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 오월동주(吳越同舟).
#12. 오월동주(吳越同舟).
BDC는 이번에도 대박이 터져 버렸다.
―랭커 대전 미쳤다!
―아이언슈트?
―형이 왜 거기서 나와?
―영국에 있다고?
―존슨 패밀리?
―아이언슈트가 패밀리의 일원이란 말이 있긴 했지.
―형제들이 떴으니까 같이 등판인가?
―트랩퍼하고 누가 먼저냐?
―등급 보면 모름? 딱 봐도 아이언슈트가 윗줄이지.
진실을 아는 이들이 본다면, 닭과 계란의 우선순위를 놓는 것과 비슷한 화젯거리일 터였다.
―아이언슈트는 알겠는데, 저건 누구냐?
―레메게톤 대가리 아님?
―대박!
―멀티 스킬vs멀티 스킬!
―랭커+멀티=빅매치!
―오늘 라인업 화려하네.
―영국은 죽을 맛일걸.
―그러고 보니 트리니티 여왕도 열심히 길을 뚫고 있다던데, 그쪽 영상은 어떻게 됐냐?
―웨이브 수준으로 쏟아지니까 쉽지 않더라.
―진짜 난리도 이런 난리가 없네.
―트랩퍼 아니었으면 사상자 어마어마했을 듯.
―잡소리 좀 치워 봐. 중요한 순간이니까.
―워….
이어지는 현란한 스킬의 향연에 잠시간 커뮤니티가 침묵에 빠져들었다. 영상에 푹 빠져 버린 터라 글을 올릴 여유도 없던 것이다.
태풍을 부르고 천둥 번개를 일으키는 재주라니, 마치 어떠한 신적 존재가 세계를 움직이는 것 같은, 그런 아찔한 착각마저 일으키는 영상이었기에, 더더욱 숨죽이며 볼 수밖에 없었다.
그러면서 저도 모르게 아이언슈트에게 감정 몰입을 하게 되는데, 오로지 맨몸 하나만으로 태풍을 뚫고 나아가는 게, 너무나 인간적으로 보였던 터라, 저도 모르게 마음에 와닿았던 것이다.
대자연에 저항하는 미물의 몸짓처럼 여겨졌달까?
물론, 마루 역시도 말도 안 되는 거인의 행보였지만, 거대한 자연 현상과 비교하니, 자연스레 시야 보정이 되는 거였다.
이들의 침묵이 끝난 건, 그 작은 몸짓이 풍랑을 뚫고 목적지에 다다랐을 때였다.
―아이언슈트!
―진짜 강철이네.
―우직하니 돌격하는 거 보소.
―무소의 뿔처럼 간다.
이어지는 근접 박투와 그 끝에 펼쳐진 마루의 필살기!
―워… 어… 하늘이 갈라진다.
―저거 그게 아니냐? 개심 펀치?
―신실해진다!
―경건해진다!
―기도 좀 하고 오겠음.
데자르가 불러왔던 먹장구름들이 갈라지고 대기가 찢겨 나가는 게 영상으로도 훤히 보였다.
전율적인 그 광경 속에서 대전의 막이 내렸다.
* * *
강렬한 일격이 하늘을 가르고, 이내 푸른 창공이 제 모습을 드러낼 때, 시계탑 위로 안착한 마루는 눈살을 찌푸리며 하늘을 올려다봤다.
‘도망쳤나?’
무려 4점의 컨디션을 쏟아부은 필살기건만, 그 속에서 살아남은 것이다.
컨디션을 1점 더 투자해야 했다며 내심 후회하는 것도 잠시, 지나 버린 일에 미련을 두진 않았다.
그의 사자유희처럼 나름대로 생존기가 있었던 듯, 주변에선 기척이 느껴지지 않았다. 귀신처럼 잘 숨었거나 아니면 아예 사라졌거나, 어쨌든 놓쳤다는 건 확실했다.
‘쯧….’
불만스레 혀를 찬 뒤 고개를 돌려, 저 멀리 웨이브 수준으로 쏟아지는 다중 게이트 현장을 살폈다.
상당한 거리에다 여러 건물 등에 의해서 시야가 막혔지만, 사자유희와 공유되는 감시망 덕분에 이런 건 문제 되지 않았다.
신성 결계에 의해서 일부 압력이 행사되고 있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상황이 좋진 않았다.
웨이브와 대격변의 중간에 걸친 기이한 규모 때문이리라.
그래서일까?
성녀의 안색이 파리하게 질려있는 것도 보였는데, 아마도 신성 결계를 유지하는 데 한계에 다다른 듯싶었다.
하지만 이를 놓지 않은 채, 억지로 잡고 버티면서 결계를 유지 중이었는데, 그녀가 포기하는 순간 전황이 더욱 어려워진다는 걸 알기에, 이를 악물고 버티는 것이었다.
파아아앙….
마루는 더 살필 것도 없이, 저 멀리 전장 속으로 바로 신형을 날려 보냈다.
* * *
더 이상 마루는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루는 존재했다.
이게 무슨 말인가 하니.
아이언슈트가 등장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전장에는 마루가 화려한 권총 액션을 촬영 중이라는 의미였다.
사실, 이는 사자유희가 마루를 대신해서 활약 중인 거였는데, 저승왕의 유희를 돕던 신물답게 완벽한 연기력을 보여 주는 터라, 눈앞에서 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가짜라는 생각을 할 수가 없었다.
게다가 그 둘이 체인지되는 순간도 워낙 순식간에 발생한 것이다 보니, 더더욱 눈치채기가 어려웠다.
이선희는 이를 보며, 그간 지녀 왔던 일말의 의심마저도 지워야만 했다.
앞서 트랩퍼 사건을 거쳤음에도 불구하고, 그 둘이 동일 인물이라는 묘한 예감을 받았던 건데, 이렇게 직접 현장에서 확인까지 했으니, 더 이상은 의심의 여지가 없었다.
거기다가 이젠 아이언슈트와 트랩퍼가 그녀 시야에 함께 포착되고 있었다.
콰콰콰콰콰콰….
폭풍처럼 등장해서 몬스터들을 쓸어버리고 있는 아이언슈트의 모습이 보였는데, 이를 통해서 랭커 대전의 승자도 확인할 수 있었다.
‘이긴 건가.’
그녀는 자신의 착각을 깔끔히 인정하며 당장 해야 할 역할에 집중하기로 했다. 시민들의 대피가 이뤄진 지금은 쏟아지는 몬스터를 막아 내는 게 그녀의 임무였다.
작정하며 끌어올린 포스가 냉기를 일으키며, 일대에 아이스 필드를 형성하는데, 그런 그녀의 기운과 상반되는 열기가 한편에서 밀려드는 걸 느꼈다.
연인의 영역과 겹친 모양이었다.
이선!
굳이 얼굴을 드러내지 않았다지만, 그의 불꽃을 통해서 피닉스가 이곳에 왔다는 건, 알 만한 이들은 다 아는 부분이었다.
‘쓸데없이 소심하긴.’
적호 길드와 태호 그룹에서 열심히 이미지를 세탁해 주고 있었지만, 여전히 이선에 대해서는 안 좋은 여론이 제법 남아 있었고, 그 때문에 최대한 화면 밖에서 활동하고자 하는 거였다.
이곳은 영국인데 무슨 상관이냐 말할 수도 있지만, 이선희가 있기에 저런 선택을 한 것이다.
그녀와 한 앵글에 잡히는 걸 피하고자, 스킬만 내비치며 활약 중인 것이다. 강화계가 아닌 이능계이기에 가능한 재주였다.
연인들의 마음이 고스란히 전달된 듯, 불과 얼음이 잠시 얽혔다가 떨어지며, 서로의 경계를 확실히 했다.
* * *
초월의 영역에 오른 존슨의 감각은 전장 전체를 아우르며, 모든 흐름을 완벽히 읽고 또 그려 내고 있었다.
그 때문일까?
‘이럴 수도 있나?’
기이한 움직임을 캐치할 수 있었다.
몬스터들의 동선이 그를 당혹스럽게 만든 것인데, 갑작스러운 웨이브 현상으로 잠시 휴전에 들어갔다지만, 헌터와 이면의 주민들 사이에는 명확한 벽이 있었다.
끼리끼리 어울리며 팀을 짠 것인데, 그 때문에 더더욱 몬스터들의 동선을 확실히 할 수 있었다.
‘…피해서 움직인다고?’
이면의 주민들이 아닌 헌터들만 집중적으로 노리며 움직이고 있던 것이다.
물론, 이면의 주민들도 몬스터와 마찰을 빚고 있었지만, 비율을 놓고 본다면, 대략 8대 2에서 7대 3정도로, 몬스터들은 헌터들에게 달려드는 중이었다.
새삼 떠오르는 존재가 있었다.
‘데자르….’
그가 도플갱어라는 걸 알기 때문일까?
오래지 않아 마계의 지식으로 기묘한 수작을 부렸다는 걸 유추할 수 있었는데, 그로 인해 상황은 더욱 어렵게 흘러가는 중이었다.
지금이야 손잡고 몬스터를 상대하고 있지만, 이는 오월동주(吳越同舟)와 같은 상황이라서, 게이트가 닫히고 나면 언제든 서로를 향해 칼을 휘두를 수 있는 것이다.
도플갱어의 수작에 의해 왕실을 비롯한 여러 헌터들의 전력은 꾸준히 깎여 나가고 있건만, 이면의 주민들은 큰 변동 없이 전력을 유지 중이었다.
존슨은 눈살을 찌푸리며 슬쩍 주변을 훑었다.
전장이 아닌 더 멀리, 외부로 넘기는 눈길에는 강한 경계의 빛이 가득했는데, 그가 이 전장에 더 깊이 개입하지 못하는 이유이기도 했다.
묘한 시선이 집요할 만큼 그를 주시하고 있었는데, 그 안에 담긴 불쾌한 흐름이 그의 발목을 잡아챘다.
‘마기….’
사일론에게 데자르 말고도 더 많은 도플갱어들이 넘어왔을 수 있단 이야기를 들었건만, 설마 이렇게 확인하게 될 줄이야.
저들은 존슨을 향해 경고하고 있었다.
―네가 나서면 우리도 나선다.
그 수준이 어느 정도일지 모르는 터라, 최대한 전력을 유지하는 한도 내에서 가볍게 손을 쓰는 중이었다.
물론, 그것만으로도 랭커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기에는 충분하긴 했다. 하지만 언제까지 이런 식으로 눈치만 볼 수는 없는 일, 고심 끝에 결정을 내렸다.
―부탁 좀 하자.
형제들에게 간단한 메시지를 남긴 뒤, 불쾌한 시선의 궤적을 쫓아서 몸을 날려 보냈다.
마루와 데자르의 랭커 대전에 승부가 나던 순간이기도 했는데, 그가 움직이고 얼마 지나지 않아, 선수 교체라도 하듯이 아이언슈트가 전장에 등판했다.
파아아앙….
마치 화살처럼 쏘아진 존슨의 모습에, 멀찍이서 관찰하던 레메게톤의 요원이 기겁하며 다급히 몸을 피했다.
콰앙!
정확히 그가 있는 자리에 내리꽂히는 존슨의 권격!
“커헉!”
분명히 피했다고 여겼건만, 마치 중력을 거스르듯 치고 올라온 존슨의 손날이 매섭게 목을 치더니, 그대로 휘감아 멱살을 움켜쥐었다.
그리고는 벼락같은 기세로 허공을 가르며 쭈욱 쏘아졌다.
쿠쿠쿠쿠쿠쿠….
어마어마한 속도에 궤적을 뒤따르는 충격파가 사방으로 터져 나가는 가운데, 어느새 그들은 도심지를 멀찍이 벗어나고 있었다.
손안에서 벗어나려는 듯, 요원이 몸부림을 치는 게 느껴졌지만, 절묘한 손재주로 이리저리 비틀면서 이를 방해하는 한편, 계속해서 신형을 날려 보냈다.
그러면서 등 뒤의 기척을 파악하는데, 저도 모르게 입꼬리가 올라갔다.
‘좋아! 쫓아오고 있군.’
느껴지던 시선 중 가장 불쾌한 걸 잡았는데, 아무래도 제법 높은 위치에 있는 녀석이었던 듯, 다른 시선의 주인들이 황급히 뒤따르는 게 느껴졌다.
정답이었다.
그가 잡은 건, 바로 레메게톤 총장의 호위대인 아르스 게티아의 수장 자이로였다.
그 때문에 적잖은 당혹감이 뒤따르는 중이었다.
존슨이 움직인 타이밍에 맞춰서, 하필이면 데자르의 후퇴 신호가 터져 버린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발을 빼지 못하는 건, 자이로의 명령권이 데자르보다 위에 있기 때문이었다.
이는 데자르의 영혼 침식 부작용을 고려한 조치로, 자칫 정체성을 잃어버릴 수 있는 데자르를 경계하기 위함이었다.
파파파팟!
존슨의 주변으로 수십의 호위대가 내려서는데, 이들을 보는 존슨의 눈가에 이채가 스쳐 갔다.
‘그리 대단할 건 없어 보이는데.’
당장에 보이는 수준은 잘 쳐줘야 A급?
특이점이라 한다면 저들 내부에 숨겨진 불쾌한 마기 정도라 할 것이다.
그 때문에 기이했다.
‘눈빛이… 꽤나 자신만만한데.’
뭔가 믿을 게 있다는 뜻이었고, 오래지 않아 그 이유를 짐작할 수 있었다.
뿌드드득… 뿌득….
골격이 변하고 신체가 부푸는 게 보였다.
‘또 뮤턴트인가.’
직감적으로 답을 내릴 수 있었다.
도플갱어+뮤턴트!
불쾌한 조합이 극악의 상승효과를 낸 것이다.
이를 증명하듯 단숨에 부풀어 오른 기세와 함께, 피부가 저릿해지는 마기가 그를 에워싸기 시작했다.
그건 마치 결계처럼 주변 대기를 일그러트리며 그를 압박하고 있었는데, 여기서 또 다른 특이점도 발견할 수 있었다.
‘눈빛이 멀쩡하네.’
앞서 겪어 봤던 놈들과 달리, 따로 광기에 지배되는 것 같지는 않아 보였고, 이를 통해서 저들이 ‘일회용’이 아니라는 것도 짐작 가능했다.
아니나 다를까.
“크륵… 비겁하게 인질을 잡다니.”
“껄룩… 제로 원 정당하게 붙자!”
대화까지 가능할 정도였는데, 이를 듣고 있던 존슨은 헛웃음이 나와 버렸다.
“몰매 놓으러 온 놈들이 정당은 무슨.”
그러면서 양손을 거칠게 교차시켰다.
뚜둑!
자이로의 고개가 거칠게 꺾이고, 그 숨결이 끊어졌다.
크워어어어어!
아우우우우!
그 순간 아르스 게티아의 도플갱어들이 일제히 포효하며 분노를 터트리더니, 사납게 달려들었다.
존슨이 슬쩍 입술을 핥았다.
앞서, 한국의 청계산에서 붙었던 뮤턴트들도 만만찮았는데, 이번에는 당시보다 한층 위협적이었던 터라, 간만이 긴장감이 팍 오르는 걸 느꼈다.
콰아아앙!
그렇게 제3의 전장이 문을 여는 가운데, 이 전투가 이날의 전황을 가르는 승부처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