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 폭탄 발언!
#15. 폭탄 발언!
대대적으로 중국 무림과 문파 그리고 무인들의 힘을 보여 줄 생각으로, 세계 각국의 여러 다양한 언론사들을 불러들였다.
그 때문일까?
―망신도 이런 망신이 없군,
―저딴 놈들이 우리 중화의 희망? 자랑? 웃기지도 않네.
―무인이 아니라 건달이겠지.
―개 쪽을 파는군.
대격변을 막지 못한 채, 자금성을 몬스터들에 내어 주면서 세계적인 웃음거리가 돼 버렸고, 자국 내에서는 분노 섞인 질타의 목소리가 끊임없이 쏟아지고 있었다.
물론, 그들도 나름의 변명거리야 가득했다.
“대격변 게이트가 갑자기 발생하다니.”
“적어도 하루는 더 여유 있었을 텐데.”
“기습적으로 게이트가 오픈될 줄이야.”
준비가 완전하지 못한 상황에서 격전을 치렀다는 것이다.
그 무엇보다 주술사들의 배치에 신경을 쓰고 있었건만, 그들의 안전장치가 완벽히 갖춰지기 전에 몬스터가 쏟아져 버렸다.
제대로 된 대응을 하기도 전에, 주술사 전력의 절반가량이 쓸려 나가면서, 판이 크게 어그러져 버린 게 결정적이었다.
이후로는 막기에 급급했는데, 골치 아픈 건 대격변 발생 이후에도 이어졌다.
“기존 예측 범위를 벗어나는 규모였소.”
“측정기에 이상이 있는 것 아니요?”
“대체 얼마나 엉망으로 만들었으면, 규모가 두 배 차이가 난단 말입니까?”
“저 정도면 주술사들이 멀쩡했어도 막아 낼 수 있었을지. 확신할 수가 없을 정도요.”
하나부터 열까지 예상을 벗어나는 일들이 가득했던 것이다.
물론, 이런 상황이나 변명거리가 통할 리는 없었다.
―예정일을 벗어났다고 해도 겨우 하루다.
―얼마나 안일하게 대처했으면 하루 차이에 개판이 날 수 있누?
―주술사들은 뭣 때문에 그렇게 전진 배치를 했는데?
―그따위로 할 거면 외부 헌터들 진입 통제는 왜 했냐?
―빌어먹을 통제 때문에 동선이 개같이 꼬여서, 이따위 사태가 발생한 거 아니야.
그 와중에 급부상하는 존재가 있었다.
―트랩퍼 부르자고 했잖아!
―뭐야? 안 불렀어?
―듣기론 주술사로 쇼한다고 커트했다네. 그래서 혜성 길드에선 특수 2, 3팀이 움직였잖아.
―무림맹(武林盟)이 아니라 무림맹(無林盲)이네!
―맹자가 사실은 맹할 맹 자임.
자연히 마루의 인지도가 또 한차례 급상승했다. 더 오를 곳이 있나 싶겠지만, 주변국에서는 의외로 그를 깎아 내고 깔아뭉개는 이들이 많았던 터라, 이번 사태로 뜻밖의 반전 효과가 발생하게 된 것이다.
각종 비난이 쏟아지는 가운데, 무림맹과 사흑련은 결국 그들만으로 상황을 해결할 수 없다는 걸 인정해야만 했다.
솔직히 더 고집을 부리고 싶었지만, 정부 측에서 먼저 다른 방향에 손을 내밀어 버린 터라, 반쯤은 떠밀리듯이 스리슬쩍 발을 담근 것이다.
물론, 그들 나름대로 반발은 했다.
“우리가 충분히 해결할 수 있소!”
“뭐가 그리 급해서 손을 내민단 말이오!”
그렇게 목소리를 높였지만 상황이 좋지 않았다.
“이대로라면 베이징 전역이 마수지대가 될 판국입니다. 급한 게 당연하지 않습니까. 당장 도움을 요청해서 상황을 정리해야 합니다.”
냉정하게 판단해 봤을 때, 틀린 이야기가 아니었음에, 결국 목소리를 죽일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해외 최대 세력이 움직였다.
WHA와 위저드!
그들이 본격적으로 움직이며 중국으로 향했다.
“마루 님께는 여전히 요청이 안 들어오네요.”
성녀 레아의 물음에 마루가 쓰게 웃어 버렸다.
저 급박한 상황 속에서도 지킬 자존심이 남아 있다는 것인지, 무림맹과 사흑련은 끝까지 혜성에 별도 의뢰를 넣지 않았다.
[결계 따위는 무림의 술사로도 충분하다!]
대단한 법력과 도력을 지닌 이들이 즐비하다느니 어쩌느니 하며, 트랩퍼가 언급되는 걸 사전에 차단하려 들었다.
이게 또 재미있는 부분이었데, 왜 그런가 하니, WHA의 대표는 바로 결계술의 대가라 불리는 크라운이기 때문이었다.
마루가 등장하기 전까지는 결계술의 최고봉은 크라운이 아니었던가.
그런 그를 요청하면서 마루는 기어이 제외한 것이다.
물론, 대외적으로는 WHA를 부른 것이지만, 굳이 크라운을 등판시켰다는 부분에서, 결계 부분의 지원이 필요함을 모를 수가 없었다.
여기서 포인트는 크라운의 반응이었다.
[#무림#결계#버블#WHA]
SNS를 통해서 본인을 드러내는 한편, 중국에서 요청한 게 마루가 아닌 자신이라는 걸 은연중에 알리고 있던 것이다.
그 역시 마루를 의식하고 있다는 증거였다.
여러모로 헛웃음만 나올 뿐이었다.
* * *
비모를 비롯한 도플갱어 일족은 마치 약속이나 한 것처럼, 며칠 전부터 한껏 움츠러든 모습을 보여 주고 있었다.
‘설마, 벌써 넘어오실 줄이야.’
대마왕 크루이트의 등장을 알았기 때문이었다.
인간의 육신으로 갈아타 버리면서, 그 감각에 묘한 괴리감이 있어서인지, 처음에는 약간 긴가민가하긴 했지만, 오래지 않아 마계의 하늘이 넘어왔음을 확신했다.
이는 하르칸도 몰랐던 내용인 듯, 저 너머 마계로 연락을 취하니 그 역시 기겁하는 반응을 보여 줬다.
―대마왕님께서 인간계에 계시다고?
“혹시 따로 언질이 없으셨습니까?”
―그래. 갑자기 이 무슨 일인지….
너무나 뜬금없는 돌발 행동이었던 듯, 하르칸은 쉬이 말을 잇지 못했다.
일단 할 수 있는 말은 하나뿐이었다.
―불편함이 없도록 잘 모시고 있거라.
“…괜찮겠습니까?”
그들이 나서는 순간 금술이 언급될 수밖에 없을 터였다. 워낙 정신이 없었던 것인지, 하르칸도 뒤늦게 생각이 났지만, 굳이 말을 바꾸지는 않았다.
―언젠가는 부딪쳐야 할 일이다. 차라리 지금 나서서 그분을 보좌하면서, 최대한 점수를 따 놓도록 해야 한다.
“맡겨 주십시오!”
그렇게 통신은 끝을 맺었고, 비모는 급히 인간계로 넘어온 일족들을 소환했다.
오래전부터 예정된 출발지가 있는 만큼, 대마왕이 어디로 넘어왔는지는 굳이 찾으려 할 필요가 없었다.
그는 수하들에게 지시를 내려놓은 뒤, 따로 정예만 추려서 이동을 시작했다.
“북극으로 간다!”
목적지는 마녀의 얼음성이었다.
* * *
마계는 난리가 났다.
“대마왕님께서 인간계로 넘어가셨다!”
“이 무슨… 대마왕성에 연락을 취해서 확인해 봐!”
“갑자기 이게 무슨 일이야?”
대마왕 크루이트의 돌발 행동 때문이었는데, 하르칸은 이 같은 주변 반응을 보며 표정을 잔뜩 구겨야만 했다.
‘이럴 리가 없는데?’
각 마계 대륙의 정점들 중에서, 그만이 유일하게 크루이트와 영혼 결속의 계약을 맺었다.
당연히 크루이트의 공백은 그가 가장 먼저 알아채야 하건만, 다른 마계의 주인들이 오히려 한발 빠른 것이 아닌가.
만약 인간계의 비모가 전해 주지 않았더라면?
‘여전히 모르고 있었을지도….’
뒷북 한번 크게 쳤을 터였다.
다행스럽게도 비모의 연락 덕분에 다른 마왕들과 박자를 맞출 수 있었다.
각 마왕성의 반응으로 인해, 자연스레 마계 전역으로 관련한 이야기가 퍼져 나가기 시작하면서, 마계가 들끓기 시작했다.
“대마왕님께서 인간계로 넘어가셨다네.”
“드디어 침공 개시인가?”
“인간 용사들하고 화끈하게 한판 어울릴 수 있겠네.”
“흐흐! 인간 놈들의 야들야들한 살 맛은 잊을 수가 없지. 그 맛을 못 잊어서 내가 오백 년을 안 뒈지고 살아 있는 거야.”
기대감이 상승하는 가운데, 각 대륙의 주인들은 크루이트가 넘어갔음을 확인했고, 다급히 뒤를 따르기 위한 준비에 들어갔다.
* * *
얼음성의 정상!
대마왕 크루이트는 마계에서처럼 하늘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이곳 세상의 흐름을 엿보고 있는 것인데, 그러다가 성 한편에 열려 있는 게이트를 보며 옅은 미소를 띠었다.
강제로 열어 버린 터라, 게이트는 엉망이 되어 있었다.
저 너머에 있을 마계의 상황이 머릿속으로 그려진 터라, 더더욱 재미있기만 했다.
“큭….”
가벼운 실소일 뿐이지만, 먼발치서 이를 보고 있던 데이지는 심장이 펄떡이는 걸 느꼈다.
마계에서는 저 작은 미소마저도 보기가 어려웠건만, 이곳으로 넘어온 뒤 저처럼 표정이 부드러워졌으니, 얼음마녀의 심장에 봄바람이 잔뜩 들이칠 수밖에 없었다.
이를 아는지 모르는지, 크루이트는 게이트 너머의 마계에서, 현재 가장 억울해하고 있을 존재를 떠올렸다.
‘하르칸… 어떤 표정일지 궁금하군. 큭큭큭….’
저 드넓은 마계에서 그와 영혼의 계약을 맺은 존재는 몇 안 된다. 기나긴 역사 속에서도 손에 꼽을 정보였다.
그만큼 하르칸은 특별하다고 볼 수 있었다.
바로 그 부분이 포인트였다.
‘특별한 만큼 훌륭한 미끼지!’
저 마계에서 발생하는 모든 일들은 그의 ‘뿌리’에 닿을 수밖에 없었다.
나름대로 이런저런 방벽을 친다고는 해도 결국에는 발각되는데, 이는 그곳이 그의 세상이 아니기 때문이었다.
마신!
그에게 마계의 하늘이라 하지만, 사실은 구름 정도밖에 되지 않았다. 진정한 하늘은 따로 있는 것이다.
굳이 표현하자면 태양과 달의 차이랄까?
날아든 빛을 받아 반사하고 있을 뿐이건만, 마족들은 그를 하늘로 착각하며 경배한다고 봐야 했다.
영혼의 계약도 한 다리 건너서 관찰당하는 터라, 완벽히 안전할 수가 없었다.
그 때문에 하르칸을 엮어서 큼지막한 미끼로 던져 준 것이다.
언젠가부터 속내를 드러내지 않는 그로 인해, 하늘 너머에서 그를 관찰하는 기색이 역력해진 까닭이었다.
마계에서 그가 유독 자주 하늘을 살피던 것도 그런 이유였다. 날아드는 시선을 정면으로 마주하며, 나는 당당하다 어필하는 것이기도 했다.
물론, 반신반의하고 있을 터, 그 때문에 주변에 눈길이 늘어나는 것인데, 하르칸과의 계약은 관찰 대상으로 아주 훌륭한 소재였을 터였다.
‘금술까지 부려 가며, 헛짓거리를 해 줘서 딱이었지.’
덕분에 점차적으로 그에게 향한 시선이 하르칸으로 옮겨 가는 가운데, 최근 마계의 하늘이 그로부터 완전히 한눈을 파는 순간이 있었다.
그 타이밍에 맞춰서 게이트를 찢고 인간계로 넘어온 것이다.
아직 뿌리가 연결되어 있다지만, 지구의 방벽 덕분에 자유도가 많이 높아진 상황이었다.
게이트가 망가진 것도 한몫했다.
짐작하건대 저 너머 세상에선 그가 사라진 걸로 인해 난리가 났을 것이다.
그의 부재로 인해 마계의 질서는 더욱 어지러워질 터, 여러 일족은 드디어 시작이라며 날뛰기 시작할 테고, 결국 각지의 마왕 및 여러 일족의 수장들은 무리해 가며 진군을 외칠 수밖에 없을 터였다.
‘아주 좋은 흐름이야.’
하나부터 열까지 죄다 계획대로 흐르는 것 같아, 만족감이 가슴을 가득 채워 넣었다.
그 언젠가 만난 적 있던 ‘이름 없는 신’의 조언을 떠올리며 나직이 중얼거렸다.
“왕위 계승이 안 되면? 새 나라를 열어야지!”
지구의 푸르른 하늘이 마치 그의 미래처럼, 눈부시게 밝게만 느껴졌다.
* * *
세계 각국의 랭커들은 어느 순간부터인가, 묘하게 불쾌한 기운이 신경을 건드리는 느낌을 받았다.
그게 뭘까?
오래지 않아 깨달았다.
‘마기?’
그리고 이즈음 기다렸다는 듯, 존슨이 폭탄 발언을 해 버렸다.
[대환란이 시작됐다!]
더욱 놀라운 건, 그게 SNS를 통해 발표됐다는 점이었다. 당연히 관련해서 말이 많을 수밖에 없었다.
―갑자기 웬 헛소리야?
―존슨인데?
―제로 원인데?
―그래도 대환란은 입에 담으면 안 되지.
―손가락인데?
―타자질인데?
―이 미친 자들아, 적당히 해!
대환란이라 하기에는 세상의 변화가 그리 큰 건 아니었다. 물론, 최근 들어서 도심 대격변에 던전과 마굴의 기현상까지, 상황이 최악으로 치닫고 있는 건 사실이지만, 환란이라 여길 수준까진 아니라고 여겼다.
그리고 이는 각국 수뇌부도 마찬가지였다.
“존슨 그자가 드디어 미친 겁니다.”
“대환란이라니. 허어… 곧 환갑을 바라본다던데.”
“우리도 대비를 하고 있긴 하지만, 아직 환란이 온 건 아니지요.”
“이번 발언은 너무 경솔했어.”
하지만 오래지 않아 그들 음성이 낮아지는 상황이 발생했다.
각국 랭커들!
그들이 침묵을 지키고 있던 것이다.
동참하며 목소리를 높여 줄 거라 여겼건만, 너무도 조용히 입을 다물고 있으니, 수뇌진의 불안감이 커져 버릴 수밖에 없었다.
존슨의 노림수였다.
함께하는 이반나의 감각이 대기를 읽어내는 걸 보며, 시기적절한 타이밍에 폭탄 발언을 한 것이다.
“제 잘난 맛에 사는 랭커들이지만. 그놈들도 각자 환란의 시대를 거쳐 왔으니까.”
그런 만큼 ‘대환란’ 앞에서는 침묵을 지키리라.
그렇게 예상했고, 상황은 딱 맞아떨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