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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그인 더 헌터-278화 (278/325)

#4. 임명식.

#4. 임명식.

난리가 났다.

1등급 훈장인 대십자 기사(GBE)를 자국민도 아닌 외국인에게, 그것도 랭커도 아닌 B급 헌터에게 수여한다는 기사가 나온 까닭이었다.

―아니. 건어택이 활약이 대단하긴 하지만, 그래도 대십자 기사는 아니지.

―트랩퍼의 재주 때문에 관계를 맺어 놔야 하는 건 알겠지만. 그래도 이건 너무 나간 것 같은데.

―KBE도 아니고 GBE면 외국인용 명예 훈장으로 칠 수도 없잖아.

―선을 넘었네.

―이제라도 취소해라!

말이 많을 수밖에 없었는데, 그렇다고 해서 마냥 부정적인 의견만 있는 건 아니었다.

―너무 부정적으로 보진 말자. 건어택 활약이 대단하긴 했잖아. 트랩퍼로서는 왕실 방벽의 강화에 힘쓰고 있고, 다방면에 걸쳐서 노력하는 데다가, 차후 관계를 위해서라도 작위 정도는 줘도 될 듯.

―그래도 대십자 기사는 아니지. 크게 양보해서 사령관 기사(KBE ― Knight Commander)까지는 허락해 줄 수 있음.

―2등급 훈장 정도라면야.

―하… 이건 아닌데.

그리고 이런 분위기를 읽은 성녀 레아는 빙긋이 웃으며 입을 열었다.

“계획대로 됐네요.”

그 말에 트리니티 여왕이 한숨을 푹 내쉬었다.

“덕분에 난 한 입으로 두말하게 생겼어.”

“그래 봤자 홈페이지에 잠깐 올린 게시글일 뿐이잖아요. 게다가 공식적인 것도 아니고, 논의 예정이다 정도인데. 별로 타격 갈 것도 없잖아요.”

태연한 그 음성과 태도에 트리니티 여왕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1등급 훈장인 대십자 기사를 언급한 건, 일종의 충격 요법이라 할 수 있었다.

외국인에게 1등급을 준다는 건?

기존 명예 훈장의 기준마저 넘어 버리는 것이다 보니, 더더욱 충격 요소가 컸으리라.

그로 인해서 논란이 크게 발생하긴 했지만, 덕분에 마루의 가치에 대해 재평가하는 분위기가 형성되고 있었다.

부정적인 의견 못지않게 이를 긍정으로 몰아가는 이들도 상당했다.

물론, 거기에는 왕실의 입김도 제법 들어갔지만, 어쨌든 그렇게 마루가 자신들의 예상 이상으로 중요하다는 걸 많은 이들이 인지하게 만들었다.

레아가 이야기했듯 모든 게 계획대로였다.

“분위기가 제법 긍정적으로 흘러가는 걸로 봐선, GBE까진 무리겠지만, KBE를 내리는 건 문제없겠네요.”

이어지는 레아의 이야기에 트리니티 여왕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순차적으로 시민권까지 허락할 거고, 그렇게 되면 네가 제안했던 작위 부여는 거의 확실히 될 거야. 그러면 이제 말해 줬으면 싶은데. 굳이 작위까지 내려야 했던 이유.”

이에 레아가 그간 아껴 왔던 조건을 입에 담았다.

“버킹엄 던전!”

“…….”

순간 트리니티 여왕의 동공이 부릅떠졌다. 이를 아는지 모르는지 레아의 이야기가 이어졌다.

“아발론의 입장을 허락해 주세요.”

전설 속, 영국 어딘가에 위치한다고 알려진 환상의 섬이 언급됐는데, 아서 왕의 시신이 잠들어 있다고도 알려진 장소였다.

하지만 레아가 언급하는 아발론은 그 같은 전설과는 거리가 있었는데, 이는 버킹엄 지하에 위치한 던전을 가리키는 명칭이기 때문이었다.

트리니티 여왕이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

“그것 때문에 작위가 필요한 거였구나.”

입장의 최소 조건이었던 건데, 그렇다고 해서 내부가 허락된다는 건 아니었다. 왕실의 최고 기밀이며 보물인 장소가 아니던가.

작위가 허락됐다 하더라도, 외부 인사가 쉬이 들어갈 수 있을 리가 없었다. 만약 억지를 부려 가며 외국인에게 1등급 훈장인 GBE를 하사하게 되더라도, 결국 외부인은 외부인이었다.

영국의 시민권을 허락한다 하더라도 뿌리를 바꿀 수는 없는 것이다.

“이런 말 하긴 좀 그렇지만, 트랩퍼는 영국에 많은 기여를 했어요. 만약 그가 없었더라면, 과연 클레어가 살아 있을 수 있을까요? 호위대는요? 어쩌면 뒤늦게 출동했던 여왕님께서도 좋지 못한 결과를 맞았을지도 모르죠.”

게다가 최근 보여 주는 말도 안 되는 저격을 통해, 잠시나마 런던 주변의 분위기에 전체적인 상승효과가 작용 중이었다.

언제 어디서건 날아오는 저격이 시민들에게 안전과 안정감을 느끼게 해 준 까닭이었다.

결정적으로 한 가지 더!

“드래곤 스케일을 무제한으로 사용할 수 있다는 건, 제대로 된 랭커 한 명이 추가된다는 건데, 이걸 놓칠 생각이세요?”

트리니티 여왕은 눈살을 찌푸렸다. 확실히 어느 하나 틀린 이야기가 없기 때문이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발론을 허락한다는 건 쉽지 않았다.

그래서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물었다.

“드래곤 스케일… 한 명밖에 안 되는 거냐?”

“이 아줌마가 욕심이 과하시네. 1인분 제약 해제도 겨우 구한 거라구요. 애초에 드래곤 스케일을 제대로 활용할 수 있는 실력자도 몇 없잖습니까.”

이번에도 맞는 소리만 줄줄이 이어졌던 터라, 트리니티 여왕은 신음성과 함께 입술을 짓씹어야만 했다.

비록 한 명일 뿐이지만, 그것만으로도 영국의 랭커 전력이 추가되는 것이다.

게다가 그녀 본인이라는 점도 매력적이며, 더 나아가서 이를 비장의 카드로 남겨 둘 수 있다는 부분까지, 하나같이 놓칠 수 없는 요소들로 가득했다.

성녀 레아가 물었다.

“할 수 있죠?”

여왕은 한숨을 푹 내쉬며 고개를 끄덕여 버렸다.

* * *

길드와 왕실의 차이라고 해야 할까?

분명 혜성이 한국을 대표하는 거대 길드이긴 하지만, 영국 왕실과 비교할 수 없는 건 분명한 사실이었다.

대격변과 환란 이후, 영국은 왕실을 중심으로 돌아가고 있기 때문에, 그곳이야말로 한 국가의 심장부나 마찬가지였고, 그만큼 단단한 방벽으로 보호받고 있기도 했다.

그 때문일까?

‘공부되네.’

마루는 혜성 길드의 결계를 건드릴 때와 마찬가지로, 또 한 차례 사고의 폭이 넓어지는 걸 느낄 수 있었다.

성장하고 있는 것이다.

그만큼 많은 결계와 비법들이 왕실의 방벽 곳곳에 넘쳐 나고 있었는데, 그 대다수가 스킬로 인해 구현된 것이다 보니, 더더욱 공부가 되는 느낌이었다.

아는 만큼 보인다고 하지만, 때론 보이는 만큼 알게 되는 경우도 있었기에, 마루는 열심히 보고 느끼며 결계 스킬이란 영역을 파헤치며 받아들이는 중이었다.

때론 그저 수박 겉핥기식으로 완벽히 이해할 수 없더라도, 그 외형을 안다는 것만으로 공부가 되는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어깨너머로 훔쳐보듯 공부를 했고, 또 이를 복습하듯이 결계에 손을 대면서 학습했다.

성장한다는 느낌이 기분 좋은 시간이었지만, 골머리가 아파질 만큼 피로감도 함께하는 탓에, 틈틈이 스트레스 해소도 할 겸 저격총을 잡고 방아쇠도 당겼다.

마치 클레이 사격을 하는 것처럼, 버킹엄 한편에 자리를 잡고 앉은 채, 게이트 신호가 뜬 방향으로 저격을 실시하는데, 놀라운 건 거리가 얼마가 됐건, 매번 백발백중의 사격 솜씨를 보여 준다는 점이었다.

시야에도 없는 아득한 거리까지 커버하는 저격이란, 각성자와 비각성자 가릴 것 없이, 모두를 경악시키며 들썩이게 만들었다.

그 말도 안 되는 저격이 가능한 이유?

사자유희!

말도 안 되는 서포터 덕분이었다.

그가 아무리 이런저런 스킬로 무장을 하더라도, 30마일 바깥을 살피는 건 불가능했다.

특히나 시야가 훤히 열린 개활지도 아닌 도심지에서 이를 살핀다는 건, 말도 안 되는 일이 분명했다.

하나 그에게는 대신 시야를 밝혀 줄 아티팩트가 있었다.

마루는 스코프를 바라보지 않았다.

그저 눈을 감고, 저 멀리 연결되어 있는 사자유희의 시야를 훔쳐 올 뿐이었다.

마치 저 높은 우주에서 위성을 통해 지구를 내려다보는 것 같달까?

차이가 있다고 한다면, 사자유희의 시야는 하늘 너머가 아닌, 땅 아래의 깊숙한 곳에서 대지를 올려다보는 감각이란 점이었다.

이에 적응하는 데 적잖은 시행착오가 있긴 했다.

하지만 알파 세상에서 연습을 거듭한 결과, 이제는 백발백중의 저격 솜씨를 보여 주며, 세계를 놀라게 할 수 있었다.

특히, 목표물을 지정하는 스킬로 인해, 한번 제대로 인지하고 난 이상, 어지간하면 놓칠 일이 없기도 했다.

그리고 이 같은 말도 안 되는 저격 솜씨 때문일까?

최근 들어 새로운 이명이 추가되었다.

[데스나이퍼!]

일부러 그의 저격 장면을 세상에 보여 준 덕분인지, 반응은 실시간으로 올라왔는데, 이를 위해 사용된 시스템은 왕실 자체적으로 운영되는 거였다.

거의 24시간 풀로 왕실의 일상이나 관련 내용들을 홍보하는 사이트가 있는데, 이를 통해서 마루의 저격을 라이브로 내보낸 것이다.

이는 성녀 레아와 트리니티 여왕이 합심해서 작업을 한 부분이기도 했다.

마루의 활약과 공헌도가 거짓이 아니기에, 이 같은 밀어주기는 충분한 위력을 발휘했고, 그 결과는 충분한 보상으로 이어졌다.

훈장 임명식!

기어이 정식으로 여왕의 발표가 이뤄졌다.

최초 홈페이지에 언급되었던 것과 달리, 2등급 훈장인 KBE로 하향 조정됐지만, 당시와 달리 반발은 그리 크지 않았다.

그 짧은 시간 동안 마루의 가치가 재평가되며, 많은 부분에서 여론이 변화한 까닭이었다.

당연하게도 이 일을 가지고 한국에서도 난리가 났다.

―그냥 설레발인 줄 알았더니. 정말로 작위를 얻는구나.

―그래 봤자 명예 훈장 아님?

―시민권 얻으면 바로 작위도 따라옴.

―기껏해야 3~4등급 훈장일 줄 알았는데.

―솔직히 5등급만 받아도 화제성이 엄청났을 텐데, 워우… 2등급이라니.

―KBE가 Korea Best Egg라던데 사실이냐?

―미친 새끼!

―에그는 뭐냐?

―에구, 정신병 있네.

마침 이 댓글들을 읽어 버렸던 마루는, 조용히 팬티를 열어 본 뒤 코를 쓱 훔쳤다.

‘스탯은 항상 옳다!’

어쨌든 이런 식으로 전체적인 분위기가 긍정적으로 변화하긴 했지만, 여전히 부정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이들도 상당했는데, 개중에는 이런 감정적인 부분을 외적으로 표현 가능한 이들도 여럿 끼어 있었다.

이면의 주민!

영국 내에서 활동하는 여러 무법자들이 마루를 향해 불편하고 불쾌한 시선들을 보내기 시작한 것이다.

“외국인, 그것도 동양인 따위에게 대영제국의 작위를 내린다고? 하… 웃기지도 않는군.”

“5급 훈장도 과분하건만. 건방진 놈!”

“트리니티 여왕도 무슨 생각인 건지.”

“쯧! 체이스 왕세자만 살아 있었어도.”

트리니티 여왕 이전에 왕위 계승 1순위로서, 그 역시 각성자로서 상당한 활약을 한 헌터이기도 했다.

하나, 그 뛰어난 활약이 독이 되어, 스스로를 돌보지 못하게 만들었고, 종래에는 던전 속 칠흑빛 대지 위에 무덤을 만들고야 말았다.

트리니티 여왕을 향해 불만이 많은 이면의 주민이 상당했는데, 클레어나 이반나가 그러하듯, 그녀 역시도 젊을 적에는 이면의 문제아들과 적잖은 마찰이 있었던 탓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체이스 왕세자는 던전에 좀 더 집중했으니, 이들 입장에선 좀 더 나은 후계자였으리라.

“이대로 내버려 둘 생각이야?”

“안 되지. 동양인 따위에게.”

“손을 써야겠지?”

“어떻게?”

이 부분에서 잠시 막혀 버렸다.

건어택이나 데스나이퍼로서의 마루는 무섭지 않았다.

하지만 트랩퍼는 이야기가 달랐다.

‘설마, 레어를 들고 다닐 줄이야.’

‘빌어먹을 이동요새!’

‘랭커를 잡아야 한다니.’

우연인지 필연인지 마루에게는 데스나이퍼 말고도 또 다른 이명이 하나 더 붙었는데, 그게 마침 마루의 새 스킬인 이동요새와 같은 명칭이었다.

“방법이 전혀 없는 건 아니야.”

누군가가 이야기했고, 모두가 귀를 기울였다.

“레메게톤의 요원에게 들은 이야기인데, 트랩퍼의 이동요새는 발동까지 어느 정도 시간이 필요한 것 같더라고.”

“호… 그렇다는 건?”

“기회만 잘 노리면 된다는 소리?”

“한번 찔러 봐?”

문제아들의 눈에 불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D―day는 임명식 당일로 하지.”

“대규모 퍼레이드까지 준비 중이라니까. 그때를 노리면 되겠네.”

“좋아. 그러면 그때, 애들 좀 모아서 한 번에 가는 거다.”

그렇게 이면의 한편에서 불법 모임이 이뤄지고, 잠시간의 시간이 흐른 뒤, 레메게톤의 총장실.

“갔던 일은?”

데자르가 그리 물으며 몰래 온 손님을 맞는데, 놀랍게도 그는 앞서 불법 모임에서 이동요새의 정보를 풀어내며 분위기를 이끌던 사내였다.

그가 비릿한 미소와 함께 입을 열었다.

“임명식 당일로 일정을 잡았습니다.”

이에 데자르 역시 비슷한 미소를 띠며 말했다.

“퍼레이드라… 축제에는 역시 피 분수가 어울리지.”

서늘한 한기가 총장실 가득 휘몰아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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