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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전설.

#3. 전설.

방랑하는 무녀 라미아타!

그녀의 존재는 아주 특별해서, 어지간한 실력자라면 모르는 이들이 없었다.

특히, 마계와 같이 다른 차원의 침공에 전념하는 세계는 더더욱 그녀와 같은 존재를 모르기가 어려웠다.

전 차원에 유명한 신격.

마룡 드라이크!

반신의 위치로 어지간한 신격들은 이미 뛰어넘었다고 알려진, 예비 대신격 후보가 아니던가.

그 때문에 그녀가 마계에 등장하고 제 세상처럼 날뛸 때도 섣불리 제재를 가할 수가 없었다.

마룡 드라이크의 분노를 사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여차할 경우 마룡이 직접 강림하여 그녀를 도울 수 있기 때문인데, 그렇다 하더라도 강림체로 마왕까진 감당하기 어려운 게 사실, 그래서인지 절묘하게 마왕성은 피해 다니는 교묘함까지 보여 주니, 가히 제 세상인 듯 날뛸 수 있었다.

대공들도 창피를 당할까 싶어, 쉬쉬하며 그녀를 모른 척했었는데, 사실 딱 한 개체, 북마계의 주인만큼은 그녀를 방관하지 않았었다.

오히려 호기심을 느끼며 항시 귀를 기울이고 있었는데, 자신의 영역에 그녀가 들어오기를 기다렸을 정도였다.

사일론!

당시 북마계의 주인이었던 그는, 방랑 무녀 라미아타가 북마계로 진입한 순간, 빠르게 찾아 움직였다.

마계에서 알아주는 투사이다 보니 피가 끓은 것이다.

오랜 세월 북마계를 지배해 온 탓인지, 그곳에서 감히 그에게 이를 드러낼 실력자는 없었다.

맘 같아선 다른 마계의 실력자들을 찾아 움직이고 싶지만, 그랬다간 전쟁이 발생할 수 있는 터라, 간만에 등장한 강자의 존재는 그를 몹시 흥분시켜다.

그렇게 찾아갔고, 부딪쳤다.

실로 치열한 격전이었다.

당연하게도 마계의 실력자들은 그에 관해서 모를 수가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격전이 알려지지 않은 건?

다른 마계의 주인들이 이를 비밀로 하며 감춘 까닭이었다.

약육강식의 강자존!

그 같은 법칙이 살아 숨 쉬는 세계가 아니던가.

다른 마계의 주인들이 쉬쉬하고 있을 때, 홀로 나서서 멋지게 어우러진 마계의 주인이 있다?

당연히 그 인지도가 올라갈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 관련 소식을 철저히 차단한 것이다.

그저 단순히 강자존의 세상인 것 같지만, 은연중에 이런 종류의 뒷공작이 벌어질 때도 있었다.

어쨌든 사일론의 경우엔 이런 뒷공작에 관한 부분은 크게 신경 쓰는 타입이 아니다 보니, 그러려니 하고 내버려 둔 면도 컸다.

그렇게 한판 멋지게 어우러진 결과, 사일론은 그녀에게 반해 버렸다.

[너 때문에 심장이 뛴다. 피가 끓어서 그런 게 아니다! 코피는 네가 쥐어 팬 거니까 오해하지 마라. 크응!]

대충 이따위 대사를 지껄이며 고백도 했다.

재미있는 건 라미아타 역시 조금쯤 그에게 호감을 느꼈다는 점이었는데, 안타깝게도 그들의 인연은 길게 이어지지 못했다.

오래지 않아 그녀가 그에게 느낀 건, 일종의 동질감임을 깨달아 버린 까닭이었다.

드라고니안과 반인반마!

그 특수 개체 간의 묘한 동질감이 서로를 이끌었던 것이다.

[우린 여기까지인가 보다.]

[…손도 못 잡아 봤는데?]

뜨거운 주먹질은 해 봤다.

어쨌든 그렇게 그를 피했고, 종래에는 이처럼 다른 세상까지 넘어와 버린 거였다.

“…어디로 사라졌나 했더니. 여기 있던 거야?”

사일론이 그리 말하며 라미아타, 이젠 라미라고 불리는 소녀를 바라봤다.

이에 라미가 바나나우유에 빨대를 꽂으며 물었다.

“먹을래?”

“…….”

눈살을 찌푸리면서도 결국 받아 들었다. 목욕 후 먹는 우유 맛을 알아 버린 터라, 평소에도 제법 즐겨 먹게 된 까닭이었다.

그렇게 한차례 빨대를 빨며 널뛰던 가슴을 진정시키고 있을 때, 라미가 입을 열었다.

“나야 균열에 휘말려서 여기로 넘어온 거라지만, 넌 어떻게 된 거야?”

물론, 반쯤은 의도해서 균열에 뛰어든 것도 있지만, 굳이 거기까지는 설명하지 않았다.

이에 사일론은 잠깐 주저하다가, 결국 라미아의 눈빛 재촉에 못 이겨 자신의 상황을 설명해 줬다.

“푸하하하!”

아니나 다를까. 그녀가 폭소를 터트리는 게 보였다. 이를 짐작하고 있었던 터라 주저했던 것이건만, 역시는 역시라고 해야 할까?

“혼자 잘난 척하더니만, 결국 그렇게 뒤통수를 맞다니. 그러니까 목에 힘 좀 빼라고 이야기했지. 쌤통이다. 푸하하하!”

“끄응….”

눈살이 절로 찌푸려졌다.

하나 그것도 잠시, 사일론은 저 멀리 놀이터로 시선을 돌리며 물었다.

“저 꼬맹인가 보네.”

루미와 함께 흙장난 중인 초롱이가 보였다.

과거, 라미에게 거절당하던 무렵, 그녀가 했던 이야기가 떠올랐다.

[내 영혼의 반쪽은 따로 있어. 미안….]

초롱이의 곁에서 즐겁게 웃던 그녀의 모습과 연결되며, 대략적인 상황을 짐작할 수 있었다.

특히, 그 자존심 강한 여인이 이런 꼬마 아이의 모습까지 하고 있다는 부분에서, 의심의 여지는 없었다.

그 때문에 속이 안 좋기도 했다.

이미 차였지만, 오늘 이 순간 확인 사살까지 당한 기분이 든 것이다.

만남의 반가움이 아픔으로 뒤집히는 건 순간이었다.

씁쓸함에 바나나맛 우유가 유독 달게 느껴졌다.

쫍… 쫍쫍….

* * *

성검에서 마검으로 탈피하는 과정이라고 해야 할까?

―으음….

반칼죽은 깊은 잠에 빠진 채, 검집에 꽈악 맞물려 있었다. 아무래도 한동안은 봉인 상태라고 봐도 될 듯싶었다.

하지만 크게 상관하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지금 이 상황을 더 반기는 면이 더 컸다.

탈피의 과정에서 반칼죽은 실로 다양한 꿈을 꾸고 있었는데, 그 대부분이 과거 용사의 꿈이었다.

이를 어떻게 아는가 하니, 마루 역시도 그 꿈을 엿보고 있기 때문이었다.

전부를 보는 건 아니지만, 틈틈이 잠결을 타고 넘어오는 칼죽이의 꿈속 풍경이 있던 것이다.

그리고 뜻밖에도 이를 통한 성장도 있었다.

용사!

한 세계를 대표하는 강자였다.

마왕과의 결전을 승리로 이끈 초월자로서, 그 격전의 삶을 엿보는 것만으로도 많은 공부가 됐던 것이다.

그건 벽을 넘으며 새로운 육신을 지니게 된 그에게 있어, 하나의 지침서처럼 작용하며 스스로에 대한 이해를 나날이 높여 줬다.

남은 건 이를 제대로 확인하며 점검하는 것으로, 이를 위해서 그는 명예의 전당에 이름을 올린 뒤, 여러 길드들을 도발한 것이다.

‘휘유~! 누가 보면 레이드라도 온 줄 알겠네.’

각 길드의 정예 병력이 그를 향해 달려들고 있었는데, 마냥 두서없이 뛰어드는 건 아니었다.

정말로 고위종 레이드라고 하는 듯, 체계적으로 팀을 나누고 순서를 나눠가며, 차륜전 형식으로 돌아가며 그를 공격해 들어오고 있었다.

뿐만 아니라 여러 마법사 및 신관들이 원거리에서 공격과 버프 등으로 후방 지원을 하니, 당장 주변만이 아니라 더 넓게 전장 전체를 돌아보는 시야까지 갖춰야만 했다.

이는 각 길드장들이 합심해서 준비한 결과였다.

“인정하긴 싫지만, 천외천급으로 대우해야겠지?”

“방심하다가 당하는 것보다, 방비를 단단히 하는 게 낫지.”

“대규모 레이드를 기준으로 움직이자고.”

그 결과가 지금의 이 빡빡한 연계였다.

“흐아아압!”

한 차례 기합성과 함께 달려들던 돌격대를 떨쳐 내는 찰나.

콰콰콰콰콰콰….

기다렸다는 듯 쏟아지는 마법사들의 집중포화가 마루를 움츠리게 만들었다.

그뿐만이 아니라 절묘한 각도에서 쏟아지는 궁수들의 각종 스킬이 담긴 화살 세례의 경우, 포화를 헤치고 나오는 그를 자꾸만 뒷걸음질 치게 만들었다.

누가 봐도 압도적으로 위험한 상황이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각 길드의 수장들은 표정을 풀지 못했다.

오히려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 딱딱하게 굳어만 갈 뿐이었는데, 이는 그들의 남다른 눈썰미가 돌아가는 상황을 정확히 파악하게 한 까닭이었다.

‘유효타가 거의 없나?’

‘저게 말이 돼?’

‘물마방이 얼마나 되는 거야?’

‘정말로 직업이 용족 계열이면, 항마력은 보장된 거나 마찬가지니까. 방어력만 챙겨도… 쯧!’

이 너른 전장, 남다른 경험치를 지닌 실력자들 사이에서도 유독 그들의 눈썰미가 특별한 건, 일정 규모 이상의 길드에게 부여되는 특수한 스킬 때문이었다.

[사령관의 시야]

각기 백인장과 천인장 등으로 등급이 나뉘는데, 그들쯤 되는 길드의 수장에겐, 따로 장군이란 등급이 부여되기 마련이었고, 덕분에 남다른 눈썰미를 선보일 수 있는 거였다.

시야 한정이긴 하나, 그들 눈썰미는 거의 초감각에 버금간다고 볼 수 있었다.

그 때문에 마루가 위기인 듯 보이는 것과 달리, 실제는 여유가 넘친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착각이길 바랐지만 스킬은 거짓을 말하지 않았다. 실제로도 마루는 집중포화 속에서도 태연히 자신의 페이스를 유지하며, 상황을 살피고 스스로를 점검하는 중이었다.

‘스킬 없이도 이런 일이 가능하다니.’

놀랍게도 그는 현재 단 하나의 스킬도 발동하지 않은 채 격전을 치르는 중이었는데, 이는 칭호 역시 마찬가지였다.

대외적으로 그를 상징할 수 있는 아우라를 뿜어내기 위해, 초반에 저들을 유인하고자 잠깐 착용했을 뿐, 병력이 모인 이후로는 칭호 효과를 해제한 상태로 전투를 진행했다.

환골탈태!

앞서도 언급한 것처럼, 새 육신의 성능을 최대한 끌어내며 확인 점검하기 위한 작업의 일환이었다.

비록 이곳이 게임 속이라고는 하나, 3차 전직 혜택으로 인해서 이미 게임과 현실의 경계가 무너져 버린 만큼, 이곳에서도 충분한 테스트가 가능한 것이다.

화르륵….

전방으로 뜨거운 마법의 불길이 날아드는 게 보였다.

그 순간 신체가 알아서 반응하며 차갑게 온도를 낮추는 걸 느꼈다. 이에 감각을 이끌어 온도를 한 부위에 집중하니, 정확히 타격 지점에 서리가 내리면서, 뜨거운 겁화를 뜨끈하게 만들었다.

대미지가 전혀 없는 건 아니지만, 충분히 버틸 만하다고 여겼다.

다른 공격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화살이 날아들면 피부가 알아서 단단해졌고, 태풍이 몰아치면 천근추처럼 무게가 증가되며 중심을 잡아 줬으며, 뇌전이 쏟아질 땐 피뢰침처럼 전기를 지면으로 이끌었다.

그저 단순히 신체 자체만으로도 병기나 다름없는 몸뚱이가 된 것이다.

그 때문일까?

‘젠장! 분명 손맛은 있는데.’

‘왜 이렇게 찝찝한 거야?’

‘뒤가 안 닦인 느낌이….’

길드장만이 아니라 전선을 뛰던 요원들도 슬슬 이상을 감지하기 시작했다.

불길한 예감에 몇몇 주저하는 움직임이 보일 때였다.

‘내구력 테스트는 이쯤하고.’

마루가 본격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칭호 : 용아병]

다시금 특유의 아우라를 일으켰고,

[스킬 – 사신무]

숨겨 뒀던 전력도 잔뜩 끌어올렸다.

거기에 한 가지 더, 오늘 이 무대를 위해 아껴 놨던 비장의 카드 역시 꺼내 들었다.

[용사 이용권]

원래는 일회용이어야 할 물건이지만, 갑자기 사용하게 될 경우 적응하지 못할 걸 염두에 둔 것일까?

PP 내에선 얼마든지 사용할 수 있도록 설정되어 있었다.

외형적으로는 크게 변한 게 없었지만, 내부적으로는 말도 안 되는 포스의 증폭 효과가 발생하고 있었다.

이를 전신에 두른 채, 성큼 걸음을 내디뎠다.

그리고 판이 뒤집혔다.

쩌저저적….

먼저 마루 주변을 휘감고 있던 디버프와 결계의 방벽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 단순히 마루가 내뿜은 기세만으로 발생한 현상이었다.

이에 놀란 듯, 사방에서 공격이 쏟아지는데, 마루는 용아병과 사신무 그리고 용사 모드의 방어력 증폭 효과를 믿으며, 포격 속을 유유히 걸어 나갔다.

결계가 움직이며 발목을 붙잡으려 했지만, 가벼운 진각 한 번에 족쇄는 깨져 버렸다.

그리고는 차륜전의 돌격대를 향해 뛰어들었다.

마치 양 떼 무리 속에 한 마리 사자가 활개를 치는 것 같다고 해야 할까?

너무도 일방적이었다.

각 길드장들의 지시 아래, 동료들의 희생을 염두에 둔 마법 포화가 쏟아졌지만, 용아병과 사신무의 항마력은 마치 디스펠 효과처럼, 어지간한 마법은 태연히 받아넘겨 버렸다.

그가 벽을 넘고 온전히 스스로의 힘을 깨우친 시점에서, 이미 4차 전직에 버금가는 괴력을 얻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PP에서 정한 레벨로 치면 300레벨에 이르는 수준으로, 거기에 용아병과 사신무 그리고 용사 모드의 증폭 효과까지 더해졌다.

전장을 압도하기엔 차고 넘쳤다.

이날, 마루는 PP의 전설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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