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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그인 더 헌터-315화 (315/325)

#16. 조우.

#16. 조우.

대마왕 크루이트는 마계에서 그러하듯, 이곳 지구에서도 하늘을 보며 하루를 보내는 게 일상이 되어 있었다.

평소 침공을 할 때면, 통로가 열리기 무섭게 저돌적으로 몰아치면서, 인간계를 이리저리 박살 내던 걸 생각해 볼 때, 지금의 이 모습은 실로 기이한 면이 있었다.

하지만 데이지는 그 때문에 너무나 행복했다.

전과 같았더라면, 지금쯤이면 크루이트를 볼 시간도 없이 치열한 전장에서 피와 시체를 보느라 바빴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지금이 이 평온한 시간이 놀랍고 또 감사했다.

크루이트와 함께 알콩달콩 보낼 수 있을 줄이야. 그녀로서는 그저 꿈만 꿔 왔던 환상적인 시간이었다.

‘오늘은 또 어떤 요리를 해 드릴까?’

몽롱하니 임의 뒷모습을 바라보던 데이지는 작게 콧노래를 부르며, 이번에 따로 만들어 둔 부엌으로 향했다.

그러다 저 한편에 반파된 성의 모습을 보며 양손으로 얼굴을 감쌌다.

시뻘겋게 달아오르는 건, 이곳에서의 첫 밤을 떠올리기 때문이리라.

숨 막히도록 뜨거운 열락의 밤이었다.

어찌나 열기가 넘쳤던지, 얼음성의 한편이 녹아내렸을 정도였다. 금세 복구시킬 수 있었지만, 왠지 저건 저대로 두고 싶었다.

‘후후후훗….’

부엌으로 향하는 발걸음이 날아갈 듯 가벼웠다.

크루이트는 그런 그녀의 뒷모습을 흘낏 쳐다보며 작게 실소를 했다.

‘그러고 보니 마녀도 인간족이었지.’

그 때문일까?

묘하게 겹치는 그림자가 하나 있었다.

‘헬레나….’

최근 사일론을 자주 생각하다 보니, 자연스레 그의 모친이 떠오르는 건 어쩔 수가 없었다.

실소와 함께 고개를 흔든 그가 다시금 하늘로 시선을 올려 보냈다.

이곳으로 넘어온 뒤, 세상의 방벽을 계속 살펴 왔고, 오늘 드디어 저 사이로 희미한 ‘틈’ 하나를 발견했다.

순간, 크루이트의 안광이 번쩍인다 싶은 순간, 그의 신형이 허공의 틈 사이, 어딘가로 빨려 들어갔다.

* * *

WHA와 위저드 그리고 무림맹이 힘을 모았다.

세간에는 알려지지 않았지만, 이면의 거대 연합체인 사흑련 역시 거드는 중이었다.

그 덕분일까?

[자금성 대격변 해결!]

[베이징을 지켜 낸 WHA!]

[크라운의 버블버블!]

마루는 실시간으로 올라오는 여러 다양한 기사들을 보며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예상했던 상황이기에 당연하다 싶었다.

‘저만한 단체가 힘을 모으고도 못 막는다면, 그땐 차라리 베이징을 버리는 게 맞지.’

그러면서 이번 사건의 영상들을 쭈욱 살폈다.

특히, 그가 주목하는 건 아무래도 현시대의 WHA를 대표하는 존재, 크라운이라고 할 수 있었다.

결계술로 비교가 되는 터라, 더더욱 관심이 가는 걸지도 몰랐다.

‘결계 스킬은 확실히 다르네.’

그처럼 이것저것 밑밥을 잔뜩 깔아 둘 필요도 없이, 그냥 바로바로 나오는 점이 좀 부럽다는 생각이 들긴 했다.

물론, 그 역시 PP를 통해서 신성 계열의 결계 스킬을 구했지만, 발동 조건이나 순수 위력에선 차이가 나는 건 어쩔 수가 없었다.

지닌바 재주들을 버무려서 이를 커버하고 있을 뿐이었다.

그 때문에 잠시 아쉬움도 느꼈는데, 그런 그의 마음을 읽기라도 한 것일까?

[스킬 ‘드래곤 레어’가 생성됩니다.]

뜻밖의 기적이 찾아왔다.

* * *

수많은 랭커들의 침묵은 각국 수뇌진의 당혹감과 불안감을 키웠고, 결국 그들을 움직이게 만들었다.

이전에도 가만히 있었던 건 아니지만, 각자 지니고 있던 카드들을 꺼내게 한 것인데, 그건 비밀 세력인 경우도 있었고, 요원일 때도 있었으며, 때론 알려지지 않은 신기술이기도 했다.

존슨이 바라던 구도가 만들어지고 있었다.

그즈음, 침묵하고 있던 랭커들의 말문이 트이더니, 본격적인 활동이 시작됐다.

이들 소식을 들은 존슨은 고개를 끄덕였다.

“간만에 바짝 긴장 좀 했을 거야.”

랭커들이 침묵했던 건, 각국 단체들과의 눈치 싸움을 하던 게 아니었다. 그들은 하늘에 짙게 깔려 가는 기운, 마기의 주인에 대한 생각으로 밤잠을 설친 것이다.

한번 인지하기 시작하니, 마기 사이사이 스며 있는 존재감이 그들을 압박하며, 숨죽이게 만들고 침묵하게 만들었으리라.

그렇게 호흡을 고르면서 압박감에 적응을 마쳤기 때문에, 뒤늦게나마 활동을 시작한 것이다.

* * *

대마왕 크루이트의 예상 그대로라고 해야 할까?

마계 각 대륙의 왕과 여러 일족의 수장들은 급히 원정 준비에 들어갔다.

전투 민족이라 불리는 마족들이었다.

그런 그들에게 한 줌 이성을 붙들어 주는 존재가 바로 마계의 하늘이라 불리는 대마왕 크루이트였다.

당연히 참아 왔던 욕망이 폭발할 수밖에 없었고, 각지에서 피 튀기는 격전이 발생하며, 침공을 앞둔 마계의 전력을 자체적으로 깎아 나갔다.

약육강식의 강자존으로 살아가는 세상이니만큼, 평소라면 이런 전투가 크게 문제 되지 않지만, 언급했듯이 지금은 침공을 앞둔 상황이었다.

통제가 필요한 것이다.

“쯧! 이번 침공은 대기 기간이 유독 길었지.”

“이거야 원, 한번 폭발하기 시작하니까. 아주 미쳐 날뛰는군.”

“통제가 안 되네. 통제가….”

각 대륙의 왕들은 골머리를 싸맸다.

자칫 저 광기가 반역의 촉매가 될 수 있음에, 어떻게든 원정을 밀어붙여야만 했다.

당연히 쉽진 않았다.

넘고 싶다고 지구로 갈 수 있으면, 지금껏 왜 수십 년 세월을 기다렸겠는가.

하지만 불가능한 건 아니었다.

“일단, 길은 열렸으니.”

“가능성은 생겼네.”

“후우… 해야 하나?”

애초에 크루이트가 넘어갈 수 있던 것도 통로가 만들어졌기 때문이지 않던가.

단지, 그 형태나 크기 등, 완성도가 부족해서 기다리고 있었을 뿐이었다.

지금은 크루이트가 강제로 통로를 넓힌 여파로 인해, 안전성이 더욱 떨어졌지만, 그래도 일단 길은 연결되어 있다는 게 중요했다.

그게 비록 외줄 타기 수준이라 할지라도, 밟을 자리는 있었다.

각 대륙의 왕들이 여러 일족의 수장을 소집한 뒤, 지닌바 재주와 모아 왔던 각종 재료들을 한껏 쏟아붓는다면?

“뭉쳐야 간다!”

“하… 빌어먹을! 창고가 텅텅 비겠네.”

“지구에서 본전은 칠 수 있으려나?”

통로를 안정화하는 건 일도 아니었다.

단지, 그 와중에 적잖은 손해를 볼 것을 알기 때문에, 그간 나서지 않았던 것이건만, 상황이 그들을 떠밀고 있었다.

“그래도 가야지!”

“대마왕님께서 기다리고 계신다!”

“가자! 지구로.”

마계의 정점들이 뭉치기 시작했다.

* * *

실버 박사는 전보다 바쁜 일상을 보내는 중이었다.

알파의 세상에서 하는 게 뭘까도 싶겠지만, 의외로 그는 수많은 일들을 하고 있었다.

예를 들자면, PP에서 발생하는 특수성 돌발 퀘스트 중 상당수는 그의 입김이 작용하는 것들이었다.

그뿐만이 아니라 지금도 꾸준히 여러 차원을 엿보며, PP 내에 새로운 이야깃거리를 채워 넣는데, 덕분에 PP의 도서관과 여러 다양한 시설들의 경우, 꾸준히 발전을 거듭하고 있었다.

이 외에도 여러 종류의 일들이 있지만, 최근 가장 중점적으로 관심을 기울이며 활동하는 건, 다가올 대환란에 맞춰 PP의 마계를 컨트롤하는 거였다.

유저들을 통해, 현실의 여러 헌터들에게 마계의 실상을 전하고, 그 위험도를 체감시키기 위해, 각종 장치들을 준비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마냥 몰아붙이며 위기를 강조하는 건 아니었다.

충분한 적응을 할 수 있도록, 순차적인 퀘스트 및 루트를 정해 주는 것인데, 이 모든 시나리오를 짜내는 것만으로도, 하루하루 머리가 터질 지경이었다.

그 때문일까?

반짝… 반짝… 반짝….

시야 한편의 깜빡이를 발견하는 게 늦어 버렸다.

“이건 또 뭐야?”

뒤늦게 상념에서 빠져나온 그가 깜빡이를 클릭하는데, 놀랍게도 이는 경고등이었고 뒤이어 알람까지 확인할 수 있었다.

‘여기서?’

알파 세상에서 그를 위협할 만한 게 있던가?

의문이 이어지는 와중에도 경보는 꾸준히 그의 귓전을 어지럽히고 있었다.

[침입자가 발생했습니다.]

[침입자가 발생했습니다.]

[침입자가 발생했습니다.]

한차례 마루를 떠올렸지만, 이내 그는 알파 세계의 일원이 되었음을 상기하며 고개를 저어야만 했다.

‘대체, 누가?’

의문이 이어지는 가운데, 돌연 닭살이 올라오는 걸 느꼈다.

‘어?’

순간적으로 호흡이 턱 하니 막혔다.

풀썩!

다리도 풀려 버렸다.

‘어라?’

이 이해할 수 없는 상황에 눈만 동그랗게 뜨고 있을 때였다.

“흠… 재밌는 곳이군.”

누군가 그의 거처로 다가왔다.

그저 음성만 들었을 뿐이건만, 어느새 식은땀이 차오르더니 눈 깜짝할 새 전신을 흥건히 적시고 있었다.

오래지 않아 그 얼굴이 드러나고, 실버 박사는 자신의 상황을 이해했다.

‘…맙소사!’

이곳에 있어선 안 될 존재가 등장한 것이다.

“…마… 마왕…?”

힘겹게 그 정체를 뱉어 내자, 수풀을 가르며 등장한 불청객, 크루이트가 재미있다는 듯 실버 박사에게 미소를 보이며 말했다.

“이건 또 흥미롭군. 분명히 인간인 것 같은데 정령체라니.”

단번에 자신의 상태를 알아보는 점에서, 실버 박사는 재차 확신했다.

‘정말, 마왕이었어!’

제대로 보는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저 너머 마계를 엿보는 것 자체가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다른 여러 차원을 통해서, 한 다리 건너건너 흔적을 엿볼 수는 있었고, 최근에는 사일론 덕분에 외형적인 부분도 제법 완성시키지 않았던가.

‘어째서 이자가 여기에…?’

마른침만 꼴깍거리고 있는데, 크루이트가 그를 이리저리 돌아보는가 싶더니, 옅은 실소와 함께 고개를 끄덕였다.

“매번 마계를 엿보려 들던 그 녀석이군.”

흠칫!

설마하니 그의 시선을 인지하고 있었던가?

자연히 밀려드는 두려움에 실버 박사의 몸이 부르르 떨리는 가운데, 크루이트가 박사의 정원 한편에 마련된 정자에 엉덩이를 걸치는 게 보였다.

마루를 위해 만들어 둔 한국식 쉼터였다.

“여긴 손님한테 차 한 잔도 안 내주나?”

그 순간 마치 거짓말처럼 실버 박사를 짓누르던 압박감이 사라졌다. 크루이트가 그 존재감과 격을 안쪽 깊숙이 갈무리한 것이다.

“푸하아아아아….”

그와 동시에 숨통이 트인 실버 박사가 거친 숨을 몰아쉬며, 두려움에 짓눌렸던 심장을 진정시켰다.

실버 박사는 가까스로 호흡을 가다듬은 뒤, 크루이트를 향해 시선을 보내다가 급히 거둬들였다.

그 존재의 격을 갈무리했을 것임에도, 좀 전의 경험이 아직 생생히 남아 있어, 심장이 들썩이려 한 까닭이었다.

“후우….”

나직한 한숨과 함께 거처로 들어간 그가 크루이트가 말한 대로 차를 꺼내 왔다.

그렇게 정자 한편에 자리가 마련됐다.

“호~! 마이트의 사타리안 차인가?”

잔을 든 크루이트가 놀랍다는 얼굴로 말했다.

“지구에서도 이 차가 나오는 건가?”

실버 박사가 고개를 저었다.

“마이트 차원의 사타리안 차가 맞소.”

그 말에 크루이트는 주변을 쭈욱 돌아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군. 환상계란 말이지.”

단번에 이곳 세상의 정체를 알아봤기에, 이 사타리안 차가 어떤 식으로 구현된 것인지 짐작해 낸 것이다.

“환상에 존재감을 부여하는 방식이라. 나쁘지 않군.”

그리 중얼거리며 사타리안 차를 들이켜는데, 거기서 또 한 차례 감탄을 했다.

“이 정도로 완벽하게 구현하다니. 지구의 신이 준비를 제대로 했군.”

알파를 비롯한 PP의 세상은 실버 박사가 설계했지만, 그 기반이 되는 서버는 결국 엔트라넷을 통한 것이었다.

크루이트는 이 훌륭한 완성도에 새삼 더 기대감이 커지는 걸 느꼈다.

‘이 정도라면….’

그의 독립을 위해 훌륭한 발판이 되어 줄 터였다.

입꼬리를 한껏 말아 올리고 있을 때였다.

“어라? 누굽니까?”

뜻밖의 방문객이 있었다.

실버 박사가 눈을 동그랗게 뜨며 새로운 등장인물을 바라봤다.

“마루… 자네 바쁘다고 하지 않았나?”

“시간이 나기도 했고, 스킬 확인도 필요해서, 잠깐 접속한 건데….”

어느새 정자로 다가온 마루가 실버 박사의 건너편에 앉은 사내를 바라봤다.

오싹!

분명히 존재의 격을 감추고 있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루는 상대를 읽어 버렸다.

반쯤 패시브가 되어 버린 용안의 효과였다.

그 때문일까?

화르르륵!

마루는 한껏 기세를 일으키고야 말았다.

분명 첫 대면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체를 알아 버렸다.

“마왕!”

그 외침에 크루이트가 활짝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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