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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크루이트!

#14. 크루이트!

크루이트 바이엘 디스카이사!

저 마계의 하늘이라 불리는 존재, 대마왕을 칭하는 풀 네임이었다.

크루이트는 이름이요 바이엘은 그의 세계, 마계를 칭하는 명칭이며, 디스카이사는 그들 세계의 신이라 불리는 마신의 신격을 칭했다.

약육강식의 강자존이 살아 숨 쉬는 전쟁터!

그 악몽의 지배자가 지구로 넘어왔다.

크루이트는 얼추 3미터는 될 법한 거구였는데, 사실 이마저도 본체의 크기는 아니었는데, 원래는 5미터 남짓의 크기를 지니고 있었다.

이는 세계를 건너온 여파로서, 일정 부분 제한이 걸린 거였다.

한차례 제 몸을 살피던 그는 얼음 마녀의 체형에 맞춰 주듯, 덩치를 좀 더 줄여 2미터 사이즈로 시야를 낮추더니, 그녀에게 이야기했다.

“여전히 멋진 성이구나.”

먼저 데이지의 얼음성을 둘러보며 칭찬을 내려 줬다.

그의 칭찬에 얼음장 같던 데이지의 얼굴이 시뻘겋게 달아올랐다. 동시에 아랫배가 뜨거워지는 것도 느껴야만 했다.

“감사합니다.”

얼굴 가득 감격에 찬 표정을 드러내는데, 이를 본 크루이트가 웃으며 그녀를 들어 올렸다. 그녀가 원하는 걸 알기에 아낌없이 퍼부어 줬다.

한차례 뜨거운 입맞춤이 이어졌다.

그것은 감정적인 소통만을 내포한 게 아닌, 계약자와 이뤄지는 영혼의 교류이기도 했다.

오고 가는 뜨거운 입김 사이로 진득한 마기가 얽혀 들며, 그녀의 정신을 고차원의 영역에 들었다 놓길 반복했다.

“하으으응….”

데이지는 황홀경에 빠져 버린 와중에도 힘겹게 자세를 잡으며, 애써 무너지는 걸 버텨 냈다.

표정은 이미 무너져 있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신형까지 무너질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이를 기특하다는 얼굴로 바라보며 머리를 쓰다듬어 준 크루이트는, 얼음성 너머로 시야를 보내더니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호오… 푸른 하늘인가.”

마계의 삭막한 풍경만 봐 왔던 터라, 간만에 보는 푸른 하늘과 맑은 대기가 신선하게 다가왔다.

‘상당히 오랜만이군.’

지난 차원 침공 당시에는 그들 마계와 비슷한 환경이었던 걸 생각해 본다면, 여러모로 반가운 감이 있었다.

대기에 탁기가 섞여 있어서 기억하고 있는 여러 세계 중, 최고라 할 만한 수준은 아니지만, 그래도 인간계다운 푸르름이 만족스러웠다.

특히, 데이지가 잘 작업해 놓은 마수 지대의 마기 농도 역시 딱 적당해서, 주변 풍광을 돌아보며 즐기는데 거슬림이 전혀 없었다.

무엇보다 마음에 드는 건?

‘짜릿짜릿하군.’

데이지의 작업장 너머로 슬며시 다가드는 세계의 벽이었다. 마계 지존의 등장에 맞춰서 그를 억제하려는 듯, 이곳 세상의 방벽이 그를 중심으로 커다란 바리케이드를 세우고 있었다.

차원을 건네며 제약이 걸린 몸뚱이 위로, 새로운 압력이 준비되고 있는 것이다. 저 그물이 온몸을 휘감으면 어떤 기분일지, 상상만으로도 오금이 저려 왔다.

이곳 얼음성을 벗어나는 순간, 기다렸다는 듯 덮쳐들 게 분명했다.

분명히 그의 존재의 격을 억압하며 힘을 강제하는 등, 여러모로 불편하고 해로운 족쇄였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이 거대한 굴레가 만족스러웠다.

‘역시!’

마계에서 차원 너머로만 엿보던 방벽의 실체를 확인할 수 있다는 점에서, 절로 입꼬리가 올라갈 수밖에 없었다.

그 무엇보다 만족스러운 건?

‘여기서 나는 자유를 얻는다!’

그를 옭아매고 있던 ‘운명’의 그림자가 옅어졌다는 점이었다. 이 강대한 세계의 방벽이 그의 ‘뿌리’와의 연결 고리를 흔들어 놓고 있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그는 운명의 굴레에 갇힌 상황이었고, 그 때문에 이곳 세상의 영웅들에게 기대감이 컸다.

특히, 그중에서도 생각나는 얼굴이 하나 있었다.

‘사일론!’

뭐가 어찌 되었건 간에, 그의 핏줄이지 않던가.

‘흐… 이번에도 날 놀라게 할 수 있으려나?’

기대치도 않았던 ‘인간의 아이’가 무려 마계의 정상급에 올라왔고, 기나긴 세월 군림하며 북마계를 평정했다.

그 때문일까?

묘한 기대감이 생기는 건 어쩔 수가 없었다.

‘슬슬 알아챘으려나.’

마왕의 등장으로 인해, 이곳 세계는 빠른 속도로 오염돼 가기 시작할 것이다.

마기!

그에게서 뿜어져 나온 숨결이 세계 방방곡곡으로 뻗어 나가고 있기 때문이었다.

‘이번엔 또 얼마나 즐겁게 해 주려나.’

부푸는 기대감에 몸이 달아올랐음일까?

와락!

그는 주저 없이 데이지를 품에 안았다.

뒤이어 뜨거운 숨결이 교차했다.

* * *

존슨은 전율하며 하늘을 올려다봤다.

따로 용안을 지닌 건 아니다 보니, 마루처럼 시야로 볼 수 있는 건 아니었지만, 벽을 넘은 격과 남다른 감각으로 인해, 이 기묘한 흐름을 느낄 수는 있었다.

잠시간 그 섬뜩한 감각에 집중하길 한참,

“왜 그래?”

갑작스러운 그의 침묵과 표정 변화 때문인지, 이반나가 걱정스럽게 물어 왔다.

이에 마른침을 꼴깍거린 존슨이 입을 열었다.

“…마기가… 사방으로 퍼져 나가고 있어.”

그 말에 의아해서 이반나 역시 하늘로 시선을 올리고, 감각을 한껏 오픈해 봤지만, 크게 특별한 게 느껴지진 않았다.

이를 통해서 아직 그녀가 인지할 수준은 아니라는 걸 알았지만, 오래지 않아 그녀를 비롯한 여러 랭커들도 마기를 눈치챌 거라 여겼다.

조금씩이지만 마기가 내비치는 존재감이 선명해지고 있기 때문이었다.

던전이나 마수 지대에만 갇혀 있어야 할 마기가 갑자기 일상을 침범한 이유가 무엇일까?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아는 만큼 보인다고 해야 할까?

저 마기 너머로 전해지는 이 섬뜩한 존재감이란, 과거 사일론을 처음 만났을 때마저 아득히 뛰어넘을 만큼, 아찔한 경험을 선사하고 있었다.

‘설마….’

한층 심각해지는 존슨의 표정에 이반나가 재차 물었다.

“왜 그래? 또 뭐야?”

존슨은 차마 말문을 열 수가 없었다.

너무 무거운 내용이었고, 그만큼 두려운 단어만이 연상됐기 때문이었다.

‘…대환란?’

벌써 시작된 것일까?

입 안이 바싹 탔다.

* * *

레아는 이해할 수 없다는 얼굴로 하늘을 올려다봤다.

“아직 시간이 남았을 텐데….”

성녀의 반응에 마루가 물었다.

“대환란입니까?”

“…아무래도 그런 것 같아요.”

특별한 신안을 가진 그녀를 비롯하여 용안을 지닌 마루 그리고 벽을 넘은 존슨까지, 아직까진 이들처럼 특별한 존재들이나 느낄 수 있는 수준이었지만, 분명 세계에는 마기가 퍼져 가고 있었다.

던전과 마수지대, 이는 세계의 최종 방어선과 같은 것으로서, 마기가 이곳에서 밖으로 빠져나오는 건, 오로지 몬스터 웨이브뿐이었다.

대격변의 경우엔 웨이브와 달리, 저 너머 마계에서 다이렉트로 연결되는 통로가 아니던가.

간혹 방벽에 균열이 생길 때면 발생하는 현상이었다.

그리고 이 같은 균열들이 연달아 생성되고, 연결되며 자꾸만 방벽을 크게 갈라놓는 과정을 거쳐, 종래에는 완전한 통로가 만들어지는데, 그게 바로 곧 다가올 마계 대침공이며 진정한 의미에서의 대환란이었다.

이를 빠르게 캐치할 수 있던 건, 그녀에게 부여된 특수 보상인 ‘성녀의 꿈’을 통해서 저 너머의 세상, 마계를 잠시 살폈었고 먼발치서나마 대마왕의 격을 느낀 적이 있기 때문이었다.

세계에 은은히 퍼지고 있는 마기, 거기서 느껴지는 존재감은 분명 대마왕 크루이트가 분명했다.

그 때문에 의아한 면도 컸다.

“이런 식이 아닐 텐데….”

연달아 이어지는 그녀의 의문에 마루가 재차 물으니, 그녀는 ‘성녀의 꿈’에 대해 이야기해 줬다.

“제가 온전히 각성하고 난 뒤, 꿈을 통해서 많은 가르침을 얻었어요.”

그 과정에서 PP의 도움이 있었음은 두말할 필요가 없었다. 마루와는 조금 다른 방식으로, 그녀 역시 PP를 통해 성장을 했는데, 그곳에 존재하는 다양한 신전들이 그녀의 성장 경험치가 되어 줬다.

그렇게 일정 수준에 이르면, 마치 레벨업을 할 때처럼 조금씩 탈피를 거듭했고, 그때마다 보상처럼 다양한 세계의 꿈을 꿨다는 것이다.

그녀에게 퀘스트를 내려 줬던 각 신전의 신들이 주는 선물이라고 했다.

마루도 이젠 PP의 신전이 가짜가 아닌, 다른 어딘가의 차원에 존재하는 신성의 흔적임을 알기에, 고개를 끄덕이며 이야기에 경청했다.

“그분들을 따르는 여러 성녀와 신녀들을 보여 주는 거죠.”

이는 일종의 회유책이기도 했다. 자신의 신전에는 이런 혜택이 있으니, 언제든 넘어와도 된다면서 보상이란 명목의 명함을 주고 가는 것이다.

하지만 이를 통해서 다른 성녀와 신녀들의 삶을 엿볼 수 있었고, 성녀로서의 성장에도 큰 도움을 얻었다.

그러면서 엿보듯이 그들 세계의 흔적도 일부 살필 수 있었는데, 거기서 등장한 게 바로 마계 침공의 대환란이었다.

“제가 봤던 건, 이렇게 은밀한 게 아니라 좀 더 거창했어요.”

신안과 용안에만 비치는 어둠이 아닌, 선명히 모든 이들이 확인할 수 있는 어둠이 하늘에 깔렸으며, 피부로 느낄 수 있는 강렬한 마기와 파동이 마치 세계를 찢을 듯이 가르며 지나갔다.

그 등장과 동시에 작정하고 존재감을 드러내는 것, 그게 바로 대환란이란 침공의 나팔이었다.

여러 다양한 신들의 보상을 받았고, 개중에는 크루이트가 아닌 다른 세계의 마왕들이 출현하는 경우도 제법 있었지만, 그 등장 신 하나만큼은 마치 약속이나 한 것처럼 공통됐다.

하지만 이건 뭔가?

“분명… 대환란이 맞는 것 같은데….”

이 미지근한 온도는 어찌 설명해야 할까?

당혹감을 드러내는 성녀의 모습에 마루 역시 당혹스러운 표정으로 하늘을 올려다봤다.

‘이거, 중국으로 갈 걸 그랬나?’

급변하는 상황으로 인해 그런 생각이 잠시 들었지만, 이내 고개를 저어야만 했다.

‘어차피 시간 낭비만 했을 테니.’

그 시간이 다른 부분에 좀 더 신경 쓰는 게 낫다는 결론 아래, 지금의 선택이 옳다는 걸 재차 확신하며, 성녀를 향해 물었다.

“준비는 다 됐나요?”

“예. 바로 움직이시면 됩니다.”

그는 현재 교황청의 의뢰로 인해, 트랩퍼로서 바티칸을 들른 상황이었다.

대환란이 시작되었기 때문일까?

마루는 성녀의 안내를 따라 바삐 움직였다.

* * *

오랜 세월 겪어 왔던 격이었다.

그 때문일까?

‘넘어왔구나!’

사일론은 대마왕 크루이트의 등장을 바로 알아챘다. 한때는 북마계의 지배자였던 만큼, 이를 모를 수가 없었다.

의아한 일이었다.

‘이런 식으로 넘어온다고?’

긴 세월 마왕군의 선봉장으로서 여러 차원을 침공한 경험이 있었고, 그 때문에 마왕군의 화려한 등장 신을 잘 알았다.

지금처럼 은밀한 경우는 결단코, 단 한 번도 없었다.

‘뭐지?’

생각이 많아질 수밖에 없었는데, 그나마 그럴싸한 이유라면?

‘…방벽 때문인가?’

이곳 지구는 기존에 경험해 보지 못한, 단단한 가드 시스템이 차원 외벽을 강하게 두르고 있었다.

그 때문에 여태껏 벽에 균열을 내고 구멍을 뚫는 등, 작업 시간으로만 수십 년이 흐른 것이 아니던가.

기존의 침공 과정을 생각한다면, 너무도 지지부진한 터라, 은연중에 마계 마족들의 불만이 상당한 편이었다.

당연하게도 마계의 하늘인 마왕에게 감정을 터트리는 놈들은 없었지만, 내부적으로는 상당한 다툼과 격전이 발생하고 있었다.

바로 너머에 만찬이 마련되어 있건만, 구경만 해야 하는 상황이다 보니, 욕구가 쌓이고 쌓이다가 결국 서로를 향해 터져 버린 것이다.

‘억지로라고 길을 열어서 환기를 시킬 속셈일까?’

하지만 대마왕 크루이트는 그렇게 주변을 신경 쓰는 타입이 아니었다. 그 때문에 그나마 내어놓은 가설도 만족스럽지 못했다.

“하아….”

속만 답답한 가운데, 그는 새삼 대마왕 크루이트의 얼굴을 떠올렸다.

그러며 저도 모르게 거울로 시선을 보냈다.

“후우우우….”

근래 들어선 자꾸 한숨만 느는 것 같았다.

* * *

대마왕 크루이트의 등장과 함께, 지구의 대기가 요동쳤다.

이는 너무나 당연하게도 던전과 마굴에도 영향을 미쳤고, 더 나아가선 웨이브와 대격변까지 변화를 일으켰다.

그 때문일까?

[자금성 함락!]

[중국 무림맹의 절망]

[무인들의 절규]

[베이징 봉쇄?]

중국 무림은 생각지도 못한 환란을 겪어야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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