실상은 어지러운 사태를 진정시키기 위해, 왕실 정보부 측에서 발 빠르게 움직이며, 관련한 정보 일부를 풀며 공유하고 있는 거였다.

―나머지는 진짜고?

―실제로 몬스터 뛰어다니는 사진 실시간으로 올라오더라.

―대피소가 꽉 차서 임시 보호소까지 만들고 있다던데.

―이게 뭔 일이래?

―작년부터 기현상이 너무 잦은 거 아니냐?

커뮤니티에서 이런저런 이야기가 오가면서 몇몇 종말론까지 언급되는 가운데, 뜻밖의 소식도 하나 날아들었다.

―버킹엄의 문이 열렸다!

―레알?

―궁 앞에 깃발 꽂힌 거 보니까. 사실인 듯.

―오오오오… 간만에 여왕님의 출정을 보는 건가.

―방송국들 뭐 하냐?

―BJ라도 출동해라. 여왕님 알현하게.

―오랜만에 클레어와 여왕님의 협공을 보는 건가.

―이반나까지 합세하면 미녀 3총사 완성인데. 아깝다.

―그나저나 버킹엄까지 오픈한 거 보니까. 이거 보통 상황이 아닌가 본데.

―여왕님 등판이니까.

새삼 상황의 심각성이 느껴지는 부분이었다.

* * *

트리니티 여왕을 필두로 한 근위대가 왕가의 정문을 나서는 순간이었다.

애애애애애앵….

마치 기다렸다는 듯 버킹엄 주변의 게이트 알람이 울리는가 싶더니, 몬스터들이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생각지도 못한 사태에 발목이 잡혀 버린 상황, 근위대가 일제히 트리니티 여왕을 바라보는 가운데, 그녀가 입술을 잘근 깨물었다.

“꺄아아아아악!”

“사람 살려!”

곳곳에서 들려오는 비명 소리가 상황의 심각성을 전해 줬다. 경보가 울리자마자 몬스터가 튀어나온 탓인데,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대외적으로 알려지진 않았지만, 던전과 게이트는 어느 정도 통제가 가능한 부분이 있었다.

격변과 환란의 초창기에야 마냥 당했다지만, 지금은 상당한 수준으로 컨트롤할 수 있는 게 바로 던전과 게이트였다.

그리고 이를 통해서 주요 거점들을 안전지대화 하는 비법도 상당 부분 발전하지 않았던가.

버킹엄이나 윈저성 등, 영국 왕실의 핵심 시설은 그런 식으로 던전지대의 일부로서 안전지대로 변이시킨 상태였다.

한데, 경보 알람이 울린다?

트리니티 여왕은 앞서 살폈던 보고서를 떠올렸다.

‘공항….’

거기서 발생한 게이트 알람 소식이 머릿속을 스쳐 가고, 불길한 예감이 한층 짙어지는 걸 느꼈다.

여기에서 알람이 울린다는 건, 그게 거짓이 아니라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특히, 이곳과 공항까진 하나의 대규모 던전지대를 공유하고 있는 실정이 아니던가. 그 방면의 통신이 끊긴 것까지 떠오르며 불안감이 깊어졌다.

급히 주변을 돌아봤다.

‘대단한 몬스터가 나온 건 아니었다.’

하위 등급의 D~E급 몬스터가 우르르 돌아다니고 있었는데, 문제라고 한다면 숫자가 상당하다는 점이었다.

몬스터에 적응한 시대라고는 해도, 저만한 숫자가 위협한다면 시민들은 두려움에 빠져, 제대로 대응도 하지 못한 채 위기를 맞을 수도 있었다.

그녀는 근위대를 돌아보며 외쳤다.

“시민들의 대피를 최우선으로 하되, 여력이 되는 한 빌어먹을 저 짐승 놈들을 싹 쓸어버려라!”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으라는 말이나 다름없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원들의 사기는 하늘을 찌를 듯 높이 치솟고 있었다.

그들의 선두에 여왕이 함께하기 때문이었다.

“우오오오오오!”

포효하듯 외침을 내지른 근위대가 일사불란하게 거리로 뛰어들고, 이를 한차례 지켜보던 트리니티 여왕이 한 방향을 바라보다 입술을 짓씹었다.

‘믿는다!’

저 멀리 공항에서 사건이 발생했다는 걸 직감했지만, 그녀는 그곳으로 갈 수가 없었다.

시민의 안전을 위해 집행의 검을 들어야 하기 때문이다.

엘리멘탈 소드!

왕실 수호검!

클레어 밀러라는 영국의 자존심이 그곳에 있기에, 또한 믿고 있기에, 이 상황을 정리하고 달려갈 때까지, 잘 버텨 낼 수 있으리라.

“왕실을 임시 대피소로 삼겠다!”

믿고 또 믿었다.

* * *

누군가 커뮤니티에 올린 이야기처럼 발 빠르게 움직이며 현장 상황을 중계하는 이들이 있었다.

BJ 혹은 스트리머로 불리는 인터넷 방송인들이었는데, 이들은 커뮤니티가 폭발하고 있는 지금 이 상황을 절호의 기회로 삼아 바쁘게 움직였다.

그리고 이를 통해서 더욱 리얼한 현장 상황이 전파되니 사람들의 놀람도 더욱 커질 수밖에 없었다.

―아니, 알람 울린 지 얼마나 됐다고, 벌써 저만큼 돌아다녀?

―BJ야 거기 난전이다. 모가지 간수 잘해라.

―토이 스파크. 저거 각성자야. 모름? 재능충이라서 대충 방송만 찍으면서 놀았는데도 C급임.

―토이스 Fuck!

―토이스 Fuck!

그렇게 몇몇 BJ들이 움직이는 와중에, 기이한 현상 하나가 사람들의 시야에 잡혔다.

―저긴 왜 저렇게 안개가 짙냐?

―원래 런던 날씨가 좀 그래.

―저기만?

―어라? 그러고 보니 좀 이상한데.

―저 방향이면… 공항 방면 아닌가?

―것보다 던전지대라 안전지대 아님?

말도 안 된다 헛소리다 하는 소리가 올라오던 것도 잠시였다.

―어? 버킹엄에도 경보 울렸다는데?

―다르타냥 사이트 들어가 봐. 현장 사진 올라온다.

―진짜네?

―저기 던전지대 아님?

―공항하고 공유 중일 텐데.

* * *

BDC 방송국의 파스톰 기자는 헬리콥터를 타고 급히 버킹엄 방향으로 향하며, 바쁘게 상황을 보고하는 중이었다.

“현재 런던 외곽 지역 곳곳에서 게이트 알람이 발생하며, 수많은 몬스터들이 거리를 어지럽히고 있는 가운데, 방금 막 버킹엄의 정문이 열렸다는 소식이 들어왔습니다.”

다른 게이트 알람들을 쫓아 이리저리 움직이던 중에 들려온 소식, 이에 급히 헬기 방향을 돌리며 버킹엄으로 향하는 중이었다.

그러다가 추가로 날아든 소식이 그를 더욱 다급하게 만들었다.

―버킹엄 게이트 경보!

‘맙소사!’

늦지 않게 도착해서 출정식을 찍어야 한다는 각오로 틈틈이 조종사를 재촉하기도 하는데, 그럴 수밖에 없는 게 BDC의 본사에서 버킹엄까지의 거리가 생각보다 가깝기 때문이었다.

자칫, 헬기를 띄우고도 늦을 수 있었다. 라이벌이라 할 만한 다른 동료들이 먼저 도착하는 걸 보고만 있을 수는 없었다.

그렇게 외곽을 돌던 헬기가 다급히 런던 중심이라 할 수 있는 버킹엄 방향으로 날아가는데, 그러다가 뜻밖의 현상을 발견해 버렸다.

“…저건 뭐야?”

눈을 동그랗게 뜨며 무언가를 주시하고 있노라니, 카메라맨도 이내 그 방향으로 시선을 돌렸고, 놀라운 광경을 발견할 수 있었다.

‘안개?’

날씨가 변덕스러운 영국에서 그게 이상할 건 없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선을 잡아끄는 건, 마치 경계를 짓듯이 일정 구역에만 안개가 맴돌고 있단 점이었다.

집중하고 살피니 이는 더욱 확실해졌다.

안개가 마치 일정 구역을 넘지 않듯이 꿀렁이며 경계를 타고 흐르는 걸 확인할 수 있었다.

특히, 파스톰은 BDC의 각성 기자 중 한 명이다 보니, 남다른 시력으로 이를 자세히 관찰할 수 있었는데, 거기다 더해 청력 역시 일반적인 기준을 넘어서기 때문일까?

타아아앙….

‘총소리?’

저 안에서 들려선 안 될 소리가 울려 퍼진 것이다.

파스톰의 기자로서의 본능과 각성자로서의 감각이 절묘하게 맞물리며, 안개 너머를 떠올리게 만들었다.

‘그러고 보니….’

상부에서 내려온 보고서 중, 공항 방면에서도 알람이 울렸다는 이야기가 있었던 게 떠올랐다.

갈등이 이어졌다.

여왕 출정식과 게이트 알람이라는 흔치 않은 상황이 맞물린 만큼, 버킹엄 방향이 화제성 하나는 확실했다.

하지만 BDC 본사의 위치나 라이벌 동료들의 행보 등을 생각해 봤을 때, 뒷북만 칠 확률이 높았다.

비록 거리가 있다고는 하나, 이곳도 버킹엄과 같은 영역권에 있는 던전지대였다.

여기서 발생한 사건을 잘 편집한다면, 차후에라도 그럴싸한 기삿거리가 나오지 않겠는가.

게다가 각성 기자 특권으로 헬기까지 돌리고 있으며, 틈틈이 큐사인이 떨어질 때마다 생방 라인으로 넘어가기도 했다.

‘그렇다면 차라리….’

파스톰은 조종석을 향해 외쳤다.

“공항! 공항 방면으로!”

그리고 오래지 않아 전율해야만 했다.

‘통신이… 끊겼어?’

기자로서의 본능이 외쳐 대고 있었다.

‘특종이다!’

입꼬리가 광대를 찍었다.

* * *

그가 오고 있음을 느꼈다.

‘바이퍼!’

클레어는 호흡을 가다듬으며 몸 상태를 점검했다. 그의 기세가 느껴지던 순간부터, 그는 전장에서 한 걸음 물러난 채 마지막 정비에만 전념했다.

그의 공백과 함께 일부 어그로가 끌리던 몬스터들이 우르르 마루에게 달려가고, 그 동선을 흔들기 위해 대원들의 한층 바쁘게 뛰어야 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큰 격전을 앞두고 있기 때문이었다.

사실, 어느 정도는 짐작하고 있던 만남이었지만, 그래도 일말의 여지는 있을 거라 여겼다.

‘이 사태를 만들어 놓고 기어이 등판을 하다니.’

바이퍼의 등장은 레메게톤이 범인이라는 걸 시인하는 꼴이나 마찬가지였기에, 자칫 전 세계의 공적이 될 수도 있는 터라, 최후의 경계선은 넘지 않으리라 여겼다.

하지만 결국 전면에 나서 버린 것이다.

‘뮤턴트가 등장할 때부터 불안 불안 하더니.’

사실, 그 시점에서 선을 넘은 거나 다름없기는 했다. 키메라까진 어찌어찌 납득하고 넘어가지만, 뮤턴트부턴 이면의 일원들도 눈살을 찌푸리는 영역이기 때문이었다.

그 둘의 차이가 무엇이냐고 물을지도 모르지만, 중심이 사람에 있느냐 아니냐의 포인트가 달랐다.

키메라는 몬스터가 중심이라면, 뮤턴트는 사람을 실험의 핵심 재료로 사용하는 탓에, 거부감의 기본 경계선이 다른 것이다.

이를 건드린다?

제아무리 범법자의 이면 세계며 그곳의 정점에 있는 존재며 단체라지만, 그래도 비난을 피하기는 어려운 것이다.

‘이렇게까지 할 줄이야… 후우….’

한숨이 절로 나왔다.

곧 다가올 격전을 대비하며 전장에서 멀어진 까닭일까?

조금 전과는 다른 시선으로, 한층 선명히 상황을 살필 수 있었고, 덕분에 놓치고 있던 부분을 발견할 수도 있었다.

타타타탕….

이는 당연하게도 현 상황의 중심지에 있는 마루에 관한 거였다.

기묘한 예감이라고 해야 할까?

‘저 몸놀림, 눈썰미, 간격 조절, 타이밍 체크, 포지션 전환…….’

하나부터 열까지 범상치 않은 부분들이 눈에 띄기 시작한 것인데, 과연 저걸 뇌지컬이라는 단어 하나만으로 정의할 수 있는 걸까?

‘…정말, B급 A형이 맞나?’

의문이 의심으로 번지는 건 순식간이었다.

쿠르르르….

하나 이를 집요하게 파고들 수는 없었다.

대기가 떨며 두려움에 몸부림을 치는 게 느껴졌다. 그와 동시에 안개가 도망치듯 사방으로 퍼져 나가는 게 보였다.

‘왔구나!’

저 멀리 일단의 무리가 다가들고 있었다.

그들 최전방에 서 있는 사내.

바이퍼!

이 난리를 일으킨 주인공이 등장한 것이다.

“푸후우우우우….”

마지막으로 호흡을 가다듬은 뒤, 그녀가 전면으로 나설 때였다.

투우우웅!

거대한 총성이 울리고,

퍼억!

바이퍼의 고개가 휙 하니 돌아갔다.

“…….”

사고가 정지해 버리는 순간이었다.

바이퍼도 다르지 않았다.

누군가 그를 저격한다는 생각에 포스를 일으켜서 가볍게 방어하려 했다.

기껏해야 총화기가 아니던가.

하지만 이게 웬일?

주륵….

머리를 타고 흐르는 뜨끈한 액체가 느껴졌다.

‘…피?’

좀 전 총격에 의해 부상을 입은 것이다.

‘으드드득….’

분노가 차올랐다.

“어떤 놈이….”

이를 폭발시키려던 순간이었다.

“나다 이 새끼야!”

욕설과 함께 마루가 앞으로 나서고, 이에 바이퍼가 이글거리는 눈으로 그를 노려보는데, 마루가 사납게 혓바닥을 놀렸다.

“어쭈? 눈깔에 색소가 침착하냐? 아가리 뺨따귀를 확 찢어 불라.”

현란한 폭언의 향연에, 2차 벙찜이 이어졌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