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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 대면 (28/326)

  # 28 27. 대면 ──────────────── 마르쿠스는 스파르타쿠스와 셀리니를 대동하고 로마로 돌아왔다.

  거의 1년 만에 보는 로마는 이전과는 또 다른 느낌이었다.

  곧 있으면 성대하게 개최될 개선식에 대한 기대로 도시 전체가 술렁이고 있었다.

  5년이 넘게 지속된 세르토리우스의 반란과 2년 가까이 끌린 노예반란이 연달아 진압됐으니 이를 반기는 분위기도 컸다.

  마르쿠스의 귀환 소식에 가문의 사람들은 뛸 듯이 기뻐했다.

  저택의 앞에서 발을 동동 구르고 있던 테우토리아는 마르쿠스가 마차에서 내리자마자 그를 껴안았다.

  집을 나섰던 어린 장남이 한층 듬직해져서 돌아왔다.

  이 나잇대의 소년은 하루가 다르게 성장한다.

  어머니는 눈물을 흘리며 한층 키가 큰 아들을 껴안고 놓아주지 않았다.

  "아무 일도 없어서 정말 다행이다."

  뒤에서 지켜보는 셉티무스는 말없이 고개를 숙였다. 다나에는 울음범벅이 된 얼굴로 연신 다행이라고 중얼거렸다.

  죄송하다고 말할까 했지만 뭔가 그럴 분위기가 아니었다.

  마르쿠스는 그냥 웃었다.

  그래서 어머니는 더 울었다.

  허겁지겁 달려 나온 동생은 형의 영웅적인 승리의 기록을 직접 듣고 싶어 했다.

  그날은 해가 지도록 이야기로 꽃을 피웠다.

  어머니와 동생은 마르쿠스의 생생한 체험담을 쭉 들어주었다.

  그의 뒤를 지키고 서 있는 셉티무스와 다나에도 때로는 감탄하기도 하고 함께 기뻐하기도 하며 이야기에 흠뻑 빠져들었다.

  대미를 장식한 건 역시 스파르타쿠스와 크릭수스의 결전이었다.

  두 사람이 친우이자 사제관계였다는 사실에 테우토리아는 진심으로 안타까워했다.

  "슬픈 이야기로구나. 친구를 베기 위해 전장에 나갔다니······."

  반면 동생 푸블리우스는 잔뜩 상기된 얼굴로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정말 엄청나네요. 어째서 아버지가 스파르타쿠스에게 씨족의 이름을 주고 해방까지 해주셨는지 확실히 이해돼요. 제가 직접 보지 못한 게 안타깝네요. 영웅들의 일대기에나 나올 법한 전설적인 장면이었을 텐데···스파르타쿠스는 안타깝긴 해도 지켜보던 사람들의 가슴속에서는 뜨거운 호기가 솟구쳐 올라왔을 거예요."

  대부분의 로마인은 푸블리우스 같은 반응을 보일 것이다. 마르쿠스는 동생의 말을 듣고 앞으로의 구상에 확신을 가질 수 있었다.

  가족들과 긴 이야기가 전부 끝나자 셉티무스가 다가와 물었다.

  "도련님, 이번 일은 어르신께 전부 들었습니다. 하지만 너무 과하게 양보를 하신 것 아닐까요?"

  "어째서 그렇게 생각하지?"

  "개선식이 가지는 가치는 생각보다도 더 큽니다. 아무리 어르신께서 커다란 공을 세운 걸 알아도 시민들은 눈으로 보이는 형태를 더 쉽게 받아들입니다. 거기에 개선식에서 뿌려질 은화까지 고려한다면 더 말할 것도 없죠. 원로원의 신임을 받을 수는 있더라도 민중의 지지는 폼페이우스를 향할 겁니다."

  "단기적으로 보면 그 말이 맞아. 개선식이 가지는 순간의 파급력은 정말 엄청나니까. 하지만 그런 열광적인 분위기는 생각보다 오래가지 않아. 결국 일회성이거든. 오히려 두고두고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는 쪽이 장기적으로 더 영향력이 클 거야."

  "하지만 어떻게 그렇게 장기적으로 사람들에게 회자 될 수 있을까요."

  마르쿠스가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셉티무스가 한 지적을 당연히 생각해보지 않았을 리가 없다.

  애초에 이건 크라수스에게 개선식을 포기하라고 할 때부터 이미 다 나왔던 말이기도 하다.

  크라수스는 개선식을 포기하면 이번에 자신이 세운 군공을 시민들이 잘 알지 못할까 봐 걱정했다.

  마르쿠스는 해결책을 준비해두었다.

  "네가 말했잖아? 시민들은 눈으로 볼 수 있는 걸 더 쉽게 받아들인다고. 그렇게 해주면 되지. 안 그래도 너에게 일을 하나 맡기려던 참이었는데 잘됐네. 이름난 극작가를 섭외해 봐. 명성이 높으면 좋지만 집필에 시간이 오래 걸리는 사람은 안 돼."

  "연극을 상연하시겠다는 겁니까?"

  "그래. 일종의 선전물이 되겠지만 이보다 좋은 소재가 어디 있겠어? 적절하게 각색해주면 관객들은 엄청나게 열광할 거야. 내가 보장하지."

  로마의 연극은 공화정 초창기만 해도 도저히 수준이 높다고는 말해줄 수 없는 형편이었다.

  그리스의 유명 작품들이 번역되어 상영된 기원전 200년대에 가서야 제법 수준이 괜찮아졌다.

  이후로는 고대 로마의 영웅이나 시민상을 소재로 한 극작이 저술되면서 점점 저변이 넓어졌다.

  포에니 전쟁 이후 1년에 10일 정도밖에 열리지 않던 연극이 지금은 거의 30일이나 열릴 정도였다.

  특별상연까지 포함하면 그보다 좀 더 많을지도 모른다.

  확실히 현재 로마인들 사이에서는 흥미로운 연극을 보고 싶다는 열망이 점점 커지고 있었다.

  셉티무스도 조금 혹한 눈치였다.

  "스파르타쿠스를 주연으로 한 연극이라···그리스인이 주역인 연극은 이미 꽤 있으니까 충분히 가능하겠네요."

  "스파르타쿠스는 이제 로마인이야. 그걸 강조하는 방향으로 가면 교육적으로도 아주 훌륭한 연극이 될 수 있을걸.

  생각해 봐. 노예로 끌려온 검투사가 자신을 알아주는 주인을 만나 충성을 맹세하고 가진 능력을 전부 발휘하게 돼. 거기에 반란을 일으킨 옛 친우를 주군과 로마를 위해 눈물을 머금고 베면서 자신도 한 명의 당당한 로마인이 되는 거지. 조금 각색이 들어가면 이만큼 로마인을 만족시킬 만한 이야기가 없을 거야.

  "

  이러면 은연중에 노예를 인격적으로 대우하는 마르쿠스와 크라수스의 훌륭함을 설파할 수도 있다.

  이야기로서의 완성도도 높고, 로마의 위대한 승리로 마무리가 되니 관중들의 반응이 나쁠 수가 없다.

  당장 푸블리우스만 해도 스파르타쿠스의 서사에 잔뜩 흥분하지 않았었던가.

  이미 크라수스를 따른 8개 군단의 병사들에게 스파르타쿠스는 거의 전설이 되어 있었다.

  마르쿠스는 이들에게 로마로 돌아가면 자신이 본 것을 여기저기 말하고 다니라고 언질을 주었다.

  승리한 전쟁에 참여한 병사들은 원래부터 자신들의 경험담을 떠벌리고 싶어 안달이 나는 법이다.

  거기에 스파르타쿠스는 이미 로마 최고의 검투사 중 한 명으로 한창 명성을 얻고 있었다.

  당연히 소문은 들불처럼 번져나가는 중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연극만 개봉하면 최고의 선전이 되어줄 것이다.

  사실 고대 시대에서 연극이란 가장 좋은 프로파간다 수단 중 하나였다.

  하지만 아직 공화정 말기의 로마에서 이런 방식은 완전히 자리를 잡지 않았다.

  연극을 누구보다 적극적으로 프로파간다에 이용한 인물은 초대 황제인 옥타비아누스였다.

  그는 작가들을 고용해 자신의 왕조의 신화를 담은 연극을 대놓고 제작하게 했다.

  마르쿠스는 여기에서 영감을 얻었다.

  '어째 내가 하는 행동의 태반이 아우구스투스의 행적에서 영감을 얻는 것 같은데.'

  느낌이 아니라 사실이 그랬다.

  이미 대중과 원로원을 휘어잡는 완벽한 방법을 제시한 사람이 있는데 그걸 그대로 써먹지 않는 사람이 바보인 것이다.

  마르쿠스의 의도를 전부 이해한 셉티무스는 이견을 달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

  "가장 적합한 작가를 구해오겠습니다. 그리고 또 해야 할 일이 있을까요?"

  "아, 맞다. 그러는 김에 적당한 선물 하나 알아봐 줘."

  "누구에게 선물할 계획이신지?"

  "폼페이우스. 개선식이 끝나면 커다란 연회를 벌일 거라는데 거기에 아버지와 나도 가게 될 것 같아. 그러니 미리 선물을 봐둬야겠지. 단순히 비싼 것보다는 폼페이우스의 허영을 자극할만한 상징성 있는 물건으로 좀 알아봐 줘."

  "알겠습니다. 내일 해가 뜨는 대로···아니, 지금 즉시 알아보도록 하죠."

  셉티무스는 한 번 고개를 숙이고는 그대로 밖으로 나갔다.

  두 사람의 대화가 끝나자 옆에서 조용히 이야기를 듣고 있던 다나에가 쪼르르 다가왔다.

  사실 진즉부터 말을 걸고 싶었는데 참고 있었다는 기색이 역력했다.

  꼭 새끼강아지 같은 그 모습이 귀여워 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내가 없는 동안 잘 지냈지?"

  "네. 도련님께 빨리 도움이 될 수 있는 사람이 되기 위해 잠을 줄여가면서 계속 공부에 매진했어요."

  "···하루에 몇 시간이나 잤어?"

  "5시간은 잤어요. 처음엔 4시간씩 잤는데 그러면 너무 졸려서 공부 효율이 안 나오더라고요."

  '얜 진짜 정도라는 걸 모르는구나.'

  다나에는 마르쿠스와 관련된 일이라면 이렇게 나사가 빠져버리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공부를 열심히 하고 있으라고 했지 누가 잠도 자지 말고 공부에 인생을 바치라고 했단 말인가.

  그러면서도 본인은 좋다고 생글생글 웃고 있으니 하도 어이가 없어 쓴웃음이 나왔다.

  "잠은 무조건 건강이 상하지 않을 정도로는 자도록 해. 그리고 공부도 그렇게 무리해서 할 필요 없어. 앞으로는 내가 없어도 좀 쉬어가면서 무언가를 하도록 하렴."

  "네. 그렇게 할게요."

  다나에는 뭐가 그리도 좋은지 얼굴에서 미소를 지우지 않고 계속 마르쿠스의 옆을 맴돌았다.

  강아지였다면 분명히 꼬리가 쉴 새 없이 파닥거리고 있었을 것이다. 왠지 그런 느낌이었다.

  "내가 없는 동안 공부 말고 다른 일은 없었어? 재미있었던 일이라거나."

  "아, 네! 그게 말이죠······."

  마르쿠스는 옆에서 더없이 행복하게 재잘거리는 다나에의 이야기를 들으며 잠자리에 들었다.

  오랜만에 로마에서 맞이하는 밤은 그렇게 하염없이 깊어만 갔다.

  마르쿠스의 소년기도 이제 그 끝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

  폼페이우스의 개선식은 로마 시민들 전체를 열광케 하며 성황리에 마무리됐다.

  그가 없었다면 히스파니아 속주 전체가 로마의 손에서 떨어져 나갔을지도 모른다.

  폼페이우스를 고깝게 보는 원로원마저 그가 세운 공로에는 극찬을 보냈다.

  반면 크라수스의 이름은 상대적으로 묻힐 거라고 예상한 이들이 많았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았다.

  스파르타쿠스를 주제로 한 연극이 로마 시민들에게 엄청난 인기를 끌며 크라수스의 이름도 덩달아 떠오르기 시작한 것이다.

  탐욕적인 부호로 알려져 있던 크라수스는 어느새 능력 있는 노예를 알아보고 아끼는 인자한 주인으로 탈바꿈했다.

  단기적인 파급력은 폼페이우스에게 미치지 못했지만, 크라수스의 인지도 역시 알게 모르게 꾸준히 높아지고 있었다.

  그 여세를 몰아 폼페이우스와 크라수스는 3위 이하와 압도적인 차이를 벌리며 집정관에 선출됐다.

  폼페이우스는 이로써 36살이 되는 해에 집정관직을 수행하는 초법적인 경력을 지니게 됐다.

  법률 의식이 투철한 자라면 겸연쩍어했겠지만, 폼페이우스는 이런 특례를 오히려 자랑스럽게 여겼다.

  그는 자신의 집정관 선출을 기념하는 연회를 대대적으로 개최했다.

  로마 역사상 최연소 개선장군에 최연소 집정관인 자신을 뽐내려는 자리였다.

  원로원은 질색을 했지만 폼페이우스는 그런 반응을 가뿐하게 무시했다.

  그는 원로원의 저명한 인사들과 이름난 기사계급의 사람들을 초청했다. 당연히 동료 집정관인 크라수스 역시 초대했다.

  크라수스는 폼페이우스가 으스대는 꼴이 보기 싫어 가고 싶지 않았지만, 일단 참석하기로 했다.

  싫은 상대와도 기꺼이 웃으면서 식사를 같이하는 게 바로 정치다.

  크라수스는 돈만 밝힌다는 세간의 인식과는 달리 상당한 정치력을 갖춘 사람이었다.

  그는 이참에 아들인 마르쿠스를 소개하기로 마음먹고 함께 폼페이우스의 저택으로 향했다.

  "하하하! 이게 누구신가!"

  크라수스를 발견한 폼페이우스가 과장된 태도로 두 팔을 벌리며 환영했다.

  크라수스는 본심을 감추고 마주 웃으며 폼페이우스가 내민 팔을 맞잡았다.

  "집정관 선출 이후로는 처음 보는군."

  "하하하, 내년에는 함께 국정을 운영해야 하는 사이니 자주 보게 될 걸세. 그건 그렇고 이 아이가 자네가 그토록 아낀다는 장남인가?"

  폼페이우스의 시선이 크라수스의 옆에 선 마르쿠스를 향했다.

  크라수스는 이번에는 진심을 숨기지 않고 자랑스레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바로 봤네. 이 아이가 내 장남인 마르쿠스라네."

  "마르쿠스? 그건 자네 이름 아닌가?"

  "나처럼 되라는 바람에서 내 이름을 그대로 물려주었지. 한데 괜한 짓을 했어. 이 아이는 나 정도가 아니라 나보다도 훨씬 더 크게 될 아이거든. 하하하!"

  "아버지. 너무 그런 모습을 보이시면 다른 사람들이 팔불출이라고 흉을 볼 수도 있습니다."

  마르쿠스의 제지에도 크라수스는 코웃음을 치며 더욱 목소리를 높였다.

  "하! 팔불출은 무슨. 지금 로마에 나보다 훌륭한 아들을 둔 이가 있으면 어디 나와 보라고 해라. 혹여 그런 말을 하는 놈들이 있다면 다 질투에 눈이 멀어 헛소리를 하는 것이야."

  크라수스는 이제 마르쿠스가 어떤 황당한 말을 해도 다 믿어줄 수 있을 정도로 그를 신뢰했다.

  전쟁이 끝난 뒤 마르쿠스가 보여준 수완은 그만큼 놀라웠던 것이다.

  아들의 말대로 해서 지금까지 손해를 본 게 단 하나도 없었다. 아니, 손해를 보기는커녕 헤아릴 수 없는 이득만을 보는 중이었다.

  게다가 원로원 의원들은 이전과는 달리 크라수스를 그리 견제하지도 않았다.

  오히려 크라수스를 대할 때는 깊은 친밀감과 동지의식을 내보였다.

  이번에 집정관에 선출되었을 때도 원로원 의원들이 앞다투어 축하 인사를 건넸을 정도다.

  크라수스는 현재 인생에서 최고로 들뜬 기분을 만끽하고 있는 중이었다.

  거기에 술까지 들어가니 마르쿠스를 향한 자랑스러움이 여과 없이 밖으로 나오는 것이다.

  마르쿠스는 적당히 말을 맞춰주며 크라수스를 다른 곳으로 보냈다.

  폼페이우스는 평상시 보지 못했던 크라수스의 이질적인 모습에 상당한 흥미를 느꼈다.

  '그러고 보니 그때도 아들 운운했었지.'

  그가 멀어지는 크라수스에게서 눈을 떼고 마르쿠스를 향해 시선을 돌렸다.

  "자네, 나이가 어떻게 되나?"

  "내년이면 열여섯이 됩니다."

  "이 년 뒤에 성년인가. 그러면 저번에 전쟁에 따라나섰을 때는 정말로 어렸겠군. 허허, 나조차도 그때 전장에 나간 적은 없었는데 배짱이 대단한 걸."

  "제가 아무리 그래도 위대한 폼페이우스와 비견될 정도는 아니지요. 사실 존경하는 분을 이렇게 눈앞에서 뵙게 되니 지금도 긴장을 억누르기 힘들 정도입니다."

  "존경? 나를?"

  의외라는 시선이었다. 크라수스와 폼페이우스는 로마에서 모르는 사람이 없는 앙숙 관계다.

  그런데 크라수스가 아끼는 장남이 폼페이우스를 존경한다고 하니 당연히 의문이 들 수밖에 없었다.

  "제가 크라수스 가문의 사람이긴 하지만 그 이전에 한 명의 로마 시민입니다. 저 아프리카누스에 버금가는 명성을 쌓고 계신 폼페이우스 마그누스를 존경하는 마음이 없다면 거짓말이겠지요."

  "자네의 아버지와 나는 사이가 그리 좋지 않은데?"

  "그래도 결국 두 분 다 이 로마를 이끌어나갈 핵심적인 축이 아니겠습니까. 그리고 엄밀히 말하면 제가 정계에 나갈 때쯤이면 폼페이우스 님께서는 이미 로마를 발아래에 둔 최고의 중진이 되어계시지 않겠습니까. 신참인 제가 위대한 원로와 척을 질 이유가 전혀 없지요."

  "하하, 이것 참 시원시원하고 솔직해서 마음에 드는 친구로군. 자식 앞에서 아버지를 욕할 마음은 없네만 자네가 크라수스보다 훨씬 생각이 열려있는 듯해."

  폼페이우스는 무엇보다 '로마를 발아래에 둔'이라는 표현이 굉장히 마음에 들었다.

  그것도 자신의 경쟁자로 여겨지는 크라수스의 아들이 그런 말을 한 것이다.

  그는 포도주가 든 잔을 흔들며 저택의 정원을 가리켰다.

  "저기로 가서 좀 더 이야기를 나눠보지 않겠나? 나도 크라수스를 아들 바보로 변화시킨 자네에 대해 굉장히 흥미가 동하고 있거든."

  "영광입니다. 저도 동경하는 폼페이우스 마그누스와 꼭 심도 있는 이야기를 나눠보고 싶었습니다."

  폼페이우스는 넓은 정원에 마르쿠스와 단둘이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공간을 확보했다.

  노예들이 포도주와 각종 안주들을 자리에 쭉 늘어놓았다.

  "연회의 주역인 내가 너무 오래 자리를 비우면 안 되겠지만 잠깐이라면 괜찮겠지. 먼저 들게."

  노예가 마르쿠스가 든 잔에 포도주를 채워주었다. 향긋한 주향이 기분 좋은 밤바람을 타고 코끝을 간질였다.

  "영광스럽게 받겠습니다."

  마르쿠스는 술잔을 들고 조심스레 입에 가져갔다.

  폼페이우스의 입가에 미소가 감돌았다. 두 눈에는 흥미롭다는 빛이 한껏 깃들어 있었다.

  "자네가 크라수스를 훨씬 뛰어넘는 재능의 소유자라고 하던데."

  "과장된 평가입니다."

  "너무 겸양 부리지 말고 솔직히 말해보도록 하게. 그쪽의 식견을 좀 듣고 싶으니. 시험이라고 생각해도 좋네."

  폼페이우스가 술잔을 들어 한입에 쭉 들이키고는 말을 이었다.

  "자네는 나와 크라수스가 로마를 이끌어갈 한 축이라고 평했지. 정말로 그렇게 생각하나?"

  "예."

  마르쿠스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즉답했다. 하지만 딱 한 마디를 뒤이어 덧붙였다.

  "하지만 두 분 다 보완해야 할 점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

  폼페이우스의 두 눈에 순간 이채가 서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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