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팀.
#5. 팀.
존슨과 이반나는 라스베이거스에서 식을 올린 뒤, 바로 신혼여행을 떠났는데, 목적지가 황당했다.
“설마, 첫날밤을 마수지대에서 보내게 될 줄이야.”
그러면서도 웃어 보이는 이반나, 그 미소가 참으로 아름다워 존슨도 절로 웃음이 나왔다. 이미 연인이었지만 공식적으로도 완전히 그의 여인이 되었다는 사실도 그를 들뜨게 만들었다.
게다가 농으로 하는 이야기임을 알기 때문이기도 했다.
물론, 미안한 마음이 없진 않았다.
오히려 가슴 한편에 돌을 얹은 듯 묵직할 정도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굳이 이를 표현하지 않는 건, 이반나가 원치 않기 때문이었다.
그 때문일까?
그는 마기와 살기가 넘실대는 환경을 돌아보며, 오히려 농으로 받아 주기까지 했다.
“세기의 커플인데, 당연히 특별한 여행을 해야지.”
그러면서 또 이야기했다.
“이슬 맞는 일은 없게 할게.”
아니나 다를까.
“저기 보이네. 오늘 묵어갈 숙소.”
멀리 마수지대와 어울리지 않는 건축물이 하나 보였다.
‘빙고!’
레메게톤 소속의 불법 연구 시설이었다.
“그럼, 가실까요 레이디?”
존슨이 마치 뮤지컬 속의 신사를 연기하듯, 정중히 허리를 굽히며 손을 내밀었고 이에 이반나가 턱을 꼿꼿이 세우며 손가락을 살포시 올렸다.
“체크인은 필요 없지?”
그녀의 물음에 존슨이 답했다.
“다 준비됐을 거야.”
잠시 후, 시뻘건 레드 카펫이 그들 뒤로 점점이 깔려 나갔다.
* * *
누가 장난친 걸 가지고 너무 오버하는 거 아니냐는 소리를 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런 우스갯소리로 넘길 수 없었다.
무려 실버 박사였다.
PP의 아버지라 불리는 존재이며, 여러 헌터들에게는 새로운 생명을 부여해 준 영웅으로도 표현되는 위인이었다.
그 때문에 가볍게 여길 수 없었다.
물론, 골드맨이란 명칭이 실버 박사만의 전유물인 건 아니다. 곳곳에서 똑같은 아이디가 넘쳐 나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 가지,
인디안 존슨!
그와 관련한 자리에서는 섣불리 언급해선 안 되는 단어였다.
WHA의 1대 회장 마르코와 마찬가지로, 존슨에게 있어서 특별한 존재이기 때문이었다.
악연이 되어 버렸던 데스워치 못지않게, 마치 삼촌이나 가족처럼 그를 보듬어 주던 존재이지 않던가.
세계적인 영웅을 향한 예우라고 해야 할까?
감히 그의 앞에서 골드맨을 언급하는 이는 없었다.
그 때문에 골드맨의 이름으로 달린 축하 인사가 여러 길드를 흔들어 놓고 있는 것이다.
관련한 스토리는 민간엔 알려지지 않은 부분이다 보니, 더더욱 그들이 들썩이는 것이기도 했다.
“진짜일까?”
“실버 박사는 죽은 거 아니었어?”
“행적이 사라진 거지, 실제로 시체가 나온 건 아니잖아.”
“하긴, 장례식을 치른 것도 아니니.”
“그렇다면… 정말, 실버 박사?”
“에~ 이, 말도 안 돼!”
기본적인 분위기는 부정적이었지만, 그래도 만에 하나의 가능성을 염두에 둘 수밖에 없었다.
이는 마루로 인한 나비 효과이기도 했다.
아이언슈트를 통해, 실버 박사에 대해 꾸준히 언급을 해 왔던 터라, 그에 관한 관심도가 근래 들어 급상승한 상태가 아니던가.
그 때문일까?
어쩌면? 혹시? 하는 의혹이 생겨나 버린 것이다.
각국 단체가 전력을 기울이진 않았지만, 그래도 각자 자랑하는 최고의 정보 요원을 움직이며, 소수의 정예로 실버 박사의 행적을 찾아 나서는 가운데, 슬금슬금 수면 위로 올라오는 박사의 업적이 하나 있었다.
* * *
PP의 3차 전직!
그것은 실로 특별한 능력을 부여하는데, 안타까운 점이라면 오로지 각성자 한정이라는 점일 것이다.
현실 스킬의 구현!
놀랍게도 PP에서 현실의 능력치에 맞게 재설정을 하며, 완벽한 가상의 훈련 시스템을 만들어 낼 수 있었다.
어설피 비슷한 스킬 직업군으로 전직하며 훈련하는 게 아닌, 현실 스팩을 그대로 재현하는 것이다.
3차 전직이 워낙 말도 안 되는 난도를 지닌 탓에, 각성자 중에서 이를 이뤄 낸 이가 몇 없었고, 그 때문에 관련 정보의 통제가 어렵지 않았다.
특히, 현실 속 사냥을 통한 능력 개발에 전념하기도 바쁜 터라, 더더욱 각성 3차 전직자의 수가 적을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뜻밖의 방향에서 각성 3차 전직자의 수가 늘어나면서, 관련 소식들이 조금씩 통제를 벗어나고 있었다.
아이언슈트의 각성 체조!
최근 이를 통해서 새로운 각성자들이 늘어 가는 가운데, 개중 PP에서 3차 전직을 한 이들이 제법 됐던 것이다.
정보 통제에 힘쓰던 각국 정보 단체에서도 예상치 못한 변수였다.
아니나 다를까.
―3차 전직에 대한 소문 들었음?
―각성자 특수 스킬?
―와… 그게 진짜라면, 대체 PP는 정체가 뭐냐?
―이게 마냥 헛소문이 아닌 게, 아이언슈트의 각성 체조도 그렇고, 기존의 헌터들 훈련 시스템도 그렇고, 확실히 PP를 게임으로 치부하기 어려운 면이 많음.
―실버 박사님!
―갓 실버!
기어이 커뮤니티를 타고 관련한 화젯거리가 떠돌기 시작했다. 각국 정보부도 이쯤에선 결국 백기를 들었다.
“하… 설마 저쪽에서 이야기가 풀릴 줄이야.”
“애초에 막을 수 있는 게 아니었어.”
“그냥 최대한 지연시킨 것뿐이지.”
“우린 할 만큼 했어.”
더 이상 막을 수 없는 격류라는 걸 느낀 듯, 하나둘 통제에서 발을 빼기 시작했고, 그로 인해 관련한 이야기들이 하루가 다르게 넘쳐 나며, 본격적으로 실버 박사와 PP가 재조명되는 흐름이 이어졌다.
세계는 또 다른 의미에서 격변을 맞이하고 있었다.
* * *
아이언슈트와 존슨 그리고 실버 박사 등, 세계가 여러모로 소란스러운 가운데, 남몰래 큼지막한 변화를 일으키는 이들이 있었다.
혜성 길드!
그곳의 특수 1팀이 1년여 만에 새로운 지휘자를 들였다.
마루!
놀랍게도 각성 2년 차이며, 아직 B급 헌터밖에 되지 않는 그가 한국을 대표하는 특수팀의 팀장으로 오른 것이다.
하지만 의심의 눈초리는 없었다.
비각성자라고는 하나 그의 경력도 무시할 수 없는 수준이며, 능력에 관해서는 이미 영국에서 증명한 바 있지 않던가.
오히려 기대하는 이들이 많았다.
일반적인 랭커들과 달리, 마루는 혼자가 아닌 주변을 키울 수 있는 능력을 지니고 있지 않던가.
혜성 특수 1팀의 전체적인 전력 상승효과가 일어날 거란 기대감이 쏟아지는 가운데, 드디어 새로운 특수 1팀의 첫 번째 작전이 시작됐다.
가벼운 준비 운동 삼아서 하위 던전을 가거나 하진 않았다.
“하던 대로 하죠.”
마루가 자신만만한 태도로 상황을 진행시킨 것인데, 이는 괜스레 약한 모습을 보였다간, 언제든지 물어뜯길 수 있음을 알기 때문이었다.
기대감이 높은 건 사실이지만, 그만큼 반전의 반동 역시 클 것이기에, 시작부터 확실한 임팩트로 저들 기대감을 충족시켜 줄 필요가 있었다.
그렇게 시작된 사냥!
“델타 유인 개시.”
[라져]
“엡실론 3시 방향 지원.”
[라져]
“제타 후방으로 위협 사격. 교란 작전 시작.”
모두가 기대하던 풍경과는 조금 다른 방식의 전개가 이뤄졌다.
마석 결계술을 통해서 뭔가 엄청난 버프를 걸며, 이를 통한 시너지 효과를 일으킬 거라 여기던 것과 달리, 마루는 순수한 오더만으로 팀을 이끌었는데, 그 결과물이 또 놀라웠다.
‘이럴 수가 있나?’
‘대체… 시야가 얼마나 넓은 거야?’
‘본각성이 총기류라고는 하지만, 그래도 이건 너무… 엄청나잖아.’
던전이란 장소는 하나의 세계나 다름없었다.
그만큼 넓고 방대했는데, 한정된 구역을 사냥하는 것이라고는 해도, 그 범위 역시 어마어마한 건 분명한 사실이었다.
그 때문에 전체 상황을 보며 지시를 내리더라도, 이래저래 놓치는 부분이 있을 수밖에 없었다.
이를 위해 세부적으로 조가 나뉘는 것이며, 각자 역할을 분담해 가며 지휘자의 부담을 덜어 주는 것이 아니던가.
하지만 이게 웬일?
놀랍게도 마루는 이 모든 사전 작업을 간단한 지시만으로 해결해 버리는데, 지원조인 엡실론이 움직이기도 전에 그들이 할 일을 먼저 체크하며, 개별 오더를 내리기까지 했다.
팀장의 또 다른 눈과 귀가 되어 줘야 할 그들이건만, 손발의 역할에만 전념할 수 있으니, 전체적인 전력 상승효과가 발생하는 자연스러운 수순이었다.
뿐만 아니라 가장 시야가 밝아야 할 저격조보다 넓게 보면서, 그들의 저격 포인트 및 개입 타이밍까지 분배해 주기도 했다.
마치, 던전 내부를 제집처럼 들락거린 듯, 완벽한 내부 이미지를 머릿속에 그려 내며, 이를 토대로 명령을 내리는 느낌이라고 해야 할까?
결계도 버프도 없었다. 심지어 건어택의 저격마저 보여 주지 않았다.
오직 단 하나, 무전!
간단히 입만 놀렸을 뿐이건만, 전력 상승이 이뤄져 버린 것이다.
“허… 이건, 말이 안 나오는군.”
“우리가 기대했던 건 이런 게 아닌데. 그런데… 이게, 참… 하! 그래서 더 놀라워.”
“진짜 능력은 이거라는 뜻인가?”
“하기야. 각성 전에도 여러 팀에서 팀장을 맡았다고 했지.”
“살펴보니까. 하나같이 임무 성공률도 높더군.”
혜성 길드의 여러 간부들이 마루의 첫 작전 영상을 보고 난 뒤, 이런저런 평가를 하기 시작하는데, 이를 가만히 듣고 있던 김연희가 희미하니 미소를 띠었다.
‘좋았어!’
길드 독립을 위한 이미지 전환의 일환으로서, 새로운 특수 1팀을 저들에게 선보인 것인데, 전체적인 평가가 긍정적이었다.
은연중에 독립에 관한 운을 띄워 놓은 뒤, 돌아가는 상황을 지켜봤었는데, 사실 분위기가 그리 좋진 않았다.
혜성 그룹이라는 든든한 뒷배가 사라진다는 점이 그들을 흔든 것인데, 그룹 지원이 아니더라도 길드가 단단하다는 걸 각인시킬 필요가 있었다.
새로운 특수 1팀은 그를 위한 과정의 한 걸음이었다.
‘이 정도로 잘해 줄 줄이야.’
특히, 트랩퍼의 재주가 아닌, 그저 순수한 지휘력만으로 저런 성과를 보였다는 게, 더욱 인상적으로 남은 듯싶었다.
이는 그녀 역시도 놀랐던 부분으로, 마루의 남다른 시야에 내심 전율했을 정도였다.
‘지휘력만 놓고 봐도 세계 톱클래스라고 해도 되겠네.’
사자유희와 각종 스킬을 통한 시야 효과 덕분이지만, 이를 알 리가 없기에 이런 식으로 불가해를 목격한 듯, 멍하니 감탄을 연발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하루아침에 길드를 독립시킬 순 없다.
그러나 꾸준한 이미지 전환을 통해 분위기를 끌어오면서, 길드 자체적인 영향력을 상승시킬 경우, 그룹과의 거리감을 만들 수는 있을 터였다.
‘천리 길도 한 걸음부터!’
독립이라 하지만 단번에 그룹과 갈라설 수는 없었다. 그동안의 관계가 있는 만큼, 무리하려 들다가는 자칫 지탄의 대상이 될 수도 있었다.
지금과 같은 상하 관계를 먼저 해결한 뒤, 시간을 들여 개별적인 분리 과정을 거치는 것이다. 올 한 해는 거기에만 집중하기도 바쁠 터였다.
그런 의미에서 봤을 때,
“허… 특수 1팀이 업그레이드가 됐어.”
“트랩퍼가 대단하긴 대단해!”
“나는 믿고 있었다니까.”
참으로 좋은 흐름이라 여겼다.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이던 김연희가 잠시 영상으로 시선을 넘겼다. 깔끔한 오더로 사냥을 마무리하는 마루에게 앵글이 집중되어 있었다.
자연 그에 관한 생각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그러고 보니… 외부 팀 개시가 오늘이었나?’
본격적인 두 집 살림이 시작되는 날이었다.
* * *
팀 수호자!
마루가 새롭게 만든 개별 팀의 명칭이었다.
비공식이다 보니 당장 대외적으로 그 이름이 알려질 일은 없었지만, 이면을 타고 알음알음 퍼지도록 할 생각이었다.
이를 들은 강하나가 물었다.
“가디언즈 짝퉁이냐?”
확실히 존슨의 형제라서 가디언즈를 따라 한 게 아니냐는 의심의 눈초리도 받을 수 있을 것이나, 마루는 전혀 무관하단 얼굴로 당당히 대답했다.
“내 직업이야!”
강하나는 그 뜬금없는 이야기에 눈을 동그랗게 떴다.
“PP에서 특수 전직했다고 했잖아.”
“아….”
게임 속 이야기지만, 그의 운명이기도 하지 않던가.
이제는 강하나도 PP가 보통 게임이 아님을 알고 있지만, 그래도 아직 게임이란 이미지가 강하게 남은 탓일까?
짜게 식은 눈빛이 참 서늘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