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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그인 더 헌터-322화 (322/325)

#23. 세계.

#23. 세계.

마루는 알파 세계에서 크루이트와 싸우며 많은 생각을 할 수 있었는데, 거기서 가장 많은 고민을 했던 건 결정타를 위한 카드였다.

[용사 이용권]

대마왕과 직접 어우러져 보니, 저 비장의 카드가 생각보다 효율이 좋지 않다는 걸 알게 된 것이다.

마루 본인이 지닌 다양한 축복부터 시작해서, 여의주에 깃든 사신의 힘까지, 용사 각성의 효과가 생각보다 만족스럽지 못했다.

단순히 출력만 올라가는 정도라고 해야 할까?

물론, 그것만으로 충분히 의미가 있다고는 하나, 이를 온전히 끌어낼 수 없다는 게 문제였다.

이미 지니고 있는 게 너무 많았던 터라, 이를 제대로 수용하는 것만으로도 버거웠던 것이다.

그 때문에 과감한 결단을 내렸다.

인디안 존슨!

감히 확신하건대, 인류 최강이라 부를 수 있는 강자에게 양보한 것이다.

단순히 감각 좀 예민해지는 최하급 신체 계열 각성으로, 저 낮은 밑바닥부터 가장 높은 정점까지 기어오른 사내였다.

그 기나긴 세월의 경험과 깨달음을 믿었다.

따로 알파나 PP 세계를 통한 적응기를 거칠 순 없겠지만, 단숨에 변화를 이해하고 받아들일 거란 확신이 있었다.

아니나 다를까.

콰아아앙!

지금껏 제 자리를 지키던 크루이트가 땅에 큰 고랑을 만들며 크게 밀려나는 게 보였다.

놀랍게도 존슨이 뻗은 일격의 효과였다.

크루이트가 이를 막아 낸 팔뚝을 흔들며 그 위에 남아 있는 잔력을 털어 냈다. 그는 시뻘겋게 달아올라 있는 제 팔뚝을 보며 미소 지었다.

‘재밌군.’

알파 세계에서 마루를 통해 느낀바 있던 변화, 용사 각성을 설마 존슨에게서 느낄 줄은 몰랐다.

‘탈착식 용사라니.’

헛웃음이 절로 나왔다.

그는 슬쩍 마루 일행의 최후방으로 시선을 던졌다. 성녀 레아가 손을 뻗으며 축복을 쏟아 내고 있는데, 존슨이 용사로 각성한 순간, 빛의 기운 상당수가 그의 정수리로 흘러가는 것을 볼 수 있었다.

마왕의 마안은 존슨의 전신 가득 휘몰아치는 신성한 기운을 보여 줬다.

‘이제 좀 할 만하겠군.’

다시금 그가 크게 웃음을 터트렸다.

“하하하하!”

이번엔 따로 파동이 뻗어 나오거나 하진 않았다. 그저 순수하게 즐거운 마음을 표현하는 것일 뿐이었다.

“그래. 인간계의 수호자들이여 제대로 해보자!”

콰아아아….

크루이트의 전신 가득 농밀한 마기가 솟구치며, 주변 일대를 검게 물들여 갔다.

물론, 성녀가 이를 가만히 보고만 있을 리는 없었다.

화아아악!

양손을 모으고 두 눈을 질끈 감으며 바닥에 무릎까지 꿇은 그녀가, 전심전력으로 기도문을 외우며 성력을 뿜어 냈다.

이에 [드래곤 레어]가 반응하며 영역 전체로 광채를 띠는데, 덕분에 어둠에 물들어 가던 시야가 밝혀지며, 다시금 격전을 재개할 수 있었다.

마루 일행들은 존슨을 중심으로 매섭게 몰아치기 시작했다.

냉정히 판단했을 때, 존슨의 실력은 사일론과 라미에 비할 바가 아니었다.

하지만 용사 이용권의 효과로 인해, 마왕에겐 가장 치명적인 존재로 변한 상황이었다.

특히, 용사의 축복을 단시간에 제 것으로 받아들이며 적응을 마치니, 사일론과의 격차도 미미해졌다고 볼 수 있었다.

어쨌든 그런 이유로 가장 효과적인 존슨에게 결정타를 넘기며, 다른 일행들은 보조하듯 어지러이 손발을 놀려 댔다.

* * *

레미안과 하르칸의 예상이 적중했다고 해야 할까?

동의 타이푸와 서의 크라크트는 각자 하늘과 바다를 휘어잡으며, 인간계에 무시무시한 피해를 일으키고 있었다.

쿠쿠쿠쿠쿠쿠….

각종 전투기가 쉼 없이 폭격을 쏟아 내는 가운데, 이를 정면으로 꿰뚫으며 수많은 공군을 박살 내는 타이푸의 모습이란, 압도적이란 말이 아깝지 않을 정도였다.

그 모습이 여러 카메라에 잡히며 세계에 전파되는데, 어둠을 휘두르며 하늘을 장악하는 모습에, 많은 이들이 몸을 떨며 한 단어를 입에 담았다.

―마왕이다!

―맙소사!

―특수 전대가 싹 밀려 버렸어.

몬스터 사체를 비롯하며 여러 던전 물품으로 재설계된 공군 부대가 쓸려 나가는 모습에 전율이 일었다.

이는 바다 쪽에서도 다르지 않았다.

수많은 전함이 반파되어 수장되는 가운데, 해변으로 하나둘 올라오기 시작하는 해룡족의 마족과 그 뒤를 따르는 수많은 마물의 군세가 있었다.

해룡족이 지나온 바닷길이 마기로 검게 물들어 있어, 마치 지옥의 바다에서 기어 나오는 악마를 연상케 했다.

―누가 바다에 기름 뿌렸냐?

―저 많은 몬스터는 뭔데?

―으악! 마족도 있어.

―설마, 바닷속에서 대격변이 발생한 건가?

절망적인 상황이었다.

시야 바깥, 감지기 너머에서 발생하는 게이트란, 너무도 두려운 것이기 때문이었다.

갑작스레 등장한 하늘과 바다의 괴수들에 의해, 어렵사리 맞춰 가던 균형이 크게 무너지는 가운데, 각국의 실력자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각 대격변의 전장에서 치열한 격전을 치르던 랭커들이, 저 무시무시한 마족의 등장에 급히 이동을 시작한 것이다.

―마족들이 저렇게 많은데, 랭커들이 감당할 수 있을까?

―우리 망한 건가?

―신이시여….

너무 많은 마족이 등장했기에, 절망감이 클 수밖에 없었다.

조금씩 ‘종말’이 언급되기 시작했다.

바로 그 타이밍에 등장하는 이들이 있었다.

크르르르르르….

처음엔 새로운 몬스터 무리라고 여겼다.

―어? 뭐야?

―갑자기 서로 물고 뜯는데?

―뭐가 어떻게 된 거야?

어디선가 나타난 또 다른 몬스터 무리가 돌연 해룡족을 따르던 바다 마물들을 향해 달려들기 시작한 것이다.

좀 더 자세한 상황을 살피고 싶었지만, 안타깝게도 관련해서 전문 촬영 장비가 돌아가고 있는 건 아니었다.

멀찍이서 상황을 살피는 몇몇 사람들에 의해, 짤막하게 공유되는 정보들이 취합되는 게 전부였다.

모두가 의문을 느끼고 있을 때, 경력깨나 있는 전문 헌터들은 단번에 상황을 이해했다.

“마수왕인가.”

“이면의 랭커들이 움직였군.”

“하아… 한숨 돌리겠어.”

저 이면의 최강자라 불리는 존재 중 한 명이며, 강하게 불문율을 주장하며 법칙을 세운 초기 각성자의 일원, 그게 바로 마수왕이었다.

몬스터를 부리는 게 재주로서, 비슷한 재주를 지닌 제자들이 잔뜩 있었고, 덕분에 저 많은 몬스터 부대가 탄생한 거였다.

해룡족의 마족들이 제 말을 듣지 않는 몬스터들에 눈살을 찌푸리는데, 언급했듯이 마수왕과 제자들의 스킬에 의해 테이밍된 탓에, 그들의 마기로 통제한다는 건 불가능했다.

이면의 최강자라 할 만한 이들이 나서기 시작하니, 민간과는 별도로 헌터들 자체적인 분위기는 상당 부분 상승할 수밖에 없었다.

이는 하늘 너머도 마찬가지였다.

화르르륵….

거대한 불길을 피워 내며 등장한 사내, 마치 저 마족들처럼 등 뒤로 불의 날개를 펄럭이는 존재, 심지어 불꽃으로 이뤄진 뿔과 꼬리까지 앞세우며, 누가 악마인지 헷갈리게 하는 이면의 랭커.

발록!

마수왕과 마찬가지로 이면의 최강자 중 한 명으로 꼽히는 그 역시 전면에 나선 것이다.

그들을 시작으로 수많은 이면의 랭커들이 그간 피해 왔던 앵글 속으로 몸을 던지니, 세상은 그간 감쳐줘 왔던 세계의 비밀을 엿볼 기회가 허락됐다.

이면의 랭커만이 아닌, 이면의 일반 헌터들까지, 바깥세상에 버금가는 숨겨진 전력이 전면에 등장하니, 크게 환란의 전장에 새로운 흐름이 스며들기 시작했다.

* * *

인간계의 상황을 살피던 실버 박사는 고개를 끄덕이며, 작게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드디어 문제아들이 움직였네.’

이면의 헌터가 대거 등장한 만큼, 급한 불은 껐다고 봐야 할 터였다.

‘큰 불만 남은 건가.’

실버 박사는 저 너머 인간계의 북극으로 시야를 던져 보냈다.

그곳에선 마치 신화 속 신들의 대전을 떠올리게 만들 만큼, 실로 어마어마한 격전이 펼쳐지고 있었다.

인간계 최강의 전력이 모인 만큼, 그럴싸한 접전을 펼치고 있는 듯싶었지만, 이는 겉으로 보이는 부분에서 오는 착각이었다.

실상은 상당히 달랐다.

‘크루이트는 아직 여유가 있구나.’

그에 반해 마루 일행은 얼굴 가득 피로감이 씌워져 있었다.

‘버티고 있을 뿐인가.’

물론, 그렇다고 해서 크루이트가 마냥 편하다는 건 아니었다. 그 역시 방심하는 순간 판이 뒤집힐 만큼, 마루 일행의 저력은 확실히 어마어마했다.

하지만 분명 부족함이 있는 건 사실이었다.

‘좀 더 특별한 변화가 필요해… 쯧! 어쩔 수 없나.’

그는 과감히 무리수를 두기로 했다.

“알파9… 자비드에 접속!”

마루에게 넘겼던 인공 지능에 연락을 취했고, 이내 바깥세상을 향해 본격적인 영향력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 * *

우어어어어어!

마치 짐승의 울부짖음처럼 포효를 터트린 존슨이 포탄 같은 주먹질을 쏟아 냈다.

그 투박한 포격 위로 사일론의 섬세한 검광이 뒤따르며, 빈틈없는 빼곡한 공격이 크루이트를 뒤덮었다.

‘제법!’

크루이트는 저 둘의 연계를 쉽게 볼 수 없었다. 어설피 쳐 냈다간 그 너머에서 용군주 라미가 거센 일격이 날아들 터였다.

피하면 안 된다는 결론 아래, 두 다리에 굳건히 힘을 주며 양손을 어지러이 움직였다.

순간 크루이트의 손이 천수관음의 그것처럼 무수히 많이 늘어나더니, 쏟아지는 포격들을 전부 받고 쳐 내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에게도 마냥 쉬운 건 아니었던 듯, 아주 잠시 그곳에 신경이 집중되는데, 그 순간 그림자를 타고 넘어오는 존재가 있었다.

정확히 모든 포격을 걷어 내고 반격을 하려는 찰나,

와락!

솟구친 그림자가 크루이트를 뒤에서 감싸 안았다.

3미터 남짓의 거구를 완전히 옥죌 수는 없었지만, 그래도 아주 잠시 손발을 묶어 놓기엔 충분했다.

마루가 사자유희를 타고 넘어온 것인데, 그가 크루이트를 묶은 순간 저 높은 하늘에서 초롱이가 크게 숨을 들이켰다.

크루이트의 시선이 잠시 하늘에 머물 때였다.

“죽엇!”

용군주 라미의 전신이 핏빛으로 물들더니, 이내 혈룡의 형상을 일으키며 거센 몸통박치기가 이어졌다.

마루의 족쇄가 생각 이상으로 강렬했던 듯, 제대로 막기는 어려워 보였고, 할 수 없이 마기를 앞세우며 전방에 가드를 세웠다.

콰아아앙!

천둥성과 함께 마기의 장벽이 박살 났지만, 이를 뚫지 못한 듯 라미가 튕겨 나갔다. 하지만 덕분에 마루는 더욱 강하게 크루이트의 전신을 옭아맬 수 있었다.

“지금!”

그의 외침과 동시에 초롱이가 숨결을 뱉어 냈다.

콰르르르르르르….

드래곤 브레스였다.

그 강대한 불길은 마루와 주변을 신경도 쓰지 않는다는 듯, 사납게 쏟아져 내리며 크루이트를 강타했다.

얼음으로 가득한 주변 일대가 순식간에 녹아내리는 가운데, 초롱이가 피로한 얼굴로 브레스를 멈췄고, 이내 화마 속 풍경이 고스란히 드러났다.

놀랍게도 그 뜨거운 불길 속에서, 마루 일행은 어떠한 피해도 없이 멀쩡했다.

오직 크루이트만이 시꺼먼 연기를 모락모락 피워 내고 있었는데, 이는 진짜배기 브레스만이 보여 줄 수 있는 권능이었다.

그 불길이 아무리 크고 거세다 할지라도, 오직 목표로 한 존재만 불태우는 것, 그게 바로 드래곤이 뿌리는 숨결의 특별함이었다.

마루 역시 브레스를 쏠 수는 있지만, 용아병의 한계인 듯, 주변 모든 걸 파괴하는 단순한 소멸광선일 뿐이었다.

구현동화를 통해 이뤄 낸 거짓 성장이라고는 하나, 그래도 성체는 성체였다.

에이션트 드래곤!

그 전설적 존재가 쏟아 낸 브레스에 직격으로 맞은 것이다.

결과는?

“짜릿하군.”

마루 일행은 사기가 꺾이려 했다. 너무도 태연한 모습으로 브레스의 흔적을 털어 내는 크루이트의 모습이란, 자연히 패배라는 단어와 함께, 절망의 그림자 속에 발을 담그게 만들었다.

특히, 좀 전 초롱이가 쏟아 낸 브레스의 위력을 실감하고 있다 보니, 더더욱 어깨가 무거워질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모두가 좌절하는 건 아니었다.

“일어나세요 용사여!”

성녀 레아의 외침과 함께 새로운 기력이 차오르는 걸 느꼈다. 수많은 신들의 세계를 접하고, 신의 가호로 남다른 정신의 방벽을 세운 그녀는 크루이트의 기세에 속지 않았다.

“마왕도 지쳤습니다. 조금만 더 힘을 내세요!”

그 말처럼 조금 전 초롱이의 브레스는 분명 어마어마한 것이었고, 이를 직격으로 맞은 크루이트는 생각 이상으로 기력이 소모된 상태였다.

특히, 이곳은 마계가 아닌 인간계가 아니던가.

실시간으로 마기의 복구가 이뤄지는 세계가 아니다 보니, 오랜만에 대해와 같던 마기에 바닥이 드러나며 허기를 느끼고 있었다.

성녀의 축복이 힘이 된 듯, 일행은 재차 기력을 내서 달려드는데, 그 모습을 보며 크루이트는 눈을 빛냈다.

‘아직도 저만큼의 힘이 남았다고?’

이는 마루 일행이 아닌, 성녀 레아를 향한 감탄이었다.

그녀의 성력은 전투가 이어지는 와중에 바닥을 드러내고 있었건만, 어디서 솟은 기력인지 저토록 큰 축복을 걸어 주다니, 적잖이 놀랄 수밖에 없었다.

이번만큼은 그로서도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이었다.

그 때문일까?

치열한 격전 속에서도 성녀 레아를 바라보는 눈빛이 날카로웠다. 마왕의 마안이 전력으로 발동되며 그녀를 살피기 시작했다.

그리고 깜짝 놀라야만 했다.

‘이건…?’

콰아아앙!

어찌나 놀랐던지 일격을 허용해 버렸는데, 그게 하필 존슨의 권격이었다.

“크윽….”

스며드는 용사의 가호이자 저주로 인해, 저도 모르게 신음성이 새어 나오는 가운데, 크루이트의 시선이 성녀를 넘어 저 높은 하늘로 올라갔다.

그의 마기로 검게 물들어 있는 하늘 위로, 마치 밤하늘을 연상시키는 무수히 많은 별들이 떠오른 게 보였다.

마기로 하늘에 장막을 쳤건만 별이 뜬다?

말도 안 되는 소리였다.

그렇다면 저건 뭘까?

‘시선?’

마왕은 저 별빛 속에서 수많은 눈길을 느꼈다.

그 정체를 깨닫기까진 오래 걸리지 않았다.

‘세계?’

그즈음 마루 일행의 귓가로 묘한 속삭임이 스쳐 가고 있었다.

―인디안 존슨… 아이언슈트… 레아 님….

―파티 멤버 화려하네.

―으아아~!지지 마.

―힘내세요!

다양한 언어 음성 그리고 감정들이 날아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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