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로그인 더 헌터-294화 (294/325)

#20. 여의신주.

#20. 여의신주.

세계가 또 한 번 들썩였다.

만국의 오락거리인 퍼펙트 플레이를 개발하며, PP의 아버지라 불리는 사내, 세상을 떠나고 상당한 시간이 흘렀음에도, 여전히 많은 이들의 가슴에 남아 있는 존재.

실버 박사!

그 특별한 천재의 유산이 언급된 까닭이었다.

―요즘 느끼는 건데, 마루가 떴다 하면 뭔가 하나씩 터지는 듯. 나만 그리 생각하냐?

―인정!

―건너건너서 들은 거긴 한데, 각성 체조 나왔을 때, 전문 업계 쪽으로 그런 이야기가 있기는 했었음. 아이언슈트가 실버 박사의 유산을 물려받았느니 어쩌느니 하는 소문.

―그놈의 건널목 썰, 지긋지긋하다!

―전혀 헛소리는 아닌 듯. 나도 업계에 비비고 있는데, 건너서 들은 것 같음. 입단속을 철저히 하는 느낌이라 주둥이 잘 여물고 있었음.

―계속 싸물고 있지, 왜 씨부림?

―트랩퍼가 밝혔으니까.

―그런데 실버 박사의 유산이 각성 체조라는 건 뭐냐?

―전에 그런 소문이 있지 않았나? PP가 각성자 [개발]을 위해 만들어진 프로그램이라는 거.

―PP가 막 유행할 때, 그런 소문이 있긴 했지.

현실의 몬스터를 구현하고, 이를 통해서 가상에서 나름의 패턴 연습 및 훈련을 할 수 있다는 점에서, 초창기에 그런 이야기가 제법 나돌기는 했었다.

하지만 어느 순간 관련한 소문이 잠잠해졌었는데, 누군가가 그 시기를 정확히 짚어 냈다.

―실버 박사가 죽고 난 이후부터 싹 사라졌던 것 같은데.

―그러고 보니….

―아니, 것보다 실버 박사가 정말 죽은 거 맞음? 그냥 은퇴한 거 아니었냐? 따로 장례식 치른 것도 아니잖아.

―듣기론 암살됐다는 소리도 있던데.

―이미 PP는 인공 지능으로 알아서 잘 돌아가니까. 박사 중요도가 많이 낮아지기는 했지. 그래서 쓱싹 했다는 말도 있었지.

―은퇴건 사망이건, 세상을 떠난 건 사실 아닌가? 이렇게 오랜 시간 연락이 없는 걸 보면.

그 때문에 호기심이 샘솟는 것이다.

―아이언슈트가 박사의 유산을 이었다는 게 사실일까?

―트랩퍼가 헛소리한 거 아니야?

―존슨이 뒤에 있다지만, 그래도 솔직히 반반이다.

―아니, 더 의심할 게 남았냐? 이상 각성자들 보면 이미 증명된 거 아님? 각성 체조는 진짜고, 고로 실버 박사 이야기도 믿을 만하다고 본다.

이상 각성자란, 기존의 각성 연령대를 한참 웃도는 각성자들의 등장을 의미했다.

45세의 회사원 박달수가 이미 이상 각성의 스타트를 끊었던 걸 시작으로, 최근 들어서는 그처럼 40대 이상 심지어 50대의 각성자들도 대거 출현하기 시작했는데, 놀라운 건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브라질에 9살 각성자 떴다더라.

―스위스에선 8살도 등장했다고 하던데.

―최연소 각성 기록도 우르르 깨지네.

―전부 각성 체조 덕분이라더라.

위아래로 연령대의 폭이 확 늘어나 버렸다.

저 새로운 기록의 보유자들은 하나같이 각성 체조를 익혔다고 하는데, 대다수가 반신반의하면서도 일종의 호기심에 꾸준히 익혔다는 것이다.

그나마도 의심이나 의혹 등으로 인해, 초반에 상당수가 떨어져 나간 터라, 저만큼의 각성자가 등장했을 뿐, 만약 끝까지 믿음으로 꾸준히 연공을 했더라면?

―적어도 지금의 배 이상은 각성했을 텐데.

―각성 체조 덕분에 능력자 비율이 급상승 중이라더라.

―앞으로도 더 오르겠지?

―지금 상황만 봐도, 아이언슈트를 의심할 이유는 없지.

―그래도 아이언슈트가 직접 말한 것도 아니고, 트랩퍼가 한 말인데, 완전히 믿기는 좀….

이런 의문이 이어질 때, 새로운 리튜브 영상이 올라왔다.

언제나처럼 아이언슈트의 사냥 영상으로 스타트를 끊었는데, 당연하게도 그 실력을 증명하듯 레이드 클래스급의 고위 몬스터들을 맨손으로 때려잡는 영상을 통해, 수많은 구독자들을 환호하게 만들었다.

―크으… 이 맛에 아이언슈트를 끊을 수가 없다.

―맨손으로 천둥 오소리를 때려잡는 실력!

―왠지 독볶이도 철근처럼 씹어 먹을 듯.

―달리는 마을버스….

―거기까지만 하자.

모두를 들끓게 할 만큼 파이팅 넘치는 영상이 이어지고, 그 끝에서 짧게 자막이 올라왔다.

[실버 박사의 유산 : 헌터 육성 프로젝트]

그리고 이어지는 하나의 사이트 주소.

[퍼펙트 플레이]

그간 세계 각국의 많은 단체들이 숨기고자 했던 걸, 대놓고 드러내 버린 것이다.

은연중에 의혹을 풀어내며, 관심도를 다른 방향으로 비틀고자 했던 각국 정보부는 망연자실한 얼굴로 손을 놔 버렸다.

“젠장! 왜 사이트 폐쇄가 안 되는 거야?”

“코드 네임 자비드 때문인가?”

“그 빌어먹을 해커 놈에게 사이트 통제권이 완벽히 넘어가 버렸다고 합니다.”

“결국, 아이언슈트의 영상을 내리는 건 불가능하단 거지?”

이전부터 꾸준히 관련 영상들을 컨트롤하려 했지만, 자비드로 인해서 매번 원하는 바를 이룰 수가 없었다.

마루의 비서 인공 지능 자비드, 그게 비록 알파 버전으로서 PP 본체에 비할 바는 아니라고는 하나, 엔트라넷의 아바타 중 하나인 만큼 어마어마한 연산 능력을 포함하고 있었다.

각국 단체 정보부의 시스템 및 정예들이 한데 모이지 않는 한, 그를 추격한다는 건 불가능에 가까운 일인 것이다.

혹여 꼬리를 잡더라도, 그건 그 나름대로 골치일 터였다.

언급했듯이 엔트라넷의 아바타라 할 수 있는 터라, 그 회선이 PP로 연결되며 그들을 더욱 당혹스럽게 할 것이기 때문이었다.

실버 박사의 유산이라는 부분만 더욱 부각될 뿐이리라.

그 때문일까?

[아이언슈트 새로운 격변의 시대를 이끌다?]

하루하루 드높아지는 이름값과 함께, 어느새 아이언슈트의 존재감은 WHA의 1대 회장이자 세계적인 영웅, 마르코의 명성에 버금갈 정도가 되어 있었다.

“휘유….”

존슨은 일련의 상황 및 흐름을 지켜보며 작게 탄성을 내질렀다. 옆에서 이를 함께하던 이반나 역시 비슷한 표정을 짓고 있었는데, 그녀가 흥미진진한 얼굴로 눈빛을 반짝이며 물었다.

“설마, 이런 식으로 폭탄 발언을 할 줄은 몰랐는데. 대체 무슨 깡으로 그런 걸까?”

이에 존슨은 영국에서 헤어지기 전, 마루의 모습을 떠올리고는 작게 미소를 지었다.

“1일 1깡 정도는 할 때가 됐지.”

아발론에서 뭔가 대단한 걸 얻어 나온 듯싶었는데, 놀랍게도 그도 이젠 마루의 역량이 제대로 파악되지 않을 정도였다.

느낌상 벽을 넘었다고 보긴 어려웠지만, 적어도 과거 그가 벽에 들이받던 시절에 버금갈 거란 확신은 있었다.

막말로 그 무렵에도 존슨은 유아독존(唯我獨尊) 할 만한 재주가 있지 않았던가.

마루도 더는 눈치 볼 시기가 아니었다.

스스로에 대한 확신이 강해졌을 뿐만 아니라, 트랩퍼의 재주를 통해서 주변 보호에 대한 자신감도 제법 차올랐다는 뜻이리라.

그것 외에도 이런저런 재주들이 그를 든든히 뒷받침하고 있을 터였다.

“그 1깡이 너무 센데.”

이어지는 이반나의 이야기에 존슨이 실소하며 말했다.

“실버 박사의 유산은 결국엔 밝혀졌을 내용이야. 그리고 마냥 비밀로 싸매고 있을 상황도 아니잖아. 신중한 걸로는 나도 한 수 접어 줄 녀석이니까. 나름의 계산이 있겠지.”

하루하루 PP의 3차 전직자가 늘어나는 가운데, 게임의 특별함도 조금씩 수면 위로 올라오는 상황이었다.

더는 숨기기 어려운 시기가 다가오고 있었다.

이반나가 잠시 생각하다가 이내 인정한다는 얼굴로 고개를 끄덕인 뒤, 화제도 돌릴 겸 주변을 돌아보며 말했다.

“…그나저나 영국도 간만이네.”

현재 그들은 스노우도니아 국립 공원을 걷고 있었는데, 존슨의 위치가 파악된 이상 이반나도 더는 연기할 필요가 없던 터라, 이곳 영국으로 넘어온 것이다.

“일부러 여기까지 올 필요는 없었는데.”

존슨의 말에 이반나가 팔짱을 끼며 말했다.

“벌써부터 소박 맞히려고?”

“소박?”

“…그런 게 있어.”

한국어 패치가 완벽하진 않은 터라, 존슨이 고개를 갸웃거리는 모습에 한숨을 푹 내쉰 이반나가 말했다.

“어쨌든 앞으로는 같이 활동하는 거야.”

소박이라는 단어의 뜻은 모르지만 이어지는 내용을 통해 대략의 느낌은 전달됐었던지, 존슨이 이반나의 어깨를 감싸 안았다.

그리고 이를 뒤에서 지켜보던 가디언즈들은 조용히 헛구역질을 했다.

‘우웨에에게….’

‘하… 서럽다!’

‘내 님은 어디에 있나?’

‘굳이 여기서 저러고 싶을까?’

이들의 격한 반응이 마냥 이상한 건 아니었다.

그도 그럴 게 대다수의 국립 공원이 그러하듯, 이곳 역시도 마수지대화 된 장소로서, 사방 가득 마물이 넘쳐 나는 장소이기 때문이었다.

달달한 핑크빛 분위기와 참으로 어울리지 않는 공간인 것이다.

그들이 굳이 이곳까지 들어온 건?

“저기 보이네.”

이반나가 저 멀리, 이곳 수풀이 무성한 마수지대와는 너무도 어울리지 않는 건축물 하나를 가리켰다.

절묘하게 절벽을 등진 채 가려져 있었지만, 이미 관련 정보를 수집한 상황이다 보니 찾아오는 건 그리 어렵지 않았다.

“역시 불법 연구소는 발록이 전문가네.”

그녀의 말에 일행들은 일제히 고개를 끄덕였다.

이곳은 발록이 수집한 여러 포인트들 중 하나로서, 레메게톤 소속의 연구소로 예상되는 장소였다.

최근 발생하고 있는 레메게톤의 돌발 행동과 각종 테러 사건으로 인해, 가디언즈는 재차 바깥세상에 발을 걸쳐야만 했는데, 그들 외에도 각국 단체에서도 여러 루트를 통해서, 유럽 이면을 압박하는 중이었다.

그 선두에는 유럽의 WHA가 되길 노리는 위저드가 자리하고 있었다.

사실, 지난 종교 사건 이후 던전으로 돌아갔던 가디언즈가 외부 활동을 재개한 건, 그들 위저드의 의뢰 때문이기도 했다.

세계를 위해 봉사한다는 그들 입장에 맞춰, 이런 식으로 세상에 도움이 되는 의뢰의 경우, 환영하며 받아들이는 바였다.

“아무래도 빙고인 거 같은데.”

주변을 쭈욱 돌아보던 이반나가 그리 말했고, 일행들은 재차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했다.

마굴 심처와 닿아 있다고는 하나, 심상찮을 정도로 많은 수의 고위 몬스터가 사방 가득 널려 있던 것이다.

“긴장 좀 해야겠네.”

이반나는 최대한 기운을 갈무리하며 호흡을 죽였고, 일행들도 이를 뒤따르며 조용히 진입을 시작했다.

* * *

발록과 피닉스의 격돌 덕분일까?

마루 동네의 뒷산은 사람들의 발길이 더는 이어지지 않는 장소가 되어 버렸고, 덕분에 그의 제자들의 수련장으로 자주 이용되고는 했다.

오늘은 그 장소를 마루 개인의 수련장으로 사용 중이었는데, 근래 들어서 그는 PP에서의 수행이 아닌 현실에서의 수행에 집중하고 있었다.

PP에선 이미 그토록 바라던 200레벨을 찍었고, 놀랍게도 전직까지 단숨에 끝내 버리지 않았던가.

지금 상황에선 레벨 작업이 쉽지 않은 점도 있었지만, 스탯 조금 오르는 정도로는 현 상황에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 역시, 그를 현실에 머물게 만드는 부분이었다.

특히, 아발론에서 새롭게 일깨운 기운의 내면 가득 들끓고 있었는데, 이를 온전히 그의 것으로 받아들이는 것만으로도, 그는 하루하루 성장하는 걸 느낄 수 있었다.

마루는 그 새로운 기운의 중심지를 떠올렸다.

[미완의 여의신주]

오염된 기운을 걷어 내고 난 뒤, 새롭게 깨어난 여의주의 명칭으로서, 거기에는 놀랍게도 용의 기운만이 아니라 다른 신기의 기운도 함께 휘몰아치고 있었다.

청룡과 주작 그리고 현무!

명칭에서 알 수 있듯이 백호의 기운이 부족한 탓에, 따로 ‘미완’이라 불리는 듯싶었다.

그 때문에 이처럼 매일 수행하는 것이기도 했다.

‘와라… 와라… 컴온… 컴….’

기운을 갈무리하는 한편, 슬쩍 실눈을 뜨며 한편을 바라봤다.

그가 내면을 다스리고 있노라면, 슬그머니 다가와 먼발치서 서성이는 그림자 하나를 발견할 수 있었다.

검은 고양이 메로!

백호의 신물을 지닌 지킴이였다.

하루하루 다가오는 거리가 줄어들고 있었는데, 그 거리가 제로가 되는 날, 여의신주를 완성할 수 있을 거라 여겼다.

그리고 오늘이 제로가 될 거라 예상되는 날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냐앙….

슬금슬금 조심스레 다가오는가 싶던 메로가 쏙 하니 그의 품 안으로 들어오는 걸 느꼈다.

‘…드디어!’

감동의 물결이 들이치는 순간, 새로이 차오르는 감각이 있었다.

화아아악!

검은 고양이 메로의 전신 가득 하얀 물결이 치는가 싶더니, 마치 호랑이를 떠올리듯, 새하얀 무늬가 형성되는 가운데, 여의신주가 이에 반응하며 들썩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쿠르르르르르….

동네 뒷산으로 때아닌 천둥과 번개가 몰아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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