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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사형!

#21. 사형!

영국에서 발생한 사건이지만, 전 세계가 주목하고 있었고, 그만큼 많은 헌터들이 귀를 기울이는 중이었다.

혜성 길드의 이선희와 김연희 역시 마찬가지였다.

“아무래도 이거… 레메게톤이 벌인 일 같은데. 어때?”

진짜로 기현상이라 생각할 수도 있지만, 그렇다 치기에는 시기도 그렇고, 몇몇 방송에서 보이는 몬스터들의 등장 타이밍이나 동선 등, 어느 하나 정상적인 게 없었다.

‘굳이 숨길 생각이 없다는 건가.’

이선희는 그리 생각하며 눈살을 찌푸리는데, 김연희의 물음이 이어졌다.

“클레어가 딱 도착했을 타이밍이지 않나?”

“으음….”

신음성이 절로 새 나왔다. 클레어와 동행한 인물을 떠올린 까닭이었다.

“설마, 예비 1팀장을 노린 건가?”

마루를 언급하는 거였고, 이선희는 선뜻 대답하기가 어려웠다. 너무 과하다 싶으면서도, 선뜻 부정할 수도 없었던 탓인데, 그만큼 최근 마루의 존재감이 커진 까닭이었다.

클레어와 마루가 도착한 시간에 맞춰서 저런 사달이 난 게, 여러모로 의심스러운 건 사실이었다.

“어쩌지?”

김연희의 물음에 이선희가 말했다.

“당장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없어.”

“그렇긴 한데… 손 놓고 있을 수만은 없잖아.”

“일단 우리와 연결된 영국 측 인사들한테 연락 좀 돌려.”

“그리고?”

“…기다려야지.”

앞서도 말했지만, 그들도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방송을 통해 전파되는 내용만 봐도, 이미 영국 측에서 할 수 있는 모든 조치를 취하는 중이었다.

게다가 멀고 먼 유럽의 일이었다.

할 수 있는 거라고는 두 손 모아 기도하는 정도였다.

하지만 어째서일까?

‘크게 걱정이 되진 않는단 말이야.’

기껏해야 B급 헌터일 뿐임에도 불구하고, 묘하게 믿음이 갔다.

문득, 연인에게 들었던 말이 떠올랐다.

[그 녀석은 존슨이 형제 해 달라고 쫓아다니는 놈이야.]

이선의 말을 상기하며 이선희가 말했다.

“아무 일 없을 거야. 믿고 기다리자. 오히려 저 사건을 해결해 버릴지도 모르지.”

분위기 전환을 위해 농담처럼 던진 소리였는데, 기이하게도 마루는 정말 그 타이밍에 태풍의 눈 속에 서 있었다.

* * *

잠시 사고가 멍해지는 순간이었다.

‘아가리? 뺨? 찢…?’

이 얼마 만에 듣는 폭언이란 말인가.

바이퍼는 키홀의 수장이며 이제는 레메게톤이라는 연합 단체의 대표자로 추대된 인물이었다.

감히 그 앞에서 입을 함부로 놀리는 이가 있을 수 없었다. 어지간한 경우가 아니면 전면에 나서지 않는 점 역시, 저런 욕설과 멀어지게 한 것도 있었다.

최근 들어서야 외부 활동이 잦아진 것이지, 이전에는 동생이자 랭커인 제퍼드를 앞세워서 이런저런 일들을 처리하지 않았던가.

어쨌든 그 때문에 잠시 정신줄을 놔야만 했다. 너무 오랜만이라 신선함에 사고가 정지하는 느낌이랄까?

그가 이처럼 간만의 폭언에 넋을 놓고 있다면, 반대로 마루는 간만에 강한 격분을 내비치고 있는 상황이었다.

저승왕의 신물인 사자유희를 통해, 저 많은 뮤턴트의 죽음 속에서 그들의 울분과 원한을 전해 받은 까닭이었다.

복수를 원하는 외침을 들었다.

물론, 그게 아니더라도 이토록 많은 사람을, 인간을 마치 물건처럼 실험체로 사용하고 내던진다는 부분에서, 적잖은 분노가 몰아치고 있기도 했다.

신랄한 육두문자를 쏟아 내는 건, 그 역시 오랜만인 듯싶었다.

“위험합니다! 뒤로 물러나십시오.”

정신을 차린 클레어가 급히 마루에게 붙으며 입을 여는데, 마루는 오히려 그녀를 뒤로 밀어냈다.

“몸 상태가 정상이 아닌 거 알고 있습니다.”

클레어의 표정이 살짝 굳어졌다. 나름 잘 숨긴다고 숨겼건만, 설마 그게 발각되었을 줄은 몰랐던 것이다.

‘보통 눈썰미가 아니야.’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뒤로 빠질 순 없었다.

“저자가 누군지 알면….”

“압니다.”

마루가 불쑥 끼어들며 말했다.

“키홀 클랜의 수장 바이퍼겠죠.”

일순간 말문이 턱 막혀 버렸다. 설마 상대의 정체를 알고서도 나섰을 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한 까닭이었다.

“생각 없이 나선 거 아닙니다.”

마루가 침착한 눈빛과 차분한 음성으로 이야기를 이었다.

“저 업계 밑바닥에서만 15년을 버텨 온 놈입니다.”

생각 없는 헌터는 살아남을 수 없는 곳, 그게 바로 15년간 그가 버텨 온 진창이었다.

“이미 견적도 다 뽑아 놨으니까. 지금은 제게 맡겨 주세요.”

그러면서 슬쩍 뮤턴트들을 바라보며 말했다.

“저보단 저쪽을 좀 더 신경 써 주십시오.”

기이하게도 바이퍼의 등장 이후, 뮤턴트들의 움직임이 멈춘 상태였는데, 언뜻 그의 눈치를 보고 있는 것 같단 생각이 드는 건 착각일까?

덕분에 지금과 같은 대화 시간도 나오는 거였다.

그 눈빛과 태도 분위기에 압도당한 듯, 클레어의 고개가 저도 모르게 끄덕여지는 가운데, 뒤늦게 자신의 행동을 깨닫고는 깜짝 놀라야만 했다.

‘내가 무슨 짓을….’

뮤턴트들을 상대로 놀라운 활약을 보여 줬다고는 하나, 마루는 결국 B급 헌터일 뿐이지 않던가.

하지만 바이퍼는 무려 랭커라고 불리는 자였다.

무려 영국의 자존심이며 유럽의 간판 중 하나라 불리는, 클레어 본인과도 동수를 이룰 정도의 상대가 아니던가.

다급히 말을 바꾸며 반대하려는 찰나, 재차 마루의 눈빛과 마주쳤고, 이내 마른침과 함께 반대 의견을 삼켜 버려야만 했다.

‘…존슨?’

과거, 그를 처음 만났던 때가 떠오른 것이다.

이반나의 꽁무니를 쫓아 유럽으로 넘어왔었던 그와 만났던 그 날, 친구에게 질투를 느껴 버렸던 그 아침, 처음으로 안도감을 느꼈던 그 순간, 이야기 속 영웅과도 같았던 존슨의 모습이 잔상처럼 스쳐 갔다.

기이하게도 마루의 동공 위로 존슨의 모습이 자꾸 투영되며, 묘한 기대감을 불러일으키는 걸 느꼈다.

그 때문일까?

결국, 그를 잡지 못했다.

성큼성큼 걸어가는 마루의 뒷모습을 바라보던 것도 잠시였다.

크워어어어어….

아우우우~!

잠시 움츠려 있던 몬스터들이 다시금 포효하며 기지개를 켜기 시작한 것이다.

바이퍼를 기다리며 정비를 했던 만큼, 만전의 자세로 그들을 향해 전력으로 달려들 수 있었다.

* * *

정신을 차린 지는 꽤 됐다.

오랜만에 듣는 폭언 욕설에 넋 놓던 것도 잠시였고, 이후로는 오히려 신선함에 헛웃음이 나와 버리며, 들끓던 열기를 진정시켰다.

그 위를 채운 건 시리도록 서늘한 살기였다.

이를 곱씹으며 가만히 상황을 지켜보는데, 이어지는 흐름이 황당하기 짝이 없었다.

‘허… 제깟 놈이 나를?’

트랩퍼 사건으로 인해 세계적인 유명 인사가 된 덕분인지, 한눈에 마루의 정체를 알아볼 수 있었다.

그 때문에 어이가 없을 지경이었다.

‘기껏해야 B급 주제에, 뭘 믿고?’

이곳은 트랩퍼의 유명세를 자랑하는 레어도 아니지 않던가.

바이퍼의 시선이 곳곳에 너부러진 뮤턴트들의 시체로 향했다. 누가 봐도 선명한 총격의 흔적들이 눈에 띄었다.

슬쩍 주변의 안개로도 시선이 갔다.

이 역시 마루의 재주라는 걸 유추할 수 있었다.

‘확실히 뭔가 있긴 한 모양인데….’

당장 그의 이마로 흘러내리는 핏물도 증거가 될 터였다. 무려 랭커의 포스를 뚫고 들어온 총격이었다.

장비부터 시작해서 결계를 치는 남다른 재주까지, 확실히 보통 헌터들과는 궤를 달리하는 무언가가 있는 것이다.

‘…그래 봤자 B급!’

이마를 타고 흐르는 뜨거운 핏물만큼, 동공에 어린 한기가 짙어져 가는 가운데, 기어이 클레어가 발을 빼는 게 보였다.

‘제정신인가?’

바이퍼가 가볍게 손가락을 튕겼다.

따악!

그 순간 뒤에서 대기하던 요원이 튀어 나갔다.

투우우웅!

그와 동시에 터진 총격에 요원이 튕겨 나갔다.

바이퍼의 눈가에 이채가 스쳤다.

‘한 방에?’

레메게톤의 미래를 위한 정예들이었다. 전부 A급으로 이뤄진 스페셜 부대인 것이다. 당연하게도 경력 역시 탄탄히 쌓은 베테랑들이기도 했다.

한데, 그 같은 실력자가 한 방에 나가떨어진 것이다.

부르르르… 꿈틀… 꿈틀… 투욱…….

언뜻 호흡은 이어지고 있는 것 같았지만, 하얗게 뒤집힌 눈깔로 봐선, 아무래도 아웃인 듯싶었다.

‘허… 이것 봐라?’

마루가 보이는 것 이상의 실력자라는 건 확실히 알 수 있었다.

문득, 이 안개 속으로 들어온 뒤 묘하게 뒤따르던 불쾌감을 떠올렸다. 이는 정제석을 먹고 괴력을 일깨운 뒤 더욱 강해졌는데, 게거품을 무는 요원의 모습과 묘한 감각이 버무려지며, 경시하는 마음을 걷어 내게 만들었다.

등 뒤로 요원들의 동요가 느껴졌다.

여러 단체에서 골라 온 놈들이다 보니, 아직까진 동료 의식이 낮은 터라, 분노보단 흔들림이 더 큰 것이다.

눈살을 찌푸리고 있을 때였다.

“야! 색소 침착!”

문득, 마루가 그를 향해 외쳤다.

“뮤턴트들 네 짓거리지?”

그 말에 바이퍼의 표정이 굳어졌다. 그도 그럴 게 뮤턴트 관련해서 아는 이들은 극히 소수이기 때문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요원들이 재차 동요하는 게 느껴졌다. 이들 역시 뮤턴트에 관해서는 모르고 있던 것이다.

기껏해야 키메라 정도로만 정보가 풀린 상태였다.

저들 뮤턴트를 움직일 때도, 일종의 정신 지배와 최면을 통해 컨트롤했을 뿐만 아니라, 한번 변이한 뮤턴트는 괴수의 모습 그대로 최후를 맞는 터라, 들킬 이유도 없던 것이다.

개별적인 조사를 한다고 할지라도 실험의 흔적을 통해 키메라 정도의 결과만 나올 터였다.

그 때문에 여기선 부정해야 옳았다.

“무슨 개소리를 하는 건지 모르겠군.”

그러며 성큼 걸음을 옮겼다.

수하들이 아닌 그가 직접 나서서 처리해야 한다는 판단이 선 것이다. 갑자기 나서는 것이 의심을 더욱 키울 수 있지만, 명분은 확실했다.

“핏값은 네놈 목숨으로 치러야겠군.”

이마를 닦아 시뻘건 핏물을 털어 낸 그가 한껏 기세를 피워 올릴 때였다.

화아아악….

“어엇!”

“이건 또 뭐야?”

“안개가 사라진다?”

사방 가득 펼쳐져 있던 운무가 걷히는 게 보였다.

좀 더 정확히는 한 방향으로 몰려들고 있다고 보는 게 옳았다.

이에 바이퍼의 두 눈이 커졌다.

그 역시 이 기현상을 보고 있었기 때문인데, 놀랍게도 저 방대한 안개가 그를 향해 몰려들고 있던 것이다.

안개에서 불쾌감을 느꼈던 만큼, 그것이 한데 뭉치는 것에서 한층 강렬한 거부감을 느꼈다.

느낌도 좋지 않았다.

‘쯧! 이까짓 거.’

화르륵….

마치 불길처럼 유형화된 포스가 바이퍼의 전신을 타고 오르더니 사방으로 쭈욱 퍼져 나가기 시작했다.

그러며 안개를 흩어 버리려는 듯 어지러이 파동을 일으키는데, 이게 웬일?

마치 그를 중심으로 소용돌이라도 치는 것처럼, 더욱 빠른 속도로 몰려드는 것이 아닌가,

바이퍼의 시선이 마루에게로 향했다.

안개를 흩어 버리는 게 생각보다 쉽지 않고 또 번거롭다는 생각에, 마루를 처리해 버리기로 한 것이다.

그의 손짓에 따라 유형화된 포스가 마루를 향해 쭈욱 뻗어 나갔다.

파아아앙….

그리고 이내 터져 나갔다.

바이퍼가 눈살을 찌푸리며 전방을 바라봤다. 어느새 형성된 안개의 장막이 그의 포스를 막아 낸 것이다.

‘결계?’

불쾌감이 불길함이 되어 압박감으로 밀려왔다.

화르르르르륵….

한층 더 거세게 포스를 끌어올린 바이퍼가 그 신형을 쏘아 보냈다. 그저 손짓 정도가 아니라 온몸으로, 전력을 다해 마루를 박살 내려는 의도였다.

콰아아아앙….

그리고 튕겨져 나왔다.

“크윽….”

가까스로 신형을 바로 세운 바이퍼가 믿기지 않는다는 얼굴로 전방을 바라보니, 어느새 더욱 좁혀진 안개의 장막이 그를 향해 밀려들고 있는 게 보였다.

오직 그 한 명만을 노린다는 듯, 다른 레메게톤의 요원들은 그저 스치듯 지나치며, 꾸준히 바이퍼를 향해 응축되고 있었다.

마루가 손을 들어 주먹을 쥐는 포즈를 취하니, 그에 따라서 안개의 장막이 더욱 빠른 속도로 밀려들고 달려들었다.

쿠쿠쿠쿠쿠쿠….

천둥성이 치듯 극도로 응축된 안개 속에서 거대한 울부짖음이 들려왔다.

고막이 파열될 것처럼 강렬한 굉음이었다. 이에 눈살을 찌푸리며 귀를 막는데, 기이하게도 그 사이로 마루의 나직한 음성이 파고들었다.

“원념들의 통곡이 들리냐?”

그건 귀나 고막이 아닌, 마치 뇌리를 향해 두드리는 것 같은 목소리였다.

“네 죄악의 외침이다.”

“크으으윽….”

제천대성의 금고아에 짓눌리는 기분이 이러할까?

마루가 말을 할 때마다 뇌를 바늘로 찌르는 것 같은 통증이 밀려들었다. 그 말도 안 되는 고통에 바이퍼가 시뻘겋게 달궈진 눈빛으로 마루를 노려봤다.

이를 마주하며, 마치 저승의 심판관처럼, 마루가 판결을 내렸다.

“사형!”

주먹을 움켜쥐고, 장막이 바이퍼를 덮쳤다.

퍼퍼퍼퍽!

시뻘건 핏빛 안개가 피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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