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도쿄.
#7. 도쿄.
도쿄 타워 옆으로 거대한 균열이 일렁이는 게 보였다.
대격변!
그 전조 현상이 발생 중이었는데, 균열 주변으로 음양사 복장을 한 이들이 잔뜩 모여서 진땀을 뻘뻘 흘리고 있었다.
각자 결계 방면의 스킬을 익힌 이들로서, 조금이라도 더 게이트 발생을 늦추기 위해 노력을 하는 중이었다.
각국의 병력이 조금이라도 더 많이 도착하며, 방비가 단단해지기 위한 시간을 벌기 위함이었는데, 덕분이라고 해야 할까?
“우글우글하네.”
마루는 주변을 쭈욱 돌아보며 각국의 파견 병력을 살폈다. 과연 대격변 게이트라 해야 할지, 정예라 할 만한 이들로 가득했다.
“이 정도면 대격변은 문제없겠네.”
원래 많은 병력이 모이는 게 당연하지만, 이번 대격변은 도심지라는 부분에서 관심도가 높아졌던지, 평소보다 많은 이들이 움직이며, 과할 정도의 병력이 모여든 것이다.
그 때문일까?
“대우가 엉망이네요.”
곁을 지키던 레오가 불만 어린 어투로 입을 열었다.
넘치는 전력으로 인해, 일본에선 그들 특유의 고집을 버리지 않았는데, 그중 하나가 바로 이웃 나라 한국과의 기묘한 눈치 싸움이었다.
트랩퍼의 등장!
그로 인해서 일본 커뮤니티는 남다른 결계술을 기대하는 이들이 상당했다.
일본의 협회 관계자도 은근히 관련한 기대감은 내비쳤었는데, 마루는 그에 웃으며 답해 줬었다.
[금액만 맞으면 얼마든지 해 드려야죠.]
영업 모드로 최대한 정중하게 제안을 한 것인데, 이게 웬일?
‘똥 씹었지.’
표정이 제대로 무너졌었다. 너무 노골적이었던 터라 당시 함께하던 특수 1팀의 조장들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을 정도였다.
설마하니 공짜로 해 주길 바랐던 것일까?
‘웃기는 놈들.’
대격변이야 세계적으로 합의된 사안이니만큼, 공짜 봉사를 할 수 있는 부분이다. 어차피 차후 활약상에 따라서 몬스터 사체의 지분을 주장할 수 있지 않던가.
수준 높은 몬스터들이 나오는 만큼, 수입은 거기서 해결하면 되는 부분이었다.
하지만 도심을 지키는 건?
“어째 죄다 대머리만 있더라니.”
공짜를 너무 좋아한다면서 고개를 절레절레 저어 버렸다. 레오의 불만도 이해가 되는 게, 마루가 의도대로 움직여 주지 않으니, 특유의 기 싸움으로 한국 측, 그중에서도 혜성의 요원들에 대한 대우가 특히 더 박함을 느꼈다.
그래서 마루는 팀원들을 불러 놓고 말했다.
“받은 만큼만 하자.”
대격변이고 그들이 받은 건?
없었다.
그렇잖아도 박한 대우에 불만이 쌓여 있던 탓인지, 팀원들은 굳은 얼굴로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도 됩니까?”
한편에서 이를 지켜보던 레오가 슬쩍 물었고, 이에 마루가 어깨를 으쓱이며 되물었다.
“안 되는 건 뭔데?”
“…….”
마땅히 할 말이 없는 가운데, 기다리던 대격변이 시작됐다.
* * *
모두가 우려했던 사태가 고스란히 일어났다.
―아… 아아… 도쿄 타워가….
―랜드마크가…
―결국 무너지네.
―아직 못 가 봤는데. 다시는 못 가겠네.
―새로 세우겠지.
―그게 이거하고 같냐.
뒤이어 몬스터들이 쏟아지며 도쿄를 엉망으로 만들기 시작했다.
―아니, 트랩퍼가 왔다고 하지 않았나?
―뭐 하는 거야?
―조센징들이 그렇지 뭐.
―오긴 한 거냐?
부서지는 도쿄의 모습에 사람들의 분노가 뜻밖의 방향으로 흘러가는데, 은밀한 저격 포인트에서 적당히 방아쇠를 당기며 커뮤니티를 살피던 마루는 작게 실소했다.
‘얼씨구 사진까지?’
마치 그가 한국에 있는 것처럼, 관련한 일상 사진들이 올라오고 있는 것이 아닌가. 웃기지도 않았다.
‘개수작을 부리네.’
일본 협회 측에서 그를 제물로 쓰려 하고 있음을 알았다. 추측이 아닌 확신이었는데, 이는 그에게 최고의 해커가 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리고 이 특별한 재주꾼을 데리고서, 마냥 당해 주고만 있을 생각도 없었다.
“자비드 불 좀 꺼 줄래.”
코드명을 입력하는 순간, 인공 지능 알파9이 움직이며 이번 사태에 관한 스토리를 풀어내기 시작했다.
물론, 직접적으로 알리는 건 아니었다.
저들이 했던 방식 그대로, 무수한 댓글 부대를 만들어 분위기를 조작하며, 일종의 몰이사냥을 시작한 것이다.
―듣기로는 트랩퍼는 관련해서 의견을 냈다고 하던데.
―그러면 저건 뭔데? 도쿄가 다 부서지잖아.
―협회 측에서 묵살했다더라.
―공짜로 부려 먹으려고 했단 소리가 있음.
그러면서 혜성 길드의 숙소를 비롯하여 그들의 부당한 대우를 하나하나 공개하는데, 당연히 이는 사진 자료를 첨부하고 있었다.
―허… 저런 후진 곳에다가 숙소를 잡아 줬다고?
―아니. 도쿄가 텅텅 비었는데, 굳이 저런 곳에다 방을 잡는 건 뭔데?
―나라도 빡쳐서 일 안 하겠네.
―저건 좀 너무한데.
분위기가 급속도로 넘어오고 있었다. 물론, 관련해서 여전히 여론 몰이를 하려는 이들이 남아 있긴 했다.
―헌터 유입 수준을 생각하면, 저 정도도 감지덕지지.
―고마운 줄 알아야지. 어디 혜성 따위가.
―요즘 들어서 좀 뜨는 거지. 원래 한국의 헌터들은 수준이 낮아서, 저거면 충분해!
―대격변이라는 세계적인 사건에 힘을 모아야 하는데, 돈이나 밝히다니. 제정신으로 할 짓인가? 하여간 이래서 조센징 놈들이란. 그저 돈돈!
하지만 전체적인 분위기는 협회에 부정적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그만큼 인공 지능 자비드의 성능이 압도적이었기 때문이다.
도쿄 전경이 실시간으로 변화하는 모습은, 특히 더 많은 이들을 분노하게 만들면서 협회를 씹어 대게 만들었다.
자비드가 그 선두에 있는 건 당연했다.
어쨌든 그렇게 커뮤니티를 구경하면서도 한편으론 전장을 살피는 걸 잊지 않았고, 꾸준히 방아쇠를 당기며 제 역할에도 충실했다.
“제타 포인트 이동! 만티코어가 그쪽으로 이동한다.”
[라져]
이 너른 전장을 완벽히 시야에 두며, 팀원들의 위치도 꾸준히 체크하며 조정해 주니, 대격변 속에서도 그들 혜성 1팀은 깔끔한 헌팅을 이어 나갈 수 있었다.
마루의 멀티태스킹은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타르. 출격!”
[OK!]
저격에 특수 1팀만이 아니라, 비공식으로 활동 중인 개인 팀, 바로 수호자 역시 이번 격전에 참여시킨 것이다.
팀원 대부분이 혜성의 일원이다 보니, 실제로 활동하는 수호자는 몇 없긴 했다.
호로로 파티 3인방과 레오, 이렇게 4명만 활동 가능할 뿐이었다. 진수미도 원래는 혜성에 들어올 예정이었지만, 너무 몰려 있는 건 좋지 않다는 생각으로 막판에 제외하면서, 그나마도 4명이 남은 거였다.
그리고 이들은 각자 특수한 가면을 쓰고 활동 중이었는데, 이는 팀 수호자의 개성으로 못을 박아 놓은 상황이었다.
[우리끼리 활동할 땐 상관없는데, 외부 활동을 할 때는 이렇게 가면을 쓰고 움직이는 거야.]
그러며 마루는 아이언슈트를 보여 줬는데, 사실 팀원 대부분이 그 정체를 알고 있던 부분이기도 했다.
장현성과 김미애처럼 모르고 있던 이들도 처음에는 적잖이 놀랐지만, 이내 납득하며 고개를 끄덕이고야 말았다.
트랩퍼의 재주가 그제야 이해됐던 것이다. 오히려 당연하다는 생각마저 할 정도였다.
어쨌든 그런 이유로 각자 맘에 드는 캐릭터 가면을 하나씩 챙겼는데, 레오의 경우에는 담뱃대를 휘두르며 구름을 부리고 천둥을 일으키는 히어로, 타르의 가면을 쓰고 있었다.
호로로 3인방은?
게임 속 인연 그대로 호로로 가면이었다.
클놈 장현성, 패피 김미애, 루띠 진수미!
그리고 현재 혜성의 일원으로 현장을 뛰고 있는 임수현과 임지현 남매 그리고 레베카의 경우, 각기 코코아 패밀리라는 어플의 라이거와 무치 그리고 하이키티라는 캐릭터 가면을 쓰고 있었다.
대격변이라는 현장의 특성상, 워낙 많은 실력자들이 날뛰고 있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팀 수호자는 뜻밖의 활약을 보여 주며, 적잖은 앵글을 점령해 나갔다.
―요즘 가면이 유행인가?
―저 다국적 캐릭터들은 뭐냐?
―뭉쳐서 행동하는 게, 딱 봐도 팀인데.
기본적으로 행색 자체가 눈에 띈 것도 있지만, 그렇게 몰려든 관심도를 붙잡고 끌어 나갈 실력도 충분했다.
팀 수호자는 기본적으로 마루의 가르침을 받은 이들이었다. 장현성과 김미애의 경우에는 좀 뒤처진 감이 있었지만, 스타르타식으로 채찍질한 결과, 기어이 A급에 오를 수 있었다.
물론, 대격변의 현장이니만큼 그 정도 수준은 흔해 빠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의 임팩트가 남다른 건?
―저거 멀티 스킬이냐?
―허… 타르면 천둥만 부려야 하는 거 아닌가?
―업그레이드 타르!
―메가 타르!
레오의 멀티 스킬은 확실히 주목을 끌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붙잡아 놓은 시선을 호로로 3인방이 제대로 유지시켜 나갔다.
―덩치 큰 사내놈, 탱커처럼 생겨서 뜬금없이 활쟁이였어?
―나머지 둘은 여자네?
―저 작은 덩치로 탱커라고?
―딜러님 몸매가 오우야!
각각의 개성이 뚜렷했는데, 그 와중에 실력도 확실해서 보는 재미가 있던 것이다.
―활쟁이면 저격을 해야지, 왜 근접전을 하는 건데?
―난 왜 자꾸 건어택이 생각나냐?
―그러게. 재주도 좋네. 활로 건가드를 치다니.
건가드 1타 강사인 마루에게 직접 가르침을 받은 덕분인지, 장현성은 저격 특성의 궁수임에도 불구하고, 근거리에서 사정없이 화살을 꽂아 넣고 있었다.
일종의 변형 건가드라 봐야 했다.
이는 김미애와 진수미 역시 마찬가지로, 마루가 직접 맞춤형 연공법까지 전수해 준 덕분에, 전투 시의 포스 소모 및 효율이 극대화되며, 매 순간 임팩트 있는 한 방을 꽂아 넣으니, 그녀들의 포스 총량에 대한 의문을 떠올리게 만들었다.
레오의 경우엔 원래 대단하다 보니, 꾸준히 앵글을 끌어가는 재주가 있었다.
―가면 쓰고 날뛰는 게, 자꾸 아이언슈트가 생각나네.
―관계있는 거 아니야?
―설마, 본인?
―그 정도는 아니지. 딱 봐도 급수가 떨어지는데.
―그래도 실력이 대단한 건 확실한데, 대체 정체가 뭘까?
―한 가지는 장담한다. 가면 장사가 돈깨나 될 듯.
확실히 아이언슈트의 등장 이후, 관련 가면이 남다른 인지도를 자랑하고 있지 않던가.
현재 현장의 카메라를 쓸어 담고 있는 가면인들의 모습이란, 자연스레 관련 업종을 들썩이게 만들 수밖에 없었다.
마루는 멀티태스킹으로 이런 커뮤니티 반응을 살피면서, 흡족하니 고개를 끄덕였다.
수호자는 비공식 헌터팀이니만큼, 딱 이 정도의 미스터리가 남는 게 좋았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영영 감춰 놓기만 할 생각은 아니었다.
차후 순차적으로 인지도를 높인 뒤, 가디언즈처럼 자연스레 세상에 오픈되도록 할 생각이었다.
그들과 차이를 둔다면?
‘봉사 활동까진 쫓아갈 필요가 없겠지.’
이런저런 미래를 상상하는 가운데, 어느새 도쿄 대격변도 막바지에 다다르고 있었다.
캬아아아아악!
크워어어어!
커다란 포효와 함께 강대한 파동이 사방으로 퍼져 나가며, 현장을 뛰는 헌터들을 잠시간 경직시켰다.
베테랑들만 모여 있다 보니, 그 정체를 모를 수가 없었다.
마기!
아니나 다를까, 게이트를 넘어오는 마족들이 보였다.
그 숫자는 겨우 셋뿐이었지만, 각 개체가 랭커 두셋과 비견되는 만큼, 결코 가벼이 여겨선 안 됐다.
일본의 랭커들을 주축으로, 각국에서 파견 나온 랭커들이 뒷짐을 풀고 전방으로 나서기 시작했다.
도심 게이트라는 특이 사항으로 인해, 기존보다 더 많은 헌터들이 찾은 상황이었다.
이는 랭커 역시 마찬가지였다.
마루는 마족 셋을 보면서도 여유롭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무려 열둘이나 되는 랭커가 자리한 상황이었다.
각 개체에 4명씩만 붙어도?
‘가뿐하겠네.’
이마저도 공식 랭커였고, 비공식까지 포함하면 더 많은 수가 몰려 있었다.
그리고 이런 예상은 정확히 들어맞아, 랭커들은 철저한 합공 속에서, 너무도 여유롭게 마족들을 처리할 수 있었다.
이후 나머지 몬스터까지 깔끔히 처리하며, 그렇게 도쿄 대격변은 막을 내렸다.
뜻밖의 기현상은 그렇게 끝을 맺는 듯싶었다.
하지만 이게 웬일?
[파리 대격변]
기현상은 이제 막 시작이었다.
세계가 크게 들썩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