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 주인님?
#23. 주인님?
마계 대공 사일론!
그리고 도플갱어 일족과 뮤턴트들 거기에 다중 돌발성 게이트까지, 대환란의 전조는 꾸준히 이어지고 있었다.
그 때문일까?
‘밝힐 때가 됐어!’
마루는 과감히 비밀을 폭로하기로 했다.
물론, 너무 노골적으로 풀어냈다간 여러 단체들의 표적이 될 수 있음에, 적당히 에둘러 표현하기로 결정을 내렸다.
-그것도 충분히 노골적이야.
존슨의 이야기에 마루는 뒷머리를 긁적이며 자신이 올린 리튜브 영상을 재생시켰다.
잘 에둘렀다 싶었는데 급한 마음에 조금 과감했던 모양이었다. 인정할 건 인정하며 고개를 끄덕여야만 했다.
-그나저나 이렇게 맘 편히 통화하는 것도 오랜만이네.
“자비드 덕분이지.”
마루는 인공지능 알파9의 대외적인 코드네임을 이젠 정식 이름처럼 사용하고 있었는데, 자비드는 그 특별한 재주를 통해 다방면에서 그를 지원하는 최고의 인공지능 비서였다.
특히, 지금처럼 통신에 관한 부분에서, 자비드는 최고의 방벽이 되어 여러 외부의 관찰자들을 차단해 주고는 했다.
존슨도 나름의 전문가를 통해 프로그램을 깔고, 개별 통신 루트를 이용하고 있었지만, 그렇다 해도 완벽하다고 볼 수는 없었다.
그 때문에 매번 주요 정보에 관해서는 통신이 아닌, 직접적인 만남을 통해서 주고받고는 하는데, 대개 그 만남에 사용되는 게 바로 PP였다.
24시간 언제 어디서건 빠르게 만남을 성사시킬 수 있고, 최고의 인공지능을 탑재한 덕분에 보안 역시도 세계 최강을 자랑하는 게임이 아니던가.
가장 안전한 통신 루트였다.
하지만 그 과정에 일말의 번거로움이 있는 건 분명했는데, 마루와 존슨은 자비드의 도움으로 인해, 이처럼 간단한 터치 한 번으로 통화를 나눌 수 있게 된 것이다.
존슨 패밀리를 위한 배려라고 해야 할까?
자비드는 그들 형제의 폰에 개별적인 보안 프로그램을 깔아줬고, 덕분에 어떠한 해커도 감히 그들의 통신을 감시할 수 없게 됐다.
그 덕분에 여러 패밀리로부터 따로 감사 인사가 날아오기도 했었다.
-그나저나 갑자기 드레이크라니. 임팩트는 확실한데, 너무 무리한 거 아니냐?
“이번에 살짝 성과가 있어서.”
슬쩍 자랑을 하는 마루의 이야기에, 존슨은 최근 있었던 날벼락 사건을 상기했다. 대외적으로 알려지지만 않았다뿐이지, 마루를 주시하는 눈은 상당했기에, 업계 내에선 알음알음 퍼지고 있는 소문이 몇몇 있었다.
[트랩퍼의 재주가 이젠 벼락까지 부리더라.]
[사실, 트랩퍼의 정체는 주술사였다.]
[진짜 위저드는 트랩퍼다.]
등등의 여러 이야기가 퍼지고 있었는데, 존슨만은 그 진실을 일부 알 수 있었다.
한때나마 주작의 신물을 품고 있었고, 그로 인해서 벽 너머의 세상까지 경험하지 않았던가.
당시 그는 거대한 불기둥 속을 노닐었던 걸 생각해 볼 때, 분명히 마루에게 있는 신물이 어떠한 작용을 했고, 거기서 새로운 도약을 했다는 걸 직감할 수 있었다.
그래서일까?
-간만에 대련 한번 해야 되는데.
슬쩍 아쉬움을 표해버렸다.
유럽과 한국이라는 거리로 인해 이뤄질 수 없기 때문이었다. 헌데, 마루의 반응이 또 흥미로웠다.
“언제든 OK지.”
그 자신만만한 소리에 존슨은 자신의 직감에 확신을 얻을 수 있었다.
이후 몇몇 이야기를 더 나누고 난 뒤 통화는 마무리됐고, 마루는 다시금 리튜브 영상을 재생시키며 감상에 들어갔다.
‘…좀 노골적이긴 하네.’
새삼 아이언슈트는 가면 헌터로 활동하길 잘했다고 여겼다.
그러면서 상대가 되고 있는 드레이크를 바라봤다.
용아병 칭호의 여파라고 해야 할까?
사실, 용족에 관해서는 적잖은 친밀감을 느끼게 된 게 사실이었고, 그 때문에 게임 내에서도 용족 관련한 몬스터에게 손을 덜 쓰게 되는 면도 있었다.
외이번이나 리자드맨이 그 대표적인 존재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드레이크를 상대로 손을 쓴 건, 전부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
‘일단, 이놈은 맛탱이가 갔지.’
분류를 하자면 흑마법사 같은 느낌이랄까?
사람 고기를 아주 제대로 맛본 놈이다 보니, 가끔씩 마굴을 벗어나 민가까지 내려와서 난동을 피우는, 그야말로 악질적인 녀석이었다.
덕분에 인근 주민들의 반응도 상당히 뜨거웠다.
-아이언슈트 덕분에 이젠 밤길이 무섭지가 않다.
-솔직히 낮에도 긴장하고 다녀야 했는데.
-가디언즈가 확실하다니까!
-얼마만의 평화냐…흑….
게다가 드레이크만이 지닌 상징성도 무시할 수 없었다.
최강의 몬스터!
무려 대격변의 마족들도 명령을 내릴 수 없는, 특별한 몬스터가 바로 드레이크가 아니던가.
게임도 아니고 현실에서 드레이트를 사냥한다?
임팩트는 확실했다.
‘칭호 효과도 있고.’
모든 용족의 정점에 있는 드래곤이 사자로서 부리는 게 바로 용아병이었다.
당연히 하위 개체에 대한 영향력이 남다른 것이다.
그 때문에 좀 더 손쉽게 드레이크를 상대할 수 있었고, 덕분에 압도적인 영상으로 세계를 놀라게 하는 게 가능했다.
확실한 메시지를 담을 수 있는 것이다.
노골적인 영상이지만, 당장은 그 효과가 크지 않을 거라 여겼다. 하지만 오래지 않아 어마어마한 반향을 일으킬 게 분명했다.
‘곧 3차 전직자가 쏟아질 테니.’
각국의 정보부에서 PP의 비밀을 최대한 컨트롤하고 있지만, 하루하루 늘어가는 3차 전직자를 전부 통제한다는 건 불가능했다.
지금 당장은 그들 스스로도 특별함을 유지하고자 입을 닫고 있지만, 결국에 모든 비밀은 드러나게 될 터, 그가 올린 영상은 언제고 그 증명 자료로 쓰이기에 충분할 것이다.
-PP가 그냥 헌터들 연습장으로 쓰이는 게 전부가 아니라는 이야기가 있던데.
-아이언슈트가 꾸준히 언급하는 이유가 뭘까?
-최근에 이상한 소리를 하나 들었는데, 아이언슈트의 각성 체조가 사실은 PP의 연공법이라는 말이 있더라.
-묘하게 낯익은 동작들이 보이는 것 같기도 하고.
이미 관련한 의문들이 하나하나 제기되고 있기도 했다. 굳이 마루가 언급하지 않은 부분도, 몇몇 전문가들에 의해 분석되며, 조금씩 비밀이 밝혀지고 있는 것이다.
마루는 이를 보며 생각했다.
‘머지않았네.’
세상은 새로운 격변을 준비해야 할 터였다.
* * *
가디언즈를 비롯한 유럽 각국의 단체들이 레메게톤을 쫓아 움직이고 있었다.
그리고 존슨은 이렇게 모인 정보들을 저 멀리 한국에 마련된 그의 거처에 수시로 보내고는 했다.
비록 집주인은 없지만, 거주자는 있기 때문이다.
사일론!
그는 존슨이 보내주는 정보를 통해, 돌아가는 상황을 정확히 정리해 줄 수 있는 유일무이한 존재였다.
-어떤 것 같아?
핸드폰 너머 존슨의 목소리 가득 긴장감이 묻어나왔다. 그만큼 사안이 무겁기 때문이었는데, 아니나 다를까 사일론은 곧이어 숨 막히는 이야기를 꺼내 놓았다.
“슬슬 균열이 커지겠네.”
-커진다는 건…….
“방벽에 구멍이 난다는 거지. 도플갱어 놈들이 자꾸 문제를 일으키는 건, 사람들에게서 부정적인 기운, 마이너스 에너지를 뽑아내기 위함이야.”
방벽 안쪽을 시꺼멓게 태워버리면, 결국 환기를 위한 구멍은 뚫릴 수밖에 없다.
대격변 이후 각국 단체의 노력과 수많은 헌터들의 희생을 통해, 나름의 체계를 세우고 안정화를 이뤄낼 수 있었건만, 도플갱어는 이 모든 걸 단시간에 망가트리려 들었다.
일상 속 갑작스런 게이트의 등장이나 몬스터의 출현 등, 기존의 경보체계가 무너지며, 다시금 과거의 악몽을 불러일으키니, 세계는 다시금 격변의 초창기를 떠올리며 두려움에 빠져들 수밖에 없을 터였다.
사일론이 이야기했다.
“일찌감치 침공에 대비하는 게 좋을 거야.”
통화는 거기까지였다. 존슨은 임무 때문에 이동한다는 말과 함께 통신을 끊었고, 사일론은 어깨를 으쓱이며 그대로 치킨을 주문했다.
그리고는 배달도 기다릴 겸, 쇼파에 누워 잠시 TV를 켜는데, 시간대가 애매했던 것인지 마땅히 볼만한 프로가 없어, 이리저리 화면만 돌리다가 이내 잡념으로 넘어가 버렸다.
그런 그의 머릿속으로 문득 떠오르는 얼굴이 하나 있었다.
‘아이언슈트!’
그 정체가 마루임을 알았다.
‘이제 겨우 2년 차 각성자인데, 드레이크를 씹어 먹는 수준이라니.’
그렇기에 더더욱 신기하기만 할 따름이었다.
최근 화제가 되고 있는 아이언슈트 영상을 봤고, 거기서 마루가 일반적인 랭커의 수준을 뛰어넘었음을 직감했다.
그래서 내심 호기심이 일었다.
‘한번 만나봐?’
존슨이라는 중개인을 통해, 건너 건너 이야기를 전하기는 했지만, 직접적으로 얼굴을 마주하고 대화를 나눠본 적은 없었다.
‘흠….’
고민이 이어질 무렵.
띵동!
치킨이 왔고, 상념은 날아갔다.
* * *
마루의 행보는 하루하루 많은 이야깃거리를 나았다.
-What the…!
-용아병이 선발대 따라잡았다며?
-열 번째 섬 씹어 먹고 있음.
-거물들이 견제 들어가는 것 같던데.
-생태 파괴자가 따로 없네.
-신화급 아이템은 확실한 것 같음.
-길드 단위로 클리어해야 하는 걸, 혼자서 씹어 먹고 있으니까. 사령술사도 이 정도는 아닐 듯.
-사령술사는 사실 혼자가 아니지. 언데드를 우르르 몰고 다니니까.
-그러고 보니 요즘은 사령술사가 안 보이네.
-어디서 특수 퀘스트라도 하나 보지.
-마법사들 종특 아닌가? 활동 잘 하다가도 한 번씩 작정하고 잠수 타는 거.
-하긴, 사령술사도 결국 마법사니까.
마루의 또 다른 이명도 알아서 언급되는 가운데, 누군가 언급했던 굵직한 사건 하나가 그를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
십이지섬 퀘스트의 최선두를 달리는 선발대들이 일제히 이를 드러내기 시작한 것이다.
“용아병이 활개를 치는 덕분에 우리 꼴이 아주 우습게 됐어.”
“아니, 어떻게 혼자서 저럴 수 있는 거지?”
“천외천이라면 가능할지도….”
“젠장! 어디서 굴러먹다 온 건지도 모를 놈이 천외천과 비교된다고?”
그들에게 쏟아져야 할 화려한 조명이 마루를 비춰대니, 뿔이 날 수밖에 없었다.
“다른 천외천들은 뭘 하느라고 안 보이는데?”
“뻔하지. 각자 개별 퀘스트라도 하고 있겠지.”
“그러고 보니 야수왕을 십이지섬에서 봤다는 소리가 있던데.”
“투신도 섬 초반부에서 봤다고 하더라.”
“매번 이야기만 많지.”
“실제로 드러내놓고 활동하는 작자들이 없으니. 쯧! 따로 의뢰라고 넣고 싶어도 만나기가 어려워서, 판을 짤 수가 없어.”
그런 의미에서 봤을 때, 용아병이 특수 케이스라 할 수 있었다.
“작정하고 날뛴단 말이야.”
“너무 까불어.”
그들의 성과가 묻혀버리는 게 특히 맘에 안 들었다.
그 때문일까?
“거슬리는데.”
“칠까?”
“쳐?”
십이지섬 선발대의 발길이 방향을 트는 순간이었다.
* * *
저 가상의 세계, PP에서 불순한 행보가 시작되고 있을 때, 그 목적지가 된 사내는 뜻밖의 만남을 맞이하고 있었다.
“그대가 마루군.”
초롱이 또래의 자그마한 아이가 대뜸 찾아와선 이처럼 반말로 그를 불렀다.
황당하기 짝이 없는데, 더욱 당혹스러운 건 그게 너무나도 당연하게 느껴진다는 점이었다.
저 작은 몸집에 숨겨져 있는 어마어마한 거력을 느낀 것이다.
그리고 그게 상대의 정체를 짐작게 했다.
“…사일론?”
아이, 사일론이 히쭉 웃으며 말했다.
“빙고!”
마루가 알기로 이 나이 또래에 그를 위협할 만한 존재는 단둘뿐이었다.
용군주 라미와 마계대공 사일론!
여의신주의 도움으로 벽을 넘은 마루였건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일론의 진실한 힘을 살피기가 어려웠다.
겨우 잔향만 맡는 정도였다.
그 때문에 새삼 눈앞의 존재에 대해 전율해야만 했고, 그와 동시에 저 차원 너머 마계의 강자들을 향한 두려움이 샘솟는 걸 느껴버렸다.
충분히 강해졌다고 여긴 이 와중에, 다시금 스스로에 대한 부족함을 느끼며, 잠시 자만하던 자신을 반성하게 만드는 시간이었다.
미묘한 변화였지만 은연중에 들떠있던 그의 정신상태를 차분히 가라앉히며 바로잡게 만들어줬다.
아주 찰나의 순간, 마루의 눈빛과 분위기가 변화하는 걸 읽어낸 듯, 사일론이 작게 감탄을 빛을 내비쳤다.
‘호오…그사이에 뭔가 깨달음이 있었나?’
새삼스레 눈앞의 사내에 대한 호기심이 샘솟을 때였다.
우웅…웅…우우우웅...
돌연, 마루의 옆구리에서 묘한 울림이 터져 나왔다.
반칼죽!
한때나마 용사의 검이라 불리던 성검이 돌연 존재감을 드러낸 것이다.
평소 있는 듯 없는 듯, 존재감을 한껏 죽이고 있던 칼죽이었다. 심지어 마루의 요청에 의해, 그 크기마저 줄여 단검 사이즈로 외형마저 죽이고 있을 정도였건만, 갑자기 이 무슨 돌발행동이란 말인가.
마루가 당황해서 내려다보는 가운데, 멋대로 검집에서 빠져나온 반칼죽이 사일론의 주변을 빙빙 돌기 시작했다.
그러더니 뜬금없는 대사를 내뱉는다.
-하악…학…주인님?
묘한 침묵이 공간을 집어삼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