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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테우르기아!

#13. 테우르기아!

도플갱어 일족은 게이트를 비롯하여 몬스터들의 통제를 하고 있었다.

이면의 주민이 아닌 헌터들만 집중적으로 노리며 공격을 한 것도 그런 이유였는데, 헌터에게 일부 전력이 쏠린 건, 이들로서도 완벽한 통제는 어려웠기 때문이었다.

한데, 바로 그 컨트롤러가 사라져 버렸다.

당연히 더 이상 몬스터들의 편파 판정은 없었고, 공정하게 헌터와 이면의 주민 양쪽을 괴롭히는 흐름으로 넘어갔다.

거기서 이날 전황이 갈렸는데, 헌터들은 기본적으로 길드나 팀으로 움직였던 이들이 많았다.

하지만 이면의 주민들의 경우, 개인으로 움직인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물론, 레메게톤이나 사흑련 측의 요원들은 이야기가 다르지만, 대다수가 영국과 유럽 이면에서 활동하던 개별적 문제아들이었던 터라, 아무래도 손발을 맞추는 부분에서 부족함이 있을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바로 이 연계 부분에서 우위가 갈렸다.

“푸후우우….”

바하마는 길게 호흡을 고르며 어깨를 풀었다. 간만에 전장의 한복판에서 연주를 한 덕분인지, 피로감이 배로 가중되는 걸 느꼈다.

곁으로 다가온 다비드와 커난 콤비도 적잖이 지친 듯, 전신을 땀으로 샤워한 몰골을 한 채 손을 젓고 있었다.

“으아아아… 더는 못 해! 끝이다 끝.”

“허억! 헉… 커헉! 간만에 현장 뛰었더니, 숨넘어가겠네.”

경지를 이뤄 랭커가 되었다지만, 기나긴 시간 공방에서 작업만 해 왔던 터라, 아무래도 현장감이 많이 떨어지는 건 어쩔 수가 없었고, 이는 곧 급격한 체력 저하로 이어졌다.

그나마 버틸 수 있었던 건, 경지에 이른 자의 자존심과 은은히 스며드는 성녀의 가호 덕분이리라.

“이게 얼마 만이야.”

숨 좀 돌린 바하마가 그리 말하며 간만의 만남에 대한 반가움을 표했고, 이에 다른 이들도 서로 얼싸안으며 이에 호응했다.

특히, 다비드와 커난은 서로 자극을 하며 성장을 돕다 보니, 자주 얼굴을 부딪혔지만 바하마는 콘서트니 뭐니 하면서 바쁘게 돌아다니다 보니, 더더욱 얼굴을 보기 어려웠던 터라, 반가움이 남달랐다.

“연예인이 다 됐던데. 각국 TV 프로마다 안 나오는 데가 없고. 지난번 공연도 대박이었다며? 역시 대단해!”

커난의 설레발에 바하마가 실소하며 고개를 저었다.

“오버하기는.”

그러며 슬쩍 시선을 던지는데, 거기에는 데일과 루시아가 함께하고 있었다. 상당한 거리가 있었으나 랭커의 청각은 그들 대화를 선명히 캐치해 냈다.

“나도 이젠 50대라고. 이반나 언니도 곧 결혼한다던데, 우리가 밀릴 수는 없잖아. 그러니까 그만 포기하고 잡히셔!”

“끄응….”

핏빛으로 어그러진 주변 상황에 어울리지 않게, 묘한 분홍빛을 띠고 있었는데, 그 때문인지 그들 주변으로 접근하는 이들이 없었다.

그 모습에 쓴웃음을 머금는 바하마의 모습에 다비드와 커난이 바쁘게 눈빛을 교환하며 화제를 전환했다.

“크흠… 큼! 아니, 것보다 아이언슈트라는 녀석은 그새 또 어디로 사라진 거야?”

“그러게… 커험! 그새 갔네.”

제법 괜찮은 화젯거리였던 듯, 바하마도 시선을 돌려 주변을 살피면서 아쉬움을 표했다.

“한번 인사나 나눴으면 좋을 텐데.”

랭커 대전을 마치고 온 뒤, 화려하게 전장을 휘젓는가 싶더니, 상황이 끝날 즈음 다시금 자취를 감춰 버린 것이다.

이들이 존슨 패밀리라고는 하나, 아이언슈트가 마루라는 건 쉬이 밝힐 수 없는 비밀이었다. 게다가 마루와는 별다른 친분도 없지 않던가.

차후 인연이 깊어진 이후라면 모르겠지만, 지금 당장은 밝힐 이유가 없는 것이다.

자연스레 그들의 시선은 새로운 화젯거리로 넘어갔다.

“트랩퍼라고 불린다며?”

“오늘 보니까 건어택이 더 어울리던데.”

“그거는 인정! 진짜 잘 쏘더라.”

“건가드의 한계를 깼다는 게 과언이 아니었어.”

다비드와 커난이 그리 말하며 저 멀리 장비를 정리 중인 마루를 바라봤다.

한데, 바하마의 시선이 조금 묘했다.

‘이상한데?’

좀 전과 미묘하게 달라진 느낌이라고 해야 할까?

‘흐음… 착각인가?’

바하마는 소리를 통한 특수 스킬 계열의 능력자로서, 주변 파동을 감지하는 부분에 있어서 매우 민감한 편에 속했다.

감히 초감각과 비교할 수 있을 정도였는데, 그 때문에 마루의 모습에서 묘한 이질감을 느낀 것이다.

과장하자면 아예 사람이 바뀐 것 같달까?

‘쌍둥이가 이런 느낌을 주던데.’

그 기이한 감각 때문에 마루를 유심히 보고 있노라니, 이를 의아하게 여긴 다비드가 물어 왔다.

“왜 그래?”

이에 착각이라 정리하며 고개를 저어 보인 바하마가 또 다른 화젯거리로 넘어갔다.

“존슨은 뭐 하느라 여태 안 보여?”

커난이 앞서 존슨이 향한 방향으로 시선을 던지며 말했다.

“웬 음침한 놈들 우르르 끌고 사라지던데.”

대체 얼마나 멀리 간 것인지, 존슨의 기세가 한 점도 느껴지지 않았다.

“몸 사리는 게 이상하더라니, 그런 놈들이 잔뜩 숨어 있었을 줄이야.”

다비드가 말을 받았다.

“알아서 잘 돌아오겠지. 대격변도 혼자서 들이받는 인간인데, 걱정해서 뭐 해?”

이에 바하마가 뒷머리를 긁으며 말했다.

“꼭 그런 건 아닌데, 그래도 그 인간이 있어야 뉴페이스하고 인사를 하지.”

“그건 그렇네.”

세 사람을 비슷하게 입맛을 다시며 멀뚱멀뚱 마루의 총기 점검을 구경하기 시작했다.

* * *

묘하게 뜨거운 시선이 느껴졌다.

‘으음….’

마루는 바하마와 다비드 그리고 커난, 이들 패밀리가 슬금슬금 주변을 맴도는 걸 느꼈지만, 애써 모르쇠로 일관하며 총기 점검에 집중했다.

사자유희가 제법 거칠게 사용을 한 것인지, 따로 강하나에게 정비를 맡겨야 할 듯싶었다. 아무래도 정비보단 수리에 가까울지도 몰랐다.

‘욕 좀 먹겠네.’

강하나에게 바가지 긁힐 걸 생각하니, 슬쩍 등허리가 오싹해졌다.

차라리 강화를 시켜서 강제 수리 및 업그레이드를 할까도 싶었지만, 박살 날 확률이 더 높은 만큼 자제하는 게 좋았다.

특히, 제대로 수리되지 않은 물건일수록 강화 확률은 급격히 떨어지지 않던가.

‘조심히 좀 쓰지.’

슬쩍 사자유희를 타박하니, 발아래 그림자가 일렁이며 억울함을 표출했다.

나름대로 최선을 다해 활약했건만, 칭찬은커녕 타박이라니. 몬스터들의 수준이 워낙 높아서, 제한된 능력치에서 활약하는 게 쉽지 않았던 것이다.

연신 일렁대는 모습에 마루가 입맛을 다시며, 잘했다며 애써 달래 줬다.

‘사춘긴가.’

어째 요즘 들어서 감정 표현이 풍부해진 것 같다는 생각과 함께, 슬쩍 시선을 한 방향으로 던져 보냈다.

‘…끝났나?’

아득히 먼 거리, 제3의 전장이 드디어 막을 내린 게 느껴졌다.

각종 스킬과 초감각을 지닌 그로서도 제대로 감지되지 않을 정도의 거리였지만, 파문이 그친 것 하나는 확실히 알 수 있었다.

마루는 존슨을 떠올렸다.

‘괜찮으려나….’

비록 희미한 잔재를 읽은 정도지만, 그것만으로도 팔뚝이 닭살이 돋을 정도였고, 이를 통해서 심상찮은 수준의 격전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 * *

간만에 한계를 경험한 느낌이라고 해야 할까?

“푸하아아아아아….”

존슨은 땅바닥에 벌러덩 드러누운 채, 거칠게 숨을 몰아쉬었다.

그의 주변으로 시체가 되어 버린 수많은 뮤턴트들이 나뒹굴고 있었는데, 앞서 한국의 청계산 마수지대와 마찬가지로, 이 근방도 엉망이 되어 있었다.

한동안 숨을 고르다가 겨우 허리를 세운 존슨이, 심각한 표정으로 주변에 너부러진 시체들을 돌아봤다.

‘이런 놈들이 더 있으면 골치 아픈데.’

사일론을 통해서 마계에 대한 정보를 제법 접한 탓일까?

자꾸만 최악을 상상하게 됐다.

‘후우… 멀티 스킬이 이렇게 골치 아픈 걸 줄이야.’

마족들을 상대하면서 이미 느낀 바 있었고, 제법 적응이 됐다고도 여겼었건만, 도플갱어는 그보다 한층 까다로웠다.

특히, 개인주의가 강하던 기존 마족들과 달리, 저들은 서로 손발을 맞추면서 수준 높은 협공을 할 줄 알았다.

그리고 이를 통해서 스킬 간의 상성 및 중첩 등의 섬뜩한 활용이 이어지니, 존슨은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고된 격전을 치러야만 했다.

겉보기엔 멀쩡해 보였지만, 포스 고갈을 비롯해서 속으로도 적잖은 내상이 함께하고 있었다.

‘끄응… 저 너머에 이런 놈들이 잔뜩 있단 말이지.’

언제고 마계와의 결전이 이뤄질 터, 이는 피하고자 해서 피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새삼 어디까지 감당할 수 있을지, 걱정스러운 마음이 컸다.

‘그래도 이 정도면… 전력을 꽤 깎은 거겠지?’

주변 가득한 시체들을 바라보며 한 차례 고개를 끄덕이는데, 안타깝게도 그의 이런 바람은 온전히 이뤄질 수 없었다.

* * *

레메게톤!

이는 솔로몬의 작은 열쇠라고 불리는 전설의 마도서로서, 사실 이는 한 권이 아닌 다섯 권으로 이뤄져 있다고 알려져 있었다.

그중에서 아르스 게티아가 가장 유명한데, 대외적으로 알려진 게 바로 이 아르스 게티아였다.

솔로몬의 72악마를 소환하기 위한 주문과 인장이 담겨 있다고도 알려진 마도서였다.

이 외에도,

아르스 테우르기아―게티아(Ars Theurgia―Goetia)

아르스 포올리나(Ars Paulina)

아르스 알마델(Ars Almadel)

아르스 노토리얼(Ars Nortoria)

이렇게 네 권의 마도서까지 포함해서 레메게톤이라 불리는데, 현 레메게톤 연합은 이 다섯 마도서의 명칭을 고스란히 가져다가 호위대로 사용하고 있었다.

하지만 개중에서 실제로 공개된 건 아르스 게티아 하나뿐이었는데, 왕실 퍼레이드가 있던 날, 그 두 번째 단체가 드디어 문을 열었다.

아니, 눈을 떴다고 하는 게 맞았다.

아르스 테우르기아―게티아!

알려지기로는 천사와 같은 정령을 다루는 것에 관련된 마도서의 명칭으로, 도플갱어들은 이 두 번째 단체에 일종의 ‘보험’을 들어 놓은 상황이었다.

레메게톤의 비밀 실험실!

그 안에서 마치 시체처럼 늘어져 있던 일단의 무리들이 거친 호흡과 함께 눈을 떴다.

“커허어어억….”

“끄으윽….”

그러더니 서로를 바라보며 창백한 낯빛으로 묻는다.

“얼마나 소실됐어?”

“반절은 깎였어. 너는?”

“반의반도 안 남았어.”

“으음… 나는 그마저도 안 돼.”

“빌어먹을!”

연신 욕지거리를 내뱉는 가운데, 한발 앞서 눈을 떴던 존재가 그늘진 얼굴로 한숨을 푹 내쉬었다.

‘결국… 전부 당해 버린 건가.’

그러며 한 사내의 얼굴을 떠올렸다.

‘인디안 존슨!’

그의 손에 잡혀서 허무하게 목이 꺾이던 순간이 떠올랐다. 죽음에 이르던 그 섬뜩한 감각에 저도 모르게 몸서리는 치는 가운데, 문득 눈을 뜬 이들 중 한 명이 다가와 물었다.

“자이로님 괜찮으십니까?”

놀라운 이야기였다. 앞서 존슨에게 죽임을 당한 자이로가 언급된 것인데, 그에 대한 답변이 또 뜻밖이었다.

“자이로의 삶은 오늘부로 끝났다. 이제부터는 테라라고 불러라.”

테라라고 자신을 소개한 사내, 그는 좀 전까지 자이로였던 존재였다.

이는 도플갱어 일족의 비술 중 하나로서, 지닌 바 재능을 제물로 바쳐 죽음을 회피하는 재주였다.

실험실에서 깨어난 이들이 서로에게 던진 질문도 그에 관한 거였다. 얼마만큼의 재능을 소모해서 부활한 것인지 확인한 건데, 대부분이 반절 이상의 능력을 잃어버린 상황이었다.

이는 즉, 그 전력이 반절로 축소됐단 뜻이기도 했다.

존슨이 바라던 것처럼 일정 부분 전력이 깎인 건 사실이지만, 안타깝게도 그가 원하던 수준은 아니었다.

‘오늘부터는 테우르기아의 대장인가.’

제1 호위대인 아르스 게티아의 수장은 이번 격전에 참여하지 않았던 이들 중 한 명에게 돌아가거나, 새롭게 넘어올 일족의 요원에게로 넘어갈 터였다.

패배로 인한 능력 감소가 타격이 컸지만, 그래도 마냥 최악이라 생각하진 않았다.

‘존슨….’

새롭게 깨어난 테우르기아의 대원들은 전부 존슨이란 강자를 겪어 봤기 때문이었다. 작게나마 경험치라 할 만한 게 쌓였다는 의미였다.

‘…다음에는 반드시!’

그에 관한 생각은 거기까지였다.

더 이상 깨어나는 대원들이 없는 걸 확인하며, 사고의 방향을 전환했다.

‘총장님….’

존슨과의 격전에 앞서, 데자르의 후퇴 신호를 전해 받았었다. 그 이후부터 연락이 없었다.

‘…괜찮으신 겁니까?’

걱정이 뒤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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