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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성검.

#18. 성검.

아주 잠깐, 달콤한 꿈을 꾸다가 깨어난 것 같았다.

하지만 이게 웬일?

‘보름이나 지났다고?’

마루는 깜짝 놀란 얼굴로 성녀 레아를 바라봤다.

“기왕이면 깨어나는 걸 보고 가고 싶었는데. 다행히 이렇게 시간이 맞았네요.”

만약 오늘도 마루가 일어나지 않았더라면, 교황청의 집요한 요청에 의해서, 눈 뜨는 걸 뒤로한 채 복귀해야 했을 거라며, 정말 다행이라면서 마루의 양손을 잡았다.

그녀의 곁으로 트리니티 여왕도 있었는데, 어째서인지 그녀의 동공 위로 희미한 아쉬움이 스쳐 가고 있었다.

이는 본 드래곤의 호수 때문이었다.

새하얀 물결이 인상적이던 그 호수가 사라져 버린 까닭이었는데, 놀랍게도 거기에는 신성한 힘과 정화의 기운이 담겨 있어서, 왕실의 비약 제조 및 여러 방면에서 도움이 됐던 것이다.

하지만 마루의 각성 이후로 사라져 버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를 가지고 마루를 따로 추궁할 수는 없었는데, 이는 여러 이유가 있었다.

한차례 조우했던 미지의 존재.

‘드래곤….’

그녀는 거대한 용의 승천을 목도했다.

환상인가 싶을 정도로 짧은 시간이었지만, 너무도 선명하게 뇌리에 남아 버린 터라, 영혼에까지 새겨진 건 아닐까 싶었던 그 찰나의 순간이 그녀를 옭아맸다.

하지만 왕가의 주인이라는 그녀의 입장을 생각한다면, 그것만으로 입을 닫기에는 부족함이 있었다.

물론, 나름의 혜택도 있기는 했다.

정화의 힘!

그 특별한 광경을 목도하고 난 뒤, 놀랍도록 정신이 말끔해졌고 신체 내부도 깨끗해지는 걸 느꼈다.

각성자로서 어찌어찌 젊음을 유지하고 있다지만, 어느새 그녀도 50대를 넘겨 버린 상황이었고, 그 때문에 몸 곳곳에서 노화로 인한 문젯거리들이 드러나고 있었다.

하지만 그날 이후, 마치 청춘으로 돌아간 듯, 전신이 가벼워진 것이다.

‘이젠 뼈마디도 안 시리고.’

그 덕분인지 벽 너머를 엿볼 기력도 회복되어, 도약을 위한 발판이 한층 탄탄해지며, 랭커로서의 길이 엿보이는 것도 같았다.

그러나 이는 그녀 개인에 국한된 일이었다.

당장 랭커가 된 게 아니라면, 왕실과 나라로 그 영광을 넓힐 수 없는 것이다.

여왕으로서는 왕실의 보물에 흠집이 난 것을 대신하여, 당장 ‘현재’에 신하들을 충족시켜야만 했다.

특히나 억지를 부려가며 마루에게 이용권을 발급한 게 그녀였던 만큼, 더더욱 훌륭한 대안책이 필요한 것이다.

놀랍게도 이는 그녀의 옆구리에 걸려 있었다.

용이 승천하고, 본 드래곤의 호수가 사라지던 날, 놀랍게도 그 자리에는 하나의 검이 남아 있었다.

그녀의 집행검이 등장하던 그 무렵을 연상시키는 장면으로, 검을 손에 쥔 순간 깨달을 수 있었다.

엑스칼리버!

전설 속 환상의 검이 그녀의 손에 들어온 것이다.

그리고 놀랍게도 집행검은 바로 그 엑스칼리버의 ‘그림자’였다.

자연스레 알게 되는 정보들, 이는 검이 흘려보내는 기억과 지식의 편린이었다.

그 파편들을 하나하나 수집해서 완성시키는 날, 온전히 검을 휘두르는 법을 알게 될 터였다.

물론, 당혹스러운 순간도 있었다.

엑스칼리버의 그림자라는 걸 증명하듯, 집행검은 그림자에 스며들어 버렸는데, 오래지 않아 새롭게 떠오른 지식을 통해, 언제든 집행검을 꺼내 들 수 있다는 걸 알게 됐다.

이를 직접 시연해 보이면서, 소란을 일축시킬 수 있었고, 더 나아가서 집행검을 왕실의 제1 검에게 하사함으로써, 전력 상승도 꾀할 수 있었다.

수호검 클레어!

집행검의 새로운 주인은 그녀였다.

여기서 흥미로운 건 엑스칼리버의 경우, 오직 왕실의 주인만이 사용할 수 있단 점이었는데, 그게 마치 전설의 한 조각을 떠올리게 만들기도 했다.

‘덕분에 도난 걱정도 없고.’

놀라운 보물을 얻어 낸 것이기에, 기적의 호수가 사라진 걸 충분히 대처할 수 있었지만, 그럼에도 사람의 욕심이란 게 아쉬움을 자극하는 건 어쩔 수 없는 부분이었다.

그 때문에 호수의 빈자리로 자꾸만 시선이 가는 거였다.

애써 이를 외면하는 가운데, 마루와 성녀 레아의 대화가 들려왔다.

“가족들은 잘 지내고 계십니다. 왕실 특수부가 경호 중이고, 존슨 님과 형제님들께서도 따로 가이드를 자처해 주시면서, 안전에 재미까지, 아주 즐겁게 잘 보내신답니다.”

고개를 끄덕이던 마루가 물었다.

“혹시, 보름 동안 특별한 일은 없었습니까?”

그 물음에 성녀 레아가 잠시 고민하는가 싶더니, 몇몇 이야기를 늘어놓는데, 그게 또 놀라웠다.

* * *

레메게톤은 이제 완전히 이면의 깊은 어둠 속으로 숨어 버렸다.

그들 스스로 이름을 드러냈기에, 표면에서 언급되는 건 어쩔 수 없는 부분이지만, 더는 그 실체를 확인할 수 없는 유령 단체가 되어 버린 것이다.

하지만 이는 대외적인 시각이었고, 원래 이면과 걸쳐 있는 이들 입장에선 달랐다.

레메게톤 소속의 클랜들을 집중적으로 관찰하다 보면, 그들의 대략적인 동선 등을 통해서, 저들의 터전을 살필 수 있기 때문이었다.

한데, 그 결과가 또 피로를 자극했다.

“사흑련을 쫓아가는 건가.”

“위저드처럼 마탑을 세우고 활동하는 줄 알았더니.”

“점조직 형태로 퍼져 버리면 골치 아픈데.”

“일단 굵직한 덩치들을 집중 관리 대상으로 삼자고.”

각 단체의 요원들은 그렇게 상황을 정리하고 있었는데, 그 와중에 생각지도 못한 사태가 터져 버렸다.

“도심 한가운데 몬스터라고?”

너무도 뜬금없는 내용이었다.

그도 그럴 게 게이트 알람도 없이, 갑작스레 몬스터가 도심에 등장한 것이다.

다행이라 한다면 겨우 한 마리였다는 점이고, 불행이라면 예고 없는 등장에 시민들의 혼란이 어마어마했다는 점이었다.

“겨우 E급 몬스터라는 것도 다행이었지.”

커난의 이야기에 다비드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근처 불법 연구소에서 튀어나왔다는 말이 있던데, 아무래도 개소리 같단 말이야.”

이면에는 다양한 불법 연구소가 있는바, 하수구를 통해서 밖으로 흘러나왔다는 등의 이야기가 돌고 있었지만, 흘러가는 상황이 심각성을 부각했다.

“개소리겠지.”

그들이 이처럼 생각하는 이유는 갑작스러운 몬스터의 등장이 한두 번이 아니라, 수차례 발생했다는 점이었다.

이를 가지고 일종의 테러가 아니냐는 말도 나오는 중이었는데, 거기에 가장 자주 언급되는 건, 아무래도 레메게톤일 수밖에 없었다.

커난과 다비드 역시 그에 동의하는 바였다.

“굳이 유럽에서만 발생한 사건이란 것도 그렇고.”

“레메게톤이 의심받기 딱 좋은 사이즈라서, 너무 노골적이라 찜찜하기도 한데.”

“바이퍼… 데자르 그놈, 요즘 아주 막 나가잖아. 모를 일이야.”

눈살 찌푸려지는 상황에서 떠오르는 의문은 하나였다.

“그런데 왜 갑자기 몬스터를 푼 걸까?”

“그냥 적당히 소란만 일으키려는 거겠지. 각국 정보부에서 뒤를 캐 대니까 그쪽만 집중적으로 몬스터 푸는 거잖아.”

그 때문에 굳이 하급 몬스터로 이목만 집중시킨 것이리라. 그렇게 생각했었다.

하지만 이게 웬일?

“…뮤턴트라고?”

워낙 낮은 등급의 몬스터라서, 불법 연구소의 키메라 연구 실패작 정도일 거라 여겼건만, 뜻밖의 결과가 나와 버린 것이다.

* * *

레메게톤의 새로운 총장실!

놀랍게도 그곳은 음습한 골목길 사이의 폐건물도, 어느 외딴 섬이나 시골의 허름한 하우스도 아니었다.

런던 시내, 그중에서도 제법 명성을 날리는 바이퍼 호텔 최상층의 특실이었다.

“신기하단 말이지. 이렇게 노골적으로 바이퍼의 이름을 써 놨는데도 모르다니. 큭큭큭….”

무려 키홀의 수장, 바이퍼가 작정하고 제 이름으로 세운 호텔이었건만, 누구 하나 이곳과 키홀의 연관성을 생각지 못했다.

초반에야 ‘혹시’ 하는 의문을 내비쳤지만, 적당히 깨끗하고 적당히 비리를 저질러 가며, 더없이 평범함을 연기하고 포장한 덕분일까?

어느 틈엔가 의혹은 사라졌고, 이제는 런던은 대표하는 호텔들 중 하나가 되어 있었다.

대혼란 이후 많은 역사가 무너지고 부서졌는데, 키홀의 바이퍼는 이 틈을 교묘히 노리면서, 나름의 랜드마크를 건설하고자 한 것이다.

호텔 바이퍼는 비록 역사는 짧지만, 높은 고층의 미래식 건축물과 최고급 서비스의 전략을 잘 사용한 결과, 런던 내에서 한 손에 꼽히는 대규모 호텔이 될 수 있었다.

물론, 이곳이 레메게톤의 총장실인 걸 아는 건, 극히 소수로 점조직화를 위한 적절한 조치였다.

“이런 게 진짜 등하불명이지!”

비모는 그리 중얼거리며 창밖을 내려다봤다.

무려 100층짜리의 건물이다 보니, 런던 시내 전역이 시야에 담겼는데, 거기에는 버킹엄 역시 포함되어 있었다.

그곳을 바라보며 입꼬리를 올렸다.

“지금쯤이면 뮤턴트에 대해서 알게 됐겠지.”

지난 공항 사건에서 가장 많은 뮤턴트의 실험체를 확보한 게 바로 영국 왕실이었다.

그 같은 결과물에 이르는 세부 내용까진 모를 것이나, 뮤턴트와 키메라의 차이 정도는 구분할 수 있을 터였다.

“흐흐흐흐….”

영국 왕실에서부터 시작된 혼란이 어떤 방식으로 어디까지 뻗어 나갈지, 저도 모르게 기대감이 차오르며 어깨가 들썩거렸다.

그런 와중에 제2 호위대의 대장이자, 그의 비서 역할도 수행 중인 테라가 조심스레 방문을 열고 다가와 말했다.

“각 클랜에서 항의 전화가 빗발치고 있습니다.”

이번 뮤턴트 소동은 저들의 동의 없이 독자적으로 벌인 일이다 보니, 저들의 소란은 어찌 보면 당연한 수순이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비모는 태연하기만 했다. 이미 예상했던 일이기도 하거니와, 오히려 저들에게 따져야 한다는 입장이기도 했다.

“그 좋은 기술을 맨입으로 꿀꺽하려고 하면 안 되지. 베푼 만큼 나눌 줄 알아야 하지 않겠어?”

안으로 꽁꽁 싸매고 개별적인 연구를 진행하려는 저들 클랜의 행태에, 먼저 나서서 혼란을 조장해 준 것이다.

“제 놈들이 안 나서니까 내가 나선 거잖아.”

굳이 뮤턴트일 필요는 없었다.

적당히 난동을 부리는 걸로 시작해도 충분하건만, 각국 정보부를 비롯한 여러 네임드들이 눈에 불을 켠 상황이다 보니, 클랜의 행보에 제동이 걸린 것인데, 그걸 용납해 줄 비모가 아니었다.

“그것들이 잘한 게 뭐 있다고.”

오히려 경고를 보내라 했다.

“괜찮겠습니까?”

이어지는 테라의 걱정 어린 물음에 비모가 히쭉 웃어 보였다.

“힘을 지닌 건 우리야. 뮤턴트 기술부터 키메라까지. 우리가 지닌 기술력이면, 식민지 이전에 계급제를 확실히 각인시킬 수 있을 거다.”

과학이라는 색다른 문물은 이쪽이 우위라는 걸 인정하지만, 인체의 신비를 다루는 학문에 있어서는 그들이 우위였다.

특히, 인간이라는 개체를 연구하는 바에 있어선, 도플갱어 일족의 장기가 아니던가.

“어차피 테러 집단으로 유명세를 탔는데, 기왕 할 거면 확실히 해야 할 거 아니야. 대놓고 하라는 것도 아니고, 적당히 찔끔거리면 되는 거잖아.”

그러면서 광기가 번들거리는 눈으로 바라보니, 테라는 조용히 고개를 숙여 보이며 명령을 이행할 수밖에 없었다.

* * *

마루는 바로 아발론을 나서지는 않았다.

가족들이 걱정되는 마음이 컸지만, 존슨을 믿으며 좀 더 버티기로 한 것이다.

이유인즉,

‘겨우 일회용이라니.’

작위도 부여됐고 이런저런 혜택이 뒤따르긴 했지만, 역시나 왕실의 보고를 이용한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고, 그 때문에 그에게 허락된 출입증은 1회 한정이었다.

차후, 또 다른 공헌도가 인정됨에 따라서 얼마든지 새로운 출입증을 만들 수 있다고는 하나, 상황이 마냥 낙관적인 건 아니었다.

각종 비약의 재료로 쓰이던 본 드래곤의 호수가 말라 버린 탓에, 이래저래 말이 나오고 있다는 것이다.

전설의 성검 엑스칼리버의 등장으로 어느 정도는 잠재웠지만, 그래도 마냥 깔끔하게 정리된 건 아니었고, 그 때문에 다음 이용까지 얼마나 걸릴지 모를 일이었다.

꺄르륵….

꺄륵….

주변을 맴도는 다양한 꼬마 정령들을 보고 있노라면, 관광 삼아서라도 다시금 오고 싶은 장소가 아니던가.

PP 내에서도 이처럼 많은 정령들을 보기는 어려운 만큼, 확실히 이곳은 매력적인 요소가 넘쳐 나는 던전이 확실했다.

굳이 그가 이곳에 남은 이유가 있었다.

[칭호 : 용아병]

포스가 들끓는 가운데, 그의 변화 형태에 새로운 변형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작은 아기 용을 닮아 작달막했던 뿔이 한층 커지고, 피부의 비늘빛의 오러는 더욱 선명해졌으며, 등 뒤로는 마치 날개처럼 펄럭이는 아우라가 존재감을 한껏 발산 중이었다.

충만한 용의 기운!

아발론의 신비가 함께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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