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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시작!

#18. 시작!

게이트가 열린 순간, 세계가 이를 알아챘다.

―갑자기 하늘 어두워진 거 뭐냐?

―밤인 줄 알았는데, 시간 보니까 낮이네.

―여긴 밤인데도 어둡다.

―갑자기 별이 안 보임.

―달도 사라짐.

해와 달 그리고 별까지, 전부 자취를 감춰 버린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밤이 됐다는 건 아니었다.

마치, 장마철 먹구름이 잔뜩 낀 하늘을 바라보는 느낌이라고 해야 할까?

어둡지만 깜깜하진 않았다.

그 같은 기현상 속에, 헌터들은 마치 약속이나 한 듯 상황을 알아챘다.

‘동네만 그런 줄 알았더니, 세계가 난리라고?’

‘이 정도로 대규모 스케일이라면….’

‘…설마, 대환란인가?’

전율적인 마기가 하늘 위를 뒤덮고 있는 만큼, 최악의 상황을 가정하는 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무거운 긴장감이 업계를 감싸고 세계를 흔들었다.

그 결과, 각국 정상들의 만남이 이뤄졌다.

상황이 상황이다 보니, 화상 통화로 회의가 진행되는 가운데, 관련 내용들이 실시간으로 여러 단체의 수장들에게로 전달됐다.

“발등에 불이 떨어져야 움직이는군.”

이반나는 그리 말하며 고개를 저어 보였다.

저들 회의와 돌아가는 상황 등을 그녀와 존슨 역시 전달받고 있었는데, 내용의 핵심은 간단했다.

“대환란을 공식적으로 발표한다고? 이제야?”

헛웃음이 절로 나왔다.

“화재가 나기 전에 커버 좀 치면 안 되나?”

지금에 이르러선 의미 없는 요식 행위라는 생각밖에 안 들었다.

랭커 수준의 감각을 통해 상황을 인지하는 게 아니라, 두 눈으로 보며 확인할 수 있는 상황까지 이른 까닭이었다.

그녀를 진정시키고자, 존슨은 화제를 살짝 다른 방향으로 돌렸다.

“어째 뭔가 엄청나게 몰아칠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조용하네.”

그 말처럼, 대환란이 시작되면 던전과 마굴이 터지면서 몬스터들이 쏟아지며, 곳곳에서 격변이 발생할 거라 여겼었다.

하지만 생각보다 조용한 분위기가 유지되는 중이었다.

“그래서 더 걱정이야.”

이반나는 그리 말하며 하늘을 올려다봤다.

두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선명한 마기가 흑백 TV의 오로라처럼 하늘 가득 넘실대고 있었다.

“마치 폭풍전야 같잖아.”

그녀의 말에 동의하듯 존슨도 고개를 끄덕이며 하늘을 살폈다.

그러다가 문득 마루와의 통화가 떠올랐다.

‘마왕이라….’

뜻밖의 만남이었다는데, 그 격전을 전해 들은 결과가 소름 끼쳤다.

그 때문에 저도 모르게 묻고야 말았다.

“이길 수 있을까?”

음성에 담긴 불안감 때문일까?

이반나가 조용히 그를 안아 줬고, 그들 부부는 그렇게 따뜻한 온기를 나누며, 서로를 진정시켜 나갔다.

* * *

크루이트가 갑자기 인간계로 넘어온 건, 여러 이유가 있었다.

결정적인 건 아무래도 그의 뿌리, 마신의 감시망이 옅어진 타이밍을 노린 것이지만, 마냥 그 이유가 전부인 건 아니었다.

도플갱어 일족!

금술을 통해 넘어간 이들의 활약이 너무 뛰어났던 것이다.

‘벽에 균열이 너무 많아지는 건 안 되지.’

애초에 대환란을 위한 침공 게이트가 완성된 타이밍에서, 지구를 지키는 방벽에는 커다란 균열이 발생하는 게 당연했다.

하지만 그건 딱 통로를 위한 것이어야 했는데, 도플갱어 일족의 활약으로 인해서, 방벽 곳곳에 자잘한 균열들이 발생하는 걸 발견해 버렸다.

그 때문에 내심 초조한 마음도 있었다.

‘변수가 커져선 안 되지.’

잔균열의 발생은 피할 수 없는 거지만, 예상치를 웃도는 건 자제해야 했다.

그런 이유로 마신의 눈길이 잠시 돌아갔을 때, 기다렸다는 듯이 게이트를 강제로 찢어서 열어젖히며 넘어온 것이다.

당연히 이런 사실을 그대로 전할 수는 없었다.

그 때문에 더욱 뻔뻔히 나갔다.

“늦었구나.”

오히려 왜 이제야 왔냐는 듯, 질책의 음성을 담아 말을 건넨 것이다.

그의 이 같은 태도가 먹힌 것인지, 레미안을 비롯한 마계의 왕들의 머릿속으로 공통된 생각이 스쳐 갔다.

‘맙소사! 우릴 시험하신 거였구나.’

‘바로 뒤쫓아 온 게 정답이었어.’

‘좀 더 지체했으면 큰일 났겠네.’

유일하게 하르칸만이 다른 생각을 하고 있었다.

‘…왜 내게 비밀로 한 거지? 어째서?’

저들 생각처럼 굳이 그에게도 시험을 걸어야 했을까?

게다가 가장 늦게 알아채도록 한 이유는 뭐란 말인가.

각 군주는 기본적으로 크루이트와 연결되어 있건만, 굳이 그와의 연결만 통제해서 정보를 제한한 것이다.

영혼의 종속으로 인해 더욱 철저히 배제당했다.

상황 자체가 이해되지 않는 탓에, 말 한마디를 내뱉는 것도 쉽지가 않았다.

어지러운 심경이 고스란히 드러날까 싶었던 탓이다.

하나 그 같은 침묵이 오히려 그의 상태를 드러냈는데, 이는 크루이트가 그의 심경을 어느 정도는 짐작하고 있기 때문이기도 했다.

그리고 이를 위한 처방도 준비해 뒀다.

―금술을 썼더구나.

오직 하르칸의 뇌리에만 들리도록 메시지를 보냈다. 바닥을 향해 있던 그의 동공이 부릅떠졌다.

―내가 모를 거라고 생각했느냐?

하르칸의 몸이 부르르 떨렸다.

―결과로 말하려 했다는 변명은 의미 없다.

단호하게 못 박았다.

―금술은 금술이다!

약육강식의 강자존으로 돌아가는 세상이 마계다.

그리고 그곳의 최강자가 내건 금술이었다. 이를 건드렸다는 건 도전이었다. 과장하자면 반역의 죄를 지었다고 해도 될 정도였다.

―죄를 지었으면 벌을 받아야지?

크루이트의 물음에 하르칸의 어깨가 추욱 처졌다.

* * *

마기가 하늘에 깔리기 시작하던 초반, 마루는 일찌감치 팀과 제자들을 한국으로 돌려보냈었다.

사람들은 어둠이 깔린 지금을 대환란의 시작점이라 알고 있지만, 진짜 시작은 그때였음을 알았기 때문이었다.

이후 전개가 고속으로 진행될 거라 여겼지만, 뜻밖에도 지지부진한 상황에서, 마루는 홀로 이동을 거듭하며 세계 방방곡곡을 돌아다녔다.

그 와중에 유일하게 돌지 않은 장소가 있다면, 중국 정도였는데, 돌아가는 흐름으로 봤을 때 거기까진 팔을 뻗기가 어려울 듯싶었다.

그래도 주변국은 들렀다는 게 다행이랄까?

“나는 할 만큼 했어.”

마루는 그리 중얼거리며 시체처럼 너부러졌다.

실로 오랜만에 맛보는 침대였다.

그것도 무려 그의 집으로, 드디어 기나긴 해외여행을 마친 것이다.

유독 피로감이 큰 건, 긴장감이 풀린 이유도 있겠지만, 알파 세계의 후유증 탓도 컸다.

PP와 마찬가지로, 알파 세계에서의 죽음도 현실에 영향을 끼치는데, 크루이트에게 패한 여파가 진하게 남은 것이다.

패배의 날 제대로 휴식을 취하며 요양했더라면 모르겠지만, 이후로도 지친 몸을 이끌며 이리저리 뛰어다닌 게 문제였다.

그 때문에 집에 돌아오기가 무섭게 그대로 곯아떨어져 버렸다.

이후, 다시금 눈을 떴을 땐?

“일어났냐?”

존슨이 라면을 끓이고 있었다.

“…계란은?”

자연스레 이어지는 마루의 질문에 존슨이 고개를 저어 보였다.

“없어.”

그 말과 함께 존슨이 불을 끄며 젓가락을 들었다.

“내건?”

“없어!”

짜증 난 음성에 마루가 길게 기지개를 켜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는 자연스레 젓가락을 챙기며 식탁으로 향했다.

“네가 끓여 먹어!”

“한 젓가락만!”

투닥거리며 순식간에 냄비를 비우고, 밥까지 잔뜩 말아서 먹은 뒤, 배를 두드리며 각자의 방식으로 드러누운 가운데, 문득 존슨이 물었다.

“식후 소화전?”

“OK!”

그리고 둘은 뒷산으로 향했다.

잠시 후,

꽈르르릉….

때아닌 천둥성이 터져 나오며, 또다시 뒷산의 악명이 높아지는 효과를 만들어 냈다.

갑작스러운 격돌의 결과는 예상치를 벗어나지 않았다.

“후욱… 훅… 후우우욱… 이젠 제법 치는데.”

존슨이 거칠게 숨을 몰아쉬며 한편을 바라봤다. 그곳에는 거의 넝마가 되다시피 한 몰골로 마루가 너부러져 있었다.

마루 역시도 벽을 넘었다고는 하나, 그들 사이에는 여전히 격차가 존재했다.

하지만 과거처럼 일방적이진 않았다.

당장 호흡 정리에 애를 먹는 존슨의 모습만 봐도 알 수 있었다.

‘휘유… 이게 겨우 각성 2년 차라니.’

존슨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마루를 내려다봤다. 그의 성장에 감탄하는 것도 잠시, 표정을 살짝 굳히며 물었다.

“어떤 것 같냐?”

갑작스러운 소화 대전의 목적은 정말로 배를 꺼트리기 위함이 아니었다.

대마왕 크루이트!

저 마계의 절대자와 비교하기 위함이었다.

이에 너부러진 채 한참을 생각하는가 싶던 마루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허리를 세웠다.

“안 돼! 답 없어.”

결과는 처참했다.

“혼자 달려들 생각 같은 거 하지 마.”

뒷머리를 긁은 존슨이 재차 물었다.

“몇이나 필요하겠냐?”

랭커 전력이 얼마나 달려들어야 답이 나오는지 묻는 것인데, 거기서 또 절망적인 대답이 나와버렸다.

“눈높이 안 맞으면 피똥 싸.”

그들처럼 벽을 넘지 않았다면, 크루이트의 기세도 제대로 견뎌 내지 못하리라.

이는 결국 짐이 될 확률이 높았다.

존슨의 얼굴에 짙은 그늘이 내려앉을 수밖에 없었다. 이를 가만히 보던 마루가 반대로 물었다.

“마계 계보는 외웠지?”

“당연하지.”

사일론 덕분에 PP에는 마계의 스토리가 잔뜩 풀렸고, 이를 통해서 각국 단체는 마족들에 대한 정보를 열심히 수집하는 중이었다.

존슨 역시 이런 루트를 통해서 마계의 계보를 입수한 상태였다. 마루가 굳이 이를 언급한 이유를 모르지는 않았다.

‘마왕이 전부가 아니지.’

그럼에도 가장 신경이 쓰이는 건 어쩔 수 없었다.

결국 지금 이 모든 사태가 그 한 존재에 의해 발생하는 것이나 다름없기 때문이었다.

한데, 마루가 또 뜻밖의 이야기를 꺼내 들었다.

“내 생각에는… 마왕보단 그쪽이 더 문제일 수도 있어.”

마계의 여러 수장급 마족들을 언급하고 있었다.

“그건 또 무슨 소리야?”

뭐라고 설명해야 할까?

이에 관해서는 몇 날 며칠을 고민해 봤던 문제였지만, 선뜻 무어라 답을 내어놓기가 어려웠다.

막연히 감이라는 것 정도?

그걸로는 설득력이 없음에 한참 고민을 했지만, 결국 내뱉는 말은 하나였다.

“감?”

“떫은 소리 하지 말고, 정말로 이유가 뭔데?”

“…감?”

이쯤 되니 존슨도 더는 농담이 아님을 알았고, 이내 눈살을 찌푸리며 마루를 바라봐야만 했다.

그 때문에 마루는 알파 세계에서 발생했던 마왕과의 격전을 아주 상세히 설명해 줘야만 했다. 전화로도 알려 주긴 했지만, 그때는 크게 핵심만 나눠서 전한 것이지 않던가.

이번에는 세부 내용까지 아주 세세히 전했고, 그 끝에 존슨이 내린 결론은 하나였다.

“복날 개냐? 오지게도 맞았네.”

하나 마루가 기이한 이야기를 한 이유도 왠지 짐작이 갔다. 굵직한 맥락만 들었을 땐 몰랐는데, 전체 스토리를 듣고 나니 묘하게 걸리는 부분이 있었다.

“순살 치킨으로 만들 수 있었을 텐데, 굳이 뼈까지 발라 먹은 이유가 뭘까?”

“…비유를 해도 꼭.”

“운동했더니 치킨이 당기네. 치맥 콜?”

“콜!”

옆길로 샜던 것도 잠시, 다시금 본론으로 돌아와 이야기가 이어졌다.

“스킬마다 일일이 반응해 줬다고 했지?”

지나고 나서 생각해 보니, 마치 이런 공격은 이렇게 피하면 된다고 알려 주는 것 같달까?

이를 분석하다 보면 새로운 조합 및 루트가 짜여지기 마련이었다. 마치 신규 공략법 가이드라인을 손에 쥔 느낌이었다.

존슨이 물었다.

“이유가 뭘까?”

“그걸 내가 알면 이러고 있겠어?”

“한번 보면 나도 감이 올 것 같은데.”

“어딨는지는 알잖아?”

“얼굴 한번 본다는 거지, 묏자리 본다는 게 아니잖아.”

한숨을 푸욱 내쉰 존슨이 화제를 돌렸다.

“그나저나 그건 어떻게 됐어?”

“…중국만 빼고 싹 돌았지.”

“문제 있는 건 아니고?”

“주변으로 잘 채워 놨으니까 어떻게든 되겠지.”

그 말에 존슨은 잠시 마루를 묘한 얼굴로 바라보다 말했다.

“이런 걸 청출어람이라고 하던가?”

설마하니 그와 데일이 탄생시킨 마석 결계술을 완벽히 습득한 걸 넘어, 발전시켜서 그들을 훌쩍 뛰어넘어 버렸다.

마정 결계!

그리고 이를 통해서 세계 곳곳에 환란을 대비한 물밑 작업을 펼쳐 놨다.

너무 큰 스케일이기 때문일까?

“정말로 되는 거 맞냐?”

그리 물을 수밖에 없었고, 마루는 어깨를 으쓱이며 답했다.

“나도 모르지.”

“…….”

인상을 구기는 존슨의 모습에도 어쩔 수 없었다.

“난 기름만 넣었어. 운전대는 나도 몰라.”

어깨를 으쓱이는 모습에 결국 존슨도 한숨과 함께 표정을 풀어 버렸다.

“…그래. 믿자. 믿어야지!”

입맛을 다신 존슨이 적당히 자리를 정리하며 말했다.

“치킨이나 뜯으러 가자.”

이에 마루도 엉덩이를 털며 일어났고, 둘은 비척대며 뒷산을 내려왔다.

* * *

대격변과 대환란의 차이는 간단했다.

조연과 주연!

규모에 따라서는 엑스트라급일 수도 있지만, 어쨌든 대격변 게이트는 작은 균열을 이용해, 마물과 몇몇 마족 정도만 건널 수 있는 통로를 만드는 것이다.

하지만 대환란 게이트의 경우에는 본격 침공을 위해, 하나의 균열을 집중적으로 파고들며, 거대한 통로를 완성시키는 거였다.

그 통로는 오로지 마계의 본진, 마왕군의 정예만이 이용할 수 있는 레드카펫이었다.

이를 통해서 마계를 대표하는 일족의 정예들이 대거 넘어와야 하는데, 크루이트가 벌인 돌발 행동 때문일까?

값비싼 재료들을 통해 길을 뚫었다고는 하나, 여전히 게이트는 불안정한 상태였고, 그런 이유로 통로를 건너올 수 있는 인원도 제한될 수밖에 없었다.

동서남북의 군주를 비롯해, 각 일족의 수장급 정도?

그나마도 게이트의 안정성이 떨어져, 시간을 두고 순차적으로 넘어올 수밖에 없었다.

대환란이 시작됐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조용할 수밖에 없는 이유였다.

그 때문일까?

―정말 대환란인가?

―설마, 그냥 기상 현상 같은 건가?

―마기는 뭔데?

―뉴스거리 만들려고, 패 돌리는 거 아니야?

하나둘 의구심 짙은 눈빛으로 하늘을 올려다보는 사람들이 늘어 가는데, 바로 그즈음이었다.

세계의 긴장감이 풀어지려던 찰나!

마치 기다렸다는 듯, 환란이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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