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로그인 더 헌터-273화 (273/325)

#24. 선포.

#24. 선포.

런던 공항에서 발생한 사건들은 가감 없이 BDC의 카메라를 타고 세계로 전파되고 있었다.

당연하게도 민간만이 아니라 여러 네임드급 단체들도 이를 보고 있었고, 화면의 모든 요소들에 전율하며 침음성을 흘리는 중이었다.

“고위종을 저렇게 많이 부린다니.”

“허어… 바이퍼의 얼굴이 생중계됐군.”

“레메게톤도 피곤해지겠어.”

“원래 이쯤 하면 화면 전환을 시켜야 하는 거 아닌가?”

이면에 관한 정보가 유출되는 걸 자제하고자, 지금과 같은 돌발 상황이 생길 경우, 국가적인 차원에서 커튼을 치는 게 기본이었다.

하지만 이번엔 상황이 좋지 않았다.

영국 왕실과 레메게톤!

그 대립 관계가 판을 뒤집어 버린 것이다.

워낙 사건이 크다 보니 영상은 트리니티 여왕도 보고 있었는데, 전장에서 한발 물러나 핸드폰으로 주요 상황만 살핀 뒤, 그녀는 BDC에 따로 메시지를 날려서 방송을 최대한 널리 전파하도록 직접 지시를 내렸다.

그리고는 바로 신형을 돌려 공항 방면으로 달렸다.

최소 인원만이 그녀의 뒤를 따라붙는데, 나머지 근위대는 버킹엄 주변을 정리하는 데 투입됐다.

―급보! 여왕님 공항으로 출발.

―드디어 금은 자매의 연계를 볼 수 있는 건가?

―이반나가 아쉽네.

여러 커뮤니티가 들끓는 가운데, 수많은 네임드급 길드들이 그녀의 의도를 눈치챘다.

“이런 식으로 숙청하는 건가.”

“제대로 빡친 모양이네.”

“허… 레메게톤의 수장이 바뀌겠군.”

“어차피 아직 정식으로 간판 올릴 것도 아니잖아.”

키홀 수장이란 위치와 랭커라는 전력으로 인해, 제재 범위가 제한되긴 하겠지만, 그래도 얼굴이 드러나 버린 이면의 주민에게 레메게톤의 수장 자리를 맡길 수는 없을 터, 아마도 이번 사건이 끝나면 새로운 수장을 뽑게 되리라.

여러 단체가 주목하는 건 그것만이 아니었다.

“몬스터들이 바이퍼를 노리는 이유가 뭐지?”

“딱 봐도 레메게톤에서 준비한 무대 같은데, 준비가 부족했겠지.”

“키메라가 원래 눈깔 뒤집히면 주인 무는 건 기본이지.”

“눈 돌아갔으면 공평하게 물어야지, 클레어는 내버려 두고 바이퍼만 씹으려 드는 건 뭔데?”

무수히 많은 고위종과 바이퍼의 모습에서 대략적인 시나리오를 읽어 낼 수 있었지만, 화면 속 흐름은 예상과는 다른 전개였던 터라, 적잖이 당혹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그 와중에 이어지는 바이퍼의 액션이 또 놀라웠다.

“허어… 멀티 스킬이라니.”

“저런 걸 숨기고 있었다고?”

“클레어와 동수를 이뤘다는 게, 헛소문인 줄 알았더니.”

이로 인해 들썩이는 건 길드들만이 아니었다.

―멀티 스킬?

―설마, 아이언슈트인가?

―멍청아! 덩치가 다르잖아.

―듣기로는 신체 변형 능력도 있어서, 체형은 구라라는 말도 있던데.

―전투 스타일도 다르잖아.

―아이언슈트는 강화계가 중심이면, 저긴 이능계가 중심이네. 아무리 멀티 스킬이래도 스타일까지 다를 수는 없지 않나?

―새로운 멀티 스킬 각성자?

―누구지?

―누구냐 너?

바이퍼의 화제성은 확실해 보였고, 이는 그가 더 이상 이면에만 머물 수 없다는 의미와 같았다.

여러 길드는 이 같은 흐름에서 트리니티 여왕의 의도가 제대로 먹혀들고 있다고 여겼다.

하지만 완벽히 성공하진 못했다.

“설마 멀티 스킬이라니.”

“저래서야 레메게톤에서도 거리 두기가 애매하지.”

“반드시 잡아야 하는 패니까. 적당히 자리 하나 마련해서 묶어 두겠지.”

그렇잖아도 랭커라는 부분에서 놓치면 안 됐건만, 이젠 필사적으로 붙잡아야 하는 대어가 된 것이다.

하나 이들이 놀랄 건 아직도 남아 있었다.

앞서도 언급했듯이 화면 속 내용물은 그 모든 게 전율로 가득 차 있었다.

“트랩퍼가 발동한다고?”

“레어 벗어나면 끝 아니었어?”

“간단한 마석 결계술 정도는 칠 수 있겠지.”

“바이퍼 반응을 봐. 그 정도가 아니잖아.”

“이게… 뭐야, 대체? 뭐가 어떻게 된 건데?”

대지가 검게 물들고 이내 시꺼먼 어둠이 출렁거리며 물결치는 게 화면에 잡혔다.

그와 동시에 또 다른 이명의 편린을 꺼내 드는 것도 보였다.

타타타탕….

선명한 총성과 함께 바이퍼의 신형이 이리저리 튀는데, 중간중간 흔들리는 모습에서 제법 묵직한 타격이 박혀 든 것을 알 수 있었다.

“겨우 총기에 저런 반응이라고?”

랭커답지 못한 모습이었고, 자연스레 검은 파도로 시선이 닿았다.

‘결계!’

저 미지의 물결이 어떤 알 수 없는 디버프 작용을 하며, 바이퍼의 능력치를 깎아 먹고 있는 게 아닐까 싶었다.

기이한 건 이어서 펼쳐지는 광경이었다.

‘뒷걸음질을 친다고?’

‘바이퍼가 몸을 사리는 것 같은데. 착각인가?’

‘겨우 B급 헌터에게 밀리는 랭커가 있다?’

자신들이 보고 있는 게 혹시 몰래카메라는 아닐까 싶을 정도로 황당한 장면이었다.

그리고 이를 통해서 많은 이들이 깨달았다.

‘레어를 들고 다닐 수 있다고?’

‘B급 A형?’

‘저건 그냥 랭커잖아!’

마루의 값어치가 실시간으로 급상승하는 가운데, 화면 너머에선 또 다른 변화가 발생하고 있었다.

―클레어다!

―드디어 나서는구나.

―물의 검이 움직인다.

―오오오오! 천검.

무수히 많은 물빛 형상의 검들이 허공중에 생겨나며, 클레어의 손짓에 따라 춤을 추기 시작했다.

클레어를 대표하는 기술로서, 실제로 천 개의 검이 휘둘러지는 건 아니었다. 최대치로 잡아 봐도 두 자릿수를 겨우 넘기는 수준이었다.

이마저도 드래곤 스케일의 힘을 빌려 만들어 낸 증폭 효과인데, 지금은 그마저도 없으니 숫자는 더욱 부족할 수밖에 없었다.

현재 발현된 건 겨우 일곱.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천검이라 불리는 건, 물의 검이 남기는 특유의 잔상 효과로 인해, 화면을 꽉 채우는 효과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로 인해 자연스레 수가 늘어 가니, 초창기엔 백검이라 불리던 게 어느새 천검으로 부풀려진 것이다.

이 부분은 사실 트리니티 여왕이 여론을 움직여서 살짝 뻥튀기 작업을 한 부분도 없잖아 있었다.

그리고 이런 클레어의 활약은 사람들을 재차 전율하게 만들었다.

―저걸 버틴다고?

―트랩퍼만 봤을 땐 긴가민가했는데, 이젠 확실하네.

―멀티 스킬에 랭커라니.

아이언슈트의 등장에 버금갈 만큼, 바이퍼는 확실한 임팩트와 함께 전 세계에 그의 존재감을 알리고 있었다.

더욱 놀라운 건, 마루와 클레어의 협공을 버텨 내고 있단 점이었다.

밀리는 모양새긴 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일방적인 그림은 아니었고, 틈틈이 반격까지 넣는 모습에서, 확실히 의문의 랭커가 윗줄이란 이미지가 박혔다.

이는 많은 의문을 낳았다.

―아이언슈트도 그렇고, 대체 어디서 저런 초인들이 나오는 거야?

―것보다 트랩퍼는 또 뭔데?

―아니, 어떻게 저 판에 끼는 거냐?

―B급 A형 아니었음?

―방구석 여포인 줄 알았는데, 레어를 들고 다니네.

―고정형인 줄 알았더니, 이동형이었누.

―캠핑카식 레어냐?

―트랩퍼+건어택=랭커?

기이하게 행동하는 고위종과 멀티 스킬의 신규 랭커, 그리고 랭커에 버금가는 B급 헌터까지, 화면 속에는 세계를 경악하게 할 만한 요소들이 넘쳐 났고, 그 때문에 BDC 본사는 전에 없을 만큼 행복한 비명을 지르는 중이었다.

특히,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라는 점이 그들을 환호하게 만들었는데, 그 와중에도 현장은 꾸준히 변화를 거듭하고 있었다.

* * *

대지를 타고 흐르며 끊임없이 요동치는 사자의 축복 때문일까?

‘성력 만큼 까다롭군.’

상황이야 어찌 됐건 데자르는 한 차례 죽음의 강을 건너 이곳으로 넘어왔고, 그 때문에 바이퍼의 육신은 어둠 속에서 넘실대는 사자의 손길에 꾸준히 흔들리고 있었다.

자꾸만 죽음으로 유혹하는 물결에, 그의 정신과 달리 육신은 순리에 응하려고 들었던 것이다.

아직 정신과 육신의 결합률이 낮은 까닭이었다.

그 때문에 이리저리 몸을 빼내느라 바쁜 가운데, 클레어까지 개입하니 전진은커녕 후퇴의 연속일 수밖에 없었다.

수하들의 도움을 바라기엔, 안타깝게도 그들 역시 바빴다.

뮤턴트에게 전멸이 머지않았는데, 적절히 거리를 둔 채 서포트를 하는 왕실 호위대로 인해, 빠른 속도로 격퇴되는 중이었다.

그리고 이렇게 뚫린 루트를 타고 꾸준히 뮤턴트들이 달려드는데, 그럴 때마다 한 방에 때려잡고는 있지만, 그만큼 기력이 소모되는 건 어쩔 수가 없었다.

할 수 없이 빠르게 퇴로를 체크하며, 발을 뺄 타이밍을 노리는데, 그 와중에 상황은 더욱 최악으로 치달았다.

“빛이여!”

천둥과도 같은 외침과 함께 거대한 빛이 떨어져 내리는 것이 아닌가.

콰아아아아앙….

방송을 보고 있던 많은 사람들이 환호했다.

―왔다아아아아!

―집행검!

―금은 자매가 드디어 만났다.

―트리니티 여왕 등장!

상황 파악과 동시에 공항 방면으로 내달린 트리니티 여왕이 드디어 도착한 것이다.

여왕의 이명을 고스란히 본떠서 붙인 왕실의 보물, 집행검이 그녀의 손에서 빛을 발하고 있었다.

드래곤 스케일이 영국 왕실이 탄생시킨 걸작 아이템이라면, 그녀의 검은 영국 던전이 낳은 최고 등급의 아티팩트였다.

우웅… 웅… 우우우웅….

빛으로 물든 집행검이 강렬한 울음과 함께 선명한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었다.

혹자는 이를 전설상의 엑스칼리버와 비견하기도 하는데, 이는 그와 버금갈 만큼 신성한 기운을 잔뜩 품은 신검이기 때문이었다.

드래곤 스케일을 입고 집행검을 휘두르는 트리니티 여왕의 저력은 랭커와 동급으로 놔도 충분했다.

그 말인즉,

‘랭커가 셋인가.’

데자르는 마른침을 꼴깍꼴깍 삼키며 주변을 돌아봤다.

‘일찌감치 뺏어야 했나?’

자칫 어렵사리 다시 살린 불씨가 바로 잿더미가 될 수 있음을 깨달았다.

이즈음 호위대는 근위대와 손발을 맞추며 도주로를 완벽 차단하고 있었고, 레메게톤의 요원들은 이 절망적인 현실에 사기가 뚝 떨어지며 어깨를 늘어트려야 했다.

어느 모로 봐도 답이 안 나오는 상황, 하지만 현장의 모든 이들이 한 가지 착각하는 게 있었다.

근위대의 경계 너머 새롭게 등장하는 무리들이 있었다.

레메게톤!

이 자리에 있는 건 정예의 일부일 뿐, 이번 사건을 일으킨 ‘전체’는 아니었다.

‘드디어 왔군.’

데자르는 조용히 미소 지었다. 만약 저들이 등장하지 않았더라면, 후유증을 각오하며 ‘기운의 폭주’를 통해 자리를 빠져나갔을 것이다.

하지만 레메게톤 본진까지 함께 움직인 이상, 판을 완벽히 뒤집을 수 있었다.

머릿속으로 바이퍼의 음성이 들려왔다.

―이 미친놈! 무슨 짓을 하려는 거냐?

그의 의도를 읽었기에 버럭 소리치는 것인데, 이를 무시하며 데자르가 입을 열었다.

“나 키홀 클랜의 수장이자, 신규 연합체 레메게톤의 총장의 권한을 빌어 이곳에서 선언한다.”

나직한 음성이었건만, 마치 증폭 스킬이라도 발휘된 듯, 선명한 울림을 타고 그 속삭임은 넓게 넓게 퍼져 나갔다.

“오늘부터 이곳 영국은 우리가 접수한다!”

미친 소리였다.

어찌나 황당한 내용이었던지, 달려왔던 레메게톤의 병력까지 일제히 얼어 버렸다.

트리니티 여왕 역시 자신의 계획을 아득히 뛰어넘는 데자르의 미친 짓거리에, 일순간 말문이 막힌 듯 벙찐 표정을 지었고, 그 감정을 충실히 표현하듯 집행검의 반짝임도 크게 흔들리는 게 보였다.

하나 이와는 반대로 이 방송을 시청 중이던 수많은 사람들은 전에 없이 뜨겁게 달아오르는 중이었다.

―레메게톤?

―키홀?

―듣도 보도 못한 단체명인데?

―정체가 뭐야?

여러 의미로 세계가 떠들썩해지는 가운데, 이 사달을 만든 주인공인 데자르는 호흡을 고르며 내부의 기운을 어지러이 꼬아 놓기 시작했다.

―또 무슨 짓을 하려는 거냐?

바이퍼가 기겁하며 자신의 육신을 내려다보는 가운데, 데자르가 비릿한 미소와 함께 입을 열었다.

‘입을 놀렸으면 행동으로 보여 줘야 할 거 아니냐.’

최후의 방법으로 아껴 놨던, 기운의 폭주를 일으키고 있는 것이다.

화르르륵….

순간 그의 기세가 몇 배는 부풀어 올랐다.

그 강렬한 마기의 소용돌이에 대지를 가득 채우고 있던 사자유희의 결계가 사방으로 출렁이며 흩어지는 게 보였다.

그리고 시작된 3대 1의 대결!

이날, 데자르는 세계를 상대로 자신의 능력을 증명했고, 그렇게 세상은 이면의 주민들에 대한 진실을 마주하게 됐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