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 개벽.
#24. 개벽.
마이클!
제법 흔해 보이는 이름이지만, 그 정체는 결코 흔하지 않았다.
마수왕!
그게 바로 그의 정체이기 때문이었다.
문제아들이 판치는 이면에 불문율의 법칙을 세운 절대자로서, 대격변의 초기에 무법자들이 판치는 세상에서 가족을 잃은 뒤, 이면의 심판관이 되기로 결심한 사내였다.
그 역시 이면의 주민답게 다양한 범죄를 저지르며 살아왔지만, 스스로 정한 규칙만큼은 철저히 지켜 온 만큼, 이면의 랭커임에도 불구하고 바깥의 수많은 헌터들에게 존중받는 강자이기도 했다.
그렇기 때문일까?
마수왕과 그의 마물들이 등장했을 때, 헌터들의 사기는 전에 없이 들끓을 수밖에 없었다.
지금이야 세계 최강으로 존슨을 꼽지만, 과거에는 그와 어깨를 나란히 하던 존재이지 않던가.
무시무시한 마물들이 뒤를 받쳐 주는 것만이 아니라, 그 스스로도 최강인 존재가 함께하니, 사기가 오르는 건 당연한 수순이었다.
그 같은 흐름이 정점에 이른 건?
크아아아아아―!
그가 직접 등장한 순간이었다.
거대한 포효와 함께 모습을 드러내는데, 마이클이 타고 있는 마수의 정체가 놀라웠다.
“맙소사! 드레이크야.”
“빌어먹을 마수왕! 믿고 있었다구.”
“젠장! 더럽게 멋지네.”
일반적인 드레이크와 달리 창공을 가르는 게 아닌, 거대한 땅울림과 함께 등장했는데, 이는 마이클이 타고 있는 드레이크의 특징 때문이었다.
대부분 드레이크라고 하면 멋지게 하늘을 휘젓는 걸 떠올리지만, 드레이크도 종류가 다양한 터라, 땅과 바다에 어울리는 종들이 따로 있는 것이다.
굳이 나누자면, 비룡과 토룡 그리고 해룡이었다.
그중에서 가장 강렬한 게 비룡으로 알려져 있지만, 그 격차는 극히 미미한 편이었다.
상황에 따라 승부가 갈리는 것이다.
그 때문에 토룡족 드레이크라 해서 크게 걱정하지 않았다. 드레이크라는 것 하나만으로도 충분한 힘이 되는 것이다.
고고고고고고….
등장과 함께 멋진 브레스까지 뿜어내는데, 드레이크의 숨결은 조금 특별했다.
대뜸 바닥에 머리를 박아 넣은 채, 그대로 거대한 입김을 뿜어내는데, 그 순간 대지가 출렁이며 거대한 지진이 발생했다.
뒤이어 땅거죽이 뒤집히며 대지의 해일이 전방으로 몰아치는 것이다.
끄아악!
꺼어억!
마물들이 단말마의 비명성과 함께 죽어 나가는 게 보였다.
실로 무시무시한 파괴력이었다.
테이밍 계열의 헌터들의 경우, 대개 총기 각성계처럼 신체 능력은 별 볼 일 없기 마련이지만, 마이클은 그들과 궤를 달리했다.
괜히 존슨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게 아니라는 듯, 그는 드레이크에게 전장을 휘젓게 지시한 뒤, 스스로도 깊숙이 뛰어들며 격전을 치르는데, 어지간한 랭커들도 전율을 느낄 수밖에 없는 완벽한 전투력을 보여 주고 있었다.
창 한 자루를 들고 마물들을 꿰뚫는데, 창술의 완성도가 놀라웠다. 그리고 바로 이 같은 장면이 서마계의 왕 크라크트를 자극했다.
놀랍게도 마족의 정예들까지 그 창술에 꿰뚫려 무너지니, 크라크트는 마냥 뒷짐만 지고 있을 수가 없었다.
“퓌휴우우우… 이제야 나오는 거냐? 엉덩이가 무겁군.”
마이클이 거친 호흡을 정리하며 비릿하게 웃자, 크라크트가 성난 기세를 피워 내며 존재감을 한껏 드러냈다.
그 순간 이미 격의 차이를 느꼈지만, 마이클은 두려움에 떨지 않았다. 뒷걸음질도 치지 않았다. 오히려 한 걸음 더 성큼 내디디며, 기세 발산의 순간을 노린 듯, 매서운 창격을 내뻗을 뿐이었다.
콰우우웅….
기습적인 일격에 크라크트의 얼굴 한편에 핏줄기가 튀고, 이를 시작으로 본격적인 대결이 시작됐다.
* * *
실버 박사는 인공지능 자비드를 통해 리튜브를 비롯한 여러 스트리밍 사이트에 신규 채널을 오픈한 뒤, 각종 어그로성 글을 날려 대며 사람들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마왕님의 은밀한 XX?]
[크고 아름답더라]
[인류 최후의 전쟁]
[사람과 전쟁]
등등, 사람들이 혹할 수밖에 없는 제목으로 자극을 한 것이다.
그 와중에 헛웃음이 나온 건, 직설적인 제목은 그리 화제를 끌지 못했다는 점일까?
‘쯧쯧쯧….’
혀를 차는 것도 잠시였다.
그렇게 어그로성 제목들로 끌어들였지만, 사람들은 내용물에 그리 실망하지 않았다.
오히려 더욱 환호하며 여기저기 주소를 퍼 나르기 시작하는데, 이 부분은 충분히 예상했던 바였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대마왕 크루이트 VS 인류 최강의 영웅들]
그 특별한 전장이 채널의 핵심 주제가 아니던가.
‘존슨 한 명으로 게임 끝이지.’
거기에 성녀 레아까지 있고, 추가로 아이언슈트의 존재로 완벽한 증명이 이뤄졌다.
한차례 세계적인 화제가 됐던 드래곤까지 하늘에서 선회 중이니, 사람들이 환호하며 집중되는 건 당연한 수순이었다.
―여기 어디야?
―아무래도 북극 같은데.
―얼음성?
―어째 존슨이 안 보이더라니. 여기서 멸망전 중이었음?
―저 괴물은 뭐야?
―마족인 것 같은데… 마왕인가?
―드래곤까지 있는 파티인데, 저렇게 밀린다고?
―아니, 아이언슈트는 저기서도 가면을 쓰고 있냐?
초반에는 단순한 가면이었지만, 이제는 그 가면도 하나의 장비였다.
강하나에게 부탁해서 특수 제작한 장비로서, 효과는?
―헛! 눈에서 레이저 쐈어.
―아이언슈트는 핸드 빔 아님?
―하트 빔도 있음!
―눈깔 빔은 맥스맨 전용인데.
변수를 위한 광선을 비롯해서 정화의 힘 등이 깔려 있는데, 확실히 생각지도 못한 공격이었던지, 크루이트가 한 방 먹는 게 보였다.
그 덕분에 발생한 빈틈을 파고들며 연격을 쑤셔 넣었다. 하지만 오래지 않아 반격과 함께 요란하게 튕겨 나가며 바닥을 뒹굴었다.
이후로도 다양한 공격들을 쏟아 내며, 마루 일행은 최선을 다해 마왕을 몰아붙여 보지만, 철저한 반격 끝에 처절한 몰골만 드러낼 뿐이었다.
몇몇 종말론을 언급하며 재미로 보며 채팅창을 어지럽히는 이들도 있었지만, 그런 이들마저도 종래에는 숨을 죽여야 했다.
그만큼 마루 일행이 보여 주는 결사 항전의 의지를 느낀 듯, 어느새 그들도 눈물을 흘려 대며 응원을 하고 있던 것이다.
그 같은 흐름이 절정에 이른 건?
―브레스다!
―오오~! 제대로 들어갔어.
―아아….
―저것도 안 통한다고?
―괴물이야! 정말로 대마왕이었어.
커지는 절망감만큼 마루 일행을 향한 응원의 목소리는 커져 갔다.
바로 그 구분이 실버 박사가 노리는 부분이었다.
세계는 현재 구현동화 스킬로 인해, 거대한 하나의 흐름을 타고 있었다.
그 흐름의 이름은?
[엔트라넷!]
애초에 PP라는 가상의 세계를 통해, 사람들의 여러 감정들을 전력 삼아서 돌아가는 것, 그게 바로 엔트라넷 서버였다.
당연하게도 엔트라넷은 수많은 사람들과 연동되기 위한 최적의 준비가 갖춰져 있었다.
그 때문일까?
저들 감정과 외침 그리고 바람 등이 거대한 에너지가 돼서 엔트라넷을 타고 별빛처럼 쏟아지는 중이었다.
‘성녀님 나머지는 맡기겠습니다.’
이 세계의 선택을 받은 여인이었다. 그녀라면 이미 저 거대한 흐름을 느끼고 있을 터, 실버 박사도 조용히 양손을 모았다.
* * *
그건 너무도 갑작스러웠다.
귓전을 두드리고 뇌리를 흔들며 가슴을 들썩이게 만드는 기현상 때문일까?
마루 일행은 화들짝 놀란 얼굴로 일제히 뒷걸음질을 쳤고, 그로 인해서 전장에는 잠시간 침묵이 내려앉았다.
하지만 그 정적 속에서도 일행들의 귓가는 소란스럽기만 했다.
―갑자기 거리 두는데?
―뭐가 잘못됐나?
―한 호흡 돌리는 중이겠지.
―정비 타임! 정비 타임!
―힘내라!
―인디안 존슨 파이팅!
사람들의 채팅이 외침이 되어 그들 고막을 두드리고 가슴을 진탕시키고 있었다.
이게 어찌 된 일인지, 당혹감 속에 저도 모르게 주변을 둘러보게 되는데, 그러다가 저 높은 하늘의 이변을 깨달았다.
‘별?’
마왕의 등장 이후 하늘에서 사라져 버렸던 게 있었다.
태양과 달 그리고 별!
그중 하나가 떠오른 것인데, 이를 살피다가 깨달았다.
‘별빛이 아니야.’
저건 세계였다.
수많은 사람들의 외침이었다.
저 사이사이 스며 있는 시선이란, 분명 사람들이 보내오는 것과 꼭 닮아 있었다.
그리고 이 같은 시선과 감정은 성녀를 통해 일행에게로 흘러들고 있었는데, 그 과정에서 축복으로 전환되며, 새로운 기력의 매개체가 되는 것이다.
인류 최강을 자처하는 파티인 만큼, 이 자리에 있는 이들은 남다른 초감각을 기본으로 탑재하고 있었고, 덕분에 이 기이한 흐름도 일부 눈치챌 수 있었다.
‘그렇게 된 건가.’
‘할 수 있다!’
‘해 보자!’
일행들은 절망의 늪 속에서 동아줄을 부여잡은 심경으로, 꺾여 가던 의지를 바로 세우며 일제히 기운을 끌어올렸다.
과연, 용솟음치는 기운이 그들의 등을 떠밀었다.
“으아아아!”
의지를 일깨우는 기합성과 함께, 다시금 격전이 시작됐다.
* * *
세계가 주시하는 걸 느꼈다.
그 때문일까?
‘몸이 무겁군.’
크루이트는 전신을 옥죄는 압박감이 한층 커지는 것 역시 느낄 수 있었다.
그건 실로 은밀했다.
인지하기 전에는 알아채지 못했다.
세계의 눈길을 눈치채고 난 이후, 혹시나 하는 마음에 감각을 한껏 개화시키니, 그제야 조금씩 스미는 이 세계의 의지를 인지한 것이다.
저 수많은 별빛의 숫자만큼, 작은 반짝임으로 그의 육신을 조용히 하지만 집요하게 두드리고 있던 것이다.
별빛의 반짝임은 작지만, 모이고 모이니 어느새 달빛을 넘고 태양 빛에 이를 만큼 강렬해지고 있었다.
크루이트의 시야에서, 하늘은 더 이상 어둡지 않았다.
밝은 걸 넘어서 벌겋게 달아올라 있었다.
그 때문일까?
어느 틈엔가 몸놀림이 둔해졌고, 마기도 흐트러졌으며 점차적으로 호흡도 가빠지고 있음을 알았다.
‘큭….’
하지만 그의 입가에는 묘한 미소만 가득했는데, 그가 원하던 상황이기 때문이었다.
이제부턴 그도 더 이상 여유를 부릴 수는 없었다.
과연, 어마어마한 공세가 이어졌다.
세계가 뒤에 있음에, 수많은 사람들의 응원이 따름을 알기에, 그들은 힘을 얻고 의지를 키울 수 있었다.
영웅!
그 특별한 존재들만이 보일 수 있는 찬란한 광채가 저들 전신에 깃들어 있었다.
번쩍! 번쩍… 파파파팟….
크루이트의 시야에선, 저들의 공격 하나하나가 별빛처럼 반짝이며 점멸하고 있었고, 그 눈부심에 눈을 제대로 뜰 수가 없었다.
게다가 놀라운 건 이들의 연계에 관한 부분이었다.
각자 벽을 넘고 통달한 자들이다 보니, 따로 합을 맞춰 본 적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완벽에 가까운 연수합격을 보여 줬었는데, 세계의 흐름이 그들에게 쏟아지며, 이들을 한데 묶은 효과일까?
별다른 눈빛 교환이나 신호 없이도, 마치 생각을 나누기라도 한 듯, 실로 절묘한 연계기를 보여 주면서, 완벽에 가까운 게 아닌, 말 그대로 완벽 그 자체의 연수합격을 보여 주기 시작했다.
특히, 파티 자체가 초근접전만이 아니라, 원거리까지 전부 통달한 달인들만 모여 있는 터라, 언제든지 서로의 자리를 유기적으로 바꿔 가며 공수를 나눌 수 있다는 게, 실로 까다로운 부분이었다.
매 순간 패턴이 달라지기 때문이었다.
존슨이 전방을 설 때와 라미가 설 때, 그리고 사일론과 마루가 각기 최전방을 나눌 때, 모든 패턴마다 경우의 수가 달랐고, 이는 크루이트에게 매번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들었다.
몸과 함께 머리도 바삐 돌아가야 하는데, 그 과정에서 압력이 밀려들며 호흡을 어지럽게 하니, 결국 손발이 어지러워지는 건 어쩔 수 없는 수순이었다.
그 때문일까?
‘크음….’
기어이 크루이트의 인상이 구겨지는 순간이 왔다. 존슨이 라미가 그리고 사일론과 마루가 연달아 자리를 바꿔 가며, 조금씩 크루이트의 방벽을 깎아 나간 결과였다.
물론, 그 과정에서 일행의 몸뚱이는 피투성이가 되어 있었고, 체력과 기력 그리고 정신력까지, 전부 한계를 맞이한 상황이었지만, 그래도 한 차례 크루이트의 가슴을 활짝 열어젖힐 순 있었다.
바로 그 순간 마루가 움직였다.
“후웁!”
호흡을 삼키고 자세를 가다듬고 일격을 뻗는다.
그 모든 게 찰나에 이뤄졌다.
[개벽권]
지금 이 한 방에 모든 걸 걸겠다는 각오로, 성녀의 가호 덕분에 겨우겨우 유지 중인 7점대의 컨디션을 과감히 투자했다.
그 결과,
[컨디션 : 1]
죽음과 함께하는 점수대에 이르렀다.
무려 6점이 투자된 일격으로서, 그 와중에 몸 상태가 바닥까지 떨어지며 도전자 칭호를 비롯해서, 치명적 부상에 따른 각종 특수 효과까지 발동됐다.
번쩍!
거대한 광채가 북극 전역을 뒤덮었다.
콰콰콰콰콰콰콰….
그 위력은 감히 천지가 개벽하기에 충분했다.
마수지대 전역이 무너져 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