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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 대 개조 (30/326)

  # 30 29. 대 개조 ──────────────── 다짜고짜 일을 같이하자는 말에 비트루비우스는 어안이 벙벙한 표정으로 고개를 갸웃거렸다.

  "무슨 일을 말씀하는 것인지···아, 혹시 저에게 일감을 맡기시려는 건가요?"

  "내 말의 의미가 제대로 전달이 안 됐나 보군. 단순히 일을 하나 맡기는 게 아니라 자네를 데려가고 싶다는 말일세."

  "예?"

  "내가 자네의 재능과 능력을 마음껏 발휘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겠네. 원한다면 하고 싶은 연구도 마음껏 하게 해주지. 대신 연구의 성과는 나와 공유해야 하네. 그리고 내가 의뢰한 일의 경우에는 나 이외의 사람에게 성과를 누설해서는 안 될 것이고."

  마르쿠스의 제안에 비트루비우스는 고심을 시작했다. 심각한 얼굴로 고민하는 그에게 마르쿠스가 몇 마디 말을 덧붙였다.

  "이는 자네와 나 모두에게 도움이 되는 일일세. 나는 능력 있는 기술자를 얻으니 좋고, 자네는 평생 돈 걱정 없이 하고 싶은 연구를 마음껏 할 수 있으니 좋고. 거기에 추가로 금전적인 보수도 섭섭하지 않게 챙겨주겠네. 그러니까 쉽게 말해 내 전속 기술자가 되어 달라 이 말일세."

  비트루비우스는 단순한 건축가가 아니라 대단히 뛰어난 기술자였다.

  이 시대의 기술자들은 보통 다방면에 뛰어난 이들이 대다수였는데 비트루비우스도 그랬다.

  그는 단순한 건축기술만이 아니라 군사 도구, 시계, 천문학, 토목 도구 그리고 운하까지 온갖 분야에 정통했다.

  지금이야 미완의 대기지만 마르쿠스가 지원해준다면 역사보다 훨씬 더 빠르게 성장할 것이다.

  마르쿠스는 내심 그가 자신의 제안을 받아들이기를 속으로 빌었다.

  '싫다고 하면 돈을 더 써서라도 잡아야지. 제발 넘어와라.'

  비트루비우스는 조금 뜸을 들이더니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평생을 돈 걱정 없이 하고 싶은 연구를 계속할 수 있는 건 모든 기술자들의 꿈입니다. 그런데 저에겐 너무 과분한 조건 같아서···어째서 저 같은 사람에게 이런 제안을 하시는 건지 이유를 여쭤봐도 되겠습니까?"

  "자네의 재능을 높이 보고 있기 때문이지. 일종의 투자라고 생각해주게. 물론 자네보다 실력 좋은 기술자야 찾아보면 많겠지만 그들은 포섭하는데 더욱더 많은 돈과 시간이 들어가지 않겠나."

  "예. 그건 그렇겠지요. 하지만 도련님은 저를 오늘 처음 보시는 게 아닌가요? 제 재능을 어떻게 확신하시는지······."

  "쯧쯧, 자네는 꼭 직접 봐야만 그런 걸 알 수 있나? 당연히 자네에게 접촉하기 전에 조사를 철저히 했지."

  마르쿠스의 확신 어린 설득에 비트루비우스도 점점 혹하는 눈치가 됐다.

  그 역시 내심 자신의 재능에 상당한 자부심이 있긴 했다.

  그런 재능을 알아봐 주고 이렇게 좋은 조건을 제시해주는데 마음이 동하지 않을 리가 없다.

  "정말 제가 원하는 연구를 마음껏 할 수 있는 겁니까?"

  "물론. 자네가 하고 싶은 연구를 보고서 형식으로 만들어서 제출하면 바로 승인해주겠네. 그리고 겸사겸사 내가 부탁하는 연구도 좀 같이 해주면 좋겠지. 당연히 이 모든 내용은 계약서로 남길 테니 믿어도 좋아."

  "혹시 제가 원하는 책도 구해주실 수 있습니까?"

  "물론. 책을 원한다면 바로 찾아올 것이고, 사람을 원한다면 그 역시 바로 데려와 주겠네."

  이 당시에 책은 상당히 고가품이었다.

  현대 같은 제지술이 퍼진 게 아니라 대다수가 값비싼 파피루스에 필사한 두루마리였기 때문이다.

  형편이 넉넉한 귀족이나 기사계급이 아니라면 읽고 싶다고 읽을 수 있는 물건이 아니었다.

  비트루비우스는 이게 인생에서 두 번 오지 않을 기회라는 걸 확신하고 마음을 굳혔다.

  그가 정중히 고개를 숙이며 입을 열었다.

  "도련님의 제안을 받아들이겠습니다. 아직 모자란 몸이지만 기대를 배신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좋아. 절대로 후회할 일은 없을 것이네. 일단 자네가 마음 놓고 연구를 할 수 있는 공간부터 마련해주지. 이 근방이 너무 사람이 북적여서 마음 편히 있을 수 없을 테니까. 나중에 사람을 보낼 테니 간단히 이사할 준비를 해두게."

  "예, 예. 감사합니다."

  "자, 그럼 나머지 이야기는 나중에···아니, 아니지. 가장 중요한 이야기를 빼먹을 뻔했군."

  마르쿠스가 한 가지 빼먹었다는 표정을 짓고는 재빠르게 말을 이었다.

  "자네가 아는 솜씨 좋은 기술자들을 좀 추천해주게. 같이 일하고 싶은 사람도 좋고, 재능 있는 젊은이라면 더욱더 좋네."

  "도련님의 아래에도 장인들은 많지 않습니까?"

  "물건을 만드는 장인들이야 아주 많지. 하지만 난 단순히 가지고 있는 기술로 물건을 제작하는 게 아니라, 그 기술을 한 단계 발전시킬 수 있는 장인을 찾고 있는 걸세."

  장인이나 기술자들은 보통 다른 분야의 전문가들과도 인맥으로 엮여있다.

  서로 얽혀있는 게 많다 보니 자연스럽게 상부상조하는 관계가 형성되는 것이다.

  비트루비우스 정도의 천재가 관계를 맺고 있는 기술자들이면 다들 나쁘지 않은 실력자일 터.

  마르쿠스는 비트루비우스의 인맥을 고스란히 자신의 휘하에 둘 생각이었다.

  "혹시 특별히 원하는 분야의 전문가가 있으십니까?"

  "우선 제철 쪽이 가장 시급하지만, 다른 어떤 분야라도 상관없네. 그리고 할 수 있다면 여성을 대상으로 하는 상품을 개발하는 기술자도 소개해주면 좋겠군. 장신구나 화장품 같은 것들 말일세."

  "제철 쪽은 클레투스라고 아주 뛰어난 기술자가 한 분 계십니다. 여성 장신구는 세르기우스가 굉장히 잘 만들고요.

  "좋아. 그들 모두 소개 좀 해주겠나? 실력 있는 기술자들은 많으면 많을수록 좋으니까."

  마르쿠스가 흡족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뒤편에 있는 다나에에게 슬쩍 고개를 돌렸다.

  "세르기우스라는 친구가 오면 많이 배워두어라. 예전에도 말했지만 나중에 너에게 이쪽 사업을 맡길 예정이니까. 지금부터 고급 장신구와 화장품을 보면서 안목을 키워두렴."

  "네.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다나에의 얼굴을 보니 목숨이라도 걸 듯 결연한 표정이었다.

  마르쿠스는 웃으며 그녀의 어깨를 두드려주었다.

  "너무 과하게 하지는 말고 그냥 열심히만 해."

  소기의 목적을 전부 달성한 마르쿠스는 기분 좋게 수부라를 떠났다.

  그는 셉티무스에게 기술자들이 마음껏 일할 수 있는 환경 조성을 명령한 뒤, 빠른 걸음으로 다음 목적지를 향해 떠났다.

  열매가 결실을 맺기 위해서는 일단 토양부터 탄탄히 다져놔야 하는 법.

  사업의 기반을 다지기 위한 대작업은 이제 막 시작했을 뿐이었다.

  ※※※※

  마르쿠스가 향한 곳은 다름 아닌 자신의 저택이었다.

  집으로 돌아온 그는 곧장 크라수스를 찾았다.

  업무를 보고 있던 크라수스는 마르쿠스가 왔다는 말을 듣고 바로 일을 중단하고 아들을 맞이했다.

  "오오, 어쩐 일로 왔느냐? 당분간은 일이 많아 바쁠 거라고 하더니."

  "예 지금도 업무의 목적으로 들른 겁니다. 사업 관련으로 부탁드릴 게 있어서 왔습니다."

  "부탁이라면 당연히 들어줘야지. 그래, 내가 뭘 들어주면 좋겠느냐."

  이미 요청을 들어준다는 게 전제가 되어 있다는 반응이었다. 크라수스는 이제 아들이 어떤 황당한 말을 하더라도 다 들어줄 준비가 되어 있었다.

  마르쿠스도 그것을 알고 있었기에 부담 없이 입을 열었다.

  "사업장의 인재들을 교육, 감독할 수 있는 전권을 주십시오."

  "지금도 어지간한 일은 너 스스로 하고 있는 걸로 아는데, 그것보다 더 큰 권한이 필요할까?"

  "예. 사업장의 기본적인 뼈대부터 손을 보려고 하는데 아버지의 확실한 허락이 있어야 가능할 것 같습니다."

  "뼈대부터 바꾼다는 게 무슨 의미인지 이해가 잘 가지 않는구나."

  "간단히 말해서 사용하는 숫자의 체계부터 회계 장부의 기록까지 전부 다 손볼 겁니다. 훨씬 효율적이고 발전된 방법으로요. 처음에는 익히기 어려울 테지만 익숙해지면 그 진가가 확실히 나올 겁니다."

  마르쿠스는 자신의 사업장에 아라비아 숫자와 기초적인 회계지식을 도입할 생각이었다.

  현대에는 너무나 흔한 숫자지만 과거엔 이 아라비아 숫자가 수학을 진일보시킨 공신과도 같았다.

  로마에서 쓰는 숫자와 아라비아 숫자를 사용해 간단한 사칙연산만 해봐도 편리함의 차이가 말도 못 할 정도로 많이 난다.

  그래도 로마 전체에 적용하기엔 시기상조이니 일단은 자신의 사업장에만 적용하기로 했다.

  회계지식 역시 마찬가지다.

  마르쿠스는 전생에 경영과 경제를 복수전공 했기에 학부 수준의 지식은 충분히 가르칠 수 있었다.

  어차피 지금 시대에서는 기초적인 회계원리 수준의 지식 정도만 가르쳐도 충분히 혁신적이다.

  유럽에서 차변과 대변을 나눈 복식부기가 쓰인 게 15세기 말이었으니 말이다.

  현대의 회계 기준이나 세법 같은 건 처음부터 도입할 마음도 없었다.

  일단 아라비아 숫자와 기초 회계원리, 좀 더 나아가서 원가회계까지만 도입해도 효율성을 최소 10배까지는 높일 수 있으리라.

  문제는 아라비아 숫자가 발원지인 인도에서도 아직 시작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마르쿠스는 저 먼 동방에서 사용되는 기법이라고 적당히 거짓말을 했다.

  어차피 크라수스가 확인할 방법도 없는데 어쩌겠는가.

  대신 이것들이 얼마나 효율적인 방법인지 열심히 설명했다.

  마르쿠스의 설득을 들은 크라수스는 생각 외로 빠르게 결론을 내렸다.

  "네가 했던 이야기 중에 지금까지 틀린 게 있었더냐. 나는 이제 네가 공기로 밀을 만든다고 해도 믿을 수 있을 것 같구나."

  인공질소비료를 고려하면 그것도 틀린 말은 아니었지만 마르쿠스는 그냥 얌전히 고개를 숙였다.

  "감사합니다. 빠르게 성과를 내보이겠습니다."

  "그래. 내가 너를 무조건 신뢰하긴 해도 제한 없이 풀어줄 수는 없는 법이지. 그러니 3년 안에 성과를 보여다오. 그러면 네가 그 어떤 일을 하더라도 내게 허락을 구할 필요는 없을 게다."

  "3년은 너무 기니 1년 안에 내보이겠습니다."

  마르쿠스의 확신 어린 대답에 크라수스도 만족스러운 미소로 화답했다.

  사실 크라수스의 집정관 임기가 시작하면 그는 사업에 신경을 쓰는 게 거의 불가능해진다.

  마르쿠스가 실질적으로 사업을 이끌어나가야 하는 건 기정 된 사실이라 할 수 있었다.

  예전 같았다면 불안했겠지만, 지금의 크라수스는 그저 든든할 뿐이었다.

  이렇게 사업의 실권을 한발 빠르게 쥐게 된 마르쿠스는 즉각 사람들의 교육에 착수했다.

  모두가 생소한 아라비아 숫자의 도입에 당혹스러워했으나, 빠르게 적응했다.

  숫자를 계속 반복적으로 다뤄본 이들은 이 표기법이 얼마나 우월한지 순식간에 파악했기 때문이다.

  기초적인 회계장부의 작성법도 금방 받아들여졌다.

  "이런 방법이 있었다니 왜 지금까지 까맣게 몰랐을까요?"

  "그러게 말입니다. 잘못된 수치를 적어도 검증이 바로 되니 이보다 편할 수가 없어요."

  "도련님은 이런 지식을 대체 어디서 얻으신 거죠?"

  "글쎄요···먼 동방의 어딘가에서 최근 사용하는 방식이라고 하던데요."

  "허어···역시 세상은 넓은가 봅니다. 우리 로마가 아무리 최고라고 해도 특정 분야에서는 더 뛰어난 지역이 계속 나오니까요."

  "그래도 그런 장점을 바로바로 흡수하는 게 우리의 최고 강점이 아니겠습니까."

  사업장의 인력들은 존재하지도 않는 가상의 동방국가의 지식에 충격을 받고 열띤 감상을 나누었다.

  결국 마르쿠스의 호언장담대로 얼마 지나지 않아 개선된 체제의 효율성이 입증되기 시작했다.

  비트루비우스가 소개해준 기술자들과도 전부 계약을 마쳤다.

  그들이 일할 수 있는 환경과 주거 공간을 갖춰준 마르쿠스는 그들에게 각각 연구주제를 할당했다.

  특히 제철에 일가견이 있다는 클레투스에게는 막중한 임무를 맡겼다.

  "시간과 예산은 얼마나 들어도 상관없으니 고로를 대형화시키고 거기에 강력한 공기를 불어 넣을 수 있는 신형 풀무를 만들어주게."

  마르쿠스가 아는 대략적인 원리는 물레방아를 이용해 풀무로 공기 돌풍을 일으킨다는 것이었다.

  사실 기술의 발전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은 이런 핵심적인 아이디어다.

  이것만 있으면 솜씨 좋은 기술자들은 어떻게든 개선법을 찾아낼 수 있다.

  잔뜩 흥분한 클레투스는 곧바로 시험품을 만들어보겠다며 마르쿠스가 마련해준 연구실에 틀어박혔다.

  최소한의 체제를 갖춘 마르쿠스는 이제 추가로 돈을 벌 방안도 마련하기 시작했다.

  등자와 편자로 벌어들인 수익은 엄청났지만, 앞으로 계속 나갈 지출을 고려하면 사업을 더 확장해야 한다.

  드디어 아껴두었던 수레와 마차의 개선을 시작할 때였다.

  '기초적인 서스펜션만 깔아줘도 승차감은 비약적으로 상승하겠지.'

  조금 알아보니 이미 로마에 목판을 이용한 판 스프링 기술은 존재하고 있었다.

  단지 이 기술을 발리스타 같은 공성병기에만 적용하고 있다는 게 문제였다.

  세상 어디를 가도 흔히 볼 수 있는 상황이다. 이미 충분한 기술적 역량이 있는데 발상이 따라주지 않아 그걸 적용하지 못하는 것이다.

  마르쿠스는 공성병기에 사용되는 판 스프링을 소형화해 서스펜션을 만드는 작업에 착수했다.

  군사도구에 능통한 비트루비우스가 한 달 내로 시제품을 만들겠다는 긍정적인 답을 들려주었다.

  모든 일은 계획대로 착착 진행되고 있었다.

  그러나 그것은 마르쿠스에게만 해당하는 이야기일 뿐.

  폼페이우스와 크라수스의 임기가 시작하는 기원전 70년은 시작부터 로마에 엄청난 충격을 몰고 왔다.

  폼페이우스는 자신의 임기가 시작한 첫날에 집정관 입법의 형태로 폭탄선언을 해버린 것이다.

  "부당하게 억압당하고 있던 민중들의 권리를 다시금 돌려줘야 합니다. 민중들의 권리는 곧 민회에서 오는 법. 민회의 입법권을 보장하는 호르텐시우스 법을 부활시키겠습니다!"

  당연히 민회와 원로원은 서로 다른 의미로 완전히 뒤집혔다.

  역사의 소용돌이가 어지러이 뒤엉켜 몰아치는 격동의 기원전 70년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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