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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균열의 시작!

#1. 균열의 시작!

언뜻 꿈이라는 착각마저 들었다.

하지만 그건 분명 현실이었다.

뿐만 아니라 현재였다.

과거가 아니었다.

마왕!

그 전율적 존재가 말했다.

“만남이 기대되는군.”

그와 동시에 마루는 깨어났다.

* * *

눈을 떴을 때, 반칼죽은 더 이상 비명을 지르고 있지 않았다.

―으음….

옅은 신음성이 뒤따르긴 했지만, 일단 상태가 호전된 것 같아 보이기는 했다. 검신에 흐르는 기운도 많이 안정화된 게 느껴졌다.

그렇게 반칼죽을 확인하고 난 뒤 시선을 돌렸을 때, 왠지 모르게 멍청하니 넋을 놓고 있는 아이, 사일론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었다.

뭔가 더 다양한 대화를 나누고자 찾아온 것 같았건만, 기이하게도 사일론은 거기서 발길을 돌려 버렸다.

“그… 급한 일이 생겨서, 나중에 다시 보도록 하지.”

창백해진 얼굴로 자리를 피하는데, 마루 역시 반칼죽의 기억과 마왕과의 조우 등, 이래저래 정신이 없던 터라, 이상함을 느끼면서도 그러려니 하며 보내 줘야만 했다.

그리고 어느 정도 정신을 차렸을 때, 그는 조언이 필요하다는 걸 알았고, 그 때문에 간만에 외출복을 차려입었다.

* * *

여의신주!

그 특별한 물건까지 포함해서, 마루의 모든 비밀을 알고 있는 거의 유일한 존재가 있었다.

현무암!

그런 이유로 마루는 최근의 특이한 경험 역시 그에게 온전히 털어놓을 수 있었다.

“호… 마왕이란 말이지.”

이에 현무암이 턱을 쓸며 흥미롭단 얼굴로 반칼죽을 바라봤다.

‘검의 기억을 타고, 현시대의 균열을 엿보다니.’

아득한 세월을 살아온 덕분일까?

그는 마루의 이야기를 통해서 많은 부분 숨겨진 내용들도 유추해 낼 수 있었다.

‘용사의 핏줄에 반응해서 빛의 축복을 끌어냈단 말이지.’

그러더니 대뜸 마왕의 기운을 흩뿌렸다?

‘대공 사일론, 흘… 아침 드라마급 막장 시나리오군.’

짐작건대 사일론은 용사만이 아니라 그 대적자의 핏줄 역시도 흐르고 있을 터였다.

반칼죽의 검신이 시꺼멓게 물든 건, 사일론의 마기 때문이 아니라, 그 대적자의 핏줄로 인한 오염이리라.

‘원래라면 완전히 망가졌을 텐데.’

성검이라고 불리던 신물이었다.

거기에 마왕의 피가 흘러 버린 것이다. 이는 더 나아가서 이야기 하자면, 마신의 의지가 일부 깃들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었다.

본연의 역할을 생각한다면, 산산이 부서져 가루가 돼도 이상하지 않을 상황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남았다.

긴 세월 마계에서 구르며 타락한 덕분에, 성검임에도 마기에 적응할 수 있었고, 그게 오히려 검을 새롭게 탈바꿈시킨 것이다.

‘성검이 완전히 마검이 되어 버렸군.’

많은 부분 그럴싸한 스토리들이 현무암의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마루가 검을 움켜쥘 수 있던 이유 역시 거기에 포함됐다.

그가 언젠가 했던 이야기가 있었다.

[생명의 끝에 현무가 있다.]

그 위로 사자유희라는 저승왕의 신물까지 더해졌다. 시꺼멓게 타락한 마검을 통제하기에 충분할 터였다.

실제로 마루는 검을 휘어잡았고, 덕분에 검의 내면 깊숙이 빠져들며 검의 기억까지 엿보게 된 것이다.

그리고 기억 너머!

현무암이 마루를 바라보며 말했다.

“네가 본 건, 현재의 마왕이 맞아.”

‘역시….’

예상하고 있던 부분이지만, 막상 이렇게 전해 듣고 나니 제대로 실감이 나면서 등허리가 오싹해졌다.

‘그 괴물하고 부딪쳐야 한다니.’

입술이 바싹 마르는 기분이었다. 이를 아는지 모르는지 현무암이 이야기를 이어 나갔다.

“이 검은 성검으로 깨어났지만, 이제는 타락하여 마검이 되어 버렸지. 존재 자체가 이레귤러라 할 수 있는 게야.”

그래서일까?

“세계의 균열에 직접적인 영향을 끼치기에 충분하지.”

그걸 타고 넘어가서 마왕과 닿아 버린 것이다. 그 과정에서 마왕의 핏줄이 나침반 역할을 하며 인도했다는 건 굳이 밝히지 않았다.

적당히 관련한 이야기를 풀어놓다가 화제를 넘겼다.

“짐작하고 있겠지만, 세계는 하루가 다르게 균열이 커져 가고 있다네.”

“혹시….”

마루가 불안한 표정으로 반칼죽을 바라봤고, 현무암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눈치가 빠르군. 그래. 마검의 등장도 균열을 키우는 데 한몫했을 거야.”

“…으음!”

눈살이 찌푸려지는 내용이었다.

“크게 신경 쓸 거 없다네. 이 검이 아니더라도 균열을 일으키는 존재는 많으니까.”

도플갱어 일족이 세계 곳곳에서 소란을 피우고 있었고, 그게 아니더라도 이미 발생한 여러 던전 및 마수지대 등, 세계는 하루하루 꾸준히 균열을 키우는 요소들이 늘어나는 상황이었다.

“인간의 욕심이 던전을 열어 두고, 마굴을 고정해 놓은 것이지, 자네의 검이 끼친 영향은 그리 대단한 것도 아니야.”

그러더니 대뜸 뜬금없는 화젯거리를 꺼내 들었다.

“여의주가 완성되며 떨어진 보상이 있지?”

용사 이용권에 대해 언급이 됐다.

“한 명의 용사가 아닌, 다수의 영웅을 위한 시스템이 완성된 세계에, 갑자기 용사가 등장하게 생겼는데, 자네 생각에는 이게 정상일 것 같나?”

마루의 표정이 굳어졌다.

“…이레귤러군요.”

생각지도 못한 부분이었다. 한데 현무암의 반응이 또 뜻밖이었다.

“그게 꼭 그렇지만도 않아. 그 용사 이용권이 만들어진 시기가 애매하거든.”

여의주의 주인이 아직 이 ‘세계의 일원’이던 당시에 마련해 둔 것이기에, 용사의 탄생이 마냥 그릇된 것도 아니었다.

굳이 표현하자면?

“과거의 안배가 현재의 안배와 부딪쳤다고 봐야겠지.”

그 때문에 균열이기는 하나, 그리 큰 균열이 되진 않았다.

“일회용이라는 것도 긍정적인 작용을 했다네.”

제대로 된 용사의 탄생권이었다면, 분명 과거와 현재가 마찰을 일으켰을 것이나, 일회용이란 제한이 걸려 있어서, 그 마찰을 최소화할 수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루는 같은 결론을 내렸다.

“그래도 균열은 균열이군요.”

“…뭐, 소소한 수준이지.”

거기서 그는 본인도 그 소소한 균열의 일부일 수 있음은 굳이 밝히지 않았다.

‘나 역시 과거의 존재이니.’

현무암은 이후에도 다양한 균열에 관한 이야기들을 쭈욱 읊어 나갔다. 그리고 가만히 이를 듣고 있던 마루는 그가 하고자 하는 이야기를 짐작할 수 있었다,

“대환란입니까?”

“…슬슬 준비해야 할 거야.”

이미 나름의 방비는 하고 있다 여겼지만, 현무암이 이처럼 경고하는 걸 봐선, 그 시기가 예상 이상으로 빠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작은 구멍이 둑을 무너트리는 법일세. 한번 구멍이 뚫린 이상 균열이 커지는 건 시간문제지.”

그리고 이런 징조는 조금씩 세계 곳곳에서 발생하기 시작했다.

* * *

헌터 커뮤니티가 조금씩 달궈지기 시작했다.

―어째, 요즘 들어서 민가로 내려오는 몬스터 소식이 많지 않냐?

―스위스 드레이크 사건이 대표적이긴 하지.

―아이언슈트가 때려잡은 놈도.

―마기 때문에 마굴에서 못 나오는 거 아니었음?

―못 나오는 건 아님.

―나올 수는 있는데, 마기가 없는 장소에선 컨디션이 다운되서 밖으로 잘 나오려 하질 않는 거.

―고위 종일수록 마기에 민감해서, 큰 놈들이 밖으로 나오는 경우가 드문데.

대개 고위종이 민가까지 나오는 경우라면, 몇몇 특수한 상황 정도였는데, 마루가 때려잡은 드레이크처럼, 사람 피 맛을 알아 버린 것도 거기에 포함됐다.

그게 아니면 영역 다툼에서 밀리고 밀려, 할 수 없이 마굴 바깥까지 피신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하지만 현재 마굴을 벗어나는 고위종의 경우, 아주 멀쩡한 녀석들이 당당히 새로운 영역 선포를 위해서 직접 움직이고 있었다.

그 때문에 각국 단체에서도 난리가 난 상황이었다.

“허어… 마수지대의 영역 확장은 대개 마기가 포화 상태에 이르면, 작은 놈들이 움직이며 범위를 넓히는 것 아니었나?”

“분명히 그랬을 텐데, 갑자기 이상 현상을 보인단 말이야.”

“이런 식으로 고위종까지 경계를 하려면, 마수지대에 투입되는 병력 수준을 한두 등급 높이는 걸로는 안 돼.”

“젠장! 갑자기 골치 아프게 됐네.”

그들은 마치 대격변의 초창기, 체계가 제대로 잡히지 않아 골머리를 싸매던 시절로 돌아간 듯, 간만에 가슴을 옥죄는 답답함을 느껴야만 했다.

이 와중에 더욱 골 때리는 건, 유럽의 경우 레메게톤의 꾸준한 테러로 인해, 병력 분배가 쉽지 않다는 점이었다.

그리고 이 같은 기현상으로 머리를 싸매는 이가 있었다.

“후우….”

위저드의 탑주 제라드는 한동안 끊었던 담배를 다시 꺼내서 불을 지폈다.

그가 비서를 향해 물었다.

“결국, 가디언즈는 발을 빼기로 했다는 거지?”

“예. 아무래도 그들은 마수지대와 던전에 집중하는 이들이다 보니, 이상 현상의 우선순위가 높았던 것 같습니다.”

아쉬움이 남지만, 그대로 가디언즈가 제법 활약해 준 덕분에, 위저드의 인지도가 꽤 올라간 상황이었다.

그들의 존재가 대외적으로 상당히 알려져 있긴 하나, 여전히 스스로를 내세우는 단체가 아니다 보니, 그 영광 대부분이 위저드에게 돌려진 것이다.

짧은 기간 빠르게 인지도를 끌어올린 것도 그런 이유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처럼 담배를 다시 태우는 건?

“손해가 막심하네.”

가디언즈에 들인 자금과 기대치에 못 미친 까닭이었다. 이에 비서가 한마디를 했다.

“본전치기는 한 것 같은데요.”

그 말에 제라드가 비서를 살짝 노려봤지만, 크게 신경 쓰는 분위기는 아니었다.

‘끄응….’

길드에서부터 함께하던 오랜 전우이다 보니, 권위가 제대로 안 먹히는 경우가 있었는데, 지금도 그런 상황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억지 부리지 마십시오. 약간 손해가 난 건 사실이지만, 덕분에 빠르게 자리를 잡았다고 생각하십시오. 그리고 부족한 건 기부했다고 치시죠. 한때 가디언즈 소속이었으면서, 너무 속물적으로 변한 거 아닌가 모르겠네요.”

‘…아오, 저걸 팰 수도 없고.’

주먹이 부르르 떨었다.

“담배도 그냥 피우고 싶어서 피운 거면서. 매번 보름을 못 넘기는데, 오히려 그런 식으로 끊는 게 건강에 더 안 좋으니까. 차라리 금연한단 소리를 하지 마십시오.”

하나같이 틀린 말이 없다는 더 짜증 났다.

‘친구 딸내미만 아니면!’

조카나 다름없는 아이였다. 하필 각성을 해 버린 터라 그가 직접 케어한다며 데리고 있던 게, 지금과 같은 상황까지 이르러 버린 것이다.

입맛이 싹 달아나 버렸다고 해야 할까?

“끊을 거야!”

버럭 성질을 내며 담배를 그대로 비벼서 꺼 버렸다. 그러며 혹시 이어질 잔소리를 피하고자 업무 내용으로 화젯거리를 돌리는 것도 잊지 않았다.

“존슨은 어떻게 하고 있어?”

가디언즈가 단체라고는 하나, 개별적인 자유도가 높았는데, 그 선두주자라 할 만한 게 바로 인디안 존슨이었다.

가디언즈는 발을 뺐더라도, 그는 여전히 한 팔 거들고 있을지 모른다는, 묘한 기대감으로 물은 것이지만, 안타깝게도 상황은 다를 게 없었다.

“존슨도 자취를 감췄습니다.”

다른 가디언즈처럼 마수지대와 던전으로 향했을 터였다.

“짐작 가는 건 없고?”

“다행히 이반나의 흔적이 잡혔는데… 이게 정확한 건 아닙니다.”

“왜?”

“…아무래도 마녀의 땅으로 간 것 같습니다.”

제라드의 표정이 굳어졌다.

“북극…?”

“예.”

“…으음!”

짐작 가는 바가 있었다.

‘이상 현상이 발생하면 가장 크게 변화하는 장소니까.’

상세한 상황 파악을 위해, 직접 위험지대로 향한 것이리라.

‘그 인간은 정말… 예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군.’

언제나 위험 속으로 뛰어드는 걸 주저하지 않는 그 영웅적 모습에, 여러모로 세상 풍파에 찌든 자신이 비교되는 기분이라, 결국 다시금 담배를 입에 물어 버렸다.

“보름도 아니고, 이젠 15분도 못 버티는군요.”

그 순간 이어진 비서의 타박에 와락 인상을 구겨야만 했다.

“끊어! 끊을 거야!”

“15분 전에도 들었던 다짐이네요.”

“으아아아아아!”

제라드는 포효하며 발광하다, 그대로 창문으로 뛰어들었다.

파차앙….

이를 본 비서가 태연히 이야기했다.

“업무 밀렸습니다. 돌아오세요.”

그 순간 창 너머로 빼꼼히 고개를 내미는 제라드의 모습에 비서가 말했다.

“넌 내가 걱정도 안 되냐?”

그러거나 말거나 비서는 태연히 이야기를 이었다.

“파편 잘 챙기셨죠?”

“하아….”

그 말에 제라드가 한숨과 함께 손을 휘저었고, 이내 깨어진 유리들이 제자리로 돌아가 고스란히 복구되는 게 보였다.

“쉬는 시간 끝입니다.”

그 말과 함께 막대한 서류가 책상 위로 올라왔고, 제라드는 울상이 된 얼굴로 라이터만 만지작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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