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로그인 더 헌터-271화 (271/325)

#22. 강림.

#22. 강림.

충격적인 광경이었다.

‘맙소사!’

‘바이퍼가….’

‘…죽었어?’

클레어와 대원들만이 아니라 레메게톤의 정예 요원들 역시 마찬가지로 놀란 얼굴이 돼선 핏빛 안개를 바라봤다.

특히, 다른 무엇보다 놀라운 건 상황 자체에 있었다.

‘B급 헌터가? S급의 랭커를?’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다.

기존 상식을 아득히 깨고 부수고 박살 내 버리며, 일시 지간 정신적 공황 상태가 발생할 만큼, 말도 안 되는 불가해한 기현상을 마주한 느낌이었다.

놀랍게도 이 순간만큼은 뮤턴트 역시 광분을 멈추며 조용히 침묵하고 있었다.

그 때문에 더더욱 깊은 정적이 내려앉는 가운데, 더더욱 믿기 어려운 현상이 발생하기 시작했다.

‘헛! 이건 또 뭐야?’

‘기운이….’

‘포스가?’

핏빛 안개 너머로 픽 하니 꺼져 버렸던 바이퍼의 기운이 다시금 뜨겁게 타오르기 시작한 것이다.

그러더니 검은 그림자가 일렁이며 그 형상을 일으키는 것이 아닌가.

이때만큼은 마루도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있었다.

우우우웅….

발밑 그림자 속, 사자유희가 불쾌감을 드러냈다.

그 이유를 모르지 않았다.

‘죽었는데.’

한데, 고개를 들고 있다?

저승왕의 신물이기에 이 기현상에 대해 분노하는 것이다.

마루는 분명 바이퍼의 죽음을 전해 받았다. 이는 사자유희를 통해 아주 선명히 전달받은 것으로, 그로 인해 무수히 많은 원념들이 해방되는 것 역시 느꼈다.

감사 인사도 전해 받았다.

언어가 아닌 감각을 통해 전해지던 상쾌한 바람이 있었고, 그 순간 포스가 충만해지는 느꼈는데, 그게 바로 저들이 보내온 인사며 보은이었다.

사실, 조금 전 바이퍼를 단숨에 사로잡고 압박하며 터트려 죽인 건, 바로 그 원념들의 도움이 있기에 가능한 일이기도 했다.

그 본연의 모습이 어떠했건, 지금 저들은 레이드 클래스급으로 분류되는 고위종의 일면을 지닌 채 죽음에 이르렀다.

특히, 사망 직후의 원념이기에 더더욱 그 영향력도 남달랐고, 사자유희는 이를 아주 충실히 활용할 줄 아는 신물이었다.

순수하게 그의 결계술만 놓고선, 아직 그 정도 이적을 행하기는 어려웠다.

랭커를 압사시켜 죽인다?

이는 결계술사의 1인자로 불리는 WHA의 4대 회장 크라운도 어려운 일일 터였다.

그 때문에 전장의 모든 이들이 정신줄을 날려 버린 것이기도 했다. 그만큼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물론, 뮤턴트는 조금 다른 이유로 정지한 거였다.

‘분명히 해방됐었건만, 이게 대체… 무슨?’

저 원념들의 해방과는 또 다른 의미를 지닌 것으로, 바이퍼와 일종의 종속 관계에 있던 게, 그의 죽음으로 끊어진 것이다.

바이퍼의 등장에 잠시 움츠러들었던 건 그런 흔적의 일부였다.

어쨌든 그 같은 연결 고리가 바이퍼의 죽음으로 끊기며 해방됐고, 덕분에 뮤턴트들은 하나같이 이지를 회복하며 전투를 중단하게 된 것이다.

당장 눈빛만 봐도 알 수 있었다.

광기로 붉게 물들며 뒤집혀 있던 동공이 제자리를 찾은 게 보였다.

이런 식으로 여러 방면에 걸쳐 바이퍼의 죽음을 확인했다.

‘확실히 죽였는데.’

핏빛 안개 너머로 비쳐 드는 그림자의 정체는 뭐란 말인가.

오래지 않아 그 답이 드러났다.

“푸후우우우우….”

바이퍼가 맞았다.

‘정말로 살아 있었다고?’

안개를 걷어 내며 걸어 나오는 바이퍼의 모습이 보였다.

믿기 어려운 상황 속에서 마루마저 정신줄을 날려 보내고 있노라니, 바이퍼가 빙긋이 웃으며 입을 열었다.

“호… 정말로 멋진 공기군! 끈적한 느낌도 없고.”

기이하게도 그 미소를 보는 순간 강렬한 불쾌감을 느꼈다.

‘뭐지? 뭔가? 뭘까?’

어디선가 이와 비슷한 감각을 맛본 적이 있었다. 남다른 스탯으로 발달된 두뇌가 열심히 일을 했고, 흐릿하니 침잠해 있던 기억을 수면 위로 끌어 올렸다.

‘사일론?’

산타카타리나 마수 지대의 균열 방어전에서 봤던 그 대마족의 미소가 겹쳐 보인 것이다.

우웅… 웅… 우우우웅….

발아래 사자유희의 분노가 전해져 왔다.

좀 전의 기묘한 감각, 그리고 발끝을 타고 오르는 사자유희의 격정적인 반응까지, 마루는 눈앞의 사태에 대한 답을 얻어 냈다.

그래서 당황해 버렸다.

‘말도 안 돼!’

황당한 결론이기 때문이었다.

우웅… 우우웅….

하지만 사자유희가 그의 생각을 읽고 즉각 반응해 왔고, 그 때문에 고개를 끄덕여야만 했다.

“스으으읍… 푸후우우우….”

열심히 들숨 날숨을 하고 있는 저 사내, 저자는 바이퍼가 아니었다.

‘마족!’

너무나도 어처구니없는 결론이었지만, 그 외에는 떠오르는 게 없었다.

그가 이런 생각까지 닿은 건, 사일론을 떠올리자 자연스레 연상되었던 존슨의 이야기가 도움이 됐다.

강림식!

저승왕의 신물인 사자유희가 죽음을 놓쳤을 리가 없었다. 그렇기 때문에 바이퍼의 죽음 속에서, 저 너머에 있을 ‘무언가’를 불러들였을 거란 게 그의 결론이었다.

바이퍼가 갑작스레 랭커로 데뷔한 것 역시, 이런 금단의 힘이 작용했을 거라 여겼다.

‘기왕이면 사일론에게 직접 확인했으면 좋겠는데.’

안타깝게도 그럴 수는 없었다.

하나둘 생각이 정리되며 진정되는 사이, 바이퍼의 탈을 쓴 무언가도 새로운 세상에 적응을 마친 것일까?

화르르륵….

돌연 불꽃 같은 포스를 피워 내며 그 기세를 한껏 드러내는 게 보였다.

그 선명한 존재감은 멍청하니 넋 놓고 있던 많은 이들의 정신을 불러들이는 효과를 낳았다.

‘그럼 그렇지. 바이퍼 님이 누군데.’

‘착각, 착시였어. 잘못 본 거야.’

‘결계가 일으킨 환상이겠지?’

‘하마터면 속을 뻔했네.’

갑자기 수장을 잃어버렸다는 생각에 혼이 빠져 버렸던 레메게톤의 정예들, 그들은 한껏 환해진 얼굴로 바이퍼를 바라봤다.

그리고 이와 반대로 꺼멓게 죽은 얼굴로 바이퍼를 보는 이들이 있었으니, 클레어와 호위대원들이었다.

‘분명 죽었는데.’

‘불사신도 아니고.’

‘죽여도 죽질 않다니.’

‘바퀴벌레 같은 놈.’

죽은 줄 알았던 바이퍼가 한층 강대한 존재감을 뿜어내는 가운데, 레메게톤의 정예들까지 기세가 등등해졌고, 거기에 더해 여전히 많은 뮤턴트가 그들 뒤를 노리고 있는 실정이었다.

‘망했네!’

‘유서라도 쓰고 올걸….’

‘어머니, 여보, 아가….’

그야말로 최악의 상황이란 생각과 함께, 무거운 절망감이 어깨를 짓누르는데, 생각지도 못한 반전이 발생했다.

크르르르르르….

아우우우우우~!

좀 전까지만 해도 그들을 향해 이빨을 드러내고 발톱을 휘두르던 뮤턴트들이건만, 갑자기 그들 전면에 서서 바이퍼와 레메게톤을 향해 사납게 울부짖고 있던 것이다.

‘아니, 이건 또 뭐야?’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 건데?’

‘저놈들이 왜 저래?’

이 상황을 유일하게 이해하는 사람은 마루 한 명뿐이었다.

‘아니, 저놈도 알려나?’

마루는 바이퍼를 보며 그리 생각하다가 이내 웃어 버렸다.

‘하기야. 저건 사람이 아니지.’

껍데기는 분명 동족의 탈을 쓰고 있지만, 내용물은 전혀 다른 괴물이 알을 까고 있었다.

한차례 놈을 노려본 뒤,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는 뮤턴트들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바이퍼의 모습을 하고 있지만, 놈은 죽었다. 그로 인해 자유를 찾은 뮤턴트들은 각자 자유를 얻고 ‘의지’를 허락받았다.

그게 이들을 선택하게 만든 것이다.

껍데기일 뿐이라지만, 분명 저건 바이퍼의 형상을 하고 있었고, 그게 뮤턴트들로 하여금 ‘복수’를 부르짖게 만들었다.

특히, 그들은 자신들의 운명을 잘 알았다.

이대로 짐승의 형상을 한 채, 끝없이 싸움을 갈구하다 모든 생명력을 쏟아부으며 죽어 나가는 것이다.

원래대로 돌아갈 방법은 없었다.

그 때문에 원한을 푸는 방식으로 모든 걸 토해 내고자 했고, 그게 바로 바이퍼였고 레메게톤이었다.

게다가 가장 중요한 것!

‘이 인간은 우리의 은인이다.’

‘목숨을 바칠 만한 가치가 있다.’

‘마지막은 후회 없이 가자!’

생사의 갈림길에 머물기 때문일까?

사자유희가 그들의 의지를 손쉽게 읽으며 전해 왔고, 이에 마루는 저들이 좀 더 확실히 분노할 수 있는 명분을 던져 줬다.

“네가 본체구나?”

의아한 듯 바라보는 바이퍼.

“괴상망측한 지식으로 사람을 괴물로 만든 것, 그거 네놈 짓이지?”

그 순간 뮤턴트들의 눈가에 경련이 일었다.

본의 아니게 짐승이 되어 버렸지만, 그 때문에 남다른 감각을 일깨울 수 있었고, 그로 인해 눈앞의 존재가 바이퍼가 아님을 알았다.

그래서 복수심을 불태우되, 일말의 찜찜함 혹은 아쉬움이 남아 있던 건 사실이었다.

하나 마루의 이야기가 진실이라면?

쿠쿠쿠쿠쿠쿠….

뮤턴트들의 기세가 사납게 폭발하며 서로 얽히고설키기 시작하더니, 기묘한 상승 기류를 만들어 내며 주변 일대에 묘한 운무를 만들어 냈다.

결계와 무관하게, 그저 순수한 분노의 열기였다.

그들 모습에 바이퍼는 눈살을 찌푸려야만 했는데, 이는 지금의 모든 상황이 그 역시 예상 못 한 것이기 때문이었다.

‘쯧! 너무 급하게 넘어왔어.’

마루가 예상하고 뮤턴트가 예감했듯, 그는 바이퍼의 껍데기를 쓰고 있었지만, 그 내면은 전혀 다른 존재였다.

데자르!

바로 저 마계 북쪽에서 새로운 권세를 자랑하는 종족, 도플갱어의 일족의 대간부였다.

그뿐만이 아니라 바이퍼에게 금단의 술법으로 힘과 지식을 전해 준 존재이기도 했는데, 이를 빌미로 야금야금 바이퍼의 정신과 육체 그리고 영혼에 그 지배력을 늘려 가던 중이기도 했다.

하지만 이게 웬일?

‘뜬금없이 사망이라니. 후우….’

만약 바이퍼가 ‘정제석’을 먹고 괴력을 일깨우며, 그와의 연결 고리를 잡아당기지 않았더라면?

공든 탑이 무너졌으리라.

바이퍼의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고, 안개의 장막이 밀려드는 모습에 위기감을 느끼고는 다급히 강림의 술식을 강행했다.

분명, 바이퍼는 죽었다.

하지만 금단의 술법에 의해 그 육체가 재구성되며 데자르에게 넘어온 것이다.

‘원래라면 내 모든 걸 계약자에게 전이한 뒤에, 본체에 가까운 능력을 지닌 채 건너왔을 텐데… 쯧! 계획이 어긋나 버렸어.’

계획에 없던 강림식과 일체화였다.

그 때문일까?

―네놈! 날 속였구나. 으아아아!

머릿속에서 울려 퍼지는 바이퍼의 괴성이 두통을 불러왔다. 완벽히 제압하지 못한 계약자의 영혼이 멋대로 날뛰고 있는 것이다.

굳이 비유하자면 일종의 ‘가계약’ 수준이긴 하나, 그래도 일단 계약은 계약이었고, 그 때문에 바이퍼는 머릿속에서 날뛰는 것 이상의 영향력을 발휘하진 못했다.

바이퍼가 저처럼 날뛰는 건 다급한 일체화로 인해, 그의 기억이나 정보 일부가 넘어가 버린 탓이었다.

새로운 세상의 신선한 공기에 상쾌해졌던 기분이 싹 날아가는 느낌이었다.

‘흠… 골치 아프게 됐군.’

상황도 좋지 않았다.

북마계의 새로운 주인, 하르칸의 최측근으로 손에 꼽히는 강자였건만, 지금 그의 수준은 본신에 비해 한참이나 모자랐다.

그는 자신을 향해 이빨을 드러내는 뮤턴트를 쭈욱 훑어본 뒤, 바이퍼의 목표물이던 인간들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마루와 클레어!

그중에서 특히 데자르의 눈길을 잡아끈 건 마루였다.

‘B급 A형이라고?’

바이퍼의 지식을 검색한 그가 고개를 저었다.

‘계약자 놈의 눈썰미가 이리 부족했을 줄이야.’

―무슨 소리냐?

성나서 외쳐 대던 바이퍼가 의문을 내비치는데, 이에 데자르가 답했다.

‘저건 마스터… 아니, 랭커다!’

그 순간 두통이 올라왔다. 바이퍼가 말도 안 된다며 분개하며 날뛰는 영향이 그런 식으로 퍼진 것이다.

‘믿어라. 네놈의 개눈깔과 달리, 나는 마계에서 무수히 많은 강자를 대면해 온 경험이 있다.’

비록 본신의 능력 중 극히 일부만 건너왔다지만, 경험치까지 사라지는 건 아니었다. 보는 눈은 멀쩡히 살아 있었다.

그 때문에 골머리가 얼얼했다.

‘대량의 마물에 랭커 둘이라.’

도플갱어 일족은 멸종의 위기 속에서 오랜 시간 마계의 밑바닥을 허덕이며, 이리저리 눈치를 보며 살아와야 했다.

그 때문에 생존을 위한 견적을 내는 건, 이젠 그들 일족의 본능이며 습성이 되어 버린 지 오래였다.

그렇기에 알 수 있었다.

‘이건 안 되겠네.’

패배의 이미지만 잔뜩 그려졌다.

‘저년 하나라면 모르겠는데.’

클레어를 한차례 살피던 눈길이 마루에게로 다시 돌아왔다.

‘저건 답이 없네.’

바이퍼는 이해할 수가 없었다. 비록 데자르에게 분노하고 있지만, 그와 별개로 현 상황에 대한 의문이 그의 광기를 잠시 잠재웠다.

―저놈이 그렇게 대단한 건가?

‘수준 자체는 감당할 수 있지. 하지만 까다로운 기운을 품고 있다.’

―까다롭다고?

‘성력! 저놈에게 신의 가호가 함께하는군.’

그뿐만이 아니었다.

‘머리끝에는 신의 가호가, 발밑엔 사자의 축복이 함께하다니. 끔찍한 혼종이군.’

결국 결론은 후퇴였는데, 어느새 주위를 둘러싼 뮤턴트들이 보였다.

여러모로 난처한 상황이었다.

그리고,

멀찍이서 이 모든 광경을 찍는 이가 있었다.

‘고위종에 클레어, 게다가… 트랩퍼?’

BDC의 파스톰은 두 주먹을 불끈 쥐었다.

‘대박이다!’

전 세계로 이 장면이 전파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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