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1 30. 대 개조 ──────────────── 30. 대개조
"이건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이제 일상이나 다름없게 된 고성이 원로원을 뒤덮었다.
중앙의 연단을 반원형으로 둘러싼 의원들은 너나 할 것 없이 목청을 높이고 삿대질을 해댔다.
"술라께서 원로원의 권한을 강화하는 법을 제정하고 50년이 지났습니까, 아니면 25년이 지났습니까. 이제 막 10년이 지났습니다. 그런데 이걸 벌써 무효로 돌리자니요."
"폼페이우스! 당신이 어떻게 원로원을 이렇게까지 무시할 수 있단 말이오!"
"이건 말도 안 되는 월권이오. 원로원은 절대 동의하지 않을 것이오!"
사방에서 쏟아지는 융단폭격에도 폼페이우스의 표정은 전혀 변화가 없었다.
오히려 여유로워 보이기까지 할 정도였다.
그는 느긋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친애하는 의원 여러분, 제가 언제 술라께서 하신 개혁을 무효로 돌렸다는 겁니까?"
"지금 그러고 있지 않소!"
"술라께서 폐지한 호르텐시우스 법을 부활시킨다는 건 곧 원로원의 권위를 약화시키겠다는 의미가 아닙니까!"
기다렸다는 듯 반론이 사방에서 쏟아졌다. 폼페이우스는 본디 대중 앞에서 연설하는 능력은 그리 좋지 못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이미 다 예상하고 있던 반응이라 손쉽게 반박이 가능했다.
"원로원 강화의 핵심은 인원수를 300명에서 600명으로 늘린 것과 속주 총독에 대한 원로원의 통제권을 강화시킨 것입니다. 솔직히 말해서 이 이상은 원로원의 강화라기보다는 민회 탄압에 가깝습니다."
"탄압이라니요. 말이 너무 심하십니다."
"실제로 민중은 그렇게 느끼고 있다는 말입니다. 지금 시민들의 반응이 어떤지 모르는 분이 계십니까?"
폼페이우스의 지적에 좌중이 쥐죽은 듯 고요해졌다.
로마의 관직은 기본적으로 선출직이기에 의원들은 민심에 상당히 민감했다.
이게 술라의 개혁이 내포한 문제점이기도 했다.
공화정이라는 체제는 민중의 지지가 없으면 성립이 불가능하다.
아무리 민중의 권한을 억눌러도 결국 그 민중의 표를 받지 못하면 공직자가 될 수 없는 것이다.
이런 구조적인 문제 때문에 원로원 의원들은 시민들의 시선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법무관이나 집정관이 될 생각이 아예 없다면 모르겠지만, 그런 의원이 원로원 안에 있을 리가 없다.
폼페이우스는 좌중을 슥 둘러보며 기세등등하게 말을 이었다.
"여러분이 반대하고 싶다면 그렇게 하세요. 하지만 민회는 오늘 원로원 회의에 지대한 관심을 보이고 있으니 여기서 어떤 말이 오갔는지 바로 전해질 겁니다. 렌툴루스, 아까 원로원이 절대 동의하지 않을 거라는 의견은 여전히 유효한 겁니까?"
방금 전까지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던 렌툴루스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침묵했다.
내년의 법무관 선거를 노리는 그는 여기서 섣불리 입을 놀리면 안 된다는 걸 깨달았기 때문이다.
다른 의원들도 서로 눈치만 보며 말을 아꼈다.
올해 육십이 된 원로원파의 중진 메텔루스 피우스가 조심스레 일어나 발언을 요청했다.
폼페이우스와 함께 세르토리우스의 반란을 진압한 그는 골수 원로원파 가문의 일원이기도 했다.
하지만 메텔루스 개인의 성향은 상당히 신중한 편에 속했다.
그는 다른 의원들과는 달리 지금 상황을 단순한 정쟁으로 보지 않았다.
"친애하는 의원 여러분, 집정관의 말도 아주 틀린 건 아닙니다. 이치에 맞는 부분도 있다는 건 인정해야 합니다."
"이치에 맞는다니요? 그럼 저 법안을 통과시켜야 한다는 말입니까?"
"마냥 반대할 수만은 없다 이 말입니다. 사실 지금 민회의 위상은 말 그대로 땅에 떨어진 상태입니다. 민중의 불만을 떠나서 이건 균형적으로 좋은 상황이 아닙니다."
메텔루스의 의견은 온건한 공화주의자들의 심정을 그대로 대변하고 있었다.
원로원 의원 가운데 다수는 로마라는 국가의 시스템에 상당한 자부심을 지니고 있었다.
민중파만 독주하면 아테네처럼 중우정치로 빠지기 십상이고, 귀족들만 득세하면 어디서나 볼 수 있는 흔한 정치 형태가 된다.
로마의 공화정이야말로 완벽한 체제라고 믿는 의원들은 내심 술라의 개혁에 불만을 품고 있었다.
원로원의 권한을 강화해준 건 좋지만 균형을 너무 심하게 훼손했기 때문이다.
특히 법에 능통한 의원들이 이렇게 생각하는 비율이 높았다.
그중 한 명인 키케로가 메텔루스의 의견을 지지하고 나섰다.
"민회의 입법권을 보장하는 건 200년이 넘게 이어져 온 전통이었습니다. 저는 이 전통을 되살리는 것은 충분히 논의해볼 사항이라고 생각합니다. 추가로 배심원 제도도 다시 원래 상태로 돌려놔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로마의 사법제도를 구성하는 핵심적인 두 요소는 배심원 제도와 항소권이었다.
모든 로마인은 법에 의해 항소를 할 권리를 보장받았고, 재판에서 배심원들에 의해 형을 선고받았다.
이 배심원단은 본래 귀족이 독점하고 있었지만, 그라쿠스 형제의 개혁으로 그 체제가 깨졌다.
그라쿠스 형제는 로마의 3대 계급이라 할 수 있는 귀족, 기사계급, 평민들이 각각 3분의 1씩 배심원을 구성하도록 했다.
그러나 술라가 독재관이 된 이후 이 제도를 다시 원래 상태로 복귀시켜버렸다.
이건 사실상 귀족들에게 면책특권을 주는 행위였다.
법의 인간인 키케로는 내심 이런 공평하지 못한 제도에 환멸을 느끼고 있었다.
그는 주먹을 불끈 쥐며 열변을 이어나갔다.
"귀족과 평민이 재판에서 붙는다면 도저히 빠져나갈 수 없을 정도로 증거가 확고해도 귀족의 편을 들어주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는 로마의 사법체계에 심각한 불신을 가져오게 될 겁니다. 아니, 이미 시민들의 불신은 누적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뭐든지 다 그렇게 풀어줬다가 그라쿠스 형제 같은 인물이 다시 나오면 어쩌려고 그러시오?"
"그래서 그 그라쿠스 형제가 원로원을 뒤집어엎는데 성공했습니까? 두 번 다 불발로 그쳤습니다. 게다가 지금 원로원은 그때보다 더 강력한 권한이 있습니다. 저희가 지레 겁먹을 상황이 아닙니다."
"하지만 그래도······."
원로원 안에서마저 찬반 여론이 나뉘자 폼페이우스는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그는 아예 배심원단을 이전처럼 각 계급이 균등히 구성한다는 법안까지 함께 제출해버렸다.
강경파들은 속만 부글부글 끓일 뿐, 드러내놓고 반대의견을 내지 못했다.
결국 표결은 내일로 미루자는 지연작전을 펼치는 게 그들이 할 수 있는 최선이었다.
폼페이우스는 내일도 표결을 미루면 민회에 이를 그대로 전하겠다는 으름장을 놓고 자리를 떠났다.
발등에 불이 떨어진 강경파 의원들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현 상황에 분통을 터트렸다.
급기야 그들은 또 다른 집정관인 크라수스를 붙잡고 하소연을 했다.
"집정관께서 거부권을 행사해주십시오. 이대로 가면 법안이 통과되지 않겠습니까."
"허허···지금 나보고 독박을 쓰라는 말인가? 그건 안 될 말이지. 지금 시민들의 폭발적인 지지를 받는 법안에 거부권을 행사하면 내 입장은 어떻게 되겠소?"
"아니, 그러면 이대로 손 놓고 보시겠단 겁니까?"
"일단 자네부터 소리 높여 반대의 의사를 밝히면 나도 생각해보겠네. 그렇게 하지 않고 나한테만 모든 책임을 떠넘기는 건 무책임하다고 생각하지 않나?"
크라수스는 이 건에 대해서 거부권을 행사할 마음이 애초에 없었다.
지금은 원로원의 대변인인 척 하고 있기는 해도 크라수스는 사실 기사계급의 대표자다.
호르텐시우스 법과 배심원 제도의 개편은 기사계급에게도 나쁠 게 전혀 없었다.
여기에 불편한 심경을 드러내는 건 골수 귀족파들뿐이다.
그래도 크라수스는 표면적으로는 원로원의 충실한 동반자였으니 빠져나갈 핑계거리는 필요했다.
그는 다른 원로원 의원들이 열렬히 반대를 외쳐주면 자신도 호응할 명분이 생긴다고 피력했다.
당연히 자신이 나서겠다고 하는 의원들은 한 명도 없었다.
그래도 원로원파 의원들이 믿을 구석은 크라수스뿐이었다.
그들은 포기하지 않고 대응책을 내놓을 것을 요구했다.
"폼페이우스를 견제하겠다고 말한 건 집정관이지 않습니까. 약속을 지켜주셔야지요."
"우린 집정관만 믿고 있었는데 이렇게 무력한 모습을 보이시면 되겠습니까."
"잠깐 진정들 하시게. 내가 언제 폼페이우스를 그냥 놔둔다고 했나? 다만 지금은 폼페이우스가 올린 법안에 반대할 명분이 없다는 것이지. 냉정하게 줄 건 주고, 취할 건 취하는 전략을 사용하도록 합시다."
크라수스의 제안에 원로원파 의원들의 눈빛에 일말의 희망이 돌아왔다.
그들이 크라수스의 주변에 모여들었다.
"방법이 뭡니까?"
"우리가 뭘 얻어낼 수 있긴 한 겁니까?"
"직접적으로 이득을 보는 건 불가능하겠지. 하지만 폼페이우스를 계속 저렇게 기고만장하게 둘 수는 없지 않겠나."
의원들이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동시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긴 하지요. 폼페이우스는 지금 선을 넘고 있습니다."
"그래. 그러니까 저 제안을 받아들이는 대가로 폼페이우스 역시 무언가를 포기하게 해야지."
"그의 성격상 뭔가를 포기하려 들지 않을 텐데요?"
"그가 했던 방식을 그대로 돌려주면 되네. 그쪽만 민중의 지지를 등에 업으라는 법 있나?"
크라수스의 계획을 들은 원로원파 의원들은 만족스럽게 웃었다.
일방적으로 두들겨 맞는 건 그들의 성미가 아니었다.
자신들이 피를 흘리는 이상 상대방 역시 최소한 상처를 입어줘야 한다.
귀족들의 합의가 마침내 이루어졌다.
뼈를 주게 되더라도 상대방의 살 정도는 취하겠다는 의지가 살벌하게 피어올랐다.
※※※※
원로원은 하루 만에 의견을 뒤집고 폼페이우스의 의견에 적극 찬성하겠다고 선언했다.
이번에도 자신의 뜻을 관철시킨 폼페이우스는 한껏 승리감에 취했다.
그러나 원로원의 반격은 의외로 뼈아팠다.
원로원 의원들은 어차피 통과될 법안이라면 시민들의 지지를 얻겠다는 심산으로 가두연설을 했다.
앞으로 시민의 권리를 적극적으로 돌려주겠다는 귀족들의 연설은 민회에서 박수갈채를 받았다.
이 틈을 타고 전직 집정관 아우렐리우스가 나섰다.
그는 위대한 폼페이우스가 노예 반란으로 혼란스러운 남부지역을 수습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크릭수스의 반란은 진압되긴 했지만 아직 사태는 완전히 수습되지 않았다.
단순히 죽은 사람만 계산해 봐도 10만이 훌쩍 넘는다.
전투에서 싸운 노예들은 대부분 항복하지 않고 죽음을 맞이했기에 포로도 별로 없었다.
로마는 본보기를 보이기 위해 도망친 노예들을 기를 쓰고 잡아들여 전부 십자가에 매달아버렸다.
아우렐리우스는 특히 시칠리아의 민심을 수습해야 한다고 위기감을 조성했다.
"그릇된 마음을 품고 있는 남부의 노예들은 대부분 죽었습니다. 하지만 노예 반란의 여파는 시칠리아까지는 미치지 않고 진압됐습니다. 시칠리아는 예로부터 가장 많은 노예들이 상주하고 있는 장소! 어떤 불온분자들이 숨어있을지 모릅니다. 하지만 폼페이우스 마그누스가 중심을 잡아준다면 감히 누가 허황된 마음을 품겠습니까!"
노예 반란으로 고생한 기억이 아직도 생생한 시민들은 아우렐리우스의 연설에 열렬히 찬동했다.
법무관과 집정관은 임기가 끝나면 1년 동안 속주의 총독으로 파견된다.
당연히 폼페이우스도 집정관 임기가 끝나면 속주의 총독으로 부임해야 했다.
원로원은 이 폼페이우스의 임지를 시칠리아로 정해버렸다.
민회도 이를 압도적으로 찬성했다.
폼페이우스는 겉으로는 태연한 척했으나 동요를 감추지 못했다.
그는 내심 자신의 임지를 동방으로 점찍고 있었던 까닭이다.
현재 동방의 정세는 루쿨루스가 연이은 승전보를 울리며 폰투스를 압박하고 있었다.
이대로 전황이 흘러가면 미트리다테스 6세는 더 버티지 못하고 굴복할 것이다.
미트리다테스의 폰투스가 항복하게 되면 동방에서도 로마의 적은 사라지게 된다.
폼페이우스는 그렇게 되기 전에 자신이 동방으로 가서 군공을 세울 생각이었다.
하지만 원로원만이 아니라 민회까지 그를 시칠리아로 보내는데 찬성하니 어쩔 도리가 없었다.
여기서 동방행을 고집하면 로마의 안위보다는 자신의 공만 탐하는 소인배라는 인상을 줄 수 있다.
폼페이우스는 어쩔 수 없이 시민들의 기대에 기꺼이 부응하겠다는 연설을 하며 분노를 억눌렀다.
원로원 의원들은 실리를 빼앗기긴 했어도 폼페이우스가 분해하는 모습을 보며 마음을 달랬다.
냉정하게 따지고 보면 폼페이우스가 손해를 본 건 없었다.
동방 속주로 가지 못하게 된 건 그냥 사전 계획이 틀어진 정도에 불과하다.
그래도 화를 다 삭이지 못한 그는 마르쿠스를 자신의 집으로 불렀다.
마르쿠스는 기꺼이 초대에 응했다.
"오오, 왔나?"
폼페이우스는 응접실로 들어온 마르쿠스를 격하게 환영했다.
호르텐시우스 법을 통과시킬 때 원로원의 반응은 전부 마르쿠스가 말해준 예상 그대로였다.
게다가 그는 원로원이 마냥 순순히 물러나진 않을 거라는 말도 사전에 귀띔해주었다.
이 모든 상황을 예측했다면 당연히 해결책도 가지고 있을 터.
폼페이우스는 거두절미하고 곧바로 본론을 꺼냈다.
"자네도 원로원이 내게 무슨 짓을 했는지 들었겠지?"
"예. 임기기 끝나면 시칠리아 총독으로 가게 되셨다고요."
"설마 크라수스가 원로원 너구리들에게 바람을 넣은 것인가?"
"아버지도 어쩔 수 없었을 겁니다. 일단 원로원을 대표해야 하는 위치에 계시니까요. 하지만 이건 폼페이우스 님께도 결코 손해가 아닙니다."
"손해가 아니라고? 동방 속주로 가지 못하게 됐는데 어떻게 손해가 아니란 말인가? 이대로 가면 루쿨루스가 미트리다테스를 끝장내는 걸 눈뜨고 지켜봐야만 할 텐데."
폼페이우스는 이미 충분한 군공을 쌓았음에도 만족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의 목표는 과거 마케도니아의 알렉산드로스 대왕에 필적하는 위업을 쌓는 것이기 때문이다.
고작 2번의 개선식 따위로는 성이 차지 않았다.
"무엇 때문에 그렇게 초조해하십니까?"
"자네는 잘 모르겠지만 동방에 가 있는 루쿨루스의 능력은 미트리다테스 따위와는 비교도 되지 않네. 그의 군사적 재능을 고려하면 당장 내년에 미트리다테스를 몰아쳐서 끝내버려도 전혀 이상하지 않다는 말일세."
"군사적인 재능만 보자면 그렇겠지요. 하지만 그 부분은 전혀 걱정하지 않으셔도 될 겁니다."
"뭐? 어째서?"
루키우스 리키니우스 루쿨루스는 술라의 밑에서 활약하며 일찍부터 뛰어난 재능을 인정받은 인물이다.
폼페이우스에 버금가는 지휘력을 지닌 그는 4년 전 집정관에 선출되었다.
때마침 미트리다테스 6세가 전쟁을 일으키자 그는 킬리키아의 총독으로 파견을 나가게 됐다.
강력한 군대를 거느리고 있던 미트리다테스였지만 군사의 천재인 루쿨루스에게는 상대가 되지 못했다.
연전연승을 거두고 있는 그의 승전보는 하루가 멀다 하고 로마로 날아들고 있었다.
자신이 활약할 기회를 엿보고 있는 폼페이우스로서는 그리 탐탁지 않은 결과였다.
그러나 앞으로의 일이 어떻게 흘러갈지 알고 있는 마르쿠스에겐 대수롭지 않은 일이었다.
"루쿨루스 님은 군사적 재능은 뛰어날지 몰라도 병사들의 마음을 얻는데 서투릅니다. 동방 속주에 파견 나가 있는 사람들의 반응을 들어보면 그 점이 여실히 드러나더군요. 그래서는 전투에서 이길지는 몰라도 전쟁을 이기기는 힘들죠."
"병사들의 마음을 얻는데 실패했다고? 그게 정말인가?"
"예. 승전을 해도 약탈을 금지하고 전리품도 너무 짜게 배분을 한다고 하더군요. 물론 규정에 어긋난 건 아니지만 그래서야 병사들이 만족할 리가 없죠."
고대 로마의 병사들은 약탈에서 한몫을 단단히 잡고 싶어 하는 욕망이 강했다.
수년 동안 전쟁터에서 굴러다니니 최소한 금전적인 보상이라도 확실히 챙기고 싶다는 마음에서다.
만약 약탈을 금지할 거라면 지휘관이 충분한 전리품을 나눠줘야 한다.
그러나 루쿨루스는 이런 점을 소홀히 했다. 규정대로의 봉급만을 나눠주고 약탈도 금지해버리면 병사들의 불만이 누적될 수밖에 없다.
심지어 루쿨루스는 부유한 동방에서 거둔 막대한 전리품을 본인이 거의 독식하다시피 했다.
이 사실을 전해들은 폼페이우스는 비릿한 조소를 흘렸다.
"그 말이 사실이라면 루쿨루스도 오래는 못 가겠군. 이거 괜히 마음을 졸였는걸."
"네. 그냥 폼페이우스 님은 시칠리아에 가셔서 민심을 다잡고 여유롭게 로마로 돌아오시면 됩니다. 루쿨루스가 동방을 제압하는데 실패하면 다음 차례는 자연히 폼페이우스 님에게 올 테니까요."
"하하하, 이거 자네 말을 들으니 막혀 있던 속이 뻥 뚫리는 것 같군. 그래, 나도 동방에 사람을 보내서 한 번 알아보겠네. 정말 자네 말대로라면 나도 흔쾌히 시칠리아로 가도록 하지."
"감사합니다."
"감사는 내가 해야지. 크라수스가 자네를 왜 그렇게 아끼는지 이제 확실히 알겠네. 지금까지 그가 한 번도 부러운 적이 없었는데 자네를 보니 좀 생각이 달라지는군. 내 아들도 자네처럼 천재적인 재능을 타고났으면 좋겠는데 말이야."
폼페이우스의 아낌없는 칭찬에도 마르쿠스는 그저 예의 바른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숙였다.
일이 잘 풀리니 기쁘긴 하지만 사실 약간은 씁쓸한 마음도 있었다.
'천재적인 재능이라······.'
마르쿠스가 정말로 그런 것을 타고났다면 얼마나 좋았겠는가.
주변의 모든 이들은 그를 로마에 다시없을 천재로 인식하고 있었으나 그건 사실과 달랐다.
마르쿠스는 의도적으로 그렇게 보이도록 천재라는 가면을 쓰고 있는 것이다.
다나에도, 셉티무스도, 스파르타쿠스도, 아버지인 크라수스마저 마르쿠스의 천재성을 의심하지 않았다. 의심당하면 곤란하다.
그는 앞으로 쭉 이런 천재의 모습을 연기해야만 했다.
누구도 범접할 수 없는 완벽한 초인의 모습으로 있어야 수하들에게 그만한 신뢰를 받을 수 있다.
그렇지 않다면 아직 어린 마르쿠스의 무엇을 믿고 부하들이 따르겠는가.
하지만 문제는 마르쿠스가 자신이 연기하는 대로의 천재가 아니라는 점이다.
어린 시절부터 온갖 분야에서 아르바이트를 해 잡지식이 풍부하고, 그런 상황에서도 장학금을 받으며 학교를 다녔으니 머리 자체는 좋았다.
그래도 역사에 이름이 난 천재들과 비교하면 미치지 못하는 게 현실이었다.
그래서 마르쿠스는 위가 뒤틀릴 정도의 시간과 정성을 쏟아 노력에 노력을 더했다.
알고 있는 역사적 지식을 토대로 수백 가지의 경우의 수를 생각해 그 대응법을 일일이 정리해놓았다.
일이 예상과는 다르게 흘러갈 수도 있기에 매일 같이 새로운 가능성을 고려하고, 해결법을 찾는데 몰두했다.
지금 보이는 신뢰감 가득한 목소리와 표정도 부단한 노력의 산물이었다.
어떻게 하면 더 신뢰가 가는 목소리로 말할 수 있는지, 어떤 표정을 지어야 좀 더 여유로워 보일지 거울을 보며 수천 번도 넘게 연습했다.
물론 이 천재행세가 고통스럽다는 생각 따위는 하지 않았다.
지금의 연기는 그가 이상으로 여기는 미래의 모습이다.
지금은 부족하더라도 언젠가는 진짜가 되도록 계속해서 이를 관철해 나갈 뿐이다.
마음을 다잡은 마르쿠스는 폼페이우스와 적당히 인사를 나누고 저택을 나섰다.
어쨌거나 일은 계획대로 흘러가고 있으니 그가 할 일은 정해져 있다.
'폼페이우스가 루쿨루스를 신경 쓰고 있는 걸 보니 때가 무르익어 가고 있는 건 확실하군.'
로마에서 동방의 전황을 낙관하고 있다는 건 곧 밀 값이 폭락할 거라는 신호와도 같다.
떼돈을 벌 기회가 다가오고 있는 것이다.