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전조.
#6. 전조.
과거, 어쩌다 보니 맺게 된 인연인 호로로 파티를 시작으로, 작게 작게 이미지만 그려 왔던 자신만의 팀이 드디어 탄생되는 자리였다.
호로로 파티의 장현성과 김미애 그리고 진수미까지, 이들 3인방을 비롯하여, 성녀의 여동생이자 이제는 없으면 더 이상해진 든든한 지원군인 레베카, 그리고 북한산 마수지대에서 맺은 인연인 임수현과 임지현 남매, 마지막으로 WHA의 2대 회장의 제자이며 3대 회장의 아들인 레오까지.
팀장까지 포함해서 총 8명으로 이뤄진, 딱 한 개 파티 규모의 팀원이 전부였지만, 그야말로 정예라 할 만한 이들만 모인 최고의 팀이었다.
추가로 팀의 정비 업체도 계약되어 있었는데, 지인 찬스를 이용해서 단야 대장간으로 등록한 상태였다.
기왕이면 연인에게 받는 게 낫지 않겠는가.
단야 대장간의 실력 역시도 믿을 만하기에, 팀원들의 반응은 오히려 호의적이었다. 오히려 어떻게 그 숨겨진 명장을 알았냐는 이들도 있을 정도였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마루와 강하나의 관계가 살짝 오픈됐고, 남몰래 마루를 짝사랑하던 임지현은 조용히 실연의 눈물을 삼켜야만 했다.
‘안 될 걸 알았으면서도… 쯧!’
남매인 임수현이 이를 안타깝게 바라봤지만, 굳이 위로하진 않았다.
어쨌든 이렇게 모인 팀원들 대부분이 이전부터 미리 사전 작업을 해 뒀던 이들이었는데, 딱 한 명 레오의 경우에는 막판에 갑작스레 합류하게 된 케이스였다.
[놀면 뭐 하니?]
마루가 그리 말하며 끌어들인 것인데, 마땅히 할 일도 없었던 터라, 레오 역시도 흔쾌히 그의 팀에 발을 담갔다.
은연중에 그의 가르침을 얻어 배우고 있기도 했던 터라, 마루의 제안을 거절하기 어려운 면도 있었다.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한 팀 수호자!
그들은 놀랍게도 첫 사냥부터 던전으로 뛰어들었다.
‘이래서 대형 길드를 못 끊어!’
그의 개별 팀에 관해서 이선희에게 밝힌 건, 이런 편의를 위한 조치이기도 했는데, 당연하게도 그들 사냥터 역시 혜성에 속한 던전이었다.
“휘유… 특수 1팀을 맡는다는 말을 듣긴 했지만, 던전 이용권까지 끊어 주다니.”
장현성은 그리 말하며 주변을 쭈욱 돌아봤다. 제대로 정비가 되지 않은 던전이다 보니, 초입부터 흉흉한 기세가 사방 가득 넘실거렸지만, 그만큼 사냥감도 많단 뜻이기에, 오히려 나쁘지 않다 여겼다.
그러며 마루를 향해 조용히 감탄했다.
‘분명 처음 들어오는 던전일 텐데.’
혹여나 들어와 봤다 하더라도, 언급했듯이 정비가 되지 않은 터라, 내부의 지도가 제대로 완성되지도 않았을 것이건만, 마루는 일일이 저격 포인트를 잡아 주며, 그의 이동 경로를 그려 주고 있었다.
“이 방향으로 가면 갈림길이 나오는데, 거기서 오른쪽으로 넘어간 뒤… 여기하고 여기, 이렇게가 주요 포인트고… 이런 식으로 꺾어 들어가면 비탈길이…….”
놀라운 건 마루의 오더가 그에게만 한정되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물론, 팀장의 역할이 전체를 살피는 시야라고는 하나, 마루가 보여 주는 건 이를 한참이나 웃도는 시각이었다.
수색조의 레베카에겐 그녀가 봐야 할 것들과 유인할 타깃들의 지정, 그리고 명확한 은신 루트까지, 마루가 그와 같은 저격계가 아닌, 수색계의 일원이라 여길 정도의 전문성을 보여 주고 있었다.
이는 다른 팀원들에게도 공통되게 적용되는 부분으로, 놀랍게도 각 팀원들의 상황에 맞는 지시를 내려 주는데, 아직 본격적인 사냥은 시작도 하지 않았건만, 이미 끝이 보이는 것 같은 착각이 들 정도였다.
그냥 시나리오만 거창한 거 아니냐고 물을지도 모르나, 이곳에 모인 이들은 각자 나름의 경력들이 있는 만큼, 시나리오의 완성도만큼 실현도 역시 높다는 걸 알고 있었다.
아니나 다를까.
“사냥 개시!”
본격적인 헌팅이 시작되고,
‘하… 설계 미쳤네.’
‘정말 이렇게 된다고?’
‘이놈들한테 이런 습성도 있었나?’
‘몬스터 도감이라도 있는 거야 뭐야?’
시나리오는 완벽했고, 그만큼 구현률도 뛰어났다.
특히 팀원들을 놀라게 했던 건, 던전 내부의 상황을 한눈에 알아보는 시야도 있지만, 그 못지않게 상황을 끌어가는 능력이었다.
일찌감치 시나리오를 받아 들었던 만큼, 상황에 맞춰서 마치 애드리브처럼 판이 짜여진 게 아니라는 점이 더욱 놀라웠다.
이를 위해서는 각 몬스터들의 습성을 비롯한, 던전 내부 생태계의 이해도까지, 전문 연구진에 버금가는 지식수준이 필요하기 때문이었다.
‘전문가도 이럴 수 있을까?’
‘오히려 부족할 것 같은데.’
‘대체, 정체가 뭐야?’
새삼스레 마루에 대한 감탄만 연발되는 가운데, 팀 수호자의 첫 작전이 마무리됐다.
희생자나 부상자가 없을 뿐만 아니라, 별도의 장비 손상까지도, 깔끔히 클리어된 퍼펙트한 사냥이었다.
이들 표정을 읽은 마루는 내심 뿌듯함을 느꼈다.
‘간만에 머리 싸매고 공부한 보람이 있네.’
거의 완벽하다 싶을 정도로 몬스터들의 습성을 파악하고 있는 건, PP의 도서관만이 아니라, 알파 세상에서 실버 박사에게 가르침을 받은 덕분이기도 했다.
비각성 헌터로서 사냥감의 습성이나 주변 생태에 대해 파악하는 게 얼마나 중요한지, 뼈에 사무치도록 실감했던 경험이 있던 터라, 완벽에 가까울 만큼 조사를 거듭했고, 전문가 이상으로 뛰어난 지식을 쌓아 올릴 수 있었다.
성공적인 데뷔전을 치른 덕분일까?
“오늘 한잔 어때?”
바로 회식을 준비했다.
“내가 쏜다!”
“탕야! 탕야!”
“와아아아!”
“팀장님 멋져요.”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 * *
실버 박사는 최근 몸 상태가 영 좋지 않음을 느꼈다.
바깥세상에 관전이 아닌 개입을 한 영향이었는데, 존슨의 결혼식 때문에 짧은 댓글은 단 것도 이유가 되겠지만, 겨우 그 정도로 이만큼 몸살을 앓을 이유는 없었다.
그 이전에 한 차례 더 개입했던 게, 눈덩이처럼 굴려져서 이처럼 커져 버린 것이다.
[아이언슈트 vs 스페셜포스]
한참 화제가 되고 있는 그 영상의 최초 유포자, 그게 바로 실버 박사였다.
물론, 당시에는 그를 상징할 만한 걸 내비치지 않았던 터라, 직접적인 압박이 그리 심하지 않았지만, 그래도 경고를 먹기엔 충분했었다.
그 상황에서 ‘골드맨’을 꺼내며 직접 언급을 시도했으니, 즉각적인 제재가 들어올 수밖에 없었다.
‘이런 느낌도 오랜만이네.’
하지만 후회하진 않았다.
무려 존슨의 결혼식이지 않던가.
WHA의 마르코 회장 덕분에 맺어진 인연으로, 이후 그 깨끗한 심성에 반해서 정말 친조카처럼 아꼈었다.
게다가 이반나 역시 남다른 정의감에 반해 아끼던 아이였고, 그런 만큼 그들의 맺어짐에 이 정도 아픔은 감수할 수 있었다.
* * *
가디언즈는 던전과 마수지대에 집중하기로 하며, 레메게톤을 향한 발길질은 멈춘 상황이었다.
하지만 존슨은 그들과 별도로 움직이기로 했다.
맘 같아선 싹 데려오고 싶을 것이다.
그러나 기현상으로 인한 던전과 마굴의 커버 역시 중요한 터라, 가디언즈의 요원들은 본래의 자리로 돌아가는 게 맞았다.
그냥 그 혼자 레메게톤 작전에 투입되기로 한 것이다.
위저드는 당연히 환영하는 분위기였고, 한편에선 환호성도 터졌을 정도였다.
최강의 랭커가 다시금 거들어 주는 것이니, 어찌 보면 당연한 반응이라 할 수 있는 부분이었다.
게다가 인생의 동반자이자 든든한 지원군인 이반나가 함께하고 있었다. 규모는 작아도 전력은 부족하지 않았다.
그들 두 랭커의 개입으로 인해 레메게톤 측에서도 한층 움츠러들 수밖에 없었다.
가디언즈가 빠진다는 소식에, 슬쩍 활갯짓이 커지던 타이밍이다 보니, 존슨의 합류로 더욱 크게 경직되는 효과도 발생했다.
“쯧! 빌어먹을 놈. 갑자기 유턴을 하는 건 뭔데?”
비모는 혀를 차며 존슨에 대한 폭언을 쏟아 냈다. 그렇게 투덜거리던 것도 잠시, 그는 저 차원 너머의 마계 상황을 떠올리며 불편한 심경을 일부 달랠 수 있었다.
[하늘의 문이 열렸다.]
이는 차원 통로가 본격적인 가동을 시작했다는 의미로, 오래지 않아 침공 길이 열린다는 뜻이기도 했다.
레메게톤의 테러 활동이 드디어 성과를 보이는 듯해서, 차오르는 뿌듯함이 있었다.
문이 열렸음에도 당장 침공이 시작되지 않는 건, 마계의 정점들이 넘어오기엔, 아직 그 문의 크기가 작은 탓이리라.
좀 더 많은 테러와 혼란이 게이트의 완성에 도움이 될 터, 비모는 마계 지식을 미끼로 소속 클랜들의 재촉에 들어갔다.
* * *
대환란의 전조라고 해야 할까?
존슨은 가디언즈를 통해 날아드는 보고를 들으며 눈살을 찌푸려야만 했다.
“왜?”
곁에서 이를 지켜보던 이반나의 물음에, 존슨은 잠시 고민하다 관련 내용을 그녀에게 보여 줬다.
“대격변이라고?”
물론, 그게 이상한 건 아니었다. 가디언즈는 인류의 최전방에서 격변의 시대를 살아가는 이들이 아니던가.
일상과도 같은 일인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처럼 반응하는 건, 일상의 규모가 커져 버린 까닭이었다.
“뭐가 이렇게 많아?”
가디언즈의 보고에 따르면, 이번보다 배는 늘어난 대격변의 현상이 세계 곳곳에서 감지되고 있단 것이다.
개중 몇몇은 그대로 꺼져 버릴 수도 있지만, 이를 염두에 둔다고 하더라도 최소 반절가량은 더 늘어났다고 봐야 할 터였다.
“대가리들은?”
이는 각국 수뇌부를 의미하는 것인데, 그녀의 물음에 존슨이 쓰게 웃어 버렸고, 이반나의 표정이 와락 구겨졌다.
“하… 이 썩을 것들!”
존슨은 대환란에 대해 꾸준히 경고를 하고 있었다. 가디언즈가 보내오는 최전방의 자료 역시 잘 정리해서 보내 줬건만, 반응이 영 뜨뜻미지근했다.
가디언즈라는 든든한 방벽이 세워져 있는 만큼, 은연중에 그들이 해결해 주길 바라고 있는 것이다.
상황이 정말 최악으로 치닫기 전엔, 선뜻 나서려 하는 이들이 없을 터였다.
특히, 유럽의 경우엔 레메게톤으로 인해 정신이 없다 보니, 더더욱 관련해서 가디언즈에게 떠넘기려는 움직임이 심할 수밖에 없었다.
“멱살잡이를 한번 해야 되나?”
그녀라면 정말로 할지도 모르는 탓에, 존슨은 애써 말려야만 했다. 굳이 그들이 나서지 않아도, 돌아가는 상황으로 봐선, 저들도 마냥 무시하긴 어려울 거라 여긴 것이다.
그 같은 예상이 틀리지 않았음인지, 오래지 않아 각국 정상들도 경시할 수 없는 사건이 일어났다.
대격변!
설마설마했던 사건이 발생한 것이다.
* * *
세계가 난리가 났다.
―대격변이라고?
―갑자기?
―뭘 그렇게 놀라고 그래? 처음도 아니면서.
―처음이니까 그렇지! 뉴스도 안 보냐?
기겁할 수밖에 없었다.
[도심 한가운데 대격변 게이트 오픈?]
[설마 했던 대환란?]
[멸망의 전조인가?]
지금까지 발생했던 모든 대격변이 마수지대를 중심으로 발생했었다.
이는 초기 대격변 역시 마찬가지로, 사람들은 알지 못하는 영역에서 마수지대화된 장소들이 있었고, 그곳을 중심으로 대규모 게이트가 발생하며, 대격변을 불러온 거였다.
그 최악의 사태가 바로 북극 마수지대이지 않던가.
워낙에 관측이 어려웠던 터라, 그곳에 자리한 어두운 그림자를 캐치하지 못했고, 이내 대규모 대격변으로 이어졌으며, 세계 최악의 마수지대로 재탄생된 것이다.
그렇기에 이번 대격변에 난리가 날 수밖에 없었다.
―도심 한복판에서 갑자기 이럴 수 있나?
―어쩌면 하수도 같은 곳이 마수지대화됐다가 변이된 거 아닐까?
―말이 되는 소릴 해! 도심지에 깔린 측정기가 몇 갠데. 그런 게 있으면 진작에 감지됐지.
―그나저나 일본은 난리 났네.
―듣기론 도쿄 타워를 끼고 있다던데, 명물 하나가 사라지는 건가.
대격변은 어떠한 상황에서도 최우선으로 처리돼야 하는 척결 과제였다.
당연하게도 주변국에서 수많은 지원군을 파견하기 시작하는데, 혜성 길드의 특수 1팀 역시 그곳에 명단을 올렸다.
그 때문일까?
―트랩퍼가 온다고?
―혹시, 어쩌면….
―타워를 지킬 수 있을지도.
묘한 기대감이 일본을 휘감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에 대한 마루의 반응은 항상 같았다.
“받은 만큼만 하는 거지.”
주머니를 얼마나 열지가 관건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