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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GBE!

#3. GBE!

지난 최초의 대환란 이후, 영국은 오랜만에 커다란 위기를 맞이한 상황이었다.

레메게톤!

이면의 연합체가 당당히 그들 집안에 깃발을 꽂은 까닭이었는데, 아이언슈트 이후 새롭게 등장한 멀티 스킬 각성자의 임팩트가 너무 컸던 터라, 세계적인 관심도 역시 높아서인지, 섣불리 움직이기도 어려웠다.

황당한 건 이번 사건으로 인해, 이면의 문제아들이 레메게톤에 제법 힘을 실어 주고 있단 점이었는데, 그들 중에서도 바깥을 그리워하는 이들이 상당하기 때문이었다.

자연히 왕실의 부담감은 상당했고, 트리니티 여왕의 업무량도 폭발적으로 증가할 수밖에 없었다.

그 때문일까?

“으아아아아아!”

여왕의 집무실에선 주기적으로 절규 섞인 포효가 터져 나오고는 했다.

“하아….”

트리니티 여왕은 지난 격전을 떠올렸다.

‘…수련을 게을리하면 안 되는 거였는데.’

물론, 말과는 달리 그녀도 나름대로 꾸준한 단련을 해 왔었고, 덕분에 최근에는 벽 너머에 한 발 걸치는 성과도 이뤄 낼 수 있었다.

좀 더 시간이 흐른다면 온전한 초인의 영역에 올라, 영국을 대표하는 새로운 랭커가 될 수 있을 터였다.

하지만 당장은 A급 헌터일 뿐이었다.

그런 이유로 지난 전투에선 드래곤 스케일의 힘을 빌려 랭커의 전력을 갖췄었는데, 사념 폐해로 인해 시간제한이 있는 까닭에, 뒷심이 부족할 수밖에 없었다.

그 때문에 유리한 와중에도 결국 데자르를 놓친 것이지 않던가.

‘드래곤 스케일의 활용 시간이 조금만 더 됐더라면….’

사건 당시에 데자르를 확실히 제압했더라면, 지금과 같은 골치 아픈 업무의 파도가 그녀를 휩쓸 일은 없었으리라.

잠시 머리도 환기시킬 겸, 다른 방향으로 눈길을 돌렸다.

여전히 업무의 일환인 건 다를 게 없지만, 이면 세계에서 일부 멀어지는 내용에 시선을 둔 것이다.

‘트랩퍼의 훈장 등급인가.’

영국 내에서 가장 뜨거운 화젯거리 중 하나였다.

사실, 레메게톤과 관련한 게 1순위를 찍어야겠지만, 왕실에서 꾸준히 정보 통제를 하고 있고, 의도적으로 훈장을 통해 물타기도 시도하는 중이라, 자연스레 마루가 화제의 중심이 될 수밖에 없었다.

마루의 활약이 대단했다는 건 모두가 아는 사실이었다.

그가 있었기에 클레어를 비롯한 대원들의 희생이 적었던 것이기도 했다.

만약 마루가 아니었더라면?

‘…생각도 하기 싫네.’

데자르와 직접 3대 1로 겨뤄 봤기에, 마냥 최악의 상황만 떠오를 뿐이었다.

왕실은 수호검을 잃었을 것이며, 영국은 자존심이 짓밟혔을 터였다. 게다가 호위대를 비롯한 여러 사상자와 피해 역시 어마어마했으리라.

훈장은 당연한 거고 등급이 골치였다.

“3등급이냐 2등급이냐… 그것이 문제로다.”

물론, 이는 여왕을 비롯한 왕실의 입장이었고, 외부에서는 3급도 높게 쳐준 것이라는 분위기였다.

이는 사건의 이면까지 전부 아는지 모르는지의 차이로, 아무래도 민간에 드러낸 부분에선 2급을 논하기에는 부족함이 있을 수밖에 없었다.

‘뮤턴트를 휘어잡은 것도 트랩퍼의 공이라던데.’

사던 당시 몬스터들이 키메라가 아닌 뮤턴트라는 점에서도 놀랐지만, 이들의 정신을 깨워 어깨를 나란히 하게 만들었다는 점도 아주 대단한 공이었다.

단지, 뮤턴트나 키메라 같은 이야기는 대외적으로 알려질 수 없다 보니, 이 부분에 대한 공헌도가 드러나지 않았고, 민간 차원에서는 훈장 등급을 낮게 잡자고 하는 것이다.

―외국인에게 작위라고?

―게다가 아시안이야.

―대영제국의 위상이 어디까지 떨어진 건지. 하…?

―트랩퍼가 분명 대단한 활약을 한 건 사실이지만, 작위까지 주는 건 너무 나갔다.

훈장을 주는 문제에선 마루의 손을 들어 줬지만, 등급의 높낮이로 넘어가니 반대편에 서는 이들이 훌쩍 늘어 버렸다.

“하아….”

이 부분까지 전부 아우르며 포상을 해야 하기에, 여왕은 골머리를 싸매는 거였다.

시민들의 반응까지 고려해야 하는 탓일까?

‘CBE(Commander)에 포상 수준을 높이자!’

3등급 훈장을 내린 뒤, 따로 좀 더 챙겨 주기로 가닥을 잡아 가는데, 그즈음 뜻밖의 방문객이 있었다.

“성녀님의 방문을 환영합니다.”

“여왕님을 뵙습니다.”

바로 교황청의 자존심이라 불리는 성녀 레아였다. 잠시 딱딱한 인사말이 오갔지만, 그런 분위기는 그리 오래 이어지지 않았다.

“그 조그맣던 꼬맹이가 이렇게 컸다니.”

“아줌마는 늙었네요.”

“하… 다 큰 녀석을 쥐어 팰 수도 없고. 여왕님께 말버릇이 그게 뭐니?”

“저는 성녀랍니다. 좀 더 존중하시죠.”

뜻밖의 신경전이 이어지는데, 그렇다고 해서 분위기가 나쁜 건 아니었다. 오히려 두 여인 모두 활짝 웃으며 서로를 바라보고 있었다.

“오랜만이다.”

“그러게요.”

재차 인사를 나누는데, 앞서가 여왕과 성녀로서의 만남이었다면, 지금은 집행검 엘피나와 교황청의 수행원 레아로서의 재회를 뜻하는 거였다.

둘 다 과거에 인연이 있던 것인데, 수호검 클레어는 대다수의 시간을 영국에서 보냈다지만, 그녀와 달리 트리니티 여왕은 영국 밖으로도 제법 떠돌던 시기가 있었는데, 바로 그런 과정에서 맺어진 인연이었다.

“오자마자 찾아올 줄 알았더니, 트랩퍼한테 다녀왔다며?”

“세계가 주목하는 루키잖아요.”

“중고 신인이라, 관록이 남다르긴 하더라.”

“딱 내 이상형인데.”

“관심 있어? 제대로 자리 좀 만들어 줘?”

“됐습니다! 그리고 안타깝게도 골키퍼가 있더라고요. 게다가 이성으로서의 관심보단 팬심이 더 높아서. 멀리서 보는 걸로도 좋답니다.”

잠시 농을 주고받으며 분위기를 풀던 것도 잠시, 트리니티 여왕에게 허락된 여유 시간이 그리 길지 않기에, 레아는 빠르게 본론을 꺼내 들었다.

“트랩퍼에게 작위를 내려 줬으면 싶은데요.”

그 말에 트리니티 여왕의 표정이 굳어졌고, 이를 본 레아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역시, 적당히 CBE로 퉁 치려고 했나 보네요.”

“3등급 훈장도 트랩퍼가 왕실의 방벽을 강화하는 걸 기준으로 맞춘 거야.”

“시민들 눈치도 봐야 하니까. 이해는 하겠는데, 그래도 기왕이면 작위까지는 내려 주시죠.”

외부인이 무려 훈장의 등급을 조정하려 드는 건, 여러모로 선을 넘는 행동이었다.

하지만 레아가 아무런 생각도 없이 이런 행동을 하는 거라 여기진 않았고, 그 때문에 묻지 않을 수가 없었다.

“…갑자기 이런 이야기를 하는 이유가 뭐야?”

“드래곤 스케일.”

좀 전까지 관련해서 생각하고 있던 터라, 트리니티 여왕은 순간 호흡을 멈춰 버렸다.

말도 안 된다고 여겼지만, 절묘하게 치고 들어오는 타이밍 때문인지, 저도 모르게 묘한 기대를 해 버리는 건 어쩔 수가 없었다.

그런데 이게 웬일?

“유지 시간 늘리고 싶지 않나요?”

망상이 현실이 됐다.

너무 놀라 사고가 마비되며 그대로 굳어 버렸다, 그녀의 이 같은 모습이 우스웠는지 레아가 실소하며 물었다.

“그렇게 좋아요?”

트리니티 여왕은 그제야 정신을 차리며 입을 열었다.

“설마, 그게 트랩퍼의 작위와 관련이 있는 거냐?”

이에 레아는 미소로 답을 대신했다.

속 답답해지는 상황에 미간을 구긴 트리니티 여왕이 이내 한숨을 푹 내쉬며 물었다.

“어디까지 가능한데?”

“헤에… 슬그머니 딜을 하려고 그러시네. 조금이라도 유지 시간이 늘어나면 무조건 땡큐인 거 아닌가요?”

정답이었다. 그래도 일단 한 번은 튕기고 봐야 하지 않겠는가. 이 모습에 실소한 레아가 진짜 답을 알려 줬다.

“무제한!”

또다시 트리니티 여왕의 얼이 빠져 버렸다. 이를 아는지 모르는지 레아의 이야기가 이어졌다.

“포스가 허락하는 한도 내에서 얼마든지 사용할 수 있을 겁니다.”

“그게… 가능한 거야?”

어렵사리 정신줄을 다잡은 트리니티 여왕의 얼굴은 흥분으로 붉게 물들어 있었다.

드래곤 스케일의 문제점을 해결할 수만 있다면, 현세대 최고의 무구가 탄생한다고 봐도 과언이 아닐 터였다.

사념 폐해의 단점이 크게 작용하며, 매번 마이너스 점수가 찍히는 것이 아니던가.

그녀가 흥분한 음성으로 이야기했다.

“드래곤 스케일의 폐해만 해결해 줄 수 있다면, 2등급이 아니라 1등급 훈장도 문제가 아니지.”

이에 레아가 말했다.

“안타까운 소식을 전해야겠네요.”

‘…갑자기?’

혹시라도 드래곤 스케일에 새로운 제한이라도 걸리는 걸까?

걱정이 들어찬 표정으로 바라보는데, 레아는 전혀 다른 종류의 이야기를 꺼내고 있었다.

“폐해를 해결하는 부분에 트랩퍼의 이름이 언급되면 안 된다는 겁니다.”

“…뭐?”

“말 그대로, 트랩퍼에게 작위를 주는 건, 드래곤 스케일과 무관한 방향으로 가닥을 잡아 줬으면 좋겠다는 소리죠.”

피로감이 급격히 상승하는 걸 느꼈다.

아이언슈트와 트랩퍼!

마루의 이중생활을 알고 있기에, 그녀가 나서서 이를 깨트리고 싶진 않았다.

그의 일상을 유지하는 한도 내에서 상황을 이끄는 것이다.

방법은?

“여왕님께서 잘 생각해 낼 수 있죠?”

간절함이 해결해 줄 터였다.

와락 구겨지는 트리니티 여왕의 모습에 레아가 방끗 웃으며 말했다.

“주름 잡혀요. 스마~ 일!”

당연히 미소가 나올 리는 없었다.

“…정말 얄밉게 자라 버렸어.”

그러며 고개를 저을 뿐이었다.

* * *

마루는 자신의 왼쪽 팔뚝을 바라봤다.

―헌혈 좀 해 주실 수 있나요?

그렇게 말하며 주사기를 꺼내던 레아의 모습이 떠올랐다. 갑자기 그의 피를 필요로 하는 이유가 뭐였을까?

‘드래곤 스케일 때문이겠지.’

아마 마루의 핏속에 담긴 용아병의 기운을 이용하는 것이리라.

―준비하는 데 시간이 꽤 걸리니까. 그동안 마루 님은 멋진 활약으로 영국 내에서 인지도를 쭉쭉 올려 주세요.

고민을 거듭했고, 이내 총기를 들고 밖으로 향했다.

* * *

최근 영국의 가장 큰 화젯거리를 꼽으라고 한다면, 역시나 지난 사건 이후로 유지되고 있는 트랩퍼에 관한 이야기라 할 수 있었다.

일부분 왕실에서 조작한 것도 있지만, 요 근래 들어서는 그런 뒷공작 없이도 마루의 인지도가 급상승하는 현상이 발생하는 중이었다.

놀라운 건 그 와중에 드러나는 이명이었다.

―이번에도 건어택 떴음!

―대체 얼마나 말도 안 되는 사기 스킬이기에, 런던 전역을 혼자서 커버하는 거냐?

―저격의 영역을 넘은 거 아닌가?

버킹엄을 비롯해 런던 중심부는 던전지대로 안전하다지만, 그 외부는 전부 돌발 게이트 위험지역이라 할 수 있었는데, 마루는 그 위험한 장소에 전부 끼어들고 있었다.

홀로 커버한다는 표현을 쓰지만, 여러 헌터들이 출동하며 활약하고 있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루의 활약이 눈에 띄는 건, 마치 폭격처럼 떨어지는 연속 저격의 임팩트 때문이었다.

더욱 놀라운 건, 그 현장에 마루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이번에도 버킹엄에서 하늘에 대고 총질 중.

―워… 생방 아니었으면 사기인 줄.

―저게 말이 되냐고. 기본 30마일(48km)을 커버하는 저격이라니.

다양한 총기 아이템이 나오며, 3마일(4.8km) 정도까진 저격이 가능한 시대였고, 정확도를 무시하면 1.5배까진 더 거리를 늘릴 수 있었다.

하지만 마루는 이를 아득히 벗어나 버렸다.

무려 10배가 넘는 거리를 앉은 자리에서 저격해 버리고 있던 것이다.

그 먼 거리를 어떻게 보고 확인하는가부터, 대체 어떤 식으로 저격이 이뤄지는가까지, 전부 이해할 수 없는 일투성이였다.

게이트에서 나오는 몬스터 대부분이 D~E급이다 보니, 마루의 수준과 비교하면 안 어울리는 건 사실이었다.

하지만 저 말도 안 되는 거리로 인해, 사람들은 연일 환호하며 화제를 키워 나가는 중이었다.

―왕실 의뢰로 방벽 강화 작업도 진행 중이라던데.

―쉴 때마다 저렇게 저격한다더라.

―정말로 B급 A형 맞나?

―트랩퍼 S급 아님?

―건어택은 B급이지.

―둘이 다른가?

재밌는 건 마루의 이명이 나뉘어 있다 보니, 건어택과 트랩퍼를 놓고 설전을 하는 이들도 있단 점이었다.

이런 식으로 하루하루 마루의 존재감에 영국 전역에 깊이 파고 들어갈 즈음, 왕실 홈페이지에 뜻밖의 소식이 하나 올라왔다.

GBE(Knight Grand Cross)

바로 기사 작위가 부여되는 훈장에 관한 것이었는데, 놀랍게도 2등급도 아닌 1등급 임명식에 관한 내용이었다.

그 대상을 확인했을 때, 전 영국인이 경악했다.

[정마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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