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로그인 더 헌터-280화 (280/325)

#6. 축제!

#6. 축제!

[인디안 존슨을 주시해라!]

마계에서 날아든 하르칸의 메시지였다.

‘으음… 사일론과 존슨이라.’

데자르는 이를 곱씹다가 가만히 생각했다.

‘정마루, 그놈이야말로 정말 위험한 놈인데.’

신의 가호와 사자의 축복을 한 몸에 품고 있는, 너무나도 끔찍한 혼종이 아니던가.

여전히 그의 본능은 마루를 경계하라 외쳐 댔지만, 하르칸의 명을 거역할 수는 없는 법이다 보니, 존슨을 향한 감시망을 한층 높이도록 지시할 수밖에 없었다.

사일론이 함께하고 있다는 걸 생각한다면, 확실히 경계 대상인 것도 확실했다.

물론, 그 와중에도 마루에 대한 감시를 소홀히 하진 않았는데, 데자르 본인은 인정하지 않을지 모르지만, 그는 사실 많은 부분에서 예전과 달라지고 있는 중이었다.

마계에 머물던 당시였더라면?

그의 사고나 의견 따윈 과감히 지워 버린 채, 하르칸의 명령을 최우선으로 삼으며, 모든 걸 그쪽으로 움직였을 터였다.

하지만 지금은 일말의 여지를 남겨 놓으며, 개인적인 생각의 끈을 잡고 늘어지고 있었다.

스스로도 느끼지 못하는 사이 발생하는 미묘한 변화!

내적 갈등의 요소였기에 외적으로는 전과 다를 게 없었고, 그 때문에 주변에서는 알아챌 수가 없는 그런 미세한 변화였다.

하지만 그는 분명 조금씩 달라지고 있었다.

이런 사태를 방비하고자 다른 도플갱어들을 불러들여 새로운 호위대인 아르스 게티아를 만들었지만, 어느 틈엔가 그들에게마저 감추려 들고 있는 자신을 느꼈다.

분명히 느끼고 있었지만 모른 척 외면할 뿐이었고, 그럴 때면 흐릿하니 바이퍼의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큭… 큭큭큭큭….

최근 들어서는 별다른 외침 없이, 저처럼 웃어 대기만 할 뿐이었는데, 데자르는 마치 그 웃음소리를 음악처럼 즐기며, 조용히 자신의 사고를 앞세운 채, 색다른 의지를 일깨우기 시작했다.

―크흐흐흐흐흐…….

* * *

비록 명예 훈장이라고는 하나, 무려 2등급의 KBE가 하사되는 자리였다.

당연하다고 해야 할까?

“우리도 초대됐다고?”

“그럼 당연하지.”

마루의 부친과 모친 그리고 가족들을 설레는 마음으로 다가올 크리스마스를 기다렸다.

이미 영국 왕실 측에서 모든 교통편을 비롯한 일정 등을 준비해 놓은 상황이다 보니, 그저 몸만 움직이면 되는 상황이었다.

심지어 멋들어진 예복까지 준비되었다고 하니, 조금 과장해서 속옷 한 벌도 챙겨 갈 필요가 없었다.

그들 가족이 설레는 마음으로 여정을 준비한다면, 반대로 복잡한 심경으로 여정을 꾸리는 이들 역시 상당했다.

거기에는 혜성 길드 역시 존재했는데, 이제는 완벽히 갑을 관계가 역전해 버린 상황이라고 해야 할까?

“용병 계약이 이렇게 발목을 잡네.”

김연희는 그리 투덜거리며 이선희를 바라봤다. 잊을 만하면 나오는 잔소리다 보니, 고개를 절레절레 젓는 것으로 대충 넘겨 버린 이선희가 일정표를 보며 물었다.

“길드장이나 그룹에서 내려온 이야기는 없고?”

“별로.”

어깨를 으쓱인 김연희가 말했다.

“그 작자들도 상황 파악을 한 거겠지. 트랩퍼와 섣불리 접촉하려 들기보단, 그냥 우리를 믿고 기다리는 게 낫다는 걸. 게다가 어설피 움직이기엔, 이미 분위기가 우리 쪽으로 완벽히 넘어와 버렸잖아.”

이선희가 랭커가 되고, 김연희가 그 영향력을 맘껏 휘두르며 길드 내부를 휘저은 결과, 길드장의 힘은 크게 축소돼 버렸고, 그룹 측의 입김도 거의 사라지다시피 한 상황이었다.

“듣기론 새로운 길드를 만든다는 이야기도 있긴 하던데, 그거야 예전부터 있던 소리니까.”

과거, 혜성 길드가 목줄을 끊으려는 움직임이 보일 즈음부터, 이미 그룹 차원에서는 새로운 사냥개를 비롯한 대항마를 준비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 어느 하나 혜성 길드에 버금가는 성장치를 보여 주지 못했던 터라, 할 수 없이 혜성 길드의 내부를 흔들면서 목줄이 풀리지 않게 꽈악 붙들어 매고 있던 것인데, 이선희의 랭커 각성으로 모든 상황이 틀어져 버렸다.

“흐흐… 회장 영감 손주가 제대로 성장하면, 언니와 날 쫓아낼 생각이었겠지만, 그 코찔찔이가 크려면 아직 한참 남았지.”

표현과 달리 혜성 그룹 김대성 회장의 손자는 30대를 코앞에 둔, 제법 나이가 찬 사내였는데, 그룹의 모든 지원을 받으며 착실히 성장을 거듭하는 중이었다.

하나 그의 성장이 이선희의 각성을 따라잡지 못했다.

“강호구 정도만 됐어도, 좀 위험했을 거야.”

혜성 그룹이 라이벌인 태호 그룹이 새롭게 내세우고 있는 젊은 신예, 20대의 나이에 이미 거대 길드의 수장직을 맡은 데다가, 무리 없이 이끌어 가는 것만이 아니라, 더 나아가서 여러 길드와의 협연까지 이뤄 내는 존재였다.

토종 7대 길드의 연합체인 칠성제 역시 강호구가 거의 주도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지 않던가.

“뭐, 상황이 상황인 만큼, 이번에는 정말로 새 길드에 힘을 실어줄지도 모르겠지만.”

혜성 그룹의 지원으로 성장한 몇몇 후보군이 머릿속을 스쳐 갔지만, 이내 어깨를 으쓱이며 알 바 아니라는 태도를 보이는데, 이는 과거와 달리 더는 불안하지 않기에 나오는 여유이며 당당함이었다.

“어쨌든 우리는 언니가 가는 걸로 길드장과도 이야기가 끝났으니까. 그렇게 알고 좀 쉬다 와.”

이에 이선희는 일정표의 공백을 보며 고개를 끄덕이다 물었다.

“더 문제 되는 건 없지?”

“그래. 그러니까 가서 트랩퍼나 확실히 잡아 와. 몸값이 너무 비싸져서 갑자기 1팀장 자리 안 한다고 하면 골치 아프니까.”

이미 마루에게 맞춰서 많은 부분의 조정이 들어가고 있는 상황이 아니던가.

“몸값을 다시 측정해야겠지만, 그 정도는 그룹 본사에서 뜯어내면 되는 거니까.”

언젠가는 그룹과 갈라질 날이 올 것을 알았지만, 그때까진 최대한 우려먹고 뽑아 먹어야 하지 않겠는가.

“걱정 마. 상황이 달라졌다고 태도가 달라지는 녀석은 아니니까. 하나 성격에 그런 엉망인 남자하고 사귈 리도 없고.”

“사람 일이란 게 어찌 될 줄 알고.”

그 때문에 이선희를 직접 보내는 것이기도 했다. 연신 걱정할 것 없다고 달랜 뒤에야 새로운 화젯거리로 넘어갈 수 있었다.

“것보다 청계산은 어떻게 된 거야?”

그 물음에 김연희가 앞서 다녀왔던 마수지대를 떠올리며 눈살을 찌푸렸다. 너무 엉망이 되어 버렸던 터라 명확한 이유를 파악하긴 어려웠다.

남다른 눈을 지닌 탓에, 이런 조사에는 이선희보다 김연희가 더 나았다. 하지만 그런 그녀의 눈으로도 뭔가를 찾아내진 못했다.

그저 어마어마한 괴수들의 격전이 있었고, 그로 인해서 뜻밖의 웨이브 현상이 발생했다는 게 알아낸 전부였다.

다행이라 한다면 민간 피해는 발생하지 않았다는 점인데, 기본적으로 마수지대와 같은 장소는 헌터들의 주된 활동 장소다 보니, 일찌감치 이상을 알아채며 대비를 할 수 있었다.

물론, 민간 피해를 대신하여 헌터들의 피해가 상당하긴 했지만, 생사의 경계를 살아가는 업계다 보니, 이는 어쩔 수 없는 부분이라 할 것이다.

그나마 한 가지 발견한 게 있다면?

“왠지, 존슨이 그곳에 있었을 것 같은데… 확신은 못 하겠네.”

어렴풋이 그 흔적을 읽은 것인데, 너무 크게 흐트러진 현장이다 보니, 그녀의 두 눈으로도 오러의 잔재를 제대로 캐치하기가 어려웠고, 그 때문에 말끝을 흐린 것이다.

“이반나 그 아줌마한테 한번 물어보고 싶은데, 요즘 들어 바빠서 통 만나기가 어려우니.”

따로 임무라도 수행하고 있는 것인지, 아예 연락 자체가 안 되는 경우가 많았다.

“정말로 존슨이 거기 있었다면… 누구와 붙은 걸까?”

김연희의 의문에 이선희는 선뜻 답을 할 수가 없었다. 마수지대를 엉망으로 만들며 강제 웨이브를 발생시킬 정도의 격전이었다.

최소 랭커급의 마찰이 빚어졌을 터, 그 때문에 더더욱 말을 아끼게 되는 거였다.

“후… 이 부분은 내가 좀 더 알아볼 테니까. 언니는 마루 그 인간이나 제대로 잡아 둬. 이참에 휴가도 좀 즐기고.”

김연희의 말에 옅은 미소를 보이던 이선희가 문득 창밖으로 시선을 던져 보냈다. 12월도 어느새 중순을 넘긴 어느 날, 새하얀 눈송이가 하늘하늘 떨어지고 있었다.

* * *

영국 왕실의 의뢰였던 버킹엄 주변의 방벽 강화가 끝났다.

하나 마루는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아발론으로 들어가려면.’

좀 더 많은 것들을 해 보일 필요가 있었고, 그 결과 그는 과감히 거리로 나갔다.

“위험합니다!”

“밖에는 마루 님을 노리는 무리가 있습니다.”

“레메게톤의 블랙리스트 최상부에 마루 님의 이름이 올라가 있단 소식입니다.”

“버킹엄에 계시는 게 가장 안전합니다.”

그를 따르는 호위대가 급히 막아섰지만, 마루는 클레어와의 면담으로 이를 해결해 버렸다.

호위대를 뒤로하며 당당히 버킹엄을 나서는데, 그런 그의 곁으로는 놀랍게도 클레어가 함께하고 있었다.

그녀가 움직이기에 다른 이들도 납득하며 물러난 것이다.

호위대의 대부분이 공항 사건의 현장에 있었던 터라, 마루의 약점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

이동요새!

발동만 하고 난다면 랭커급의 전력도 무리가 아니지만, 거기까진 약간의 시간이 필요하단 것인데, 클레어가 함께한다면 그 정도 시간은 충분히 만들어 줄 수 있을 터였다.

호위대도 함께하고자 했지만, 괜히 우르르 몰려다니면 이목만 끌 수 있음에, 따로 소수의 인원만 숨어서 뒤따르기로 했다.

클레어는 내심 이 상황이 달갑지 않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를 따를 수밖에 없음을 알았다.

[최대한 그에게 협조해 줘.]

무려 트리니티 여왕이 따로 언질을 줬기 때문이었다.

‘아발론!’

그곳으로 들어가기 위한 입장권을 위해, 마루에게 합당한 공적이 있어야 한다는 것인데, 이번 역시 그 같은 이유로 길을 열어 준 거였다.

‘대피소까지 작업을 해 준다고 할 줄이야.’

반대할 이유도 없었다.

왕실 측에서 따로 의뢰를 생각하던 작업까지 선뜻 나서기로 한 것인데, 이는 대피소의 방벽 강화였다.

그 범위가 런던으로 한정되긴 하겠지만, 그것만으로도 시민들의 안전도가 올라가며 안정감 역시 상승할 것이기에, 등을 떠밀어서라도 부탁하고 싶은 일이 아니던가.

마루의 안전을 생각한다면 달갑지 않지만, 시민들의 안전을 생각한다면 너무도 반가운 일이기에, 여러모로 복잡한 심경 속에서 일정이 시작됐다.

나름대로 위장을 한 채 버킹엄을 나온 뒤, 런던 곳곳의 대피소를 향해 움직였다.

“하루아침에 끝낼 수 있는 작업이 아니니까. 일단 좀 돌면서 우선순위를 정해야겠네요.”

그리 말하며 마루는 안내를 부탁했고, 클레어가 앞장서며 런던의 주요 대피소들로 이끄는데, 마루는 대피소가 아닌 주변 지리나 지형 등을 좀 더 중점적으로 살피고 있었다.

‘바글바글하네.’

외출과 동시에 수많은 시선들이 따라붙는 걸 느꼈는데, 위장 따위는 저들에게 의미가 없다는 듯, 줄줄이 따라붙고 있었다.

시민들의 소란을 피하기 위한 위장일 뿐이기에, 이 부분에 대한 아쉬움은 그리 크지 않았다.

짐작건대 각국 정보 단체에서 붙인 요원들이리라.

하지만 개중 상당히 불쾌한 시선들도 여럿 꽂혀 드는데, 이들은 왠지 이면의 문제아, 그중에서도 레메게톤과 관련된 범죄자들이란 느낌을 받을 수 있었다.

그리고 마루의 이번 외출의 목적 역시도 저들과 관련되어 있었다.

‘퍼레이드 루트가… 저기서… 저쪽…….’

따로 성녀 레아를 통해 임명식 순서를 비롯하여, 관련 동선들을 전해 들은 만큼, 거리를 걸으며 그 루트를 집요하게 파악하며 걸었다.

남다른 스탯으로 활성화된 머릿속으로 런던 시내의 지도가 그려져 나갔다.

그저 단순한 이미지로써 아는 게 아닌, 그가 직접 보고 살피며 뇌리에 때려 박은 생생한 현장의 정보였다.

그렇게 매일같이 외출을 거듭하고, 그 와중에 머릿속으로 런던의 상세 지도가 그려지는 가운데, 조금씩 런던 대피소의 강화가 이뤄지기 시작했다.

이 같은 작업이 막바지에 이르렀을 즈음, 영국 시민들을 들썩이게 만드는 행사가 시작되었다.

훈장 임명식!

축제의 날이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