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6 15. 상승가도 ──────────────── 마르쿠스는 충실하게 자신의 기반을 불려가는 동시에 가문의 부를 키워나갔다.
스파르타쿠스도 검투사 시합에서 승승장구하며 로마 도시 전체에 이름을 떨치기 시작했다.
시간이 흘러 해가 바뀌었다.
그리고 새롭게 소집된 원로원 회의에 이색적인 법안이 올라왔다.
발의자는 올해의 집정관인 마르쿠스 리키니우스 루쿨루스.
크라수스와 같은 리키니우스 씨족으로, 그 유명한 미식가이자 전략가인 루쿨루스의 동생이었다.
그는 크라수스의 부탁을 받아 '루쿨루스 특허법'이라는 이름의 법안을 원로원 의장인 집정관의 권한으로 제출했다.
대가는 2년 뒤 루쿨루스의 자식이 입후보하는 재무관 선거 비용의 일부를 크라수스가 부담해준다는 것이었다.
루쿨루스의 입법 요지는 간단했다.
고대 로마에서도 사유재산권은 절대적인 기본권으로 여겨졌다.
루쿨루스는 이 특허법이 로마인들의 기본권을 더욱 확실하게 보장할 수 있다고 역설했다.
"지금까지는 존재하지 않던 개념이니 곧바로 이해하긴 힘드실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의원 여러분께서도 이게 얼마나 기술의 발전을 촉진할 수 있는 법안인지는 이해하셨으리라 믿습니다.
게다가 훌륭한 기술이 미처 후대에 전수되지 못하고 끊어지는 사태마저 미연에 방지할 수 있습니다. 훌륭한 선인들께서는 타국의 우수한 기술과 제도를 들여와 우리만의 것으로 개량해냈습니다. 이제 이 법안으로 그 기술을 더 발전 시켜 후대에 물려줘야 합니다!
"
루쿨루스에게 찬동하는 의원들이 일제히 박수를 치며 찬성의 목소리를 냈다.
적극적으로 반대의 목소리를 내는 의원들은 아직 없었다.
이 법안에 대해 완벽히 이해한 의원은 현재 원로원 내에서 극소수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일단, 이 정도로 파급력이 크게 미칠 법을 하루 만에 가결하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의원들은 하루 동안 더 검토해보고 결정하는 의견을 냈고, 산회했다.
둘째 날, 원로원 내에서는 찬성의 목소리가 더 우세했다.
법무관 가이우스 클라우디우스 글라베르가 당장 이 법안을 통과시켜야 한다고 소리 높여 외쳤다.
"생각해보면 지금껏 로마에서 타인의 기술을 도적질해 이윤을 올리는 행위를 방조하고 있었다는 게 말이 되지 않는 겁니다.
이 법안이 없어 얼마나 많은 선량한 기술자들이 고통을 받았습니까. 얼마나 많은 장인들이 자신의 기술이 도적질을 당할까 우려해 제자에게조차 가르침을 내리는 걸 꺼려했습니까. 선량한 지식인들이 마음 놓고 활동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야 합니다. 로마를 이끌어나가는 우리 원로원에는 그럴 의무가 있습니다!
"
글라베르는 의도적으로 로마를 이끌어나간다는 말을 강조했다. 실제로 대다수의 원로원 의원들은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고, 그래야만 한다고 여겼던 까닭이다.
물론 글라베르가 이렇게나 열정적으로 법안을 지지하는 건 로마의 이익을 위해서가 아니라 과거의 뼈아픈 기억 때문이었다.
예전 그의 장인이 개발한 기술이 한 달도 못가 유출되어 상당한 피해를 보았던 것이다.
대다수의 부유한 원로원 의원들은 해방노예들의 명의로 된 사업체 몇 개쯤은 다 가지고 있었다.
특히 실력 좋은 장인들을 보유한 의원들은 이 법안이 자신들에게 이익이 될 거라는 생각에 쌍수를 들고 찬성했다.
크라수스는 혹시 몰라 여러 의원과 말을 맞춰 놨으나 그들이 나설 차례조차 없었다.
이럴 줄 알았다면 굳이 집정관에게 부탁할 필요도 없었을 것 같았다.
그는 이제 슬슬 이 법안에서 보완해야 할 점을 지적해 자신의 존재감을 발휘할 때라고 판단했다.
한데, 그보다 먼저 발언을 요구한 사람이 있었다.
평민 기사계급 출신으로 2년 전에 막 원로원에 입성한 신출내기 변호사, 마르쿠스 툴리우스 키케로였다.
"존경하는 의원 여러분. 물론 이 특허라는 개념이 공공의 이익을 담보해줄 수 있는 건 맞습니다. 하지만 잘 들여다보면 빠져나갈 구멍이 너무나도 많습니다."
키케로의 말을 들은 글라베르가 불편한 심경을 노골적으로 드러냈다.
"아르피눔에서 올라온 신참자께서는 자신의 식견을 너무 과신하는 것 아닌가? 혹시 있을지 모르는 사소한 부작용 때문에 이미 큰 문제가 되고 있는 사안을 그냥 넘어가자니."
"저는 그냥 넘어가자는 말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지만 만약 납득할만한 보완점이 마련되지 않는다면 이 법의 시행은 보류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 법안의 문제점을 몇 가지 짚어보겠습니다. 우선 특허 무효를 할 수 있는 재판은 더 엄격하고 복잡해야 합니다. 지금 법안처럼 규정이 간소하면 많은 자본을 가지고 있는 이들이 손쉽게 다른 장인들의 특허를 무효화시킬 수 있지 않겠습니까. 또······.
"
키케로는 특허법의 법망을 피해 요리조리 빠져나갈 수 있는 수단과 그럴싸한 예시까지 들었다.
훗날 로마 최고의 변호사로 널리 명성을 얻는 인물다운 통찰력이었다.
하나, 그런 키케로라 해도 지금은 편들어줄 사람 없는 신참자에 불과했다.
"너무 복잡하게 생각하는 것 같소. 괜히 법령을 복잡하게 만들면 그걸 하나하나 이용하는 자들도 나올 수 있지 않겠소? 뭐든지 장단점이 있는 법이라오."
"하지만······."
키케로가 추가반론을 하려는 찰나, 틈을 보던 크라수스가 끼어들어 먼저 입을 열었다.
"아아, 존경하는 의원 여러분. 키케로의 말에도 일리는 있소. 나 역시 어제 법안을 보고 비슷한 생각을 했기에 나름의 보완점을 마련해 보았소. 이런 보완점을 적용해 입법하면 더욱 완벽한 법안이 되지 않을까하오."
크라수스는 마르쿠스가 적어준 내용들을 그대로 읊었다.
특허 괴물의 출현을 방지하기 위한 폭리 수취 금지, 허술한 특허로 이익을 취할 수 없게 하는 검증조치 강화 등 키케로가 지적했던 사안의 보완책을 거의 다 제시했다.
크라수스와 그를 지지하는 의원들이 보완책에 찬성하고 나서자 여론은 급변했다.
결국 대다수 의원의 찬성으로 크라수스의 의견이 가미된 '루쿨루스 특허법'은 순조롭게 가결됐다.
자기 혼자 눈에 띄려던 크라수스로서는 예상과 다르게 상황이 흘러갔지만, 어쨌든 목적은 달성했다.
원로원 회의가 끝나고 밖으로 나가려는 크라수스에게 찾아온 키케로가 고개를 숙여 감사를 표했다.
"제 의견을 지지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뭘 그런 걸 가지고. 나 역시 자네와 비슷한 생각을 가지고 있었으니 자연스레 편을 들게 된 거지."
"법무관님께서 사업에 해박하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이런 법률적인 문제에도 능통하실 거라고는 생각지 못했습니다. 과연 원로원에서 손에 꼽히는 중진께서는 뭔가 달라도 다르군요."
"음···나야말로 자네가 보인 통찰력에 놀랐네. 도저히 이제 막 원로원에 들어온 의원으로는 보이지 않아."
"과찬이십니다."
크라수스와 키케로는 잠시 서로 간에 덕담을 주고받은 뒤 헤어졌다.
원대한 청운의 꿈을 안고 로마로 상경한 키케로는 자신이 아직 무명 인사에 지나지 않는다는 걸 다시 실감했다.
로마는 이토록 넓고 바다와도 같은 곳이다.
누구보다도 법에 대해서 능통하다고 자부했던 그는 아직도 더 배워야할 게 많다는 걸 실감했다.
그를 경악하게 만든 크라수스의 지식은 마르쿠스에게서 나온 것이었지만, 키케로는 알지 못했다.
인연이란 스쳐 가는 바람과도 같지만, 때로는 흔들리지 않는 거대한 산이 되기도 한다.
로마 공화정을 대표하는 공화주의자 키케로와 새로운 시대를 열려하는 마르쿠스의 인연은 아직 시작조차 되지 않았던 것이다.
※※※※
특허법이 시행되자 초창기에는 별의별 이상한 기술들까지 특허를 허가해주라며 달려들었다.
하지만 크라수스를 필두로 한 양식 있는 의원들은 특허의 남용을 막기 위해 엄격한 검사를 실시했다.
덕분에 시간이 좀 흐른 뒤에는 안정적으로 운영이 되기 시작했다.
마르쿠스는 내심 농업과 관련된 기술이 많이 나오는 걸 기대했다.
로마가 상업이 발달했다고 해도 고대 국가 경제 완성의 토대는 무조건 농업이다.
농업 생산력이 뒷받침 되지 못한다면 일정 수준 이상의 발전은 불가능하다.
다행히 마르쿠스의 도서관 능력은 두 달에 한 번이라는 게 확인이 됐지만, 농업기반의 책까지는 도저히 읽을 여력이 나지 않았다.
"그래, 등자와 편자는 예정대로 시험을 선보이면 되겠느냐?"
"예. 이미 완벽하게 완성품이 나왔습니다. 셉티무스의 명의로 특허등록도 마쳤고요."
로마의 기술력은 예상 이상으로 뛰어나 상업화 제품이 나오는 데 까지 반년이 채 걸리지 않았다.
만약 제작이 더 오래 걸렸다면 특허로 등록하지 않고 기술을 독식했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상황을 보아하니 특허등록을 해놓지 않으면 얼마 지나지 않아 복제품이 넘쳐날 것 같았다.
"그나저나 이제 슬슬 올 때가 된 것 같은데."
마르쿠스는 로마 근처에 위치한 평원에서 실제 등자를 착용한 기병들을 화려하게 광고할 계획이었다.
이미 크라수스의 명의로 명망 있는 원로원 의원들과 기사계급의 유력자들에게 서신을 돌렸다.
마르쿠스 자신이 직접 나서서 설명하기엔 너무 어렸기에 이번 설명은 셉티무스의 몫이었다.
덕분에 셉티무스는 자신도 태어나서 처음 듣는 내용을 자신이 구해온 서적에서 읽었노라 말해야 하는 처지가 됐다.
지정한 시간이 되자 저 멀리서 원로원 의원들이 탄 화려한 마차가 줄지어 도착했다.
법무관들은 물론 현직 집정관인 루쿨루스까지 보였다.
마차에서 내린 루쿨루스가 주변을 둘러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로마군의 기병체계를 근본부터 바꿀 수 있는 물건을 개발했다고 해서 왔는데 그렇게 거창한 물건은 보이지 않는구려."
로마의 공직자들은 전원 군에 복무한 경험이 있다. 로마의 대표적인 학자인 키케로 역시 동맹시 전쟁 때 군생활을 했었다.
때문에 로마 원로원 의원 중 군에 능통하지 못한 사람은 많아도, 아예 문외한인 사람은 거의 없다고 봐도 좋았다.
법무관인 푸블리우스 바리니우스가 평원에 늘어선 기병들의 안장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저기 안장 밑에 뭔가가 달려있군요. 혹시 저게 그 발명품입니까?"
"그렇소."
크라수스가 당당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저게 대체 용도가 뭡니까? 발 받침대? 저런 간단한 도구가 로마의 기병체계를 근본부터 송두리째 바꿀 물건이라고요?"
다른 의원들도 바리니우스의 의견에 동조하며 신뢰가 가지 않는다는 반응을 보였다.
"흐음···뭐, 다들 지켜보면 알게 될 것이오."
크라수스는 다른 의원들의 미심쩍은 반응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시작하라는 신호를 보냈다.
셉티무스가 한 걸음 앞으로 나서며 정중히 고개를 숙였다.
"저는 크라수스 님께 리키니우스 씨족의 이름을 받은 셉티무스라 합니다. 로마를 이끌어 가시는 심장과도 같은 분들 앞에서 이런 설명을 할 수 있게 되어 영광입니다. 우선 저희가 이번에 특허 등록을 받은 물건은 등자와 편자입니다. 우선 등자에 대해 먼저 말씀드리겠습니다."
셉티무스는 실제 등자를 하나 가져와 의원들 바로 앞에서 보여주었다.
"이 등자는 말의 안장에 다는 받침대입니다. 말에 오르거나 말 위에서 균형을 잡는 데 아주 유용한 물건이지요."
기사계급에 속한 한 중년이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물었다.
"말에서 균형을 잡는 거야 기마술을 제대로 배운 이라면 할 수 있는 거 아닌가?"
"예. 하지만 흔들리는 말 위에서 두 다리만으로 중심을 잡고 완벽한 돌격을 하려면 엄청난 기마술의 실력자여야 합니다. 그런 기마술의 고수에게는 이 등자가 그리 필요 없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중요한 건 이건 그런 기마술의 고수가 아니더라도 그런 실력자들과 거의 엇비슷한 안정성을 확보할 수 있다는 겁니다. 실제로 보여드리겠습니다."
셉티무스가 신호를 보내자 평원에 대기 중이던 기병들이 말을 몰아 앞으로 내달렸다.
기병들은 보란 듯이 고삐에서 손을 놓고 한 손으로는 창을, 다른 한 손에는 방패를 들고 앞으로 쇄도했다.
또 다른 몇몇 기병들은 말에 타고도 아주 안정적인 자세로 화살을 쏘며 과녁을 맞혔다.
근접 마상전투를 가정한 모의전도 놀라울 정도로 안정적으로 해냈다.
기병들은 오른쪽이든 왼쪽이든 자유자재로 허리를 숙이며 능숙하게 무기를 휘둘렀다.
상당한 기마술을 지닌 사람이 아니면 미끄러져 낙마하기 딱 좋은 자세였다.
심드렁하던 의원들의 표정이 한순간에 바뀌었다.
특히 실제로 군단을 지휘해본 경험이 있는 장군들의 반응은 극적이었다.
기병 장교로 복무한 경험이 있는 가이우스 토라니우스가 즉각 질문을 던졌다.
"저들이 기마술에 특출한 사람들이 아니라고?"
"말에 익숙한 자들은 맞습니다. 하지만 등자가 없다면 절대 저렇게 고삐를 놓고 양손으로 무기를 잡으면서 돌격할 수는 없습니다. 궁기병들도 마찬가지입니다. 그 정도로 뛰어난 기수들은 유력한 기사계급에나 있겠지요."
셉티무스의 설명이 물 흐르듯 이어지자, 의원들은 감탄사를 내뱉었다.
실제로 로마에서 실력 있는 기병들을 키워내기란 굉장히 힘들었다.
실전에서 활약할 수 있는 기병이 되려면 어렸을 때부터 말과 접하고 승마술을 배워야 한다.
유력한 기사계급이나 귀족 자제들이 아니라면 이게 불가능했다.
그래서 로마는 기병이 부족할 때는 외부에서 수혈할 때도 있었다.
셉티무스가 의원들을 한 번 둘러보며 절로 신뢰가 가는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지금의 로마는 직업군인제입니다. 이 등자를 사용한다면 기존과는 비교도 할 수 없게 기병의 육성이 쉬워집니다. 해서 군마를 더욱 충실히 보충하고 기병대를 대폭 늘려 운용한다면 로마군의 고질적인 문제점인 기병 전력 부족을 단번에 해소할 수 있습니다."
다들 한번쯤 군복무 경험이 있는 원로원 의원들은 이를 꽤나 진지하게 받아들였다.
특히 대규모 회전에서 기병이 어느 정도의 가치를 지니는지 알고 있는 사람들은 미친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크라수스가 처음과는 백팔십도 표정이 변한 의원들 앞에 나서며 힘 있는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친애하는 의원 여러분, 이제 다들 아셨으리라 믿소. 게다가 현실적인 이유로도 이 기병 전력의 강화는 필수적이오. 장차 우리가 대적할 가능성이 있는 위협적인 적에게 효과적으로 대항하기 위해서라도."
"위협적인 적이라니? 갈리아나 게르만을 말하는 것이오?"
"그들도 위협적이긴 하지만 내가 말하는 대상은 바로 동방의 파르티아요. 현재 우리를 괴롭히는 저 폰투스의 미트라다테스를 토벌한다면 우리는 파르티아와 마주할 수밖에 없소. 국가 간의 관계에서 영원한 우방은 없는 법. 당연히 파르티아에 대한 대책을 생각해둘 필요가 있지 않겠소?"
파르티아는 현대의 시리아, 인도 북부를 통치하고 있는 동방의 대국이다.
페르시아의 후예를 자처하는 그들은 대륙 간의 중계무역으로 상당한 이익을 얻고 있기도 했다. 즉, 동아시아와 유럽이 서로를 인식하게 되는 계기가 된 국가이기도 하다.
루쿨루스가 평원에서 시연 중인 기병들을 신중하게 관찰하며 물었다.
"저게 파르티아에 대한 훌륭한 대책이 된다는 말인가?"
"그렇소. 파르티아군의 주력이 무엇인지 아시오?"
"기병이 뛰어나다는 소문을 들은 것도 같소."
사실 크라수스의 지식도 그 정도에 그쳤지만, 마르쿠스는 미리 크라수스에게 귀띔을 주었다.
물론 출처는 파르티아에서 온 상인을 통해 전해들은 거라 했다.
크라수스는 마르쿠스의 철두철미한 조사에 감탄을 금치 못했다.
이제 장남에 대한 그의 신뢰는 그 누구와도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높아졌다.
"파르티아의 주력은 다수의 궁기병들과 소수의 중무장 기병, 카타프락토이라 불리는 자들이오. 지금의 로마는 저들보다 기병 전력이 부족하기 때문에 기병이 기동하기 힘든 지역에서 승부를 봐야 하오.
하지만 우리가 저들과 대등 이상의 기병 전력을 갖춘다면 전장을 특정 지역으로 한정해야 할 필요가 없어지지. 지금보다 훨씬 충실해진 기병대는 당연히 갈리아나 게르만과 싸울 때도 더없이 유용한 전력이 될 것이오.
"
대다수의 원로원 의원들은 크라수스의 말에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기병 전력을 보강하고 싶어도 육성이 쉽지 않아 시도하지 못한 것이지, 육성 난이도가 대폭 내려간다면 시도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
집정관인 루쿨루스가 잠정적인 결론을 내렸다.
"일단 저 등자는 군마에 전부 탑재하는 방향으로 가는 게 좋겠소. 그리고 기병 전력의 보강은 차후 폼페이우스가 돌아온다면 그의 의견도 한 번 들어보고 방향을 정하도록 합시다."
유력한 라이벌인 폼페이우스의 이야기가 나오자 크라수스의 얼굴이 미미하게 굳어졌다.
결국 아무리 열변을 토해도 군대에 관련된 사안은 현 로마에서 폼페이우스의 발언권이 제일 높다.
현시점에서는 어떻게 해도 뒤집을 수 없는 현실이기도 했다.
현재 폼페이우스는 히스파니아에서 일어난 세르토리우스의 반란을 진압하기 위해 로마를 비운 상태였다.
끈질겼던 세르토리우스의 반란은 폼페이우스가 투입된 지 2년 만에 거의 진압될 분위기를 보였다.
만약 그가 반란을 진압하고 돌아온다면 안 그래도 거대한 명성이 끝을 모를 정도로 솟구칠 것이다.
크라수스로서는 절대 반갑지만은 않은 상황이었다.
하지만 며칠 뒤, 그런 크라수스의 우려를 불식시키는 소식이 로마로 날아들었다.
※※※※
마르쿠스는 복잡한 심경으로 카푸아에서 직통으로 전해진 서신을 받아들었다.
이렇게 될 거라 예상은 했으나 막상 눈으로 확인하니 앞으로 벌어질 일에 기분이 씁쓸했다.
언제나처럼 마르쿠스의 뒤를 지키고 있던 스파르타쿠스가 의문을 표했다.
"표정이 그리 좋지 않으신데 무슨 일이 있습니까?"
"설명보단 이걸 직접 보는 게 좋을 것 같다."
"예? 무슨 내용이기에······."
서신의 내용을 확인한 스파르타쿠스는 황망한 표정으로 더 말을 이어가지 못했다.
어찌나 놀랐는지 순간적으로 중심을 잃고 비틀거리기까지 했을 정도다.
그가 도무지 믿을 수 없다는 눈빛으로 마르쿠스를 돌아보았다.
"이, 이게···사실입니까?"
"카푸아에 상주하고 있는 아버지의 부하가 직접 보낸 거니 확실하다고 봐야겠지."
"어떻게···어떻게 이런 일이······."
부들부들 떨리는 스파르타쿠스의 손에서 서신이 떨어졌다.
그것을 주워든 다나에조차 헙! 하는 소리를 내며 눈이 휘둥그레졌다.
서신에 쓰여 있는 내용은 그리 길지 않았다.
[카푸아에서 70명 이상의 노예 검투사들이 집단 탈주. 현재 베수비오산 인근의 숲으로 도주. 검투사 양성소의 주인과 관련자들은 전원 살해당한 것으로 추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