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 각성하십시오!
#19. 각성하십시오!
위이이이이잉….
영국에서의 기나긴 일정이 드디어 끝을 맺었다.
마루와 가족들은 왕실에서 내어 준 전용기를 타고 드디어 귀향길에 올랐다.
레메게톤과 그들 소속의 클랜들이 벌이는 사건 사고로 인해, 여전히 영국을 비롯한 유럽 전역이 테러의 위협으로 들끓고 있었지만, 마루는 굳이 더 이곳에 있을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다.
오히려 위험한 만큼 빨리 떠나야 한단 결론을 내렸다.
그 때문에 아발론에서도 예정보다 일찍 나온 것이 아니던가.
솔직한 심경으론 한 달이고 두 달이고, 계속 머물면서 용의 기운에 적응하고 싶었지만, 레메게톤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다는 소리로 인해, 결국 사흘을 버티다가 나와 버린 것이다.
“와~! 정말로 때 빼고 광냈나 보네. 피부가 왜 이렇게 반들반들해.”
여동생 정다솜을 시작으로,
“이 녀석아 바쁜 건 알지만 연락 정도는 해 줘야지. 네 엄마가 걱정 많이 했잖아.”
“대체, 뭘 하다가 이제 오는 거야.”
부모님들의 등짝 스매싱이 첨부된 거친 환영 등, 가족들의 애정 공세 속에서 안도감을 느끼며, 짧게나마 런던 관광까지 마친 뒤에야 귀향길에 오른 것이다.
창밖으로 멀어지는 런던의 풍경을 바라보고 있노라니, 문득 저곳에서 이뤄졌던 아주 특별한 만남이 떠올랐다.
그건 그가 아발론을 나오고, 가족과의 해후를 마친 이후의 일이었다.
* * *
존슨 패밀리!
마루에게 있어서 그들은 하나같이 동경의 대상들이었다. 전부 1~2세대 각성자들로서, 세계 각지를 돌아다니며 다양한 활약들을 해 온 영웅들이지 않던가.
당연히 그중에서 최고는 존슨이긴 했지만, 패밀리들 역시 다를 바 없는 영웅인 건 확실했다.
한국에선 최악으로 꼽히는 랭커, 피닉스 이선마저도 동경의 대상으로 여길 정도였으니, 더 말해 무엇하랴.
물론, 전문 헌터로서 이선에 관한 비밀들을 알았던 것도 한몫했지만, 어쨌든 저들 패밀리는 마루에게 있어서 전부 연예인이나 다를 바 없는, 말 그대로 ‘스타’들인 것이다.
존슨과 이선은 함께 생활하며 그 환상이 많이 깨졌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자리하는 것만으로도 뿌듯한 만큼, 나머지 패밀리가 한자리에 모여 있다는 건, 여러모로 심장 뛰는 일일 수밖에 없었다.
‘존슨, 데일, 이선, 루시아, 바하마, 다비드, 커난….’
거기에 마루 본인까지, 이제는 여덟이 되어 버린 형제의 모습에 가슴 들썩이는 걸 느꼈다.
과거, 존슨을 처음 마주했던 당시의 감동이랄까?
“만나서 반갑다.”
“앞으로 잘 부탁한다.”
커난과 다비드 콤비가 먼저 말문을 열었고, 이어서 바하마와 루시아가 뒤따랐다.
“우리 중에서 작위가 있는 건, 네가 처음일걸.”
“이거 왜 이래? 우리 에디(A.D)도 작위 정도는 당장이라도 받을 수 있어. 아… 물론, 반가운 건 마찬가지야.”
에디는 루시아가 아드리안 데일을 부르는 약칭이자 애칭으로서, 그녀의 이야기처럼 데일 역시도 영국의 명예 훈장을 지니고 있었는데, 등급도 마루와 동일한 2등급이었다.
언제든지 작위를 얻을 조건이 되는 것이다.
“그래서 지금 있어?”
다비드가 옆에서 깐죽대며 질문을 던지고, 할 말이 없던 루시아는 주먹을 부르르 떨다가 이내 사정없이 휘둘렀다.
이에 걸음아 나 살리라며 도망가는 모습까지, 마루는 새삼 저들 형제의 일상을 곁에서 함께하고 있단 생각에, 재차 가슴이 뿌듯해짐을 느꼈다.
마루와의 만남 때문에 기다렸던 듯, 패밀리는 짧은 인사를 끝으로 각자의 자리로 돌아가기 위한 채비를 했다.
데일에 비할 바는 아니겠지만, 각자 나름의 위치에서 특별한 포지션을 지니고 있다 보니, 이처럼 오래 자리를 비우는 게 쉽지 않은 까닭이었다.
특히, 이번 사태로 은퇴했던 커난과 다비드마저 랭커가 되었다는 걸 세계가 알게 됐을 터, 활동 여부와 무관하게 중요도가 상승하는 건 당연한 수순이었다.
랭커는 국가 전력의 핵심이지 않던가.
“언제든 도움이 필요하면 연락해.”
패밀리들은 그렇게 각자 자신들의 비밀 연락망을 알려 주며 떠나갔고, 마루는 유명 연예인의 사인을 보관하듯, 이를 소중히 안주머니 깊이 챙겨 넣었다.
* * *
위이이이이잉….
문득, 묘한 진동이 울려 퍼지며 마루를 깨웠다.
창밖으로 바라보니 어느새 비행기가 착륙하며 속도를 줄이고 있는 게 보였다.
“드디어 한국이구나.”
“으다다다~! 도착했다!”
“김치! 고추장! 쌈밥!”
“쌈밥~!”
가족들이 환호하며 자리에서 일어나는 게 보였다. 귀빈 대우를 받았던 만큼 외국 생활이 나쁘진 않았지만, 그래도 타고난 입맛이라는 건 어쩔 수 없던 터라, 식습관에서 차곡차곡 누적되는 피로감이라는 게 있던 것이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전용기를 타고 편안한 여행을 한 덕분인지, 장거리 여정으로 인한 피로감은 크게 느껴지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각자 짐을 챙기며 비행기를 내릴 때였다.
‘음…?’
마루는 묘한 느낌을 받으며 잠시 멈칫거렸다. 그리고 이 타이밍에 맞추듯 누군가가 다가왔다.
혜성 측에서 붙여 준 경호원들로서, 마루보다는 그의 가족들을 위해서 이선희가 따로 움직인 요원들이었다.
경호팀의 팀장이 다가와 말했다.
“밖에 기자들이 진을 치고 있습니다.”
마루가 느낀 게 바로 그것이었다. 공항 주변에 기이할 만큼 넘실대는 사람들과 열기가 전해진 것인데, 마루는 잠시 고민하다가 물었다.
“몰래 빠져나갈 수 있을까요?”
“…쉽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시간을 좀 들인다면 모를까. 당장은 어려울 거란 판단이었는데, 이는 각 언론사에서도 나름 수준급의 각성자들과 계약을 하기 때문이었다.
이들 시선을 교란시키려면 자연히 공항에서 대기하는 시간이 길어질 수밖에 없었다.
마루는 슬쩍 가족들을 돌아보며 말했다.
“저만 따로 움직이도록 하죠.”
가족들의 안전은 크게 걱정하지 않았다. 일단 한국으로 넘어온 점도 있었고, 추가적으로 저들 사이에 안전장치가 마련되어 있기도 했다.
‘잘 부탁한다.’
―맡겨만 주십시오!
반칼죽의 시원한 대답에 더해, 가족들 사이로 스미는 사자유희의 그림자까지, 마루는 만족스레 고개를 끄덕이며 가족들과 갈라졌다.
* * *
파팟! 파파파팍! 파파팡!
사방에서 쏟아지는 뜨거운 플래시 세례란, 마치 섬광탄을 터트린 것처럼 따가울 지경이었다.
연예인들이 선글라스를 쓰는 기분이 이해된다고 해야 할까?
마루는 경호팀장에게 작게 감사 인사를 보냈다. 그가 챙겨 준 선글라스 덕분에 섬광탄 세례는 피했기 때문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드를 뚫고 들어오는 불빛이 상당했지만, 그래도 덕분에 조금 더 편하게 주변을 살필 여유를 얻을 수 있었고, 그로 인해 적잖이 놀라야만 했다.
“와아아아아아~!”
“멋지다. 트랩퍼!”
“사랑해요. 건어택!”
정말 말도 안 되게 많은 인파가 공항을 가득 메우고 있던 것이다. 그들이 들고 있는 여러 팻말과 깃발 등도 그득했다.
―우윳빛깔 정. 마. 루!
―동방기사 정. 마. 루!
―눈빛미남 정. 마. 루!
―미소전사 정. 마. 루!
화려한 무언가가 잔뜩 걸려 있는데, 묘하게 거슬리는 느낌은 뭘까?
‘…직접적으로 얼굴 언급하는 건 없네.’
피부에 눈빛?
‘미소 전사는 뭔데?’
슬그머니 돌려 까기를 당하는 기분은 착각일까?
물론, 뜨겁게 달아오른 사람들의 반응을 보면 그런 건 아닌 듯싶었지만, 너무 집요하게 둘러대는 느낌이라, 괜히 찜찜하다고나 할까?
어쨌든 그렇게 혜성에서 준비한 안내인을 따라, 본의 아니게 포토 라인도 서 보는 가운데, 재차 화려한 플래시가 터져 나오고, 저들이 만족할 만한 포즈를 잡아 준 뒤에야 간단한 기자 회견을 취할 수 있었다.
“한국 최초로 기사 작위를 받으셨는데, 기분이 어떠십니까?”
짐작했던 그대로라고 해야 할까?
역시나 작위와 관련된 질문들이 주를 이루고 있었는데, 적당히 무난한 대답으로 기자들을 달래 줬다.
그러면서 한편으로 생각했다.
‘와… 정말 많이 컸네.’
2년 전의 자신을 떠올리면 상상도 못 할 위치에 다다랐음을 깨달은 것이다. 그 실력만 놓고 본다면 1년 전에도 충분히 대단했지만, 지금은 거기에 더해 인지도까지 어마어마하게 올라간 것이다.
더욱 놀라운 건 그가 의도한 게 아니라, 마치 주머니 속 송곳처럼 자연스러운 흐름이 그를 이끌었다는 점이었다.
“트랩퍼와 건어택, 두 가지 이명으로 불리시는데, 개인적으로는 어떤 게 마음에 드시나요?”
소소한 질문 역시 날아드는데, 이 역시 적당히 응수해 줬다.
“아무래도 제 경력과 가장 오랜 시간을 함께한 게 총기류다 보니, 건어택이 좀 더 와닿기는 하네요.”
트랩퍼는 존슨을 통해 발전했다는 걸, 이젠 대다수의 사람들이 알고 있는 만큼, 건어택이야 말로 마루 경력의 정수라는 게 대중의 평가이기도 했다.
그렇게 이런저런 질문들에 응해 주며 시간이 흐르고, 혜성의 직원이 시간을 확인하며 마무리를 준비할 때였다.
“리얼 플레인의 박문철 기자입니다. 마루 씨께선 아이언슈트 님과도 친분이 있다고 들었는데, 사실입니까?”
의외의 질문이 튀어나온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아주 뜻밖인 건 아니었다. 아이언슈트 역시 존슨 패밀리의 일원이란 이야기가 많이 흐르고 있기 때문이었다.
마루는 짧은 고민 끝에 그렇다고 대답을 해 주는데, 왠지 이어질 질문이 예상이 됐다.
“최근, 세계 각지에서 신규 각성자들이 대거 탄생하고 있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그게 아이언슈트 님의 각성 체조 덕분이라는 말이 많은데, 관련해서 어떤 의견이 있으신지. 들을 수 있을까요?”
아발론에서 눈을 뜬 뒤, 성녀 레아에게 들었던 세계적인 이슈가 바로 저것이었다.
유럽 내에서야 몬스터 사건이 피부로 와닿는 터라, 그 화젯거리가 비등비등했지만, 유럽을 벗어난 지역에선 각성 체조에 관한 화제가 연일 순위권을 찍는 중이었다.
마루는 잠시 고민하다 물었다.
“그 질문은 저에게 하는 건가요? 아니면 아이언슈트에게 하는 걸까요?”
이에 박문철 기자는 잠시 긴장한 얼굴로 마른침을 삼켰다. 이 자리는 순수하게 마루를 위한 환영식을 빌려서 펼쳐진 무대였다.
그런데 그와 전혀 무관한 이야기로 화제를 띄운다?
쫓겨나도 할 말이 없는 것이다.
특히, 상대가 혜성의 비호를 받을 뿐만 아니라, 이제는 영국 왕실의 작위까지 얻어 낸, 세계적인 대스타라는 걸 생각한다면, 충분히 무례라고 할 수 있을 터였다.
그 때문에 잔뜩 긴장하며 입을 열었다.
“다… 당연히 자리하고 계신 마루 씨의 개인적인 생각을 듣고 싶은 것뿐입니다.”
아이언슈트와 친분이 있는 트랩퍼의 의견을 원하는 것이지만, 주변 시선과 상황으로 인해 목소리가 살짝 죽어 버렸다.
마루는 박문철을 유심히 쳐다보다가 물었다.
“혹시, 혜택을 받으신 겁니까?”
박문철이 화들짝 놀라선 마루를 바라봤다.
“…그… 그걸 어떻게?”
여러 가지 이유가 있을 것이다.
막 각성한 듯 정제되지 않은 어설픈 포스의 잔향이 넘실댔고, 거기에 더해 아이언슈트를 언급하면서 굳이 ‘님’ 자를 붙여 가며 강렬한 존경심을 표하는 부분 등등, 마루는 기자의 나이를 유추해 봤다.
‘40대는 넘었겠네.’
늦은 나이나마 꿈을 이뤘기에, 관련한 질문에 대한 열망이 남달랐으리라.
짧은 실소와 함께 답을 해 줬다.
“아이언슈트와도 제법 친분이 있는 입장에서 말씀드리도록 하죠.”
기자가 원하는 바를 알아서 꺼내 주기로 했다.
“각성 체조, 그건 사람들의 숨겨진 재능, 이능을 끌어올리기 위해 긴 시간을 준비한 공부입니다.”
여전히 관련해서 의심하는 이들이 있을 것이다.
“지금 세계적으로 발생하는 이상 각성 현상을 통해서, 각성 체조의 효과는 증명했을 거라고 여깁니다.”
마루는 이야기했다.
“더 이상 의심하지 마십시오. 24시간 옆구리에 총을 끼고 다닐 수는 없습니다. 갑작스러운 게이트 알람에 놀라 대피할 시간이 부족할 때, 주변 지인 가족을 지킬 수 있는 존재가 되십시오.”
레메게톤을 상기시켰다.
“몬스터가 테러에도 사용되는 시대입니다. 안전을 챙기십시오. 최소한의 보호 장비를 착용하라고 말씀드리는 겁니다.”
그러면서 폭탄 발언도 아끼지 않았다.
“각성 체조는 아이언슈트가 전파했지만, 이는 실버 박사님께서 긴 시간을 공들여 마련한, 그분의 유산입니다.”
마루는 자신을 향해 있는 카메라를 바라보며 외쳤다.
“각성하십시오!”
대환란이 다가오고 있었다.
자립심을 키워야 할 때였다.
파팟! 파파파팍!
플래시가 폭죽처럼 터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