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Epilogue….
전쟁은 끝나지 않았다.
세계는 여전히 몬스터의 위협을 받으며, 하루하루 불안감 속에 살아가고 있었다.
대환란에서 마왕까지 등장했음에, 내심 진정한 평화를 기대하는 이들이 많았지만, 여전히 균열은 갈라졌고 게이트는 등장했으며 던전은 솟아났다.
그저, 과거 최초의 대격변이 그러하듯, 대환란이란 이름의 커다란 대격변이 있었을 뿐이었다.
마왕이란 악몽이 스며 있는 최악의 대격변이었다.
“그래도 최악은 사태는 막았잖아?”
강하나가 그리 말하며 새신랑을 바라봤다.
이에 새신랑, 마루가 쓰게 웃으며 그녀의 배를 쓰다듬었다. 불룩 솟아 있는 강하나의 배가 보였다.
자신의 아이였다.
‘그때 확실히 끝냈더라면….’
이 아이가 태어나는 세상은 완벽한 평화로 채워 넣을 수 있었을 텐데, 매번 아쉬움이 드는 건 어쩔 수가 없었다.
대환란에서 돌아온 뒤, 1점대까지 떨어진 컨디션으로 인해 병실에서 죽음의 문턱을 넘나들었다.
생사의 경계 속에서 삼도천을 구경하고 있을 때, 환청처럼 들려오는 그녀의 음성이 있었다.
[죽지 마! 우리 애를 위해서라도….]
사자유희가 전해 준 강하나의 간절한 외침은 그의 의지를 일깨웠고, 기어이 눈을 떴다. 그리고 자신의 삶을 볼 수 있었다.
그렇게 신호 위반으로 후다닥 결혼 준비를 한 뒤, 번갯불에 콩 볶아 먹듯이 식을 치렀다.
물론, 트랩퍼의 명성 덕분에 짧은 준비 기간에도 불구하고, 최고의 결혼식을 준비할 수 있었다.
대환란의 여파로 인류가 슬픔에 잠긴 상황에서, 세계적인 영웅의 결혼식이란, 하나의 행사거리가 되어 주면서 전 세계의 축복까지 받아 냈다.
그야말로 최고의 결혼식이었다.
잠시 지난 생각에 빠져 있노라니, 그의 머리를 쓰다듬는 손길이 느껴졌다.
“이번에 잘 막았으니까. 다음에도 잘 막을 수 있을 거야.”
마루의 생각을 알고 있다는 듯, 그녀는 그리 말하며 마루를 안심시켜 줬다.
그러다가 문득 생각났다는 듯 물었다.
“맞다. 선희 결혼식은 어떻게 할 거야?”
미국의 영웅 이선과 한국의 첫 번째 랭커 강하나의 결혼식이 곧 열린다. 청첩장이 날아오긴 했는데, 하필이면 미국에서 열리는 터라 걱정이었다.
이유인즉,
[우리 미국의 영웅이 대환란에 한국을 지킨 걸로 말이 많습니다. 그러니 특별한 행사만큼은 미국 내에서 치러 주십시오.]
미국 협회의 요청에 의한 것이다.
겨우 한국 내 분위기를 반전시킨 상황에서, 갑자기 미국에서 불길이 일어나면 안 되는 터라, 이선희가 먼저 협회의 요청을 받아들이며, 멀리 미국에서 성대한 결혼식이 준비됐다.
강하나의 물음에 마루가 고개를 저었다.
“언제 꼬물이가 나올지 모르니까. 그쪽은 아예 신경을 꺼. 중간에 시간 내서 나 혼자 얼굴만 비치고 올 테니까.”
이선희와 강하나의 친분이 생각 이상으로 깊다는 건 알지만, 이번만큼은 과감히 커트해야 했다.
“치….”
입술을 삐죽이는 강하나의 모습에, 이번엔 마루가 그녀를 다독이며 진정시켜 줬다. 그렇게 서로의 손길 속에서 온기를 나누는 사이, 어느새 밤이 깊었다.
마루는 강하나를 재워 준 뒤 조용히 베란다로 향했다.
결혼 관련한 이야기를 해서 그럴까?
‘레오 그 녀석을 어떻게 해야 하나….’
자신의 여동생 정다솜에게 끊임없이 프러포즈를 하며 치이는 녀석이었는데, 그가 이 스토커적인 집착에도 개입하지 않는 건?
‘다솜이 고것도 마음이 있는 것 같단 말이지.’
생각해 보면 조각 같은 외모에 집안도 좋고 돈도 잘 버는데, 1등 신랑감이긴 했다.
그 때문일까?
괜히 첫 번째 제자가 신경 쓰였다.
‘에휴….’
임시안도 정다솜을 좋아하는 걸 알기에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지만, 남의 연애사는 참견하는 게 아니라는 조언을 상기하며, 휘휘 고개를 젓는 것으로 털어 버렸다.
그러다가 문득 뭔가를 발견한 듯, 쓰게 웃어 버렸다.
‘하… 또 저거네.’
밤하늘 위 어지러이 펼쳐져 있는 오로라를 본 까닭이었다.
장관이란 말이 아깝지 않았다.
이곳이 남극이나 북극이라면 웃으며 즐길 수 있는 현상일 것이다. 하지만 이곳은 대한민국의 수도 서울이었다.
[마신의 상흔]
지난 북극 대결전의 여파가 세계에 남아 버렸다.
무려 최고위급의 신격이 차원을 침범한 것이다. 당연히 그 상흔이 새겨질 수밖에 없었고, 그로 인해서 곳곳에서 저 같은 기현상이 발생하고는 했다.
시간이 흐르면 세계 방벽에 의해 치유될 것이라고는 하나, 단순히 1~2년 단위는 아니리라.
‘100년? 200년?’
그의 생전에는 회복되는 걸 볼 수 없을 거라 여겼다.
빠른 회복을 위해선 게이트를 비롯한 세계 균열 현상이 끝나야만 하나, 여전히 마계와는 연결되어 있었고, 그만큼 상흔 치유에도 시간이 걸릴 터였다.
하지만 최악은 아니었다.
‘사일론….’
저 마계의 새로운 지존을 떠올렸다.
반인반마!
실로 특수한 존재가 마계의 하늘을 차지했다.
그 결과,
[인정할 수 없다!]
[어디 반푼이 따위가!]
[전쟁이다!]
마계 사천왕은 반기를 들었고, 저 너머 세계는 치열한 전쟁 중이었다.
‘아니, 삼천왕이지.’
북마계의 왕 하르칸은 크루이트를 따라갔다.
‘어디로 갔으려나….’
북극 하늘을 뒤덮던 거대한 손, 마신을 베어서 쫓아냈던 크루이트는 지구를 떠났다. 쓸 만한 종이 필요하다며 하르칸을 데려간 것이다. 영혼 종속의 계약으로 인해 거부할 수도 없었다.
크루이트는 뿔을 잃고 마기도 잃었으며 육신까지 무너지며 존재의 격이 낮아졌다.
날개가 사라지고 꼬리가 지워졌다.
‘인간처럼 변했었지.’
그 상태에서 크루이트는 말했다.
[한동안은 여행 좀 다녀야지.]
용군주 라미처럼 차원을 떠돌며 유희를 즐기겠다고 했다.
짐작건대 그 와중에 잃어버린 격을 찾고, 새로운 신격이 되는 게 목적이 아닐까 싶었다.
사일론의 인장 각인 작업이 진행되는 동안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고, 그 때문에 유추할 수 있는 부분이었다.
[인장의 계승은 마계에서 이뤄져야 하는 거야.]
이런 타계에서 펼쳐져선 안 되는 것이다. 그도 그럴 게 인장에는 마신의 숨결이 깃들어 있기 때문이었다.
그 말에 존슨은 불쾌한 표정으로 크루이트를 바라봤었다.
[핏줄을 제물로 삼은 게 싫은가 본데, 나 마족이다.]
기본적인 사고가 달랐다.
[그리고 저놈은 괜찮아.]
끊임없이 비명을 지르며 계승 작업을 하고 있는 사일론을 가리키는데, 그 처절한 모습에 크루이트가 말했다.
[원래 계승식은 저렇게 길게 안 가. 우리는 짧고 굵게. 간단히 끝내는 걸 좋아하거든.]
그럼에도 불구하고 길어지는 건?
[흐흐… 마신이 반쪽짜리 혈통이 싫은 거지.]
인장이 거부하는 것이다. 마신은 인간의 핏줄이 제 세상의 하늘을 차지하는 걸 허락하지 않았다.
[하지만 결국 허락해야지. 제가 세운 규율인데.]
약육강식의 강자존!
적법한 절차에 따라서 그는 졌고 계승식은 진행 중이었다. 그 말처럼 결국 인장은 사일론을 인정했고, 그는 새로운 대마왕이 됐다.
[크하하하하하! 마신이여. 똥 한 바가지 푸짐하게 싸지르고 가마. 똥독이나 올라 뒈져 버려라!]
그러며 북극 하늘을 올라보며 앙천광소를 터트리는 모습에, 사일론이 인상을 구겼던 게 떠올라 슬쩍 웃음이 나왔다.
[내가 똥이냐?]
사일론의 중얼거림도 생각났다.
하나 크루이트의 예언이 들어맞은 듯, 마계는 반인반마 대마왕의 탄생으로 대혼란에 빠져 버렸다.
원래라면 도전이 허락되지 않아야 할 대마왕의 권좌건만, 수많은 마족들의 핏물로 인해 시뻘겋게 얼룩지며 더럽혀지고 있다고 했다.
그 덕분이랄까?
마계는 한동안 지구를 침공하지 못했고, 덕분에 지구로 넘어오는 건 일반 몬스터 정도가 전부였다.
사실 전쟁이 아니더라도 넘어오기가 쉽지 않았다.
‘여기까지 계산한 건지는 모르겠지만….’
크루이트의 갑작스러운 게이트 오픈으로 인해, 그 뒤를 쫓는다며 마계 사천왕들은 지니고 있던 수많은 보화를 쏟아부었다.
그 때문일까?
[그것들 거지라서 한동안 못 넘어와.]
사일론 왈, 따로 통로를 열 여력이 없다는 것이다. 대마왕인 그가 힘을 쓰며 시간을 당길 수 있겠지만, 사일론은 별로 그럴 생각이 없어 보였다.
[여기에도 쳐죽일 놈들이 널렸는데, 굳이?]
뭐 대충 그랬다.
그가 이처럼 마계 사정에 빠삭한 이유?
우웅… 우우우웅….
핸드폰이 울렸다.
―개똥이 님이 100,000원을 결제했습니다.
―개똥이 님이 100,000원을 결제했습니다.
―개똥이 님이 100,000원을 결제했습니다.
―개똥이 님이 1,000,000원을 결제했습니다.
마루가 인상을 와락 구겼다.
“이 똥 같은 새끼가!”
개똥이는 지난 사건 이후, 그가 사일론에게 붙인 별명이었다.
마계 사정에 빠삭한 이유?
사일론이 수시로 찾아와서 미주알고주알 털어놓기 때문이었다.
지구에 있으며 감명을 받기라도 한 듯, 마계에도 따로 휴일을 지정했는데, 그날은 도전을 받지 않는 것으로 되어 있었고, 바로 이 타이밍에 자그마한 소마 분신을 인간계로 넘기는 것이다.
그리고,
―개똥이 님이 100,000원을 결제했습니다.
―개똥이 님이 100,000원을 결제했습니다.
―개똥이 님이 100,000원을 결제했습니다.
―개똥이 님이 100,000원을 결제했습니다.
마루의 지갑이 활어회처럼 펄떡거렸다.
원래라면 사일론은 존슨 관할이지만, 이반나가 칼같이 잘라 버렸다.
[내 남편 거지야.]
[나… 거지 아닌데.]
존슨이 반박해도 소용없었다.
[개거지야!]
[…….]
[실버 박사 유산도 있다면서. 네가 책임져!]
이반나도 임신을 했는데, 그 이후 생활력이 무시무시해져서 마루는 거북목으로 사일론을 받아야만 했다.
―개똥이 님이 100,000원을 결제했습니다.
―개똥이 님이 100,000원을 결제했습니다.
―개똥이 님이 100,000원을 결제했습니다.
―개똥이 님이 100,000원을 결제했습니다.
“으아아아~! 이 새끼가 정말! 현질을 얼마나 하는 거야.”
마루가 미쳐 날뛰며 사일론이 있는 안가로 뛰어가려는 찰나였다.
“아아악!”
안방에서 비명이 터져 나왔다.
깜짝 놀란 마루가 사자유희를 타고 안으로 들어갔다. 어찌나 급했던지 그 짧은 거리를 순간이동으로 넘어가 버린 것이다.
방으로 들어가니 강하나가 배를 잡고 신음하며 말했다.
“꼬… 꼬물이가 나오려나 봐.”
“오오오오!”
더 이상 사일론은 안중에도 없었다.
―개똥이 님이 1,000,000원을 결제했습니다.
―개똥이 님이 1,000,000원을 결제했습니다.
―개똥이 님이 1,000,000원을 결제했습니다.
―개똥이 님이 10,000,000원을 결제했습니다.
신난 활어회가 탭 댄스를 추기 시작했다.
* * *
대환란은 세계에 어마어마한 상흔을 남겼다.
마신의 흔적도 그렇지만, 수많은 인명 및 재산 피해 역시 무시할 수 없었다.
그 때문에 트랩퍼의 명성이 전설급으로 상승하긴 했다.
그가 머문 자리에선 그 모든 피해가 최소화됐기 때문이었다. 대부분이 피해는 그가 머물지 않았던 자리에서 발생했고, 그 때문에 그를 거부했던 국가나 단체는 크게 후회했다.
그 때문일까?
트랩퍼가 소속된 혜성 길드와 특수 1팀은 이제 세계적인 길드이자 특수팀이 되었다.
그런 이들과 대칭을 이루듯, 이면을 대표하는 팀도 있었다.
팀 수호자!
10명도 안 되는 소수 정예의 특수팀으로서, 혜성 특수 1팀과 달리 길드 규모가 받쳐 주는 게 아니건만, 그들은 겨우 한 자릿수 남짓의 인원으로 이면을 대표하는 특수팀으로 꼽히고 있었다.
아이언슈트!
그가 그곳의 팀장이기 때문이었다.
트랩퍼가 전설적인 존재라면?
아이언슈트는 존슨과 함께 신화적인 존재가 되어 있었다.
지난 북극 대환란은 실버 박사에 의해서 세계 전역으로 중계되지 않았던가.
특히나 마신이 등장하던 장면은 가히 압권이었다.
수십 킬로에 달하는 거대한 손!
딱 등장 신 이후로 화면이 끊어져서 그 이후의 내용까진 모르지만, 푸른 하늘이 돌아온 것으로 승리했다는 것만은 확실히 알 수 있었다.
신격이 강림했고 이를 물리쳤다.
당연히 신화적인 존재로 불릴 수밖에 없었다.
곳곳에서 관련한 사당이 세워지고 여러 종교까지 만들어질 정도니, 더 말해 무엇하랴.
물론, 그렇다고 해서 그들에게 모든 걸 맡기며 영웅적 희생만 강요하는 건 아니었다.
사람들은 각자 나름의 방식으로 다음을 준비하고자 했다.
혹여 또다시 대환란이 발생한다면?
상상만으로도 많은 사람들이 두려움에 몸서리를 쳤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아갈 수 있는 용기를 지니고 있었다.
[구현동화!]
그 특별한 스킬이 또다시 현현하며 인류를 구원해 줄 거라 믿기 때문이었다.
그런 이유로 오늘도 많은 이들이 PP로 향했다.
로그인 더 헌터!
꿈과 희망이 그곳에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