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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노예반란 (19/326)

  # 19 18. 노예반란 ──────────────── 크라수스는 모든 게 계획대로 흘러가고 있다는 생각에 날아갈 듯 기분이 좋았다.

  로마의 1개 군단은 통상 6500명으로 편성된다.

  8개 군단이면 5만이 넘어가는 어마어마한 대군이다.

  이 정도 규모의 정규군을 지휘하도록 허락받는 사람은 극소수에 불과하다.

  크라수스는 그런 극소수의 지휘관 가운데 한 사람으로 역사에 기록될 것이다.

  이로써 목표인 집정관에도 한 걸음 더 가까워졌다.

  아니, 가까워진 정도가 아니라 이번 반란을 제압하면 사실상 확정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현재 로마 남쪽에 있는 도시들이 크릭수스의 반란군에 의해 입은 피해는 그야말로 막심했다.

  역사와는 달리 크릭수스가 북상하지 않고 줄곧 남부지역에 머물며 약탈을 일삼았기 때문이다.

  그는 자신의 선언처럼 로마를 향한 분노를 상징하는 존재가 되어가고 있었다.

  크라수스에게는 오히려 좋은 상황이었다.

  크릭수스가 날뛰면 날뛸수록 그를 제압한 크라수스의 주가는 더욱 상승할 수밖에 없다.

  이번 출정을 위한 비장의 한 수도 완벽히 준비된 상태였다.

  그는 이런 상황을 예측하고 있던 아들이 자랑스럽고 사랑스러워 견딜 수가 없었다.

  이제 아들이 어떤 부탁을 하더라도 의심하거나 거절하는 일은 없을 거라 마음먹었다.

  하지만 그런 다짐은 자택에 들어가자마자 루비콘강 저 너머로 사라져버렸다.

  마르쿠스의 입에서 도저히 들어줄 수 없는 부탁이 나왔기 때문이다.

  "뭐라고? 이번 토벌전에 너도 함께 가고 싶다고? 지금 농담하는 거냐?"

  "이런 일로 농담을 할 리가 있겠습니까. 진심으로 부탁을 드리는 겁니다."

  "말도 안 되는 소리! 아무리 네 부탁이라고 해도 절대로 안 된다. 이제 열셋, 내년이라고 해도 열넷밖에 되지 않을 아이가 전쟁터로 나가겠다고? 절대로 허락 못 한다!"

  크라수스의 반응은 지극히 정상적이었다. 로마는 아무리 전쟁 중이라고 해도 17세가 되지 않은 미성년은 절대로 징집하지 않았다.

  이는 그 옛날 한니발이 쳐들어왔을 때조차 지킨 로마의 철칙이었다.

  마르쿠스도 크라수스의 이런 반응쯤은 익히 예상하고 있었다.

  그는 서두르지 않고 천천히 설득을 계속해나갔다.

  "전쟁터에 나가겠다는 게 아닙니다. 그저 이 싸움의 향방을 가까이에서 지켜보려는 겁니다. 게다가 제가 고안한 새로운 기병이 실전에서 어떻게 싸우는지 봐야 개선점을 찾아낼 수 있지 않겠습니까."

  "그건 그렇지만···그래도 너무 위험하다. 기병의 개선점이야 나중에 직접 싸워본 자들에게 의견을 들으면 그만일 터."

  "어차피 저는 절대로 싸움에 휘말리지 않을 후방에 있을 겁니다. 게다가 옆에 스파르타쿠스도 함께 있을 거고 위험하면 바로 도망가겠다고 약속드리겠습니다."

  "그 스파르타쿠스를 어떻게 믿고 너를 맡기냔 말이냐."

  "저를 믿으시는 만큼 그를 믿어주시면 됩니다. 제 사람이니까요."

  크라수스는 그래도 무조건 안 된다는 말을 입 밖으로 뱉으려다 간신히 삼켰다. 감정적으로 무조건 안 된다고 해봐야 듣지 않을 거라는 사실을 알기 때문이었다. 어떻게든 논리적으로 설득을 해야 했다.

  "전장은 매 순간 변화하며 순간의 판단으로 승패가 갈리는 곳이다. 지휘체계에 조금이라도 이물이 섞여 있다면 모든 게 뒤틀려버릴 위험성이 있어. 네가 군 내부에 있는 것 자체가 병사들의 전력 저하로 이어질 수 있다는 말이다."

  "반대로 제가 따라가기 때문에 전쟁에서 절대적으로 우위를 점할 수 있는 요소도 있습니다."

  "뭐라고? 그게 대체 무엇이냐."

  "바로 스파르타쿠스입니다. 전에 말씀드렸죠? 크릭수스의 군사적 지식은 전부 다 스파르타쿠스에게서 나온 것이라고요. 즉, 스파르타쿠스는 크릭수스가 어떤 식으로 사고하고, 어떻게 군대를 움직일지 예측할 수 있다는 겁니다. 아버지께 누구보다 훌륭한 조언을 해줄 수 있을 겁니다."

  크라수스의 얼굴에 일말의 망설임이 스쳐 지나갔다.

  마르쿠스의 말대로라면 정말 엄청난 도움이 되긴 할 것 같아서였다.

  물론 스파르타쿠스의 말을 전적으로 믿을 마음은 전혀 없었으나 의견을 들어보는 정도는 문제가 되지 않았다.

  마르쿠스의 설득은 여기에서 그치지 않았다.

  "게다가 스파르타쿠스의 존재 자체가 적들의 사기를 떨어뜨리는데 일조할 겁니다. 지금 반란군의 중심은 카푸아에서 탈출한 검투사들입니다. 스파르타쿠스는 그들에게 있어서 거의 정신적인 지주였죠. 그런 사람이 적군에 있으면 자연히 사기도 떨어지지 않겠습니까."

  "으음···그러면 그 녀석만 데리고 가는 게······."

  "아버지께서는 스파르타쿠스를 전적으로 믿을 수 없다고 하셨지 않습니까. 그리고 그가 완벽히 충성을 바치는 사람은 저뿐입니다. 제가 없다면 스파르타쿠스도 전장에 나가지 않을 겁니다."

  크라수스는 질린 얼굴로 한 손을 들어 이마를 짚었다. 아들을 설득하려고 했는데 역으로 설득을 당할 기세다.

  그 옛날 마리우스파의 박해를 피해 히스파니아로 도주했을 때와 비슷한 곤혹스러움을 느꼈다.

  논리에서 밀린 그는 이제 다시 감정에 호소하기 시작했다.

  "그러지 말고 잘 생각해보아라. 아직 어린 네가 전쟁에 따라간다면 네 어미는 얼마나 마음을 졸이겠느냐. 게다가 동생은 또 어떻고. 너를 그림자처럼 졸졸 따라다니는 다나에도 걱정으로 잠을 이루지 못할 게다. 그러니 성급한 마음은 가라앉히고 너를 소중히 여기는 사람들을 봐서라도 얌전히 이곳에 머무는 게 좋을 것 같구나."

  "걱정을 끼칠 건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당연히 저도 제 안전이 가장 소중합니다. 절대 만용을 부리는 게 아니고, 할 수 있는 최대한의 안전장치를 전부 다 할 겁니다."

  "스파르타쿠스를 옆에 두는 정도로 그게 될 것 같으냐."

  "물론 그 정도로 충분하지 않죠. 만약에 상황이 되면 목숨을 바쳐서 제 방패가 되어 줄 군인들을 이미 고용했습니다. 언제나 제 곁에서 머물 것이고, 위험한 상황이 되면 목숨을 버려 제가 도망갈 시간을 벌어줄 겁니다."

  마르쿠스라고 전쟁터가 무섭지 않을 리가 없다. 사실 할 수만 있다면 안전한 곳에서 한 걸음도 나가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미래를 생각한다면 지금 나갈 필요가 있었다.

  로마에서 끝까지 살아남아 위로 올라가기 위해서는 전쟁 경험이 필수다.

  역사적으로 이기는 게 확정된 전쟁은 경험을 쌓을 수 있는 최고의 수련장이나 마찬가지였다.

  게다가 스파르타쿠스 역시 할 수 있다면 이번 전쟁에 참여해 공을 세워야만 했다.

  그냥 이대로 반란이 진압된다면 스파르타쿠스는 카푸아 출신 검투사라는 선입견에 휩싸여 피해를 보게 될 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번 반란군을 진압하는 데 공을 세운다면 누가 그를 탓할 수 있겠는가.

  오히려 로마를 위해 옛 동료에게 검을 겨눈 영웅이란 찬사를 듣게 될 것이다.

  스파르타쿠스에게는 비정하게 들릴지도 모르겠지만, 그의 미래를 위해서라도 이번 전쟁에는 참전해야만 한다.

  마르쿠스의 확고한 의지를 느낀 크라수스의 얼굴이 굳어졌다.

  당장 고래고래 소리라도 지르고 싶은 표정이었지만 마음을 가라앉히며 한숨을 내쉬었다.

  "내가 끝까지 가지 못하게 하겠다면 넌 어쩔 생각이냐?"

  "쓸 수 있는 모든 수를 다 써서라도 따라갈 겁니다."

  "납득할 수가 없구나. 네가 군공을 세울 수 있는 상황도 아닌데 굳이 전쟁터로 나가고 싶다는 마음을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다."

  "이 전쟁에 따라가는 게 저에게 반드시 도움이 될 겁니다. 저만이 아니라 가문의 사업에도 엄청난 이득을 가져다줄 수 있습니다. 저를 한 번만 믿어 주십시오."

  크라수스는 한동안 말이 없었다. 하늘을 바라보며 입술을 깨물어보기도 하고, 땅이 꺼져라 한숨을 쉬어보기도 했다.

  한참을 고민하던 그는 결국 힘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네가 어떤 수를 써서라도 가야겠다고 마음먹었다면 내가 막아도 소용이 없겠지. 오히려 무모한 짓을 하다가 더 위험해질지도 모르는 법이고. 그래, 좋다. 내 명령을 철저히 따른다고 약속한다면 종군하는 걸 허락해주마."

  "정말입니까? 감사합니다!"

  "대신 언제나 내 옆에 붙어있어야 한다. 진지에 있을 때도 내 막사에서 허가 없이는 절대 나오지 말도록. 그래도 위험한 일이 생긴다면 네가 성인이 될 때까지는 절대로 전장에 나오지 못하게 할 거다. 괜찮겠지?"

  "물론입니다."

  어차피 이번 전쟁이 끝나면 마르쿠스가 성년이 될 때까지는 다른 전장에 나갈 이유도 없었다.

  그에게 중요했던 건 다음이 아니라 지금이라는 기회다.

  일단 크라수스의 허락이라는 가장 큰 고비를 의외로 수월하게 넘겼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나가게 되는 전쟁터.

  할 수 있는 모든 계획을 다 세워두었지만, 막상 전장에 나간다고 생각하니 미약한 긴장감에 심장이 가볍게 두근거렸다.

  살아있는 사람이라면 당연히 느낄 수밖에 없는 감정이다.

  마르쿠스는 가볍게 심호흡을 했다. 그리고는 자신의 구상을 위한 마지막 조각을 맞추기 위해 걸음을 옮겼다.

  ※※※※

  "전장에 나가시는 겁니까?"

  "그래. 그렇게 됐어."

  스파르타쿠스는 담담히 고개를 끄덕였다.

  마르쿠스가 그런 말을 할 거라는 사실을 이미 짐작하고 있었다는 반응이었다.

  "그렇다면 저도 함께 가야겠군요."

  "괜찮겠어?"

  진득한 설득을 준비하고 있던 마르쿠스가 당황할 정도로 스파르타쿠스는 평온해 보였다.

  고난의 시간을 함께 보냈던 동료들에게 칼을 겨눠야 한다.

  상식적으로 괜찮을 리가 없다.

  이번만큼은 따라가지 못하겠다고 말해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그러나 스파르타쿠스는 이미 마음을 정리한 듯 후련해 보이기까지 했다.

  그가 냉혈한이라서가 아니다.

  이런 마음을 가지기까지 대체 얼마나 오랜 시간을 고민하고 해답을 찾았을까.

  그러는 동안 얼마나 스스로 상처 입고 괴로움에 몸부림쳤을까.

  마르쿠스로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고통의 시간이었으리라.

  "도련님과 크릭수스에 대한 이야기를 나눈 날부터 하루도 후회하지 않았던 적이 없습니다. 아니, 반란 소식을 들은 이후로 쭉 후회하고 있었습니다."

  "나를 따라 로마로 온 것에 대한 후회인가?"

  "아니요. 저는 지금 제가 가고 있는 이 길이 옳다는 확신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제가 카푸아를 떠날 때 크릭수스에게 조금 더 강하게 확신을 가지고 말했다면, 그도 제 말에 귀를 기울여주지 않았을까 하는 후회입니다. 당시의 저는 아직 도련님을 완전히 믿지 않았습니다. 믿고 싶었던 것에 가까웠지요. 크릭수스는 아마 그런 제 마음을 꿰뚫어 봤을 겁니다."

  스파르타쿠스는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어깨를 축 늘어뜨렸다. 그의 입에서 회한으로 가득한 목소리가 계속해서 흘러나왔다.

  "이미 너무나 많은 사람이 죽었고, 앞으로 더 죽을 겁니다. 크릭수스는 지금이야 선전하고 있는 듯 보이겠지만, 이미 죽을 날을 기다리고 있는 신세에 불과하겠지요. 이곳에 오기 전까지는 저도 로마가 지닌 강대한 저력을 피부로 느끼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그저 머리로만 알고 있었을 뿐."

  스파르타쿠스는 크릭수스를 잘 알았고, 이제 그 크릭수스만큼이나 로마라는 나라를 이해하고 있었다.

  크릭수스가 거둔 국지적인 승리는 결코 계속 이어질 수 없다.

  로마가 한두 번의 패배로 무너질 나라였다면 이미 한니발이나 피로스의 손에 멸망했을 것이다.

  "그래서 네가 크릭수스를 말리지 못한 탓이니 나름의 책임을 지겠다는 뜻인가? 아무도 그렇게 생각하지 않을 텐데?"

  "그렇겠지요. 하지만 이대로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면 제가 자신을 용서할 수 없습니다."

  "그것이 너의 칼에 옛 동료의 피를 묻히는 일일지라도?"

  스파르타쿠스의 입가가 파르르 떨렸다.

  아무리 굳게 마음을 먹었더라도 그 결심을 언어로 표현하는 건 쉽지 않은 법이다.

  두세 번 호흡을 가다듬은 스파르타쿠스는 거친 숨과 함께 자신의 각오를 토해냈다.

  "제 칼에 묻은 동료들의 피를 보며 평생 지금의 마음을 잊지 않으려 합니다. 그들의 희생이 절대 헛되지 않도록···제가, 반드시 로마 검투사들의 삶을 바꿀 겁니다."

  "그 마음만으로도 정말 고맙다. 하지만 네가 옛 동료들과 직접적으로 싸울 일은 없을 거야. 일단 넌 내 곁을 지켜야 하고, 나는 저 멀리서 전황을 지켜보기만 할 예정이거든. 직접적으로 싸움판에 끼어들 일은 없을 테니 너무 부담감을 가질 필요 없어. 이 싸움에 참전한 것만으로도 로마에서 네 입지는 누구도 흔들 수 없게 될 거야."

  마르쿠스는 처음부터 스파르타쿠스를 옛 동료들과 충돌시킬 마음은 없었다.

  아무리 그래도 그건 너무 심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일단 싸움에 참여했다는 사실만 있으면 된다.

  그리고 검투사가 아닌 산적 출신의 반란군을 몇몇 베어주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그다음 일은 얼마든지 돈으로 해결이 가능했다.

  굳이 크릭수스나 카푸아의 검투사들에게 검을 휘두를 필요는 없는 것이다.

  하지만 스파르타쿠스가 품은 결의는 고작 그 정도가 아니었다.

  그가 고개를 설레설레 저으며 말했다.

  "아닙니다. 만약 괜찮다면···제가 크릭수스와 싸울 수 있도록 허락해주십시오."

  "뭐라고?"

  마르쿠스는 뭔가 잘못들은 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크게 놀랐다.

  스파르타쿠스가 무언가 부탁을 한다면 크릭수스와 싸우지 않도록 해달라는 내용일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 반대일 줄은 정말로 상상도 하지 못했다.

  "잘못 들으신 게 아닙니다. 만약 상황이 허락된다면 제가 크릭수스와 결판을 낼 수 있게 허락해주십시오. 제가 직접 나선다면 그도 아마 거절하지 않을 겁니다."

  "아니 대체 어째서···그 정도까지 할 필요는 없잖아. 가장 친한 친구이자 스승 같은 존재 아니었어?"

  "그렇기 때문에 제가 마무리를 지어야 합니다. 솔직히 말씀드리자면 크릭수스가···그 사내가 로마인에게 죽는 모습을 보고 싶지 않습니다."

  "아······."

  마르쿠스는 그만 말문이 막혔다.

  동시에 스파르타쿠스가 어떤 마음으로 이 전투에 임하는지, 그 심정이 여실히 이해됐다.

  부하의 결의가 저 정도로 확고하다면 그걸 들어주어야만 한다. 그게 바로 한 사람의 주군으로서 갖춰야 할 자격이다.

  "좋아."

  이 상황에서 마르쿠스가 해줄 수 있는 말은 결국 단 한 가지밖에 존재하지 않았다.

  "네 마음이 가는 대로 하도록 해."

  "감사합니다."

  스파르타쿠스가 무릎을 꿇으며 고개를 숙였다.

  형형하게 빛나는 그의 두 눈에는 절대로 흔들리지 않을 확고한 신념이 담겨 있었다.

  마르쿠스는 스파르타쿠스에게서 눈을 떼고 어두워져 가는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무르익어가는 로마의 밤, 겨울이 끝나는 시기가 다가오는 새해.

  모든 배우가 무대에 오를 준비를 마쳤다.

  결전의 때가 다가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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