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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멀티vs멀티!

#11. 멀티vs멀티!

전장에 있던 모두가 느꼈다.

‘이건… 엄청나군!’

‘랭커들인가?’

이곳 런던 시내 어딘가에서 랭커들의 격전이 펼쳐진 것이다. 당장 이 자리에 모인 랭커들만 해도 두 자릿수에 이르는 만큼, 크게 이상할 일은 아니라고 여겼다.

전장의 일원들 모두 상당한 실력자들로 이뤄져 있던 터라, 랭커의 기세를 읽어 내는 건 그리 어렵지 않았다.

그 파동의 중심지를 찾는 건 그리 어렵지 않았다.

쿠르르르르릉….

저 멀리 시계탑 방향의 하늘이 오색찬란한 무지갯빛으로 물들고 있는 게 보인 까닭이었다.

‘이게 데자르라는 놈인가.’

존슨은 적잖이 감탄하며 날아드는 파동을 읽었다.

짐작하건대 랭커들 중에서도 최상위권, 어쩌면 벽을 넘어 초월하기 전, 그의 수준은 돼야 견줄 수 있는 수준이라 여겼다.

그 때문에 더욱 흥미로웠다.

‘감당할 수 있겠냐?

다른 파동의 주인, 상대가 마루라는 걸 알기 때문이었다.

‘어디, 그동안 또 얼마나 자랐으려나.’

기대감에 심장이 뛰었다.

한 팔 거들러 가 볼까도 싶었지만, 이내 고개를 저으면서 전장에 집중했다.

데자르가 강적인 건 사실이나, 마루 역시 만만찮은 실력자였고, 그의 성장을 위해서라도 이런 시련과 격전을 필수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곳 전장도 일손이 필요했다.

‘휘유… 어마어마하네.’

하나의 게이트에서 여러 몬스터들이 등장하는 다중 추돌성 게이트는 경험해 봤지만, 한 장소에 이처럼 많은 게이트가 동시에 등장하는 건 처음이었다.

물론, 상황 자체는 이와 비슷한 경우가 없진 않았다.

몬스터 웨이브와 대격변!

굳이 비유하자면 몬스터 웨이브 쪽에 더 가까운 듯싶었는데, 규모 자체는 그에 비하기 어려웠다.

하지만 쏟아지는 괴수의 수준에선 이야기가 달랐다. 어느 한 군데서도 하급의 몬스터는 보이질 않았다.

‘C급도 아니고, 최소 B급이라고?’

A급도 즐비했다.

‘규모는 웨이브에 가깝고, 퀄리티는 대격변에 가깝다라….’

앞서 기이한 경보부터 시작해서 급속적인 게이트 오픈까지, 이 모든 상황이 우연인 걸까?

‘데자르… 도플갱어….’

상대가 상대이다 보니 자연스레 의문이 들 수밖에 없었다. 이런 그의 상념을 깨트리듯, 저 멀리서 하늘을 찢을 듯한 어마어마한 천둥성이 터져 나왔다.

콰르르르르릉….

전장을 전율하게 만드는 파동이었고, 아주 잠시지만 인간과 괴수 모두가 숨을 멈췄던 순간이었다.

* * *

국가에서 주최하는 행사였다. 당연하게도 수많은 방송국에서 움직이며 현장을 촬영하는 중이었다.

이는 비단 영국에만 한정된 게 아니라, 세계 각국에서 파견 나온 여러 기자들도 함께하고 있었고, 다양한 스트리머 BJ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 때문일까?

갑작스러운 알람에 다중 게이트 그리고 상위 몬스터들의 대거 출현까지, 이 혼란스러운 상황 속에서도 현장 영상만큼은 그 어느 때보다 풍족하게 송출될 수 있었다.

그렇기에 BDC의 파스톰은 현장을 벗어났다.

지난 공항 사건에서 크게 한 건 올린 영향이라고 해야 할까?

‘이 정도로는 부족해.’

너무나 많은 카메라가 따라붙는 현장은 그를 충족시킬 수 없었다. 그래서 멀리 파동이 밀려드는 장소를 향해 움직였다.

‘랭커 대전!’

초인들 간의 격돌이었고, 그만큼 위험한 장소였다.

그 때문에 다른 기자들은 선뜻 다가가지 못하는 것이기도 했다. 따로 화제가 될 만한 사건이 없다면 모르겠으나, 다중 게이트로 그럴싸한 이야깃거리가 마련된 상황이었다.

굳이 저 위험한 랭커 대전까지 쫓아갈 이유가 없는 것이다.

적당히 드론 몇 개 띄워 놓고, 차후에 촬영된 장면들을 편집하며 짜깁기하면 되는 거였다.

‘남들 하는 거 똑같이 해서 어떻게 성공하겠어.’

파스톰은 오랜만에 포스를 한계까지 끌어올린다고 생각하며, 몰아치는 파동의 폭풍우를 뚫고 나아갔다.

실제 폭풍우가 치기도 했다.

‘자연계 이능인가?’

꾸역꾸역 목적지에 다다랐을 때, 그는 확신했다.

‘대박이다!’

두 주먹이 불끈 쥐어졌다.

세계를 흔들 만한 대전이 눈앞에서 펼쳐지고 있었다.

* * *

한차례 겪어 봤기 때문일까?

마루는 상대가 쉽지 않은 존재임을 잘 알았다. 무려 랭커급의 강자 셋을 혼자서 상대한 괴물이지 않던가.

비록 정상 전력은 클레어 한 명뿐이었다고는 하나, 그녀 한 사람이 유럽을 대표하는 강자라는 걸 생각해 봤을 때, 충분히 차고 넘치는 전력이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위를 잡지 못했었다.

그뿐만이 아니라 당시의 데자르는 상태가 온전치 않았다. 이는 사일론에게 들은 정보로, 지금은 당시보다 더욱 강해져 있을 터, 솔직한 심정으로 말하자면?

‘아… 쫄리네.’

입술이 바짝 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처럼 홀로 움직인 건, 그 역시 나름의 자신이 있기 때문이었다.

아이언슈트!

지닌바 모든 재주를 퍼부을 수 있는 가면을 썼고, 거기에 더해 이곳 런던 시내에는 성녀의 가호까지 깃들어 있어, 그의 어깨에 힘을 실어 주는 중이었다.

데자르가 더 이상 마족이 아닌 인간에 가까운 존재가 되었다지만, 분명 런던의 신성 결계에 어느 정도는 영향을 받을 게 분명했다.

‘여차하면… 튀는 거고.’

게다가 나름 삼십육계에 자신도 있지 않던가.

‘선빵필승!’

그 때문에 과감히 달려들 수 있었다.

쿠르르르르릉….

과연 도플갱어답다고 해야 할까?

먹장구름이 발생하고 비바람과 태풍이 치는가 하면, 천둥과 벼락 속에서 불꽃이 피어나고, 급속히 피어난 수증기가 독 안개가 되어 호흡 기관을 압박하려 드는 등, 실로 다양한 재주들이 마루를 위협해 왔다.

앞서, 3대 1로 맞부딪쳤던 당시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다양한 재주일 뿐만 아니라, 놀라울 만큼 완성도 높은 퀄리티이기도 했다.

특히나 놀라웠던 건, 전투 방식의 변화였다.

당시에도 이능계의 능력을 부렸지만, 그 무렵에는 좀 더 타격전에 가까운 모습으로, 전신에 이능을 두른 채로 치고받았었다.

하지만 지금은 순수 이능력자처럼 전신이 아닌, 그저 단순한 손짓만으로 재주를 부리고 있었다.

그에 맞선 마루의 전투 방식도 지난번과는 달랐다.

당시에는 트랩퍼로서 상대하는 것이다 보니, 근접전보단 후방 지원의 원거리 저격을 비롯한 디버프를 통한 발목 잡기가 기본이었다.

하지만 오늘은 그와 반대로 아이언슈트로서 등판한 것이다 보니, 원거리가 아닌 근거리의 타격전을 목표로 움직이며, 끊임없이 날아드는 이능을 막고 쳐 내면서, 저돌적인 돌파를 거듭하는 중이었다.

콰콰콰콰콰콰….

그의 기세에 쏟아지던 이능이 뒤집히며, 사방으로 비산하는 게 보였다. 그에 따른 강대한 파동이 폭죽처럼 주변으로 터져 나가는 가운데, 마루는 전신을 크게 비틀어 꼰 뒤, 그 모든 반동을 오른 주먹에 담아서 쭈욱 뻗어 냈다.

콰아아앙!

마치 포탄이 쏘아진 듯, 전방으로 거대한 대기의 길이 열리는 게 보였다.

따로 개변권과 같은 스킬을 발동한 건 아니었다. 그저 근력 강화를 비롯한 반동 강화 등, 신체 능력치의 중첩을 통해 발생시킨 일격일 뿐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매 권격이 무시무시한 파괴력을 자랑하며 쭈욱 뻗어 나갔다.

이는 너무도 가벼운 몸짓 덕분이기도 했다.

[컨디션 : 9]

현재 그는 최상의 폼을 유지한 상태였는데, 그 스스로 컨디션 관리를 한 것도 있지만, 성녀 레아가 틈틈이 축복을 걸어 준 영향도 컸다.

그 때문에 성녀가 가담한 신성 결계의 효과가 더욱 크게 작용하는 것이기도 했는데, 어지간한 일이 있지 않고서는, 이번 전투 내내 이 상태가 쭈욱 유지될 것 같았다.

이에 반해서 데자르는 마루의 예상대로 신성 결계로 인해 컨디션이 다운된 상태로, 전투에 큰 영향을 끼칠 정도는 아니지만, 시간이 거듭될수록 대미지처럼 축적되며, 손발을 꼬이게 할 정도는 됐다.

마루가 강대한 권격에 의해 열린 통로에 몸을 던지자, 데자르는 이를 막고자 다시금 무수히 많은 능력들을 쏟아붓는데, 마치 진공 상태처럼 통로 속에서는 기운이 제대로 뻗질 못했던 터라, 일부분 능력이 반감되며 날아들었다.

쳐 내거나 흘리기보단, 몸으로 막는다는 생각으로 맞다시피 하며 저돌적인 돌진을 거듭했다.

[사신변환 ― 현무]

검은빛 아우라가 그를 휘감은 채, 우직하니 포격 속을 뚫고 지나가는데, 그 모습이 묘한 압박감을 내비치고 있어, 데자르는 저도 모르게 마른침을 한 번 삼켜 버렸다.

‘건방진 놈!’

이런 감정을 분노로 상쇄시키며, 과감히 근접전을 대비했다. 기어이 거리를 허락해 버린 것인데, 도플갱어답게 그는 근거리 박투에 관한 재능도 여럿 지니고 있었다.

‘어렵게 온 길, 타격으로 박살을 내 주마!’

공항에서 3대 1의 전투를 휘저으며, 이미 이를 증명하지 않았던가.

연격을 퍼부으며 쏟아지는 이능 사이로 길을 만들며 다가든 마루가 데자르에게 달라붙었다.

이내 근접 박투가 시작됐다.

파파파파파팡….

더 이상 천둥도 번개도 없었다. 하지만 거대한 폭풍만큼은 남아 있었다.

절묘한 회피기의 연속으로, 유효타는 하나도 없었건만, 각자 내지르는 권격과 몸짓 속에서, 어지러이 뻗어 나온 권풍과 파동이 대기를 흔들어 터트리며, 사방으로 퍼져 나간 것이다.

서로의 몸에 터치를 하는 것 자체가 쉽지 않았다.

그러다가 한 번씩 마찰이 발생할 때면?

콰악!

그대로 잡고 비틀며 집요하게 붙들고 늘어지는데, 거기서부터 시작된 다양한 관절기가 서로 팔다리를 뒤집어 놓고자 바쁘게 움직였다.

마루와 데자르 모두 다양한 스킬과 재주를 통해, 비슷하게 말도 안 되는 액션들을 연달아 보여 주고 있었는데, 앞서 짐작했던 컨디션의 문제가 드러나는 듯, 조금씩 데자르의 손발이 꼬여 가기 시작했다.

이 정도로 치열한 접전이 이어지다 보면, 마루 역시도 조금은 실수가 나올 수 있건만, 완벽한 컨디션은 매 순간 그의 연산 능력을 최상으로 유지시키며, 세심한 부분까지 완벽한 컨트롤을 할 수 있게 만들었다.

그들과 같은 영역에서는 아주 작은 호흡 조절의 실패도 전투에 큰 영향을 미칠 수 있었다.

아니나 다를까.

오래지 않아 근접전의 명확한 우위가 가려지기 시작했다.

‘크읍!’

데자르는 실수를 인정하며 후퇴를 거듭했다.

사실, 주 종목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근접전에서 데자르는 크게 밀리지 않았었다. 하지만 ‘초’근접전까지 넘어가는 순간, 그는 마루의 집요함에 질려 버렸다.

게다가 마루는 단순 관절기 정도로 끝내려 하지 않았다.

이는 조금 우스운 부분일지도 모르는데, 마루는 마냥 화려하게 싸우기만 하는 건 아니었다.

때로는 손톱으로 꼬집고 이빨로 무는 행위까지, 황당한 액션을 자주 내비치며, 데자르를 당황시켰던 것이다.

언뜻 별거 아닌 듯싶지만, 이게 또 무시할 수가 없었다.

[용의 발톱]

스킬과 함께 손톱이 마치 맹금류의 발톱처럼 매섭게 날을 세우며 파고드는데, 무시하며 내버려 뒀다가는 그대로 근육을 가르며 뼛속까지 꿰뚫을 기세였다.

그뿐만이 아니라 무는 것 역시 마찬가지였다.

[핵이빨]

순간 새하얀 이빨이 금속류의 질감을 내듯 변질되는데, 이는 착각이 아니라 정말로 강철처럼 단단해지는 터라, 내버려 두며 살점을 한 움큼 뜯어내는 건 일도 아니며, 근육까지 찢어발길지도 몰랐다.

하지만 마루가 만들어 놓은 진창은 마치 늪과 같아서, 한번 발을 들이면 쉬이 빠져나올 수가 없었다.

데자르는 약간 손해를 보더라도 지금 발을 빼는 게 장기적인 이득이란 결론과 함께, 한껏 기세를 폭발시켰다.

살갗이 터지고 근육까지 찢어질 만큼, 강대한 마기가 사방으로 뻗어 나가는데, 이는 뼈를 주고 살을 취하는 수준으로 무리한 행위였다.

하지만 그 기세에 밀려난 듯, 마루가 잠시 떨어지는데, 이를 기회로 어렵사리 거리를 벌렸을 때였다.

쿠쿠쿠쿠쿠쿠….

돌연, 등허리가 섬뜩해지는 걸 느꼈다.

애초에 거리를 둔 건, 큰 거 한 방을 위한 준비 작업이었다는 듯, 마치 도약을 위한 개구리의 몸짓처럼, 한껏 움츠리고 있는 마루의 모습이 보였다.

급히 각종 방어기를 중첩시키며 가드를 세웠다.

그 순간,

[개벽권]

마루의 필살기가 터져 나왔다.

콰콰콰콰콰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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