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 이용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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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른하늘에 날벼락이라고 해야 할까?
갑자기 몰아치는 천둥과 번개로 인해 뒷산의 악명이 한층 높아지는 가운데, 마루는 내면 깊숙한 곳에서 미묘하게 어긋났던 톱니바퀴가 바로 맞물리는 감각을 느꼈다.
굳이 엔트라넷으로 확인할 것도 없이, 여의신주가 완성되고 있음을 알았다.
뿐만 아니라 마루 역시도 완성되고 있었다.
[청룡, 백호, 주작, 현무]
네 가지 기운이 어울리며 그의 몸속을 놀이터 삼아, 이리저리 뛰어놀며 다채로운 움직임들을 보여 주는데, 이를 보고 느끼며 따라잡는 사이, 그는 어느새 무아지경의 영역에 빠져들었고, 그 속에서 새로운 도약의 발판에 발을 딛고 있었다.
존슨을 통해 기운의 다양한 활용 및 운용법을 깨우친 바 있지만, 그것은 타인의 경험에 부딪치며 간접적으로 습득해 가는 과정에 가까웠다.
하지만 네 가지 기운들이 보여 주는 건, 전혀 궤가 달랐다.
그의 몸속에서 이리저리 뛰놀며 간접이 아닌, 직접 경험을 통해 그가 깨우치도록 이끌고 있던 것이다.
때때로 이해할 수 없는 기운의 흐름도 있었지만, 그건 그것대로 충분했다.
일단 그의 몸속에서 이뤄지는 행위였고, 그 감각과 흐름은 분명 내부에 남아 있는 만큼, 꾸준히 되새기며 복기하다 보면 언젠가는 깨우쳐 따라잡을 수 있을 터였다.
그렇게 네 가지 기운은 마치 스승처럼, 때론 친구처럼, 또 어떤 땐 악동처럼, 그의 몸속을 이리저리 노닐며 그를 이끌었었다.
뿌득… 빠득… 까드득….
그 역시 노니는 법을 깨우쳐 갈 즈음, 조금씩 그의 육신에선 변화가 발생하기 시작했는데, 만약 이 현상을 누군가가 봤더라면 경악성을 내질렀을 터였다.
PP를 통해서 그 개념만 전해질 뿐으로, 그저 게임 속 환상으로 치부되는 변화가 마루에게 이뤄지고 있기 때문이었다.
바디 체인지(Body change)!
혹은 환골탈태(換骨奪胎)라고도 불리며, 육신이 최적의 상태로 재구성된다는 기적에 가까운 현상이 마루에게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알려지지 않았지만, 존슨 역시도 과거 산타카타리나 마수지대에서 주작의 신물로 인해, 이 특별한 현상을 경험하며 벽을 넘었던 바 있었다.
어쨌든 그 기현상은 놀라우리만치 섬뜩한 마찰음을 동반하며 이뤄지는데, 마루의 표정은 기이할 만큼 평온하기만 했다.
심지어 어느 순간부터는 입가에 미소까지 띠고 있었는데, 이는 무아지경 속에서 네 가지 기운의 어우러짐을 따라, 그 역시 제 몸속을 무대로 노닐기 시작한 결과였다.
뿌드드득… 빠득… 까드득….
그런 표정과 달리 몸에서는 여전히 소름 끼치는 마찰음이 뒤따르고 있었는데, 그 울림이 커지는 것에 맞추기라도 하는 걸까?
쿠르르릉… 콰쾅… 콰콰콰쾅….
하늘 너머의 천둥과 번개 역시 더욱 격렬해지고 있었다.
* * *
콰과과광….
이선은 갑작스러운 천둥성에 깜짝 놀라선 창밖을 바라보다가 그대로 뛰쳐나갔다.
동네 뒷산으로 거대한 기운이 일렁이는 걸 느낀 것이다.
그러다가 이내 걸음을 멈춰야만 했는데, 진입로에 내리치는 벼락이 이를 넘지 못하게 만든 까닭이었다.
우우우우웅….
전신 가득 포스를 일으키며 억지로 돌파하려는 찰나였다.
크르르르….
등골이 오싹해지는 기운과 함께 진입로를 막아서는 그림자가 있었다.
‘호랑이라고?’
너무 뜬금없다고 해야 할까?
게다가 외형도 특이하기 짝이 없었다.
‘흑호?’
칠흑빛의 털에 하얀색 줄무늬를 지닌, 실로 특이한 형태의 호랑이였는데, 섬뜩한 기운을 흘리는 것과 달리 그 눈빛에선 어떠한 적대감도 느껴지지 않았다.
그 때문일까?
벼락이 내리치는 저 너머, 마루의 안위가 걱정되는 한편, 괜찮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뒤따라버렸다.
물론, 직접 눈으로 보고 확인한 게 아니다 보니, 결국 들어가야 한다는 생각이 굳혀질 무렵, 뜻밖의 음성이 하나 끼어들었다.
“걱정할 거 없네. 저 아이는 마루 그 친구를 지키기 위해서 주변을 경계하고 있는 것일 뿐이니.”
기겁하며 옆을 돌아봤고, 거기서 하얗게 웃는 노신사를 볼 수 있었다.
‘…저분은?’
트랩퍼의 이슈를 만들던 사건 당시, 한차례 먼발치서 얼굴만 익힌 존재로, 제대로 인사를 나눈 적은 없었다. 그저 마루에게 이름만 전해 들은 정도였다.
“처음 뵙겠습니다. 이선이라고 합니다.”
“흘흘… 현무암이라고 하네.”
노신사, 현무암이 옷가지에 묻은 먼지를 툭툭 털어 내며 말했다.
“먼 길 급하게 달려오다 보니, 상태가 엉망이군.”
확실히 손길이 지날 때마다 먼지가 후두둑 떨어지고는 하는데, 이선은 그 모습을 보며 마른침을 꼴깍 삼켜야만 했다.
‘보통은 아닐 거라 생각했지만….’
이리 접근할 때까지 기척을 느낄 수 없었다는 게, 여러모로 그의 정신을 몽롱하게 만들었다.
그 때문에 표정을 제대로 수습하지 못한 듯, 현무암이 얼굴에서 생각을 읽고는 히쭉 웃으면서 이야기했다.
“너무 놀랄 것 없네. 내가 좀 특별한 케이스다 보니, 발걸음이 귀신 같거든.”
확실히 틀린 말은 아니었다.
그는 일종의 정령체라 할 수 있는 존재다 보니, 귀신처럼 움직이는 건 너무나 쉬운 일이었다.
물론, 이런 사실을 알 리가 없는 이선의 입장에선, 오히려 더욱 아리송해지는 이야기일 뿐이었다.
현무암은 그런 부분이 재미있던지, 재차 웃어 보인 뒤 흑호의 너머, 벼락이 몰아치는 뒷산의 중심지 방향으로 시선을 던지며 말했다.
“다행히 늦진 않은 모양이군.”
그 말에 뒤늦게 본연의 화젯거리를 떠올린 이선도 벼락 너머를 바라봤다. 현무암이 다시금 이야기했다.
“걱정할 거 없다네. 누군가 습격하거나 한 건 아니니까. 지금 이 현상은 자네 형제가 일으키는 거야.”
‘마루가?’
깜짝 놀란 이선이 눈을 동그랗게 뜨며 벼락을 살폈다. 그러며 한껏 감각을 일으키니, 이게 웬일?
‘그러고 보니….’
쏟아지는 벼락 속에서 희미하니 마루의 기운이 읽히는 것 같았다.
현무암의 조언으로 살필 수 있던 것이긴 하나, 어쨌든 마루의 흔적이 잡혔다는 점에서, 그를 일부나마 안도하게 만들었다.
그가 진정하는 모습에 현무암이 작게 고개를 끄덕이다 물었다.
“한데, 자네는 웬 치마를 입고 있나?”
그 말에 이선이 아차 싶은 얼굴로 자신의 복장을 내려다봤다.
아이들의 점심을 준비하다가 급히 달려온 탓일까?
앞치마 차림이었는데, 하필이면 귀여운 곰돌이 앞치마를 하고 있었다.
민망함에 슬쩍 얼굴이 붉어졌다.
* * *
대마왕은 언제나처럼 마계의 어지러운 하늘을 올려다보던 중, 묘한 흐름을 인지하며 눈을 빛냈다.
“호오?”
슬며시 입꼬리도 올라갔다.
“대적자도 준비됐는가?”
좋은 현상이라 여겼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의문도 느꼈다.
‘기이한 일이군. 세계의 집합체로 대응하려고 방벽을 세운 것 아니었나? 갑자기? 굳이? 지금 대적자라고?’
한 차례 고개를 갸웃거리던 것도 잠시였다.
‘뭐가 어떻게 됐건 상관없지.’
그만큼 방벽의 구멍이 커지고 있단 게 중요했다.
‘도플갱어 일족도 열심히 하는 것 같고.’
이미 여러 차원을 침공했던 경험이 있지만, 이번만큼 가슴 뛰는 상황은 실로 오랜만인 것 같았다.
마치 첫 침공을 경험하던 당시를 연상시켰다.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역시 가장 큰 이유를 꼽으라고 한다면, 이번 침공을 통해 드디어 ‘독립’을 꿈꿀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리라.
왜 하필? 굳이? 이번 침공이어야 할까?
대마왕은 저 너머 세계를 크게 둘러싸고 있는 거대한 방벽을 떠올렸다.
침공은 세계와 세계가 부딪치는 거였다.
그 말인즉, 저쪽의 방벽이 단단하면 단단할수록 이쪽에도 적잖은 문제가 생긴다는 의미이기도 했다.
하늘을 올려다보던 그의 시선이 잠시 밑으로 내려오더니, 제 육신을 쭈욱 훑어 나갔다.
‘…확실히 헐렁해졌군.’
그를 옭아매고 있던 ‘세계의 운명’이란 족쇄가 헐거워지고 있음을 느꼈다. 마계와의 연결 고리가 얇아지고 있다는 것이다.
이는 즉,
‘아버님의 감시망도 얇아졌단 뜻이지!’
슬며시 올라가던 입꼬리가 어느새 귀밑까지 닿아 있었다.
그런 의미에서 본다면, 저쪽 세계의 방벽이 굳건한 오랜 시간 비벼야 좋을 듯도 싶지만, 그건 또 아니었다.
이대로 비비기만 하다 침공이 흐지부지될 수도 있기에, 적당히 균열을 내고 통로를 열어 결과물을 내어놓을 필요가 있는 것이다.
본격적인 침공의 순간이야말로, 세계와 세계가 부딪치는 것이니만큼, 그때야말로 온전한 자유를 찾는 순간일 터였다.
“지구….”
나직하게 하늘 너머의 어딘가를 입에 담았다.
“…기대되는군.”
만남이 가까워지고 있었다.
오랜만에 심장이 뛰었다.
* * *
마른하늘에 날벼락이 치는 기현상이었다.
당연히 동네는 난리가 났지만, 그로 인해서 방송국이 달려오고 헌터들이 몰려오는 일은 없었다.
대개 기현상이란 건 기본적으로 게이트를 비롯한 격변의 징조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기에, 원래라면 수많은 인파로 득시글대야 했지만, 시기적절하게 형성된 먹구름과 빗줄기로 인해서, 기현상을 제대로 인지했던 건 동네 산책을 하던 주민 몇몇이 전부였다.
물론, 그들로 인해서 뒷산에 대한 악명은 한층 높아질 테지만, 일단 날벼락으로 인한 뉴스거리를 잠재울 수 있었다.
그리고 이 부분 때문에 이선은 적잖이 놀랐다.
‘보통 사람은 아닌 줄 알았지만.’
하늘의 먹구름에 자꾸만 시선이 가는 건, 저게 인위적으로 발생한 것임을 알기 때문이었다.
‘호풍환우(呼風喚雨)하는 능력이라니.’
무려 현무암이 불러들인 비구름이던 것이다. 새삼 그 정체가 궁금해지는 가운데, 문득 바짓단이 당겨지는 느낌에 시선이 밑으로 내려갔다.
“히이~!”
“헤헤~!”
“짜잔~!”
초롱이를 비롯한 삼총사가 어느새 형형색색의 비옷을 입은 채 그를 올려다보고 있던 것이다.
이에 실소한 이선이 애들을 향해 물었다.
“밥 잘 먹었고?”
“““예~!”””
“이빨 잘 닦았고?”
“““예~!”””
삼총사들이 목청 높여 외쳐 대는 모습에 절로 웃음이 나왔다. 덕분에 뒷산을 향한 근심을 잠시 떨쳐 낸 듯, 기분 좋게 웃은 이선이 외쳤다.
“그럼, 돌격 밖으로!”
기다리던 신호가 떨어지고,
“와아아아아~!”
“돌격 밖으로!”
“물놀이다!”
삼총사는 한껏 신난 얼굴로 쿵쾅대며 빗속에 뛰어들었다. 어느새 아이들과 동화되어 버린 용군주 라미 역시, 너무도 천진난만한 웃음을 지으며 큼직한 물웅덩이에서 물장구를 치고 있었다.
* * *
눈을 떴을 때, 세상이 달라졌음을 느꼈다.
그리고 이내 깨달았다.
‘내가 변했구나.’
마루는 자신의 육신이 전과 다름에, 적잖이 놀라는 와중에도 이리저리 움직이며 변화를 실감했다.
그러면서 직감할 수 있었다.
‘벽을… 넘었어!’
마루는 전율했다.
진정 초월의 영역에 발을 들였기 때문이었다.
각성하고 2년 남짓!
비각성 헌터였던 그가 각성의 정점에 발을 들인 거였다.
짐작하건대 존슨과 같은 눈높이에 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리라.
전율로 몸을 부르르 떠는 것도 잠시였다.
[특수 보상이 지급됩니다]
그 언젠가, 아공간이 생성되던 무렵을 연상시키듯, 그의 눈앞 허공이 일렁이는가 싶더니, 그곳에서 마치 기차표처럼 생긴 종이 한 장이 팔랑이며 떨어지는 게 보였다.
아공간 당시의 경험 때문일까?
잠시 어느 손으로 어떻게 받아야 할지 당황하다가, 땅에 떨어지기 전에 다급히 오른손으로 잡아채는데, 이게 웬일?
“…흡수되는 건 아니네.”
과거, 아공간의 경우에는 떨어지는 주머니를 왼손으로 잡자, 그대로 손바닥에 흡수되며 아공간 문양이 생기지 않았던가.
뒷머리를 긁적이던 것도 잠시, 마루는 종이를 펼쳐 내용물을 확인하는데, 저도 모르게 헛웃음이 나와 버렸다.
“허….”
그러며 생각했다.
‘…대환란이 정말 일어나긴 할 모양이네.’
이번에 나온 보상은 곧 다가올 최악의 미래를 위한 준비물이었고, 벽을 넘은 환희의 순간임에도 불구하고, 그는 기분이 다운되는 걸 맛봐야만 했다.
그러는 한편으론 특수 보상에 대한 불만을 토로할 수밖에 없었다.
“하… 어이가 없네. 보상이 이게 뭔데?”
그럴 수밖에 없었다.
[1회 이용권]
무엇의?
[용사 변환]
마루는 골 때린다는 얼굴로 종이를 내려다보며 중얼거렸다.
“아니, 이런 것도 일회용이야?”
그래도 일단 챙기긴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