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7. 스파르타쿠스 (8/326)

  # 8 7. 스파르타쿠스 ──────────────── 로마의 일곱 언덕을 둘러싼 세르비우스 성벽 문 앞에 이른 시간부터 수많은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한 눈에 봐도 위세 있는 귀족들이라는 걸 알 수 있을 정도로 화려한 마차들이 줄을 이었다.

  귀족들이 호위로 데려온 노예들까지 더해져 성문 근처는 발 디딜 틈이 없을 정도로 혼잡한 상태였다.

  세르비우스 성벽은 로마가 아직 약소국가일 때 만들어졌기 때문에 규모가 상당히 작았다.

  초창기야 로마의 일곱 언덕을 둘러싸는 것만으로도 충분했지만 지금의 로마는 너무나도 커져버렸다.

  이미 도시는 성벽 밖으로 확장되어 성벽의 의미 자체가 사라진 상태였다.

  마르쿠스를 따라온 다나에는 이 조화롭지 못한 풍경을 연신 신기한 눈빛으로 관찰하는 중이었다.

  "도련님, 성벽이 도시 안쪽에 있는 경우는 처음 봐요."

  "어차피 나중가면 없어질 거니까 신기하면 지금 실컷 봐둬."

  "아, 철거할 계획이 있나보죠?"

  "한 30년쯤 뒤에."

  훗날 로마의 권력을 잡은 카이사르는 이 성벽이 도시확장에 방해가 된다고 판단해 헐어버린다.

  마르쿠스는 이렇게 눈으로 직접 보니 카이사르의 판단이 백번 옳았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이쯤 되니 어떤 사람일지 한번쯤은 실제로 보고 싶네. 앞으로의 계획을 구상하는데 도움도 될 테고.'

  지금 시점이라면 카이사르는 아직 로도스 섬에서 유학하고 있을 시기다.

  역사상 기록이 맞다면 그는 내년에 로마로 돌아올 것이다.

  그때가 되면 마르쿠스가 찾지 않더라도 아마 그쪽에서 먼저 찾아올 것이다.

  카이사르는 크라수스 가문에 막대한 돈을 빌렸다고 기록되어 있으니 말이다.

  "···아무튼 이제 슬슬 출발할 때가 된 것 같은데. 준비는 다 했겠지?"

  "물론이죠. 셉티무스님께서 최종점검을 하고 계시니 곧 출발할 수 있을 거예요."

  "좋아. 그럼 마차로 돌아가자."

  마르쿠스가 막 다나에를 데리고 마차에 오르려고 했을 때다.

  뒤편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그를 돌려세웠다.

  "여~마르쿠스, 요새 얼굴 보기가 왜 이렇게 힘들어?"

  "카시우스냐."

  과거의 마르쿠스와 절친했던 친우가 반갑게 인사를 건네며 다가왔다.

  다른 친구들과 달리 카시우스는 별로 대단한 집안은 아니었다. 그래도 지적이고 대범한 구석이 있어 많은 이들이 그를 가까이했다.

  마르쿠스와 곧잘 어울리긴 했어도 그렇게까지 구제불능은 아니었다.

  "최근에는 가문의 사업에 관여하고 있다며? 나중에 돈 많이 벌면 무이자로 좀 빌려줘."

  "확실하게 갚기만 하면 못 빌려줄 것도 없지."

  "하하하, 역시 화통하다니까. 그건 그렇고 옆에 있는 노예가 소문의 그 애냐?"

  카시우스는 흥미를 숨기지 않고 다나에를 훑어보았다.

  마르쿠스가 자연스럽게 그녀의 앞을 가리는 형태로 한 걸음 앞으로 나서며 물었다.

  "소문이라니?"

  "진짜 몰라? 네가 최근 모임에 뜸한 이유가 어린 여자노예랑 워낙 재미나게 놀고 있어서 그런 거라는 소문이 파다한데."

  "뭐? 누가 그따위 개소리를···그거 헛소문이야. 설마 그런 소문을 믿는 건 아니지?"

  마르쿠스가 고개를 돌려 다나에의 표정을 살폈다.

  그녀는 살짝 홍조를 띤 채 고개를 푹 숙이고 있었다.

  두 사람의 반응을 본 카시우스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뭐야, 헛소문이었어? 네가 갑자기 어린 여자노예를 들였다고 해서 진짜인 줄 알았는데. 그럼 설마 아직 건드리지도 않은 거냐?"

  "건드리긴 뭘 건드려. 아직 어린 애잖아."

  "아~어린 쪽은 취향이 아니었어? 그럼 묵혀두고 있는 거구만. 하긴, 고기도 포도주도 여자도 뭐든지 숙성을 시켜야 맛이······."

  "그 얘긴 그쯤하고. 이번에 갈 카푸아는 어때? 검투사들이 정말로 그렇게 끝내줘?"

  도저히 들어줄 수 없는 음담패설이 계속되자 마르쿠스는 억지로 화제를 전환했다.

  카시우스는 자신이 불쾌한 소리를 했다는 자각이 없어서인지 태연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진짜로 죽여준대. 발레리우스 씨족의 루키우스 알지? 걔가 카푸아에 갈 일이 있어서 겸사겸사 구경을 했었는데 입이 떡 벌어질 정도래. 다른 검투사들은 여기랑 비슷한데 그중 두 명은 확실히 격이 다르다고 하더라."

  "그중 한 명이 소문이 자자한 스파르타쿠스야?"

  "그럴 걸? 걔가 현재 카푸아 검투사 중 최강이라고 하니까. 이번에 아주 눈 호강 제대로 하고 오겠어. 그렇지?"

  마르쿠스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스파르타쿠스는 아마 로마관련 인물 가운데 한손에 꼽힐 정도로 유명한 이일 것이다.

  역사에 별 관심이 없는 사람들도 스파르타쿠스하면 자연스레 검투사를 떠올린다.

  이 당시 검투사들의 대우는 그야말로 천차만별이었다.

  현대의 스포츠 스타처럼 인기를 끄는 이들도 있었으나 노예만도 못한 대우를 받는 자도 많았다.

  스파르타쿠스는 이런 동료들을 규합해 반란을 일으킨다.

  이때가 기원전 73년이라고 하니 앞으로 일 년 뒤면 일어날 미래다.

  로마 지도부는 스파르타쿠스의 봉기를 처음에는 천한 노예들의 반란 정도로 치부했다.

  하지만 연달아 군이 격파당하고 급기야 집정관의 토벌군마저 패배하자 사태의 심각성을 인지한다.

  이후 만반의 준비를 갖춘 로마는 무려 8개 군단을 투입해 압도적인 군세로 반란군을 찍어 눌렀다.

  이 로마군을 총 지휘하게 되는 이가 마르쿠스의 아버지인 크라수스다.

  스파르타쿠스의 반란은 결국 실패했으나 완전히 무의미한 것은 아니었다. 이 반란을 기점으로 로마에서 검투사와 노예에 대한 대우가 조금이나마 나아졌다고 전해지기 때문이다.

  그리고 스파르타쿠스가 남긴 자유에 대한 갈망과 자유를 억압하는 자에 대한 저항은 수천 년 뒤의 미래까지 널리 전해지게 된다.

  마르쿠스는 어떻게든 이 역사적인 인물과 만나 이야기를 나누어 보고 싶었다.

  물론 자신의 편으로 끌어들일 수 있다면 더 바랄 게 없다.

  카시우스를 떠나보낸 마르쿠스는 마차에 앉아 생각을 정리했다.

  드라마와 영화로까지 나오는 역사적인 인물을 눈으로 직접 본다는 건 분명 진귀한 경험일 것이다.

  하지만 마냥 들뜰 수만은 없다.

  스파르타쿠스가 반란을 일으키는 건 결국 검투사들의 처우가 시궁창이었던 까닭이다.

  이건 게임이나 놀이가 아니라 엄연한 현실이었다.

  비참하게 죽어나가는 사람은 지금 이 순간에도 생기고 있다.

  이 부분을 잊어서는 곤란하다.

  '검투사들의 처우를 어떻게든 개선할 필요는 있겠지만···어떻게 하면 좋을까. 아직 이거다 싶은 게 확 떠오르진 않아.'

  애석하게도 마르쿠스의 상념은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마차가 가도를 따라 달리기 시작하자 몸 전체가 들썩여 진득하게 생각을 이어나갈 수가 없었다.

  고대의 마차를 처음 타본 마르쿠스는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절망적인 승차감이었다.

  반면 옆에 탑승한 셉티무스와 다나에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 평온했다.

  마르쿠스로서는 도저히 이해를 할 수 없었다.

  딱히 현대의 자동차 같은 탑승감을 바란 건 아니다.

  고대의 기술이 떨어진다는 건 사실이니 승차감이 나쁠 거라는 예상은 했었다.

  하지만 이 정도일 줄은 정말로 몰랐다.

  "이거 서스펜션 같은 게 아예 없는 건가? 충격이 그대로 엉덩이로 다 전해지는 것 같은데······."

  "서스펜션? 그게 뭡니까?"

  "아니. 그냥 혼잣말이야."

  셉티무스의 반응만으로도 마차에 제대로 된 충격흡수 장치가 없다는 건 알 수 있었다.

  이 시대의 사람들이 어째서 마차보다 가마를 더 선호하는 지 절로 이해가 갔다.

  가마는 가마꾼이 관절과 근육으로 충격을 흡수하기 때문에 위에 탄 사람이 피로를 느끼지 않는다.

  마르쿠스도 몇 번 타봤기 때문에 경험으로 잘 알고 있었다.

  그때의 경험으로 마차의 승차감을 대충 재단한 게 크나큰 실수였다.

  "셉티무스, 카푸아까지는 얼마나 걸린다고 했지?"

  "마차로 10시간 정도는 달려야 하는 거리입니다. 빨라도 내일이나 도착하겠죠."

  "컥! 10시간이나 이걸 참아야 한다고?"

  마르쿠스의 안색이 사형선고를 들은 죄인처럼 창백해졌다.

  달린지 몇 분 되지도 않았는데 벌써부터 엉덩이가 뻐근한 느낌이었다.

  그런데 이걸 10시간이나 더 참아야 한다는 건 고문이나 마찬가지다.

  마르쿠스는 처음으로 카푸아로 가겠다고 한 결정을 후회했다.

  하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 후회해봐야 돌이킬 수는 없다 그리고 최대한 긍정적으로 생각해보면 수확이 아예 없는 건 아니었다.

  이 개떡 같은 마차의 구조를 개량할 수 있다면 상당한 돈이 될 거라는 확신을 얻지 않았는가.

  서스펜션의 정확한 설계법은 모르지만 차축과 차체 사이에 무언가를 놓아서 충격을 흡수하는 거라는 원리는 알고 있다.

  원리만 알고 있으면 원시적인 형태의 초기발명품 정도는 어떻게든 구현이 가능할 것이다.

  상당한 시행착오가 예상되지만, 그건 금력과 인력으로 커버가 가능하다.

  마르쿠스는 무슨 수를 써서라도 마차의 탑승감을 개선하기로 굳게 다짐했다.

  이렇듯 마르쿠스의 첫 여행길은 필요는 발명의 어머니라는 격언을 온몸으로 느끼는 시간이 됐다.

  ※※※※

  인고의 시간을 거쳐 마르쿠스는 드디어 카푸아에 도착했다.

  카푸아는 캄파니아 제일의 도시답게 상당한 규모를 자랑했다.

  마르쿠스는 카푸아에 도달하자마자 안내받은 숙소에서 그대로 만 하루 동안 뻗어 있었다.

  여행의 노고가 풀린 뒤에는 셉티무스나 다나에와 함께 도시 이곳저곳을 구경하며 시간을 보냈다.

  거리 어디를 돌아다녀도 곧 열릴 검투사 시합에 대한 기대로 도시가 술렁이는 걸 느낄 수 있었다.

  "이번에는 스파르타쿠스도 안 될걸?"

  "안 되긴 뭐가. 스파르타쿠스가 지는 거 봤어? 무패라고. 무패의 검투사!"

  "얼씨구, 소문도 못 들었어? 이번에는 무려 세 명이랑 동시에 싸운다잖아. 아무리 강하다고 해도 한 명이 세 명을 어떻게 이겨?"

  "그럼 자네는 스파르타쿠스가 지는 쪽에 걸라고. 나는 이긴다는 쪽에 걸 테니까."

  "그래. 어디 누구 예상이 맞는지 한 번 보자고."

  그야말로 중구난방, 수많은 남성들이 침을 튀기며 서로 말을 나누고 있었다.

  식당이나 술집을 가 봐도 역시 대화의 주제는 검투사 시합이었다.

  상당히 나이가 든 노인들마저 답지 않게 열정적인 목소리로 비슷한 이야기를 나누는 중이었다.

  "무조건 스파르타쿠스야. 내가 검투사 시합만 40년 가깝게 봤지만 그런 검투사는 본적이 없어. 얘한테 걸면 아무리 밑져도 본전이라고."

  "허허, 내 자네가 처음에 한 말을 기억하는데 이제 와서 무슨 소리를. 처음에는 크릭수스가 최고라고 하지 않았나. 스파르타쿠스는 겉만 그럴싸한 애송이라며."

  "아, 그거야 스파르타쿠스가 애송이일 때의 이야기고. 그리고 내가 뭐 틀린 말 했나? 크릭수스도 스파르타쿠스와 거의 대등한 검투사가 아닌가. 저번에 그 둘이 붙었던 시합 기억 안나?"

  "당연히 기억하지. 그 전설적인 검투 시합을 어떻게 잊겠나. 크···그야말로 피가 끓는 대결이었지."

  "그럼 다들 스파르타쿠스와 크릭수스 애새끼한테 거는 거여?"

  "생각이 있다면 그러겠지."

  "그러면 난 이번에 갈리아에서 데려왔다는 놈한테 한 번 걸어볼련다. 혹시나 이놈이 이겨준다면 그야말로 대박이 아니겠는감?"

  "얼씨구, 그 나이 먹고 아직도 이 판의 진리를 모르나? 일확천금 노리고 뭐하는지도 모를 잡놈한테 돈을 걸면 무조건 잃게 되어 있어!"

  노인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던 마르쿠스는 절로 흥미가 동했다. 대체 어느 정도나 되기에 도시 전체가 이렇게 들썩이는 것일까.

  검투사 시합이라면 환장하는 로마에서도 이 정도로 열정적인 시민들은 별로 없었다.

  그만큼 스파르타쿠스와 크릭수스의 실력이 출중하다는 뜻이리라.

  당장 같이 온 원로원의 귀족 자제들만 해도 이번 검투사 시합에 꽤나 큰 돈을 걸 예정이라 했다.

  카푸아의 주민들 역시 돈을 걸지 않겠다는 사람을 찾아보기 힘들었다.

  오가는 판돈의 규모만 봐도 경기에 대한 관심이 어느 정도인지 견적이 나왔다.

  다나에도 분위기에 휩쓸렸는지 조심스레 질문을 던졌다.

  "도련님도 돈을 거실 건가요?"

  "글쎄···나는 피가 튀고 사람을 죽이는 쇼에는 그리 흥미가 동하지 않아서."

  "정말요? 검투사 시합을 싫어하는 사람은 로마인이 아니라고 들었는데······."

  "사실 여기 너를 데려온 것도 좀 후회하고 있어. 노예 출신인 사람들이 서로 죽고 죽이는 걸 보면 네 기분이 좋지 않을 것 같아서."

  다나에가 눈을 동그랗게 뜨더니 손가락을 꼼지락 거리며 배시시 웃었다.

  "감사합니다. 배려해주셔서 기뻐요. 하지만 전 아무렇지도 않아요. 검투사 시합은 로마를 상징하는 문화기도 하고 제가 어떻게 할 수 있는 게 아니잖아요."

  "그래? 그래도 나는 이 검투사 시합을 어떻게 손보면 더 안전하고 돈이 될 수 있는지 구상을 좀 해보려고 해. 그렇게만 된다면 나도 마음 놓고 시합을 관전하면서 환호를 보낼 수 있을 테니까."

  "그게 가능할까요?"

  "글쎄···그걸 확인하기 위해서라도 일단 시합을 보긴 봐야겠지. 답은 그 다음에 내리기로 하고."

  마르쿠스는 거리를 돌아다니며 검투사 시합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는 사람들의 반응을 계속해서 수집했다.

  현재 기대감은 그야말로 최고조에 달해 있었다.

  스파르타쿠스와 크릭수스라는 절대강자에 대항하기 위해 갈리아에서 이름난 투사를 새로 공수한 것이다.

  술집에서 노인들의 대화에 나왔던 갈리아인은 바로 이 사람을 가리키는 것이었다.

  갈리아 투사는 크릭수스를 3분만에 때려눕히겠다고 선언하며 판돈을 건 사람들을 환호케 했다.

  거리의 벽에는 온통 경기를 예고하는 광고가 새겨졌다.

  경기를 주최한 이들에게 고용된 사람들이 거리 곳곳에서 시합에 대한 기대감을 증폭시켰다.

  그렇게 시간은 흘러, 마침내 검투사 시합의 날이 밝았다.

  카푸아 온 시내를 들끓게 만든, 그리고 앞으로 한층 더 그 열기를 더할 시합이 시작된 것이다.

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