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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 전쟁의 끝….

#25. 전쟁의 끝….

비익족의 수장이자 동마계의 왕인 타이푸는 신기한 눈빛으로 전장을 바라봤다.

‘정말 인간인가?’

얼음마녀의 휘하에 있던 정예의 마물들을 쓸어버리는 것도 놀랍건만, 일족의 정예 전사들을 상대로 전혀 밀리지 않고 있었다.

오히려 밀어붙이며 꾸준히 그를 향해 다가오고 있을 정도였다.

‘발록이라고 했지.’

그 강함에 놀랐다.

하지만 그것 때문에 인간인가에 대한 의문을 품은 건 아니었다.

‘우리 쪽에 가까운 것 같은데.’

놀랍게도 그들과 닮은 기운 때문이었다. 게다가 기운이 이루고 있는 형상도 그들 마족의 모습을 갖추고 있지 않은가.

뿔과 날개 그리고 꼬리까지, 누가 봐도 마족이었다.

‘반인반마?’

그런 의문이 이어지는 건 당연한 수순이었다.

이는 사실 발록이 뮤턴트 실험의 실패 속에서 탄생한 특수 개체이기 때문이었는데, 이를 모르는 탓에 자연스레 의문이 커질 수밖에 없었다.

여러모로 흥미가 이는 가운데, 발록의 남다른 강함 역시도 그를 자극했다.

약육강식의 강자존의 마계!

타이푸는 그 정점에 오른 존재였다.

강자를 보며 어깨가 들썩이는 건 어쩔 수가 없었고, 결국 전면에 뛰어들고야 말았고, 이내 발록과 타이푸의 격돌이 이뤄졌다.

꽈르르릉...

하늘이 거친 울음을 토해냈다.

* * *

마루의 필살기가 작렬했다.

무려 6점의 컨디션을 투자한 [개벽권]이다 보니, 그 위력에 의해 북극 마수지대 전역이 뒤집어지고야 말았다.

그 어마어마한 위력 앞에선, 수많은 세상과 강자를 경험해 본 사일론과 라미 역시 입을 쩍 벌릴 정도였다.

관전 중이던 세계의 시선도 경악하며 사고가 멈춰 버렸고, 그로 인해서 한동안 채팅창은 깊은 침묵에 빠져들며, 일행의 귓가엔 진한 정적만이 맴돌 뿐이었다.

그리고 이 때문에 틈이 생겨 버렸다.

너무나도 충격적인 위력이었고 그로 인해서 대마왕 크루이트가 크게 당했을 거라 여긴 것이다.

콰아아앙!

강렬한 충격파 속에 라미의 신형이 실 끊어진 연처럼 뒤로 날아갔다.

바로 이어서 사일론까지 쳐 내려는 찰나, 아슬아슬하게 끼어드는 그림자가 있었으니, 마왕과 상극이라 할 수 있는 용사의 기운을 흩뿌리는 자, 바로 존슨이었다.

사일론과 라미처럼 그 역시 [개벽권]의 위력에 놀랐지만, 용사의 감각이 여전한 경고를 보내왔던 터라, 틈 사이로 스며드는 마왕의 그림자를 누구보다 빠르게 알아챘고, 이처럼 사일론의 앞을 막아설 수 있었다.

물론, 그럼에도 불구하고 라미에게 일격을 허용한 건?

‘이걸 위해서지!’

라미에겐 미안한 소리지만, 반 박자 느린 반응을 통해 한 박자 빠른 반격을 노린 것이다.

‘일 보 전진을 위한 반보 후퇴!’

확실히 통한 것일까?

콰쾅!

크루이트와 존슨이 커다란 폭발성과 함께 동시에 튕겨 나갔다.

요란히 바닥을 구른 존슨이 너부러진 상태로 전방을 바라봤다.

‘뼈를 주고 살을 취한다!’

원래라면 그 반대의 경우를 노려야 하겠지만, 상대가 상대다 보니 손해 볼 것을 각오하며 치고받았다.

결과는?

“크으으으으….”

진한 신음성과 함께 크루이트가 휘청이는 게 보였다.

피투성이가 된 모습을 봤을 때, 그의 일격보단 마루의 [개벽권]에 의한 여파가 컸던 듯싶었다. 존슨이 뻗은 용사의 일격은 조미료 정도 역할만 했을 뿐이었다.

하나 용사의 힘이 진하게 스며들었을 터, 아주 독한 조미료 역할을 할 게 분명했다. 입꼬리가 절로 올라갔다.

‘그렇지! 그걸 맞고도 정상일 리가 없지.’

한편에서 힘겹게 서 있는 마루도 같은 생각을 하며 크루이트를 바라보고 있었다.

[컨디션 : 1]

이는 유언장을 써 놓고 병상에 누워 호흡기 떼기만을 기다려야 하는 컨디션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처럼 자세를 잡고 있는 건, 각종 상태 이상의 보호 칭호 및 주변 가득한 버프들 덕분이었다.

성녀 레아의 축복도 축복이지만, 전투 시작과 함께 펼쳤던 결계 스킬 [드래곤 레어]의 도움도 컸다.

그가 펼친 결계이지만 유지는 초롱이가 하는 중이었는데, 저 높은 창공에서 넓게 선회 중인 건, 레어의 영역을 끊임없이 손보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러면서 틈틈이 용언과 몇몇 버프 마법들 그리고 브레스까지, 알게 모르게 초롱이의 활약도 상당했다.

이를 별도로 보조하는 게 루미였는데, 굳이 표현하자면 보조의 보조라고 봐야 할 것이다.

어쨌든 이런 버프들이 마루를 살려 놓고 있었는데, 추가적으로 죽음을 관장하는 저승의 신물, 사자유희 역시도 그의 숨결을 잡아 놓고 있으니, 1점대의 컨디션으로도 최악의 상황은 피해 갈 수 있었다.

당장이라도 쓰러져서 죽은 듯 잠들고 싶었지만, 이를 악물고 버티며 크루이트를 눈에 담았다.

핏물에 휩싸인 채, 거친 호흡을 몰아쉬는 크루이트의 모습이란, 다 죽어 가는 육신에 의지를 덧씌우며, 꾸역꾸역 주먹을 움켜쥐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하나 이를 내지를 기력까진 없었다.

부들부들….

떨리는 육신은 한 걸음 내딛기도 어려웠다.

초롱이의 브레스를 기대하고 싶지만, 앞서 한 발 날린 게 전력이었고, 그로 인해서 연신 숨을 헐떡이는 중이었다.

크룩… 크룩… 킁… 크루룩….

지금은 레어 유지까지가 한계였다.

성녀 레아 역시도 세계의 의지를 받아들여, 이를 성력과 축복으로 전환하면서 이미 그 내부가 엉망이 된 상황이었다.

겉으론 멀쩡해 보였지만, 창백하게 질린 몰골에서 성녀 역시도 한계가 느껴졌다.

꾸역꾸역 몇몇 버프를 유지하는 게 전부였는데, 초롱이와 레아가 버프를 공격으로 전환할 경우, 성역과 레어는 부서질 것이며, 그로 인해 마루의 숨결은 바로 끊어져 버릴 터였다.

게다가 과연 그 공격이 제대로 통할까?

“흐흐흐흐….”

핏물에 잠긴 와중에도 하얗게 이를 드러내며 웃는 크루이트의 모습을 보라.

아직 여력이 남아 있다 외치는 것 같지 않은가.

빠직… 빠지직….

이를 증명하듯 거대한 뿔 사이로 뇌전이 일어나는 게 보였다.

“크흐… 으으… 끝내주는 일격이었다. 드래곤 로드의 브레스에 직격당했을 때가 생각날 정도였어. 인간 주제에 그런 위력이라니… 최고였다!”

그야말로 극찬이었지만 기뻐할 수는 없었다. 결국 크루이트를 잡아 내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두고두고 기억할 만한 한 방이었다.”

어느새 뇌전은 선명해지고 강렬해지니, 일행은 죽음의 그림자가 가까워짐을 느껴야만 했다.

“영광으로 알고, 그만 죽어라!”

그렇게 외치며 벼락을 일으키려는 찰나였다.

번쩍!

시꺼먼 검광이 솟구치며 뇌전을 가르고, 크루이트의 뿔마저 베어 냈다.

쿠쿵….

그 거대한 뿔 한쪽이 바닥에 떨어지며 큼직한 울림을 터트렸다.

“퓌휴우우우….”

모두의 시선이 몰리는 그곳, 사일론이 검을 들고 있는 게 보였다.

한데, 그 외형이 기이했다.

반인반마로서 평범한 인간형에 가깝던 게 바로 사일론의 모습이었건만, 지금 이건 뭔가?

‘악마?’

‘마족?’

일행들이 그런 생각을 할 만큼, 마족의 형상을 고스란히 그려 내고 있었다.

뿔과 날개 그리고 꼬리!

분명히 마족이었다.

하나 오래지 않아 그게 온전한 것이 아님을 알았다. 마검이 된 반칼죽과의 일체화를 통해, 기운이 형태를 갖춘 마족화가 이뤄진 것이다.

발록의 변이와 비슷한 종류였다.

땅에 떨어진 뿔을 한 차례 쳐다보던 크루이트가 히쭉 웃으며 물었다.

“흐… 아직 여력이 남았더냐?”

분명히 한계였던 걸로 기억했다.

조금 전 빈틈이 드러났을 때, 가슴이 활짝 열렸던 것도 그런 이유가 아니던가. 존슨이 막아서지 않았더라면?

저 한편에서 꿈틀거리며, 겨우겨우 생존 신고만 하고 있는 라미처럼 됐으리라.

사일론이 크루이트와 꼭 닮은 미소를 띠며 말했다.

“송곳니는 꼬리에 끼워라. 몰라?”

마계의 격언으로서, 중국 무림에 자주 도는 격언 ‘실력의 3할은 숨겨라’와 같은 종류의 의미를 담고 있었다.

“큭… 날 상대로 꼬리를 끼워? 제법이군. 크하하하!”

크루이트가 정말 신난다는 얼굴로 폭소를 터트리는데, 사실 이는 사일론도 생각지 못한 한 방이었다.

그도 그럴 게 이번 격전에서 여러 버프의 혜택에서 홀로 고독했던 게 바로 사일론이 아니던가.

그 역시 마계의 일원으로서, 대공급의 마족이 아니던가.

그런 이유로 빛과 용의 축복을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았는데, 그나마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반인반마!

인간의 핏줄이 일부나마 축복에 반응하니, 기력 회복 정도는 지원이 됐다.

그에 더해서 반칼죽의 경우엔 완전히 마검이 되어 버린 터라, 안타깝게도 축복에선 제외였다.

하지만 격전의 막바지에 이르러, 모든 축복이 바닥을 치는 지금, 그동안 숨죽이고 있던 반칼죽이 한껏 기지개를 켜니, 그 결과가 지금의 일체화로 이뤄진 것이다.

생각지도 못한 반격에 뿔이 잘려 버린 탓일까?

‘마기가 줄었다!’

사일론은 크루이트의 기세가 꺾이는 걸 느꼈다. 뿔은 마족들에겐 힘의 원천이나 다름없었다.

그 때문에 가장 단단한 부위였건만, 마검은 놀라운 절삭력으로 이를 베어 냈다.

‘할 수 있다!’

검을 쥔 손에 힘이 불끈 들어갔다.

“크하하하하하!”

그 역시 폭소를 터트렸고, 이내 두 마족이 격돌했다.

* * *

마수왕과 발록!

둘 다 이면을 대표하는 강자로서, 한때는 존슨과도 어깨를 나란히 하는 괴물들이었다.

하지만 그런 그들도 마계의 정점, 왕이라 불리는 강자들에게는 닿을 수 없었다.

“마수왕이 졌어….”

“발록이 추락한다!”

각기 다른 장소에서 치러지는 격전이었지만, 둘은 꼭 같은 모습으로 바닥을 나뒹굴었다.

이면의 랭커들이 돕기 위해 뛰어들었지만, 다른 마족들에 의해서 차단되며, 각자의 전장에서 몸부림을 쳐야만 했다.

그 둘의 목숨을 끊으려는 듯, 동쪽과 서쪽 마계의 왕들이 각기 발톱을 세울 때였다.

쿠르르르….

어둠에 물들어 있던 하늘에 거대한 울림이 터져 나오는가 싶더니, 이내 한 줄기 서광이 떨어졌다.

그리고 이를 시작으로 하나둘 빛줄기가 더해지더니, 오래지 않아 푸른 하늘이 제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타이푸와 크라크트 그리고 레미안과 하르칸까지, 마계 사천왕들이 약속이나 한 듯, 동시에 한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다.

‘마왕님?’

그들의 하늘에게 변고가 생겼음을 직감했다.

* * *

크루이트와 사일론의 격돌!

일행은 거기서 이번 전장의 승부가 갈릴 것임을 직감했다.

더 이상 여력이 남아 있지 않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떻게든 기운을 모으고자 열심히 숨을 고르며 자세를 가다듬는 건, 이곳 세상의 명문을 타 차원의 존재에게 맡길 수 없다는 자존심과는 달랐다.

만에 하나의 상황을 대비해, 제 한 목숨 불사르기 위한 준비 작업인 것이다.

특히, 평생을 그런 방식으로 살아왔던 탓일까?

존슨의 마음 정리가 가장 빨랐다.

하나 이러한 결심을 실행으로 옮기는 일은 없었다.

“크아아악….”

거대한 비명과 함께 수백 미터 대지를 직선으로 가르며 날아가는 거대한 그림자가 보였다.

크루이트가 마검의 관통기를 맞고 날아가고 있었다.

그 순간 일행은 생각했다.

‘끝났다!’

불처럼 타오르던 마기가 사그라들고 있던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하늘이….’

‘마기가 걷힌다!’

창공이 간만에 제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하지만 일행은 자세를 풀진 않았다. 비록 마기가 자취를 감췄고 맑게 갠 하늘까지 시야를 채웠지만, 크루이트의 심장 박동은 여전히 귓가를 두드리고 있기 때문이었다.

끝날 때까지는 끝난 게 아니라는 각오로, 일제히 수백 미터 고랑을 쫓아 걸었다.

그리고 볼 수 있었다.

심장 부위에 커다란 구멍이 뚫린 채 누워 있는 크루이트의 모습을.

‘심장?’

그들이 듣고 있는 박동은 뭐란 말인가?

의문을 느끼는 것도 잠시였다.

“제법… 이구나… 쿨럭!”

크루이트가 핏물을 게워 내며 사일론을 향해 말했다. 그를 내려다보던 사일론이 입술을 짓씹었다.

평생 목표로 해 왔던 존재였다.

하지만 그게 자신의 부친이라는 걸 알았기 때문일까?

묘한 감정에 가슴이 울렁거렸다.

입술을 짓씹으며 감정을 다스린 뒤, 끝을 보기 위해서 마검을 한껏 들어 올릴 때였다.

“네가… 이겼다… 큭큭큭….”

크루이트가 패배를 선언했다.

“살기 위해서 구차하게 빌려는 거냐?”

으르렁거리는 음성으로 사일론이 물었다. 하지만 크루이트는 대답 대신 여전한 미소로 손을 뻗어 왔다.

그와 동시에 시꺼먼 기류가 형성되는 것이 보였다.

공격인가 싶어서 경계심을 키우는데, 예상 밖의 상황이 진행됐다.

일렁이던 검은 기류가 사라졌을 때, 크루이트의 손 위에는 악마 형상의 반지가 하나 들려 있었다.

“뭐지?”

사일론의 물음에 크루이트가 답했다.

“마왕의 인장이다.”

“…뭐?”

“약육강식! 나는 패했다… 쿨럭! 마계의 율법에 따라 지금 이 순간부터 네가 마왕이다.”

그러며 묻는다.

“쿨럭… 항상 바라던 것 아닌가?”

정답이었다.

사일론은 항상 크루이트를 쓰러트린 뒤, 마계의 정점이 되길 원해 왔었다.

마신의 가호로 인해 저 너머 마계에선 도전장을 꺼낼 수가 없었지만, 이곳 세상에서는 가능했다. 소마가 되어 넘어왔을 때, 절망하기보단 오히려 잘됐다고 여기지 않았던가.

하나 너무도 뜬금없는 타이밍에 계승식이 진행되어 버리니, 당혹감을 감추기가 어려웠다.

저도 모르게 주변을 돌아봤다.

어느새 다가온 듯, 마루와 존슨이 지친 몰골로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 눈빛 한편에 비치는 경계심이 상황을 말해 줬다.

주저하고 있을 때였다.

“율법은… 거부할 수 없다.”

그 말과 함께 인장이 알아서 움직이더니, 그대로 사일론을 향해 날아가는 것이 아닌가.

깜짝 놀라서 손을 뻗어 쳐 내는데, 그 순간 인두에 지지는 듯한 화끈한 통증과 함께, 인장이 손끝을 파고들었다.

뒤이어 그의 전신이 불길에 휩싸였다.

“끄아아아아악!”

비명이 터져 나오는 가운데, 크루이트의 곁으로 내려서는 그림자가 하나 있었다.

얼음마녀 데이지!

겨우 이곳까지 걸음을 한 마루와 존슨이 이를 악물며 자세를 잡았다.

마왕의 결전에 마졸은 낄 수 없다고 해서 안심하고 있었건만, 뒤늦게 반전이 발생하려는 걸까?

사일론의 변화도 충격적이건만, 얼음마녀까지 끼어든다면?

절망감이 엄습했다.

하나 이를 들키지 않으려, 애써 표정을 수습하며 자세를 잡는 등, 다시금 필사의 각오를 다졌다.

그러나 이어지는 상황이 또 뜻밖이었다.

‘저건?’

‘뿔?’

데이지가 잘려 나갔던 뿔을 크루이트에게 건네고 있었다. 그리고 이걸 받아든 크루이트는?

콰직!

갑자기 자신의 뿔을 박살 내기 시작했다. 그러며 외친다.

“세계 방벽이여. 여기 제물을 바친다. 나를 지켜라!”

이해하기 어려운 진행 앞에, 일행들은 멍청하니 눈만 멀뚱거리고 있을 때였다.

쿠쿠쿠쿠쿠쿠….

저 드높은 하늘이 다시금 거대한 어둠으로 물드는 게 보였다.

그러더니 말도 안 되는 광경이 펼쳐졌다.

쩌저저저저저저적….

어둠 사이로 균열이 발생하는가 싶더니, 하늘이 부서지고 갈라지며 거대한 손이 등장했다.

입이 쩍 벌어졌다.

단순히 미터 단위가 아니라 킬로미터 단위를 아득히 초월하는 거대한 손 하나가 북극을 덮쳐 오고 있었다.

충격적인 광경에 일행들의 사고가 멎어 버리는 가운데, 크루이트가 외쳤다.

“나는 더 이상 너의 권속이 아니다!”

그 순간 천둥성처럼 하늘이 울었다.

[너는 내 것이다!]

울림은 음성이 되어 의지를 전했다.

“나는 더 이상 마왕이 아니다!”

크루이트가 재차 외쳤다.

[너는 내 것이다!]

하늘은 똑같이 울었다.

“나는 패했고, 직위를 박탈당했다. 인장은 떠났다. 나는 자유다!”

선언하듯 외쳤다.

[너는 내 것이다!]

“아니다. 너의 마왕은 저기 있다!”

그는 자신의 아들 사일론을 가리켰다.

“끄아아아아악!”

인장의 계승 작업에 의해, 끝없이 불타오르는 사일론이 보였다.

하지만 하늘은 허락하지 않았다.

[너는 내 것이다!]

크루이트가 구겨진 얼굴로 외쳤다.

“세계의 방벽이여 나를 지켜라!”

그건 조금은 억지가 있는 작업으로서, 앞서 알파 세계를 경험하던 당시, 그는 엔트라넷에 접속했고 그곳에 자신의 숨결을 남겨 놨다.

제단을 설치한 것이다.

그리고 오늘, 제물을 올렸다.

마왕의 뿔!

그야말로 최고의 물건이었다.

얼음마녀 데이지는 마냥 관전만 하고 있던 건 아니었다. 그의 제물을 바치기 위한 신녀로서, 몸가짐을 단정히 한 채 의식을 준비하고 있었다.

그 때문에 뿔을 박살 내기 무섭게 먼지가 되어 세계로 흩어진 것이다.

분명 억지가 있는 상황이지만, 그래도 세계가 자신의 뜻을 제대로 이해했다면?

‘받아들일 것이다!’

만약 자신의 예측이 빗나간다면?

둘 중 하나였다.

‘뒈지거나….’

다시 노예가 되는 것이다.

점차적으로 거대한 손이 가까워지고, 크루이트의 안색이 어두워지는 가운데, 변화가 발생했다.

끼이이이이익….

어둠의 균열이 일그러지며 조금씩 크기를 좁혀 가는 게 보였다. 그에 따라서 다가들던 거대한 손 역시 속도를 줄이더니, 이내 멈춰 버리는 것이 보였다.

‘됐다!’

크루이트의 입가에 미소가 걸렸다.

세계가 그의 뜻을 읽은 것이다.

두 주먹을 불끈 쥔 크루이트가 외쳤다.

“나는 자유다!”

하늘이 사납게 울었다.

[너는 내 것이다!]

방벽의 족쇄가 작용하며 거대 손의 진행은 멈췄지만, 그렇다고 해서 뒤로 밀려난 것은 아니었다.

이를 보며 크루이트는 두 번째 카드를 뽑았다.

서걱!

제 손으로 자신의 남은 뿔마저 잘라 냈다.

그에 따라서 다시금 마기가 크게 줄어드는 가운데, 크루이트는 그 거대한 뿔을 입가에 가져갔다.

콰드득… 콰득… 콰드드득….

그러더니 상어 같은 날카로운 이빨로, 자신의 뿔을 아작아작 씹어 먹었다.

그에 따라서 엉망이 됐던 몸뚱이가 회복되기 시작하는데, 자신의 뿔을 전부 삼켰을 때, 크루이트는 완벽한 만전의 상태로 되돌아가 있었다.

[너는 내 것이다!]

하늘에서 여전한 울림이 터져 나왔다.

크루이트가 외쳤다.

“나는 누구의 것도 아니다!”

그와 동시에 그의 전신에서 거대한 어둠이 일어났다. 그것은 이내 하나의 형태를 취하는데, 누가 봐도 검이었다.

족히 수백 미터는 될 법했는데, 바로 위로 수십 킬로에 달하는 거대한 손이 있는 터라, 그 거대한 크기에도 불구하고 묘하게 초라해 보일 뿐이었다.

하지만 결과물은 초라하지 않았다.

번쩍!

크루이트가 몸을 크게 흔들고, 어둠의 검이 불을 뿜으니, 하늘을 채운 거대한 손바닥 위로 핏빛 강물이 흘러내렸다.

검광이 수십 킬로를 가르며 흔적을 남긴 것이다.

[크아아아아아….]

그와 동시에 비명이 터져 나오고, 점차적으로 거대한 손이 밀려나는 게 보였다.

크루이트가 외쳤다.

“꺼져라! 미쳐 버린 악마들의 신이여.”

하늘이 비명으로 울렁대는 가운데, 어느새 거대한 손은 균열 너머로 자취를 감췄고, 어둠은 가라앉았으며 창공은 푸르름을 다시 뽐내고 있었다.

쏟아지는 햇빛 속에서

전쟁은 끝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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