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오픈 더 게이트!
#10. 오픈 더 게이트!
커난!
그는 존슨 패밀리의 일곱째라 할 수 있는 사내로서, 조금 독특한 스킬을 보유한 존재였다.
인챈트!
바로 장비의 능력을 강화시키는 재주를 지닌 것인데, 그 때문에 일행들 중 가장 화려한 무구를 착용하고 있기도 했다.
은퇴를 결심한 것도 그와 비슷한 이유였다.
던전보다는 다양한 장비를 만지고 두드리며, 마치 대장장이처럼 무구에 집중해야 했던 까닭이었다.
수많은 장비에 그의 숨결을 불어 넣고, 또 호흡을 나누며 각 무구와의 교류를 이어 오길 한참, 드디어 벽을 넘어 랭커의 경지에 이른 것인데, 그 특수한 재능만큼 효과도 아주 특별했다.
우웅….
평범한 돌멩이를 손에 쥐었다.
하나, 거기에 인챈트가 걸리는 순간, 이는 아주 특별한 무구가 된다.
[바위처럼 단단하게]
돌은 무게부터 시작해서 강도까지, 어마어마한 상승효과를 이룬 채 그의 손을 떠나갔다.
자그마한 돌멩이였던 탓일까?
이를 무시하며 가벼이 쳐 내려던 습격자가 이내 말도 안 되는 무게에 짓눌리며 팔이 부러지고, 뒤이어 가슴뼈까지 함몰되며, 그대로 튕겨 나가더니 요란하게 바닥을 뒹굴었다.
그 와중에 고개가 이상한 방향으로 꺾이는 게 보였다.
즉사였다.
“스트라이~ 크!”
시원한 외침과 함께, 다시금 커난이 와인드업 자세를 취했다.
* * *
다비드는 존슨의 여섯 번째 형제로서, 어찌 보면 커난과는 상극의 위치에 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닌 사내였다.
디버프!
그는 스킬의 효과를 죽이는 능력을 지닌 탓인데, 랭커급의 디버프는 커난의 인챈트 효과를 바닥까지 떨어트릴 수도 있었다.
실제로도 그 둘은 마찰이 잦았는데, 재미있는 건 그러면서도 자주 어울린다는 점이었다.
과거, 존슨과 데일처럼 함께 어깨동무를 하며, 마치 도장 깨기를 하듯 클럽을 거닐던 시절도 있을 정도였다.
은퇴를 한 것도 비슷한 이유였다.
커난이 인챈트를 위해 다양한 장비를 만지고 다닐 때, 그의 곁을 꼬옥 지키면서 열심히 디버프를 건 것이다.
서로의 재능을 마찰시키며 성장판을 자극했고, 그 결과가 나란히 벽을 넘는 것으로 드러났다.
그가 시선을 돌려 전방의 클레어를 바라보더니, 양손을 어지러이 흔드는데, 그 순간 클레어의 눈가에 이채가 스쳐 갔다.
디버프의 디버프!
그녀에게 걸린 압박을 풀어 주고 있던 것이다.
‘휘유~! 몇 놈이 움직인 거야?’
상당수의 다중 중첩이 걸려 있던 터라, 랭커급의 능력으로도 전부 풀어내기가 쉽지 않았다.
‘팀으로 움직인 것 같은데.’
로테이션을 돌리듯 하나를 풀면 하나가 덧씌워지는데, 기본적인 수준의 차이라고 해야 할까?
수적 열세인 건 분명했지만 랭커의 위엄을 보여 주듯, 다비드는 로테이션의 순서를 착실히 따라잡았고, 그에 따라 클레어에 안색도 밝아지는 걸 확인할 수 있었다.
“지금!”
파아아앙….
그의 귀에만 들리는 묘한 파동과 함께, 클레어의 신형이 훌쩍 뛰어올랐다.
우리에 갇혔던 맹수가 풀려나는 순간이었다.
파파파파파팍….
디버프에 의해서 겨우 두어 개만 흩날리던 물의 검이 순식간에 배의 배로 늘어나며, 전장을 어지러이 휘젓기 시작했다.
* * *
존슨 패밀리의 다섯째라 할 수 있는 사내, 바하마는 루시아와 데일이 어깨를 나란히 하는 모습을 보며, 입가에 진한 미소를 그려 보였다.
한데, 기이하게도 눈가에는 묘한 씁쓸함이 묻어 나오고 있었다.
1.5세대와 2세대로 나뉘지만, 사실 루시아와 바하마의 활동 시기는 비슷했고, 그 때문에 자주 부딪친 경험도 많았는데, 그러다 빠져들게 된 것이다.
바하마는 분명 멋진 남자였다.
외모도 그렇지만 지닌 바 재능까지도 여러모로 매력적인 요소가 다분했다.
단지, 루시아는 그보다 먼저 데일을 만나 버렸고, 일찌감치 그에게 빠져 버렸다는 게 문제였다.
냉정 침착의 포커페이스가 매력적인 사내, 데일은 멋진 그가 봐도 확실히 잘난 남자가 아니던가.
게다가 그를 위해서 루시아의 마음을 제대로 받아 주지 못할 만큼, 은근한 배려심도 있었다.
뒤늦게나마 상황을 인정하며 물러났고, 둘이 잘되기를 바라는 마음도 진짜였다. 단지, 옛 감정이 슬그머니 올라온 탓에, 가슴 한편이 쓰린 건 어쩔 수가 없었다.
“푸후우우우우….”
기나긴 숨결 속에 이 같은 감정을 털어 내지만, 얼마간의 찌꺼기가 남아서 입맛을 쓰게 만들었는데, 이를 위한 입가심처럼 습격자들이 잔뜩 늘어서 있었다.
그가 자신의 장비를 꺼내서 어깨 위에 걸쳤다.
바이올린!
감정의 찌꺼기는 음악과 함께 날려 보내면 될 뿐이었다.
[선율의 마법사]
언젠가부터 헌터 활동보단 공연이 더 많아졌던 사내가 힘차게 활을 그었다.
수많은 여성을 흔든 연주가 시작됐다.
* * *
시민과 이면의 주민들 사이로 건물이라는 경계가 생겨 버렸다.
물론, 억지로 밀고 들어가려 한다면 가능하겠지만, 현재 이곳에는 무수히 많은 랭커들이 자리하고 있는 만큼, 결코 쉽지는 않을 터였다.
레메게톤의 요원들은 여러모로 꼬여 버린 상황 앞에서 입술만 짓씹어 댔다.
‘성녀가 왜 저기서 나오는데?’
교황청의 특수 임무에 의해 자리를 비웠다는 것 정도는 알고 있었건만, 설마 그게 행사 참여일 줄이야.
게다가 존슨은 또 뭔가?
“이게 어떻게 된 거야? 분명히 한국에 있다면서?”
다급히 관련 부서의 요원에게 연락을 취하지만,
―이반나와 함께 데이트 중입니다.
도통 이해할 수 없는 대답만 날아들 뿐이었다.
심지어 사진까지 함께 전송되는데, 거기에는 정말로 존슨과 이반나의 실시간 현황이 보고되고 있었다.
거기서 답이 나왔다.
‘가짜구나!’
지금 이 현장에 있는 존슨과 한국에 있는 존슨 중, 과연 어느 쪽이 가짜일까?
패밀리들의 모습을 통해, 이곳이 진짜고 한국이 가짜라는 걸 유추하는 건 그리 어렵지 않았다.
―이반나에게 가짜를 붙여선, 감시자를 속인 거야.
―젠장! 이선은 트랩퍼의 레어에 있어서 파악하기가 어려웠어.
―존슨 패밀리는 워낙 폐쇄적인 놈들이라, 감시망 구축이 쉽지 않다고. 설마 저놈들이 한꺼번에 움직였을 줄이야….
―완전히 망했네.
데자르는 시계탑의 정상에서 이 모든 보고를 전달받는 가운데, 상황이 완전히 어그러졌다는 걸 인정했다.
그나마 다행이라 한다면, 사흑련 측의 요원들이 발을 뺄 수 없는 상황으로 인해, 울며 겨자 먹기로 칼을 뽑아 들었다는 점이었다.
여차하면 판을 뒤집고 무대를 장악하려던 만큼, 사흑련이 보내온 전력은 실로 상당했다.
그는 고심 끝에 결정을 내렸다.
“문을 열어라!”
이에 당황하는 무전이 날아들었다.
―총장님? 그건, 안 될 이야깁니다.
감히 그의 의견이 토를 다는 이가 있었다.
측근이자 아르스 게티아의 수장인 자이로였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하르칸님의 허락이 떨어져야만….
이를 전부 들어 줄 생각이 없던 듯, 데자르가 말을 자르며 외쳤다.
“내 말이 곧 그분의 뜻이다!”
합당한 이유도 입에 담았다.
“저기 그분이 대적자로 지정한 존슨이 있다. 지금 이 기회를 놓칠 생각이냐? 사흑련과 이면의 주민들까지 잔뜩 끌어들인 무대다. 존슨을 잡을 절호의 기회란 말이다!”
그 말처럼 판의 규모가 크기는 했다.
자이로는 갈등했다.
그의 역할은 바이퍼와 일체화된 데자르의 폭주를 막는 것이지 않던가.
과연, 지금 이 상황을 폭주로 봐야 하는 걸까?
상황만 놓고 본다면 데자르의 판단도 틀린 건 아니었다.
존슨 패밀리의 등장 이후, 상황은 급속도로 나빠지고 있었지만, 사흑련의 등장으로 다시금 균형이 맞춰졌다.
변수가 추가된다면 흐름을 완전히 가져올 수 있을지도 몰랐다.
자이로는 결국 무전을 날렸다.
―문을 열겠습니다.
만족스러운 대답이었다.
* * *
자이로는 생각했다.
‘설마, 영혼 침식의 부작용일까?’
무전으로야 고개를 숙였지만, 꾸준한 의심이 필요했다.
당연했다.
‘제 육신을 빼앗고 인생마저 강탈당했으니.’
바이퍼의 혼은 진한 원한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대개는 복수의 기회가 없지만, 바이퍼는 영혼의 융합 과정을 통해, 한 방 먹일 기회를 얻은 것이나 다름없었다.
물론, 데자르 역시 나름의 방비를 하긴 했지만, 과연 그게 제대로 먹혔을지는 미지수였다.
이유인즉,
‘여긴 마계가 아니니까.’
자이로는 만약의 사태를 대비하고자, 아르스 게티아에 별도 지시를 내렸다.
그러는 사이, 문이 열렸다.
* * *
애애애애애앵….
그건 너무도 갑작스러운 알람이었다.
“게이트 경보라고?”
“이 타이밍에?”
“젠장! 골치 아프게 됐네.”
모두가 눈을 동그랗게 뜰 때, 더욱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우웅… 웅… 우웅….
곳곳에서 게이트가 열리기 시작한 것이다. 경보 알람이 울릴 수는 있지만, 그게 이리 다급하게 오픈되는 건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헉! 이게 무슨 일이야?”
“알람 뜨자마자 열린다고?”
“뭐가 어떻게 된 건데?”
더욱 놀라운 건 게이트의 숫자였다.
“한둘이 아니잖아?”
“저게 몇 개야?”
“다중 게이트라고?”
“빌어먹을! 모여! 뭉쳐!”
각 그룹에 맞춰 끼리끼리 모여드는 가운데, 게이트에서 몬스터들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헌터와 이면의 주민들 모두 난리가 났다.
지금 이 순간만큼은 적아의 구분 없이, 오로지 몬스터라는 하나의 공통된 인류의 대적자를 향해 날을 세웠다.
* * *
데자르는 눈살을 찌푸렸다.
“흐음….”
게이트의 숫자가 너무 적었던 것인데, 그 이유를 유추하는 건 그리 어렵지 않았다.
‘트랩퍼와 성녀!’
그 둘이 만들어 낸 빛의 결계가 활짝 열려야 할 문을 절반가량 가린 것이다.
맘에 들지 않았다.
‘트랩퍼! 역시 그놈이 문제였어.’
두 눈 가득 알 수 없는 광기가 번뜩일 때였다.
‘음?’
무언가가 시계탑으로 빠르게 접근하는 걸 느꼈다.
‘어떤 놈이….’
오래지 않아 그 정체를 확인할 수 있었는데, 실로 뜻밖의 인물이었다.
“…아이언슈트?”
최초의 멀티 스킬 각성자라는 타이틀을 통해, 전 세계를 떠들썩하게 만든 화제의 랭커가 허공을 박차며 날아오고 있었다.
파파파팡….
그는 단숨에 그가 있는 시계탑까지 다다르더니, 부드럽게 착지하며 데자르와 시선을 맞춰 왔다.
이어지는 대치 상황.
무거운 침묵 속에서 먼저 정적을 깬 건 데자르였다.
“하… 대단하군!”
뜻밖의 감탄사와 함께 데자르가 웃음을 터트렸다.
“큭큭큭큭… 설마, 트랩퍼의 정체가 아이언슈트였다니.”
가면 너머, 마루의 눈가에 옅은 경련이 일었다. 설마 그의 정체가 발각될 줄은 몰랐던 것이다.
이 상태에서는 체형만 바꾸는 게 아니라, 분위기를 비롯하여 포스의 기질까지 변형시키며 움직이기 때문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들킨 것이다.
이는 도플갱어 일족의 특성 때문이었는데, 데자르는 마루의 체형이나 기운을 읽은 게 아니라, 그가 지닌 재능의 깊이를 살핌으로써, 정체를 파악한 거였다.
물론, 마루로서는 알 수 없는 부분인 터라, 잠시 자신의 위장에 대한 부분으로 머릿속이 헝클어져야만 했다.
이를 아는지 모르는지, 데자르는 정말 즐겁다는 듯 웃었다.
“크하하하하!”
그도 그럴 수밖에 없는 게, 막 마루를 찾아 움직이려는 찰나가 아니던가. 한데, 상대편에서 먼저 나타나 준 것이다. 당연히 기쁠 수밖에 없었다.
흥미로웠다.
“전에는 셋이서도 날 어쩌지 못한 것 같은데. 혼자 온 건가?”
이에 마루도 웃어 버렸다.
“그때는 봐준 거고. 솔직히 너도 눈치 깠잖아. 그러니까 적정선에서 액션만 취하다가 뺀 거 아니야.”
정답이었지만 이를 그대로 밝힐 이유는 없었다.
쿠쿠쿠쿠….
마루가 본격적으로 기세를 드러내고, 그에 맞춰서 데자르 역시 한껏 기운을 끌어올리기 시작했다.
드드드드드드….
그 와중에 문득 데자르는 도플갱어의 본능이 살아나는 걸 느꼈다.
‘만약, 저 재능을 훔칠 수만 있다면?’
기이한 열망이 솟구쳤다.
‘하르칸님… 하르칸도 더는 무섭지 않을 거야!’
도플갱어의 본능과 바이퍼의 원한이 절묘하게 어우러지며, 그토록 경계하던 일이 발생하고 있었다.
츄릅….
데자르가 군침을 삼키며 마루를 노려보고, 그 눈빛에 불쾌감을 느낀 마루가 먼저 신형을 화살처럼 쏘아 보냈다.
콰아아아아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