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개방.
#9. 개방.
혜성 특수 1팀은 전에 없이 바빠졌다.
실질적으로 각국에서 요구하는 건 트랩퍼, 마루의 파견일 뿐이었지만, 그는 이 기회를 이용해서 특수 1팀을 최대한 훈련시키고자 했다.
그냥 훈련이라면 던전이나 마수지대로도 충분할 것이다.
하지만 곧 다가올 대환란을 생각한다면?
‘대격변만 한 곳이 없지.’
실전이며 동시에 훈련이었다.
그런 이유로 마루는 팀 수호자도 함께 대동하며 움직였는데, 그 와중에 새로운 멤버의 추가 영입이 이뤄졌다.
정다솜과 임시안!
둘 다 C급의 헌터로서, 마루 덕분에 몇몇 던전과 마굴을 경험하며 초보 딱지는 뗐다고 볼 만한 수준은 됐다.
하지만 대격변급의 현장을 뛸 만한 실력은 아니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팀 수호자에 끼워 넣어서 데리고 온 건, 일찌감치 전장 경험을 시켜 주기 위함이었다.
사실, 정식 멤버는 아니었다.
“둘은 예비 멤버다.”
일종의 수습으로서, B급에 오르며 정식 등록을 시켜 주기로 했다.
물론, 그래 봤자 비공식 팀이니만큼, 제대로 된 명함을 들고 다니기는 어렵겠지만, 마루는 따로 자신의 권한을 발휘해서 별개 등록도 약속해 줬다.
“팀 수호자 특권! 혜성 특수 1팀에 스카우트시켜 주마.”
눈이 번쩍 뜨이는 제안이었다.
한국을 대표하는 거대 길드로서, 그야말로 대기업이라 할 수 있는 회사에 입사하는 것이지 않던가.
이를 위해서라도 그들 둘은 팀 수호자의 서포터 역할을 제대로 수행할 필요가 있었다.
당연하게도 나름의 안전장치도 해 놨다.
수습인 만큼 당장 가면을 쓰고 활동하는 것도 아니었고, 멀리서 저격을 하는 정도인 데다가, 그 둘의 곁에는 따로 반칼죽까지 붙여 놓은 상황이었다.
―음냐음냐… 맡겨만 주세욤냐욤냐….
아직 마검의 기운을 전부 수습하지 못한 듯, 비몽사몽인 상태였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둘을 지키기에는 충분했다.
사자유희의 시야각도 항상 열어 놓는 만큼, 언제든 돌발 상황에 응수할 수도 있었다.
우우우우우웅….
저 멀리 대격변 게이트가 문을 여는 게 보였다.
잠시 후, 파도처럼 쏟아지는 몬스터들이 할리우드 액션을 취하는 가운데, 각국에서 몰려든 헌터들 역시 화려한 리액션으로 호응하며, 치열한 격전이 펼쳐지기 시작했다.
그렇게 할리우드 대격변을 시작으로, 두 인턴의 땀띠 나는 현장 경험이 시작됐다.
* * *
마루는 여동생이라 해서 곱게 키울 생각은 없었다.
그 때문에 던전과 마수지대도 경험시키며 제대로 된 현장감을 살려 준 것이 아니겠는가.
대격변 역시 마찬가지였다.
‘어떤 사태가 발생할지 모르니까.’
곧 다가올 대환란을 대비해서라도, 미리미리 제 몸 하나는 보호할 수 있게 해 둘 생각이었다.
기왕이면 혼자만이 아니라, 주변도 살필 수 있는 시야까지 장착시키는 것, 일단은 거기까지가 여동생을 향한 계획이었다.
집 주변의 결계를 수시로 업데이트하고 있다지만, 그래도 만에 하나라는 게 있는 만큼, 여동생이 가족의 최종 방어선이 되길 원했다.
제자인 임시안 역시 보조로서 함께하면 좋을 터, 대환란이 시작되기 전까지, 적어도 B급까진 승급시키는 게 목표였다.
대격변은 최고위 수준의 전장인 만큼, 경험치를 비롯해 포스 습득량도 남달랐고, 당연히 성장에 가속도가 붙을 터였다.
그런 이유로 정다솜에게 좀 더 많은 격변을 경험시켜 줄 필요가 있었는데, 그에 관해서는 크게 걱정하지 않았다.
띠링….
마루는 자신의 핸드폰에 뜬 문자를 확인했다.
‘역시!’
예상했던 그대로라고 해야 할까?
새로운 도심 대격변 소식이었다.
* * *
도쿄와 파리 그리고 할리우드!
갑작스러운 도심 대격변이 발생한 장소로서, 이 정도쯤 되니 각국 수뇌부는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진정… 대환란인가.”
골 아픈 건, 연달아 이어지는 상황이었다.
“이번엔 뉴욕이라며?”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이라더군.”
“미국만 2연타인가.”
각국 단체는 쉼 없이 이어지는 도심 대격변 소식을 전달받으며 신음했다. 대환란이란 최악의 미래가 다가오고 있다는 게 피부로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이와는 조금 다른 의미로 신음하는 이들이 있었다.
“허어… 정말로 대격변을 조정할 수 있다니.”
“레메게톤의 능력은 대체 어디까지란 말인가.”
“일본부터 미국까지, 죄다 저들이 예고한 그대로 오픈되고 있으니. 마냥 허튼소리로 여길 수도 없고.”
“련주님께선 어찌하실 생각이십니까?”
그들은 바로 중국 무림을 양분하고 있는 이면의 세력, 사흑련이었다.
회의장 내, 각 문파의 수장들이 목소리를 높이는 가운데, 사흑련의 련주인 철마가 한 차례 손을 들었다.
그 순간 거짓말처럼 정적이 깔리고, 장내의 시선이 그에게로 쏟아졌다.
철마는 그들의 시선 속에서 레메게톤이 했던 제안을 떠올렸다.
[저희와 함께 세계 패권을 잡으시는 게 어떻습니까?]
그러면서 유럽 이면의 클랜들에게 했듯, 남다른 수준의 신기술을 미끼로 제안해 왔었다.
너무나도 매력적인 신기술이 담겨 있었다.
하지만 선뜻 손을 잡기가 어려웠다.
각국에서 발생하고 있는 도심 대격변을 생각하자니, 저들의 진의를 다시 생각하게 될 수밖에 없었다.
이런 생각들을 잘 정리한 뒤, 입을 열었다.
“우리가 비록 이면을 살아가고 있다지만, 나름대로 선은 지켜 왔다고 생각한다.”
선뜻 공감하긴 어려운 이야기였다. 각종 범죄를 저지르는 걸 주저하지 않는 게 바로 사흑련이지 않던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이야기를 꺼내는 건?
“앞으로 레메게톤과 거리를 둔다.”
이유 역시 합당했다.
“우리들의 경쟁 상대는 ‘사람’이어야지 ‘몬스터’가 돼선 안 된다.”
비록 범죄자라고는 하나, 그들도 어쨌든 헌터라고 할 수 있었다. 몬스터와 어깨동무를 하고 싶진 않은 것이다.
레메게톤의 대격변 게이트는 너무 위협적이었다.
저들이 제공하는 신기술도 매력적이긴 하나, 아무리 생각해도 그럴싸하게 잘 칠해진 썩은 동아줄이란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왠지 우리를 미끼로 엮으려는 느낌이란 말이지.’
철마는 이면의 밑바닥부터 기어올라 사흑련의 련주까지 이른, 말 그대로 입지전적인 인물이었다.
그런 만큼 남다른 생존 본능을 지니고 있었다.
‘레메게톤 놈들은 너무 위험해!’
기존엔 저들을 지원하는 입장이었지만, 오늘부로 그 같은 방침을 달리하게 될 터였다.
“련주, 하지만 우리 선택을 알게 된다면, 저놈들은 대륙에도 독을 풀 게 분명합니다.”
누군가 그 같은 걱정을 내비쳤고, 이에 철마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미리 격변 지역을 알려 준 건, 경고의 의미도 있었겠지.”
그렇기에 더더욱 확실히 선을 그어야만 했다.
“이는 우리를 우습게 본 것이 아니고 무엇이겠나.”
그러나 마냥 거리를 두기도 쉽지 않았고, 그 때문에 만약의 상황을 염두에 둬야 했다. 그리고 이를 위해 준비한 게 있었다.
“우린… 무림맹과 손을 잡는다.”
거대한 충격이 장내를 휘감았다. 그들이 정신을 차리기 전에 몰아치듯 철마가 발표를 이어나갔다.
“곧 환란의 시기가 올 거란 것쯤은 모르지 않겠지?”
존슨의 경고는 바깥만이 아니라 이면 깊숙이까지 몰아치며, 수많은 헌터들을 긴장하게 만들었다.
맘에 들지 않지만 상황이 바깥과 손잡도록 유도하고 있었다.
“놈들을 어찌 믿고….”
누군가가 힘겹게 정신을 다잡으며 조심스레 의견을 내비치려는데, 철마는 저들이 제대로 생각할 틈을 주지 않았다.
“아드리안 데일이 중개하기로 했으니, 걱정할 건 없다.”
뜻밖의 이름이 튀어나온 가운데, 효과는 확실했다.
“으음… 데일이라면 믿어도 되지.”
“2대 협회장이라면 확실히….”
반응이 나쁘지 않았고, 결국 분위기는 완전히 철마의 손아귀에 들어왔다.
무림맹과 사흑련!
중국 무림에 새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 * *
대격변!
사람들은 몇 년에 한 번씩 등장하는 기현상으로 알고 있지만, 사실 이는 생각보다 자주 등장하고는 했다.
단지, 존슨과 가디언즈에 의해서 사전 차단이 되며, 그 일부만 세상에 공개되었을 뿐이었다.
그런 만큼 현재 발생하고 있는 대격변이 숫자가 과한 건 아니었다.
하지만 그 모든 현상이 도심지로 옮겨 갔다는 부분에선, 여러모로 우려해야 할 부분이긴 했다.
실제로 가디언즈를 마굴에서 밖으로 내몰 정도였기 때문이다.
“으음… 마수지대의 격변 현상이 확 줄었단 말이지.”
존슨은 가디언즈에서 날아온 보고를 살피며 눈살을 찌푸렸다.
덕분에 그들 전력을 외부로 돌릴 여유가 생겼지만, 그만큼 대환란이 가까워지는 것 같아 맘이 편치가 않았던 것이다.
게다가 가디언즈의 전력 일부는 마굴을 지켜야만 했다.
비록 격변 현상이 많이 사그라졌다지만, 마굴의 마기가 상승하면서 몬스터들의 흥분 지수가 극대화되고 있던 까닭이었다.
언제든지 몬스터 웨이브가 발생할 수 있는 것이다.
던전 얽힘으로 인한 웨이브 못지않게 까다로운 게 마수지대의 웨이브 현상이었다.
상황이 이쯤 되니 새삼 아쉽기만 했다.
‘만약 사부가 살아 있었다면….’
마르코 회장은 생전에도 세계적인 영웅이었고, 그만큼 강렬한 발언권을 지니고 있었다. 그런 만큼 마수지대의 축소에 대해, 더 강한 주장을 펼칠 수 있지 않았을까 싶었다.
‘…이제 와서 이런 생각을 하면 뭐 하나.’
고개를 절레절레 젓는 그의 모습에 이반나가 팔짱을 끼며 물었다.
“또 영감 생각한 거지?”
“…정말 귀신이 따로 없다니까.”
“신랑 표정이 너무 쉬워.”
“흐….”
남편, 여보, 신랑 등등의 표현은 들을 때마다 새롭게 흥겨웠음에, 저도 모르게 입꼬리가 올라가 버렸다.
“그나저나 등잔 밑이 어둡다더니….”
이반나는 그처럼 이야기하며 주변을 돌아보는데, 낯익은 풍경이 사방 가득 펼쳐져 있었다.
어쩌다 보니 원점으로 돌아왔다고 해야 할까?
영국 런던!
그들은 레메게톤 추적의 시작점에 서 있었다.
이 도시 어딘가, 그들이 그토록 쫓고 있는 레메게톤이 자리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게 제대로 한 방 먹었네.”
존슨은 쓰게 웃으며 방향을 잡고 움직였다.
목적지는?
버킹엄이었다.
* * *
PP의 신규 콘텐츠 마계!
그곳의 본섬 오픈을 코앞에 두고 있는 상황에서, 그 매개체라 할 수 있는 존재, 사일론은 마지막 난관 앞에 서서 호흡을 고르고 있었다.
“후우우우….”
어느새 과거의 영광을 거의 회복한 상황으로, 확실하게 과거 역량을 되찾기 위한 최종 관문이 눈앞에 있었다.
‘…웃기게도 이 풍경이 그리워질 줄이야.’
기나긴 시간 그와 함께하던 집, 북마계의 대공성!
삭막하기 그지없는 풍경일 뿐이지만, 워낙 오랜 세월을 함께했던 탓인지 묘한 그리움이 있었다.
하지만 지금 눈앞의 풍경은 ‘거짓’일 뿐이었다.
게임 속에서 만들어 낸 가상이기에, 감상에 흠뻑 빠져들진 않았다.
아주 잠시 잔향에 취한 정도였다.
“후웁!”
끼이이익….
숨 고르기의 끝에 대공성의 정문을 열었다.
그리고 문을 넘는데, 그리고 성큼성큼 안으로 걸음을 내딛는데, 한 걸음 내디딜 때마다 외형에 변화가 생겨났다.
자그마한 소마는 머리가 하나씩 굵어지기 시작했고, 종래에는 옛 영광의 모습을 재현한 듯, 전성기 시절의 모습을 고스란히 그려 내고 있었다.
성 내부에 익숙한 얼굴들이 도열해 있는 게 보였다.
그를 따르던 마족들이었다.
흥미로운 건 그에게 불만을 품었던 반란의 씨앗들은 하나도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딱 그의 충신들만 남아서 성 곳곳에 배치되어 있었다.
지금도 저 너머, 현실의 마계에서 수시로 북마계의 상황을 전해 주고 있는 충신들이기도 했다.
그들 얼굴을 하나하나 둘러보며 걸어가는 사이, 어느새 거대한 대전이 코앞에 다다랐고, 그는 주저 없이 안으로 걸음을 내디뎠다.
저 대전의 끝, 그와 똑 닮은 얼굴이 하나 보였다.
마계 대공 사일론!
그의 복제품이라고 해야 할까?
“드디어 왔군.”
나직하지만 대전을 흔드는 강렬한 음성에, 사일론은 저도 모르게 실소를 흘려 버렸다.
그가 외부 사신에게 자주 사용하던 압박 방식이기 때문이었다.
사일론도 같은 방식으로 응수했다.
“오래 기다리게 했군.”
그러며 성큼성큼 대전을 가로지르고, 어느새 끝까지 이르렀다.
두 사일론이 올려다보고 내려다본다.
씨익!
꼭 닮은 미소가 번지고,
콰르르릉!
약속이나 한 듯, 격돌이 시작됐다.
그리고,
[마계 대륙이 개방됩니다!]
PP의 신규 콘텐츠가 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