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 사신무!
#22. 사신무!
위저드는 유럽의 WHA가 되기를 꿈꾸며 만들어진 연합체로서, 그들은 스스로를 헌터라고 하기보단, 일종의 환상적 존재인 ‘마법사’라 표현하길 주저하지 않았다.
이는 어찌 보면 무림맹과 비슷한 과정이었다.
자체적으로 독립적 세계관을 주장하며, 아예 다른 업계라는 걸 강조하듯, 무림맹과 사흑련은 서로 ‘무림’이라는 세계로써, 그들의 독자 노선을 앞세우지 않았던가.
내부적으로도 헌터나 길드가 아닌, 무사와 문파 등의 명칭을 사용하면서, 그들은 자신들의 체계를 확립시켜 나갔다.
위저드 역시 마찬가지였다.
아직까진 헌터라는 용어가 더 자주 사용되지만, 결국엔 무림맹과 비슷한 과정을 거쳐 가며, 그들은 스스로에게 마법사란 명칭을 부여하게 될 터였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사태는 아주 좋은 먹잇감이었다.
레메게톤!
언제나 큼지막한 사건 하나만큼 커다란 임팩트를 주는 건 없기에, 이를 통해서 위저드의 인지도를 확 끌어올릴 계획을 세우고 있었다.
이를 위해서 그들은 이번 작전에 수많은 자금과 병력을 투입했는데, 개중에는 가디언즈를 통한 의뢰 역시 함께였다.
세계의 평화를 위한 의뢰만 받으며, 그 가격도 만만치 않은 이들이지만, 그 실력만큼은 확실한 집단이 바로 가디언즈가 아니던가.
제로 원!
무려 세계 최강의 능력자를 보유한 집단이기도 했다.
그들 스스로는 독립적인 이들이 잠시 어울리는 것이지만, 하나의 목적으로 움직이는 만큼, 집단으로 규정하는 게 틀리진 않았다.
어쨌든 그렇게 위저드는 ‘격변의 테러 집단’이라 불리는 레메게톤을 쫓는데, 많은 자금을 투자하는 데 주저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들 목적은 위저드의 인지도 상승 및 확고한 자리매김에 있는 만큼, 마냥 레메게톤 하나에만 모든 걸 쏟아붓는 건 아니었다.
* * *
프랑스의 수도 파리에 세워진 거대한 타워.
마탑!
그곳의 최정상에는 탑주의 사무실이 자리하고 있었다.
제라드 카셀!
저 수많은 유럽의 거대 길드가 인정한 사내, 그가 바로 위저드의 정상을 지키고 있는 탑주였다.
영국의 수호검 클레어와 마찬가지로, 유럽을 대표하는 랭커 중 한 명이기도 했는데, 한때는 가디언즈로 활동했던 경력도 있는 터라, 민간의 이미지 역시 상당히 좋은 편이었다.
이런 남다른 인지도를 지닌 덕분에, 만장일치에 가까운 투표로 위저드의 수장으로 추대될 수 있었다.
제라드는 무려 100층짜리 거탑에서, 프랑스 전역을 쭈욱 내려다보며, 조용히 미소 지었다.
너무나도 보기 좋은 풍경이라 여긴 까닭이었다.
프랑스!
이는 그의 고향으로서, 지난 대격변 이후로 크게 몸살을 앓았던 나라 중 하나였다.
그 때문일까?
정부는 제 역할을 하기가 어려웠고, 나라는 혼란에 빠져들었으며, GDP는 어느새 10위권 밖으로 추락하고, 군사력도 순위권을 벗어난 지 오래였다.
위저드의 본사가 자리하는 데, 반대가 아닌 환영의 외침이 더 많았던 것도 그런 이유였다.
그들이 들어옴으로 인해서 안전도가 상승할 것이기에, 일상의 안정감을 바라는 시민들이 두 팔을 걷어붙이며 목소리를 높인 것이다.
물론, 프랑스 정부 입장에서는 그들 배 속에 거대한 회충이 들어올 상황이라 여겨, 국가 전복이니 뭐니 하면서 반대 의견을 강하게 주장했지만, 여론과 대세라는 건 그들로서도 감당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었다.
―그렇게 반대할 거면 제대로 지켜 주기나 하던가.
―하는 게 없다면 차라리 물러나라.
―위저드한테 맡기는 게 어때?
대충 이런 종류의 반응이 뒤따랐는데, 막판에는 적잖은 조롱도 섞여 들면서, 결국 백기를 들 수밖에 없게 만든 것이다.
거기에는 위저드 측에서 약간의 작업을 한 면도 있기는 했다.
어쨌든 그렇게 찾은 프랑스였고, 어렵게 회복한 평화였다.
위저드의 요원들이 거리 곳곳을 돌아다니며 치안을 담당해 주는 덕분인지, 전에 없는 활력이 거리 사이사이로 흐르는 게 느껴졌다.
제라드는 뿌듯한 마음에, 이처럼 수시로 파리 전경을 내려다보며 감상 시간에 빠지고는 했다.
얼마나 그렇게 있었을까?
우웅….
핸드폰의 진동 소리와 함께 감상이 끝을 맺었다.
위저드 내 정보부에서 보내온 것이었는데, 그 내용이 새삼 그를 미소 짓게 만들었다.
“비싼 값을 하는군.”
가디언즈의 활약상이 쭈욱 나열되어 있었는데, 과연 세계 평화를 수호한다고 외칠 만하달까?
레메게톤의 비밀 연구소를 여럿 해체했다는 보고와 함께, 그 결과물도 함께 첨부되어 있었다.
더욱 놀라운 건 그 와중에 몇몇 클랜과 마찰도 있었다는 점인데, 소수로 움직였음에도 피해가 전무하다는 게 인상적이었다.
‘가디언즈라….’
그 초창기 무렵 저들에 속해서 함께 어울렸던 경험이 있는 터라, 저들의 저력을 누구보다 잘 안다고 자부했다.
그래서인지 감탄의 와중에도 마음 한편에선 경계의 울림도 뒤따랐지만, 이내 고개를 저으며 그들의 본질을 떠올렸다.
‘세력을 일굴 만한 성격들은 아니지.’
그럴 만한 이들은 애초에 제라드처럼 밖으로 나와 사회에 뛰어들었을 터였다.
당장 존슨만 해도 그랬다.
원하기만 했다면 부귀와 영화가 그의 손에 있었을 것이다.
‘WHA의 회장 자리도 박차고 나왔으니.’
만약 그가 WHA의 정점에 있었더라면?
지금과 같은 단임제가 아니라 연임제 이야기가 나왔을지도 몰랐다.
그 정도로 특별한 사내였다.
가디언즈를 향한 경계심도 중요했지만, 그게 드러날 정도여선 안 됐다.
그들과는 최대한 좋은 관계를 맺어 놔야 했다.
게다가 가디언즈와의 인연도 중요하지만, 그 못지않게 존슨과 그의 패밀리와의 연결 고리를 단단히 해 놓는 것도 중요하다 여겼다.
그래서일까?
“패밀리에 개별 의뢰를 넣는 건… 제대로 진행 중인 것 같군.”
빠르게 보고서를 넘기다가도 관련 내용이 나오면 잠시 멈추면서 상세히 살피는 걸 잊지 않았다.
커난에겐 장비 인챈트를 다비드에겐 저주 해체를 바하마에겐 연주 의뢰 등등, 이번 사태를 통해서 새삼 패밀리의 저력을 알게 됐고, 그들과의 친분을 돈독히 해야 한다는 생각을 갖게 만들었다.
그중에서도 단연 최고라 할 수 있는 건, 패밀리의 신입에 관한 부분이었다.
‘트랩퍼!’
지난 사건을 통해 새삼 그 재주의 놀라움을 경험했다.
‘각성자가 아니라도 충분히 배울 수 있는 재주라니….’
실로 어마어마한 가능성이 있는 공부였다.
레메게톤과 관련한 보고서는 잠시 밀어 놓은 뒤, 한국이란 나라와 연결된 자료들이 화면을 가득 채웠다.
이는 그뿐만이 아니라 다른 세력에서도 공통적으로 보여 주고 있는 모습일 터였다.
‘패밀리 중에서도 특히 트랩퍼는 확실하게 인연을 맺어 놔야 돼!’
이미 관련한 의뢰서가 혜성으로 향한 상황, 이전에도 연락은 취해 놨지만, 당시와는 비교도 안 될 정도의 조건으로 새롭게 계약서를 준비해 놓은 상황이었다.
천문학적인 자금까지 투입할 준비가 되어 있었다.
‘…뭘 하고 있으려나?’
여타 네임드들과 달리 마루의 일과에 대해선 그리 많은 보고가 올라오지 않았는데, 이는 그 등급 여부와 무관하게, 마루의 거처 주변에 잔뜩 깔려 있는 트랩들 때문이었다.
레어라고 불리는 장소.
그 주변에 섣불리 감시망을 깐다는 건?
모험이나 다름없기에 먼발치서 오고 가는 정도만 살피는 게 전부인 것이다.
그래서일까?
마루의 일상은 어느새 각 단체들의 최고 관심사 중 하나가 되어 있었다.
* * *
동네 뒷산을 화려하게 불태운 탓일까?
마루는 한동안 그곳을 방문하기가 어려워졌다. 은연중에 악명이 높아진 것도 있지만, 알게 모르게 찾아오는 방문객들이 상당했던 탓이다.
이는 동네 주민이 아닌, 헌터 업계 관련자들로서, 마루의 경계심을 염두에 둔 것인지, 각성자가 아닌 비각성 헌터 및 연구진으로 이뤄진 이들이 대부분이었다.
마른하늘에 날벼락이 친 것이다.
현무암 덕분에 크게 전파되진 않았다지만, 그의 거처를 주시하던 여러 세력에겐 보고가 들어갔을 터였다.
그 때문에 마루의 일상은 동네 뒷산에서, 다시금 PP로 넘어가게 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접속 첫날,
“허….”
마루는 새삼 변화를 실감해야만 했다.
[스킬 ‘사신변환’이 ‘사신무’로 진화합니다]
뜻밖의 알람과 함께 새로운 스킬이 하나 등록됐는데, 그 능력치가 전율적이었다.
[모든 능력치 30% 상승]
사신변환을 풀로 돌리면 이와 같은 효과를 누릴 수 있기는 했다.
하지만 차이점이 있었다.
[상시적용]
바로 이 부분이었다.
사신변환의 경우에는 태세전환처럼, 포함된 스킬들을 꾸준히 돌려 줘야 했다. 그렇지 않을 경우에는 기본 발동 10%에 스킬 하나의 추가 상승효과인 5% 정도가 전부일 뿐이었다.
이마저도 방어, 회복, 공격, 염동으로 구분되기에, 모든 능력치 상승이라고 볼 수는 없었다.
백호는 최근에 얻었던 만큼, 청룡과 주작 그리고 현무의 세 가지 기운을 꾸준히 돌리면서 스킬의 효과를 극대화해야 했는데, 사신무는 그럴 필요가 없었다.
그냥 한 번 발동을 할 경우, 방어력과 회복력 그리고 공격력과 염동력까지, 모두가 한 번에 30%의 추가 효과를 얻는 것이다.
전신을 두드리는 전율 속에서 사냥터로 나갔고, 그는 새삼 이 스킬의 효과를 실감할 수 있었다.
크워… 컥!
크아… 악!
레이드급 몬스터들이 제대로 포효할 틈도 없이, 가벼운 주먹질 한 방에 격살되고 있었다.
200레벨대 필드라는 걸 생각한다면 실로 말도 안 되는 결과였다.
뿐만 아니라 방어력 역시 남달랐다.
피피핏… 피핏….
그 날카로운 이빨과 발톱을 휘두르며 전신을 두드리건만, 핏물이 터져 나오는 게 아니라 가벼운 상흔 정도만 새겨지는 게 전부였다.
그나마도 남다른 회복력에 의해서 바로 지워질 뿐이었다.
그리고 이 상태에서,
[칭호 : 용아병]
한 차례 더 상승효과를 발휘하고 나면?
끼이잉… 끼잉….
끄응… 끄응….
저 무시무시한 레이드급 몬스터들이 마치 겁먹은 강아지처럼, 앓는 소리를 내며 움츠러드는 진귀한 장면을 구경할 수 있었다.
마루는 문득 커뮤니티를 떠올렸다.
―십이지섬 몇 개까지 뚫림?
―이번에 열 번째 탐험 시작한 듯.
―본대륙 오픈이 코앞이라던데, 아직도 끝까지 못 갔냐?
―겨울 가기 전에는 공략하겠지.
대환란을 대비하기 위해서라도 마계 본대륙은 한번 경험해 볼 필요가 있었다.
그런 이유로 마루는 간만에 전력으로 질주를 시작했다.
그리고 커뮤니티는 난리가 났다.
―떴다~!
―용아병이 돌아왔다.
―십이지섬 단독 돌파 중.
―사냥 영상 찍힌 거 있는데, 진짜 미쳤다.
―혼자서 무쌍 찍음!
개중에는 마루의 변화를 눈치챈 이들도 있었다.
―뭔가 전보다 더 무시무시해진 것 같지 않음?
―그러게. 뿔도 커지고, 오라도 진해진 것 같고, 날개도 막 펄럭이는데, 포스 지리네.
―필드 보스라고 해도 믿겠다.
―피어 영상이 지렸지. 한 번 포효하니까 몬스터들 정말로 지려 버림. 오줌보 터짐.
그 와중에 몇몇 기이한 의문이 뒤따랐다.
―그런데 그거 정말 사실일까?
―뭐?
―용아병이 사실 아이언슈트라는 거.
최근 커뮤니티를 돌고 있는 소문 중 하나로서, 몇몇 남다른 눈썰미의 업계 전문가들이 그들 전투 영상을 비교하며 분석하더니, 둘을 동일 선상에 놓기 시작한 것이다.
―전투 스타일도 그렇고, 근접전에서 보여 주는 습관 같은 게 거의 비슷합니다.
―여기서 치고 나갈 때, 손가락 페인팅 보세요. 저 세심한 부분이 포인트입니다. 덩치에 안 어울린다고 하시는 분들도 있지만, 저 덩치 때문에 오히려 더 임팩트가 큰 겁니다.
―작은 효과도 크게 보여 주는 게 저런 피지컬의 장점이죠.
―여러 분석 자료에서 알 수 있듯이, 저는 아이언슈트와 용아병이 동일 인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오래지 않아 이런 반응을 정점에 올려놓는 영상이 하나 올라왔다.
이는 현실 속, 아이언슈트의 사냥 영상이었다.
[드레이크 사냥]
영상 제목부터가 어마어마한 화젯거리였는데, 거기서 등장한 아이언슈트의 모습이 충격적이었다.
드레이크와 격전을 치르는 아이언슈트의 이마 위로 선명히 솟아오른 뿔의 형상, 그리고 등 뒤로 펄럭이는 날개까지.
그 모든 게 아우라로 이뤄졌다고는 하나, 오히려 그렇기에 PP의 유명인과 연결시킬 수밖에 없었다.
―어… 저거, 설마?
―용아병 아니야?
―맙소사!
그리고 영상의 끝에서 아이언슈트는 재차 자막으로 언급했다.
[실버 박사의 유산]
[퍼펙트 플레이!]
짧지만 강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