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 10. 스파르타쿠스 ──────────────── 바티우스 검투사 양성소에서 가장 넓고 화려한 방.
귀빈을 맞이할 때만 쓰이는 이곳에서 마르쿠스는 태평한 모습으로 과일을 먹고 있는 중이었다.
그의 뒤편에 선 다나에가 오히려 더 초조한 듯 보였다.
"도련님, 셉티무스 님도 함께 계시는 게 좋지 않을까요? 혹시 잘못되기라도 하면······."
"네가 걱정하는 일이 벌어지면 셉티무스가 있든 없든 아무것도 바뀔 게 없어."
"그래도 굳이 그분을 내보낼 것까지는 없지 않았을까요?"
"무슨 이야기가 오고 갈지 모르니까. 셉티무스는 이제 나를 믿는 것 같기는 해도 엄연히 아버지의 사람이야. 완전히 내 사람이 됐다는 확신이 들기 전까지는 이런 자리에 동석시킬 수 없어."
그 말을 들은 다나에는 배시시 웃으며 손가락을 꼼지락거렸다.
마르쿠스의 말을 해석하자면 그녀는 완전히 마르쿠스의 사람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는 뜻이 된다.
가슴 안쪽이 굉장히 간질간질한 기분이었다.
"그러면 스파르타쿠스라는 검투사분도 도련님의 사람으로 만드실 계획인가요?"
"할 수만 있다면 그렇게 하고 싶지. 그래도 일단 이야기를 나눠봐야 내가 거둘 수 있을 만한 사람인지 아닌지 판단이 설 것 같아."
"그 검투사분도 눈이 있다면 분명 도련님을 섬기고 싶을 거예요."
마르쿠스는 피식 웃으며 과일이 든 바구니를 다나에에게 건넸다. 그녀는 사양하지 않고 과일을 집어 입으로 가져갔다.
다나에의 무한한 신뢰와는 반대로 마르쿠스는 가능성을 절반으로 보고 있었다.
훗날을 생각한다면 반드시 무력적인 측면에서 믿고 맡길 만한 이들을 포섭해야 한다.
재물이나 정치는 마르쿠스가 충분히 할 수 있지만, 아무래도 군사적인 면은 자신이 없었다.
로마에서 권력을 잡으려면 군공과 군사적 재능은 선택이 아닌 필수다.
마리우스와 술라, 그리고 카이사르.
로마의 정점에 섰던 이들은 최후의 수단으로 모두 군대를 사용했다.
군사적 재능이 일천했던 케이스로는 아우구스투스가 있으나 대신 그에겐 부족한 부분을 보완해줄 심복이 있었다.
마르쿠스는 아우구스투스의 방법을 벤치마킹하기로 했다.
본인의 능력이 떨어진다면 그것을 채워줄 부하들을 데려오면 되는 것이다.
스파르타쿠스는 군사적인 측면에서 개인의 무력을 상징하는 존재였다.
카이사르가 암살로 생을 마감한 것만 봐도 믿을 수 있는 호위의 존재는 필수적이다.
개인의 무력을 넘어서 집단의 힘을 통솔할 인재도 이미 점찍어 두었다.
하지만 그쪽은 아직 영입할 시기가 아니다.
게다가 후자는 백 퍼센트 확률로 포섭할 자신이 있었으나 스파르타쿠스는 조금 이야기가 달랐다.
그가 로마에 가지고 있을 적개심이 어느 정도인지 알 수가 없었던 까닭이다.
'스파르타쿠스의 반란은 시기상 지금부터 1년 후. 그랬다면 아직 직접적인 반역의 마음을 품지는 않았을 테지만, 분노가 거의 임계점에 달해 있을 확률은 충분해.'
증오로 눈과 귀가 막혀있다면 아무리 좋은 말을 해도 받아들여지지 않을 가능성도 높았다.
그쯤 되면 이성의 문제가 아니라 감성의 문제로 흐르기 마련이다.
'결국 내가 얼마나 그의 마음을 풀어줄 수 있는지에 달린 건가.'
마르쿠스가 얼추 생각을 다 정리하자 마침 타이밍 좋게 누군가 방문을 두드렸다.
"들어가도 되겠습니까."
낮고 무뚝뚝한 목소리였다.
마르쿠스가 바로 대답했다.
"괜찮아. 들어와도 돼."
허락이 떨어지자 방문이 열리고 한 사람의 그림자가 모습을 드러낸다.
"처음 뵙겠습니다. 스파르타쿠스라고 합니다. 저를 찾으셨다고요?"
강철을 연상시키는 존재감은 경기장에서 봤을 때와 변하지 않았다.
직접 눈앞에서 보니 마음을 다잡지 않으면 주눅이 들 것만 같았다.
"그랬지."
"천한 노예를 귀하신 분께서 보고 싶어 하신 이유가 무엇인지요?"
스파르타쿠스의 입은 웃고 있었지만, 눈은 그렇지 않았다.
마르쿠스는 그 표정을 잘 알고 있었다.
과거에 자신이 아르바이트할 때 진상 고객에게 지었던 딱 그런 웃음이다.
"천한 노예라니. 자네처럼 뛰어난 검투사를 감히 누가 천하다고 하겠나. 로마에 가도 자네만한 기량을 지닌 사람은 아무도 없을 거야."
"그저 살아남기 위해 기른 실력일 뿐입니다."
그 목소리에 자부심 따위는 티끌만큼도 실려 있지 않았다.
누구도 따라올 수 없는 실력을 지녔다면 응당 가져야 할 자존심도 느껴지지 않았다.
풍겨오는 것은 오직 짙은 회한과 씁쓸함뿐이었다.
"자네는 지금 상황이 마음에 들지 않는 듯 보이는데."
"마음에 들고 말고 할 게 어디 있겠습니까. 그런 마음을 품을 수 있는 건 선택권을 지닌 사람들뿐이죠."
"선택은 할 수 없더라도 살아만 있다면 누구라도 생각은 할 수 있지. 바티아투스 양성소의 대우는 그리 좋지 않다고 들었네. 검투사들의 불만이 많은 건 충분히 이해할 수 있어."
"그런 일은 없습니다. 불만을 품은 사람 따위는 한 명도 없을 겁니다."
고저 없던 스파르타쿠스의 목소리가 미약하게 떨렸다.
마르쿠스는 짧은 대화만으로도 그의 성품을 어느 정도 꿰뚫어 보았다.
우직하고 꿋꿋한 사람이다.
그래서인지 본심을 숨기는 것도 서툴다.
기록을 보면 스파르타쿠스는 전쟁 중에도 무분별한 살육을 하려는 검투사들을 제지했다고 한다.
그런 고결한 성품을 지녔으니 더욱더 지금의 시궁창 같은 상황을 견디기 힘들었을 것이다.
"바티아투스의 귀에 들어 갈까봐 조심하는 거라면 신경 쓰지 않아도 괜찮네. 이 자리에서 나눈 대화는 완벽히 우리들만의 비밀로 하겠다고 약속할 테니까. 그래서 내 시종도 따로 내보내지 않았는가."
스파르타쿠스의 눈이 마르쿠스의 옆에 있는 다나에에게 닿았다.
"저 아이는 남아있습니다만······."
"아, 이 아이는 괜찮아. 내가 비밀로 하라고 하면 집정관 앞에서도 입을 열지 않을 테니까. 그것보다 과일 좀 먹지 않겠나? 제법 맛이 좋던데."
마르쿠스가 분위기도 전환할 겸 다나에에게 주었던 과일 바구니로 시선을 돌렸다.
하지만 아까만 해도 한 아름 쌓여 있던 과일은 어디로 갔는지 한 개도 보이지 않았다.
다나에가 얼굴이 새빨개진 채 어쩔 줄을 몰라 했다.
"죄, 죄송해요! 제가 다 먹어도 되는 줄 알고 그만······."
"어···아니···괜찮아. 흠흠, 그럴 수도 있지. 그럼 과일은 어쩔 수 없지만 지금부터는 조금 더 허심탄회한 이야기를 해보자고."
"저 아이, 트라키아 출신입니까? 그것도 그리스에 가까운?"
스파르타쿠스는 마르쿠스의 말을 듣지도 않고 다나에에게 시선을 고정하고 있었다.
따지고 보면 무례한 행동이었으나 그는 자신이 무례를 저질렀다는 자각도 없는 듯했다.
마르쿠스는 스파르타쿠스가 먼저 관심을 보였다는 사실이 반가워 딱히 지적하지는 않았다.
"맞아. 트라키아 출신이고 이름은 다나에. 지금은 내가 보호하고 있지."
"역시······."
스파르타쿠스의 심경은 복잡 미묘했다.
우선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동향 사람을 만나 반가웠다.
하지만 그 동향 사람도 결국 로마인의 노예로 살아가고 있다는 것에 울화가 치밀었다.
그런데 막상 자세히 보니 어린 소녀의 표정에는 부정적인 감정이 서려 있지 않았다.
당장 주인이 가지고 건네준 과일을 전부 먹어버리고도 그냥 넘어가지 않았는가.
애첩 같은 관계일까 싶었지만 두 사람의 나이를 보면 그런 것도 아닌 듯싶었다.
스파르타쿠스가 여전히 다나에에게서 눈을 떼지 않으며 물었다.
"저 아이는 어째서 데리고 다니시는 겁니까?"
"지금 여러 가지를 배우고 있거든. 그리고 겸사겸사 시야도 넓혀주려고. 책상 앞에서만 앉아 있어서는 보이지 않는 것들도 있으니까."
"여자 노예에게 교육을?"
"그러면 안 된다는 법은 딱히 없으니까."
들어본 적이 없는 이야기였다.
스파르타쿠스는 마르쿠스에 대한 평가를 특이한 귀족 도련님 정도로 수정했다.
그래 봐야 거기까지다.
노예를 잘 대해주는 귀족이 있다고 해봐야 결국 로마의 귀족이다.
게다가 어렸을 땐 저래도 성장하고 나면 대다수의 로마 귀족과 다르지 않게 변할 것이다.
스파르타쿠스는 지금까지 숱한 로마인을 봐왔다.
지금까지 쌓여온 고정관념이 쉽게 바뀌지는 않았다.
"···그래서, 도련님이 제게 듣고 싶다는 허심탄회한 이야기는 뭡니까?"
"단도직입적으로 말하면 나는 자네를 여기서 빼내서 로마로 데려가고 싶어. 내가 그리고 있는 구상에 협력해줬으면 해. 자네에게 그럴 마음이 있는가?"
"이상한 말씀을 하시는군요. 그런 걸 원하시면 제가 아니라 바티아투스와 이야기를 나누셔야지요. 저에겐 아무런 선택권이 없습니다."
정론이었다. 노예는 자신의 운명을 선택하지 못한다.
마르쿠스가 스파르타쿠스의 소유권을 얻고자 한다면 그의 주인에게 말해야 한다.
마르쿠스가 미간을 좁히며 되물었다.
"바티아투스와는 자네의 대답을 듣고 이야기를 나눌 거야. 중요한 건 자네가 나와 함께 갈 마음이 있냐는 거야. 어때? 여기에서 떠날 마음이 있는가?"
잠시 어색한 침묵이 흘렀다. 이내, 스파르타쿠스가 입을 열었다.
"제가 싫다고 한다면 어떻게 하실 겁니까?"
"설득을 해봐야지. 내 이야기를 들으면 너도 마음이 동할 거라 생각하거든. 그래도 여전히 마음이 바뀌지 않으면 포기하고."
"설득하실 필요는 없을 겁니다. 전 절대 로마로는 가지 않을 거니까요."
"설득조차 듣지 않겠다는 건 조금 예상 밖인데······."
예상보다 완강한 거절에 마르쿠스가 머리를 긁적였다.
"이유라도 알려줄 수 있을까?"
"로마로 가봐야 더욱더 많은 사람들에게 구경거리가 될 뿐이니까요."
"로마인들을 즐겁게 해주는 광대는 되고 싶지 않다는 건가?"
스파르타쿠스의 얼굴이 얼음장처럼 굳어졌다. 미처 다 억누르지 못한 한이 목소리에 실려 흘러나왔다.
"스스로 원해서 선 자리가 아닙니다."
"그래서 이 좁은 카푸아에 계속 갇혀 있겠다고?"
"로마는 넓습니까? 제 세상은 좁디좁은 양성소와 검투 경기장이 전부입니다. 로마로 간다고 해봐야 뭐가 바뀌겠습니까. 조금 더 넓은 양성소? 더 많은 사람을 수용할 수 있는 경기장?"
"나는 자네에게 그런 대우를 할 마음은 손톱만큼도 없어."
"헛소리!"
더 이상 감정을 억누르지 못한 스파르타쿠스가 고성을 내질렀다.
절대 무례를 범하지 말라는 바티아투스의 당부는 이미 기억 저 멀리 사라졌다.
"로마로 간다면 물론 환경은 조금이나마 더 좋아질지 모르지! 더 좋은 옷을 입을 수 있을지도 모르고, 더 풍족한 식사로 배를 채울 수도 있겠지!
하지만 그래 봐야 배부른 노예가 될 뿐 본질적으로는 하나도 달라지지 않는다. 당신도 결국 로마 귀족이잖아. 나를 돈벌이 용도로밖에 보지 않는다는 걸 모를 줄 아나? 나는 절대로 로마 놈들의 한낱 유희를 위해 나 자신을 팔지 않을 것이다.
"
"그쪽이 어떤 생각을 하는지는 잘 알았어. 그래도 일단 머리를 좀 식히고 내 이야기를 들어봐. 판단은 그 뒤에 해도 늦지 않잖아."
"하! 어떤 감언이설로 구워삶으려 해도 나는 이미 마음을 정했다. 나는 절대 로마 놈들과 귀족 나부랭이들에게 굴복하지 않아. 노예로 굴러떨어졌어도 내 존엄과 자존심까지 팔아넘기지는 않겠다."
"이거야 원······."
도저히 이야기가 통할 상태가 아니다.
스파르타쿠스는 지금 마르쿠스에게 화를 내는 게 아니었다.
그는 이제껏 쌓여온 로마 그 자체에 대한 분노를 표출하고 있는 것이다.
마르쿠스가 우려했던 게 바로 이런 상황이었다.
하인리히의 법칙이라는 말이 있다.
커다란 사건이 터지기 전에는 반드시 그와 관련된 수십 차례의 전조가 보인다는 통계적 법칙이다.
스파르타쿠스의 반란도 여기서 벗어나지 않는다.
반란이라는 직접적인 형태로 불만이 터지기까지 얼마나 많은 울분과 원한이 쌓였겠는가.
마르쿠스는 지금 그 편린을 보고 있는 것이다.
스파르타쿠스는 마르쿠스의 뒤로 짙게 드리워진 지배자 로마의 그림자를 보고 있다.
이건 로마인, 그것도 귀족인 마르쿠스가 잠재울 수 있는 성질의 분노가 아니었다.
'포기할 수밖에 없는 건가······.'
이야기를 들어주면 설득할 자신이 있었으나, 아예 마음의 문을 닫아버린 상대와는 대화가 통하지 않는다.
마르쿠스가 마음을 접으려던 찰나,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돌파구가 열렸다.
퍽! 하는 소리가 방안을 울렸다.
마르쿠스는 물론 한창 화를 내던 스파르타쿠스마저 소리가 난 곳으로 시선을 돌렸다.
소음의 원인은 스파르타쿠스의 발밑에 굴러다니고 있는 바구니였다.
다나에가 손에 들고 있던 과일 바구니를 그에게 던진 것이다.
"도련님에게 사과하세요. 도련님은 절대 그런 분이 아니에요!"
"······?"
다나에는 자신보다 두 배는 더 덩치가 커다란 사내의 앞에서도 기죽지 않았다. 그녀가 미약하게 울먹이는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물론 대다수의 로마인은 노예를 사람으로도 보지 않아요. 하지만 도련님은 달라요. 도련님은 훈육이라는 명목으로 구타를 당하고 있던 저를 위해 같은 로마인과 대립하면서까지 저를 구해주셨어요. 게다가 트라키아에 있을 때조차 알지 못했던 온갖 지식을 배울 기회를 마련해주셨어요."
"그래봤자 노예는 노예다."
"그럴지도 모르죠. 하지만 도련님은 노예라고 해도 항상 제 의사를 물어보고 존중해주세요. 저를 들인 날부터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제 몸에 손을 댄 적도 없어요.
사람이 아닌 주인의 도구가 되려는 저를 설득하시기도 했어요. 게다가 이번 검투사 시합을 관전하러 갈 때도 제가 불편해하지 않을까 걱정하기까지 하셨고요. 제가 원하지 않았다면 시합장에도 절 데려가지 않으셨을 거예요. 그런데 도련님이 다른 귀족들과 같다고요? 그 말은 당장 취소해주세요!
"
눈가에 눈물이 고여있긴 했어도 다나에는 당당했다. 그녀의 말에는 일말의 주저도, 어떠한 의심도 없다.
당황한 쪽은 오히려 스파르타쿠스였다.
"네 말이 사실이라면···그래, 저 사람은 다른 귀족과 다를지도 모르지. 하지만 성장하면 결국 다른 귀족들과 똑같이 변할 수밖에 없어. 내가 지금껏 봐온 로마인들은 모두가 그랬다."
"자신만의 좁은 경험으로 전체를 판단하지 마세요. 그건 소인배들이나 하는 행동이에요. 도련님은 달라요."
"그걸 어떻게 장담하지?"
미심쩍어하는 스파르타쿠스의 앞에서 다나에가 당당하게 선언했다.
"도련님은 이 로마를 바꿀 분이니까요. 도련님이 로마에 물드는 게 아니라 로마가 도련님을 따라 변할 겁니다."
너무나도 확고한 믿음에 스파르타쿠스는 뭐라 반론을 할 거리가 떠오르지 않았다. 대체 저 소녀는 주인의 무엇을 믿고 저렇게 당당할 수 있는가.
단단하게 굳어있던 스파르타쿠스의 마음에 한줄기 균열이 일었다.
그가 마르쿠스에게 시선을 돌리며 물었다.
"당신에게 있어서는 나도···사람인가?"
마르쿠스의 말투가 이전과는 확 바뀌었다. 그는 진지하게 스파르타쿠스를 마주 보며 답했다.
"그럼 당신이 사람이 아니면 뭔데?"
"로마를 바꾸겠다고? 그게 가능할 거라 생각하나?"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다면 처음부터 현실과 타협해서 다른 귀족들처럼 살았겠지. 아, 그렇다고 착각하지는 마. 나는 자선사업가도 아니고 노예해방론자도 아니야. 나는 더 합리적이고 효율적인 체제를 구상할 뿐이야. 그걸 받아들일지 말지는 오롯이 그쪽의 선택이고."
"모르겠다. 나는···당신은 대체 무엇을 생각하고 있는 거지?"
탄식과 의문으로 작아진 목소리가 안개처럼 방안에 깔렸다. 그리고 마르쿠스의 목소리가 짙은 안개를 가르는 한 줄기 빛처럼 퍼져나갔다.
"일단 너를 통해서 하려는 건 검투사 시합의 개선이야. 그러니까······."
마르쿠스의 구상을 들은 스파르타쿠스는 잠깐 동안 말이 없었다. 이내 그가 고개를 들었다. 여전히 의문이 섞였지만, 한 가닥 희망이 담긴 눈빛이 거기에 있었다.
"그게 정말로 가능한가? 아니, 가능한 겁니까?"
"가능해. 네가 나와 로마에 가서 지금처럼만 해준다면."
마르쿠스의 진실한 말이 황폐해진 스파르타쿠스의 마음에 닿았다.
"단순히 거기에서 끝나는 게 아니야. 검투사 시합의 개선은 통과점에 지나지 않아. 나에게만이 아니라 너에게도 그래. 넌 원형의 경기장에 갇힌 검투사로 네 평생을 다 쓸 생각인가?
아닐 거다. 그 너머를 봐라. 내가 하려는 일은 적이 많이 생길지도 모른다. 그러니 나를 지켜라. 그러면 너는 바로 옆에서 볼 수 있을 거다. 네가 믿은 남자가 이 로마의 정점까지 올라가 모든 것을 바꾸는 광경을.
"
마르쿠스의 목소리가 하나의 약속이 되고, 그의 눈동자가 품은 빛이 스파르타쿠스의 마음의 어둠을 꿰뚫었다.
로마. 스파르타쿠스에게는 그저 원수로만 여겨졌었던 이름.
이제는 새로운 도전을 상징하는 이름이 되려고 하고 있다.
그것을 깨닫게 되는 바로 이 시간.
마르쿠스가 지닌 원대한 구상이 시작되는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